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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한국학교 학생들의 뜨거운 여름방학 성장기를 소개합니다(1)광저우한국학교는 화남지역 유일의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로, 광동성 정부와 대한민국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대한민국에서 초빙한 선생님들께 우리 교육과정과 교과서로 배우고 익히고 있다. 올해 2학기에는 초등 21명, 중등 18명, 총 39명의 학생들이 전편입으로 함께 하게 되어 2학기에 학급이 증설되는 등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이는 중국 내 많은 한국학교들이 학생 수 감소를 겪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로 개교 10년째를 맞이하는 광저우한국학교의 성장과 발전이 더 기대된다. 지난해 말 방역 정책이 완화되고, 이번 여름방학에는 코로나 이후 가장 많은 한국학교 학생들이 고국을 찾아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를 방문하고 대회를 참여하거나 공인 어학시험, AP같은 표준화 시험 등을 준비하기 위한 학원수강 등을 하였다. 다섯 차례에 걸쳐 광저우 한국학교 고등학생들의 뜨거운 여름방학 성장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광저우 한국학교에서는 2023학년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남방과기대학교 이공계열 인턴십 협력 사업을 진행하였다. 영어로 의사소통과 에세이 작성이 가능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참가 신청을 받아, 10학년 이진규, 이승민, 온유현, 11학년 전채원, 서예준 학생이 인턴십에 참여하였다. 인턴십은 한국 카이스트 제승우 교수가 지도하였고, 가상현실에서의 몰입감 있는 경험을 위한 웨어러블 촉각 장치 개발 등의 제안 연구 주제를 가지고 인턴십을 진행하였다. 인턴십에 참여한 11학년 전채원 학생의 글을 소개한다. 이번 인턴쉽은 저에게 아주 귀중하고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이번 인턴십에서는 직접 대학 연구실에 가서 제승우 교수님과 다른 박사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선배님들을 만나고 선배님들의 연구를 실제로 가까이 보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을뿐 아니라 교수님에게 수업을 들으면서 각자의 팀 안에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arduino라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우고 활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설계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이루어졌는데, 이 모든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저희 참가자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아이디어 구성과 제작을 하였고, 교수님이 직접 쓰신 연구 논문을 읽으면서 디자인과 공학 그리고 우리에 일상에 가까워지고 있는 VR에 관학 지식이 어떻게 융합되는지, 원래있던 것을 개선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바쁜 일과중에도 저희는 바로 옆에 있는 학교에도 다녀왔는데요, 오히려 제한된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대학의 분위기를 잔뜩 느끼고 왔습니다. 이번 인턴쉽 활동을 통해 대학과 연구 그리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로망이 커진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무척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만약에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참가하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신 학교와 제승우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친구들과 후배들에게도 학교생활 뿐 아니라 더 많은 경험과 도전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료제공: 광저우한국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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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장이 어려울수록 고객에 집중하라, 베이징 호리존인테리어 한 잉(韩莹) 대표베이징 호리존Horizon(恒瑞森) 실내디자인/인테리어 한 잉(韩莹)대표는 2000년대 초반 광고회사에 입사하여 10여년의 경력을 쌓은 후 독립하여 광고사업을 창업했다. 5년의 사업 경험을 기반으로 광고디자인에서 실내디자인으로 사업을 전환한다. 그리고 시공까지 사업을 확장해서 고객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며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현재 호리존은 베이징인테리어협회(北京装饰协会)회원사이며, 한 잉 대표는 협회 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 잉 대표는 ‘양심적인 비즈니스는 반드시 살아 남는다’고 말하며 어려운 시기라도 열심히 하면 성장할 기회는 아직도 많다고 강조한다. 실내디자인, 인테리어에도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호리존은 어느 분야인가? 호리존은 공용 상업디자인, 인테리어가 주 업무로 호텔, 오피스, 식당 등이 있다. 특히 정부의 일을 많이 하고 있기에 시대 흐름이며, 안정성, 디자인에 매우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호리존의 강점은? 우리 회사의 강점은 데이터베이스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료비와 시공비, 고객관리다.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베이스와 업그레드 한 정보들은 새로운 소재를 접목하는데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호리존의 방향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작업장에 AI가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상업용 뿐만 아니라 가정용, 공용시설 등 인테리어 산업에 AI기술은 이제 필수적이며 빅데이터와도 매우 밀접하다. 또 하나의 강점이라면, 양심적으로 일하고 인정받는데 노력한다. 재료비에 있어서 동업계와 비교해 비용을 따지지 않고 양심적으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고객의 만족도는 오르고 고객과 깊은 신뢰를 쌓게 한다. 과거 한국계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한국과 연결이 있는지? 2000년대부터 한국기업과 인연이 깊다. 사회초년생때 한국 대기업 광고회사에서 일을 했다. 당시에 상사로부터 배운 업무처리 능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은 지금 사업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나에게 한국은 특별하고 문화도 익숙하다. 현재 업무적으로는 교류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환영한다. 회사 일 외에 외부 활동은? 호리존은 북경인테리어협회 회원으로 나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 활동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동종업계와 집중적인 교류로 업계 동향과 정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한다. 뿐만 아니라 각 회원사의 장점들을 알다 보니 서로 고객을 소개하기도 한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멋지다.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매일 루틴이 있다면 6시에 기상하며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가량 붓글씨를 쓰고 출근 준비를 한다. 바쁜 일상에 늦게까지 고객응대가 있더라도 마치고 회사에 와서 한 시간은 붓글씨를 연습한다. 집중해서 글씨를 쓰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잡생각이 사라진다.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복잡한 일이나 새로운 업무가 들어왔을 때 비교적 냉철하게 문제를 처리하게 되고 평정심을 갖게 한다. 사람이 너무 바쁘면 대뇌가 쉬지를 못해 판단력도 흐려진다. 과거에는 드라마나 뉴스, 업계 소식을 검색하면서 휴식을 가졌지만 지금은 붓글씨가 나에게 가장 적합한 스트레스 해소 도구이며 나의 내면과 얘기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중국의 실내디자인, 인테리어 업계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개인적으로 발전시장이 아직도 크다고 본다. 현재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의 1선 도시외 주변도시는 더 이상 신축건물이 들어 설 곳이 없다. 따라서 노후된 건물들은 개조할 수 밖에 없다. 오래된 건물은 보통 전체를 철거하기 보다는 뼈대는 살려 놓고 용도 변경이나 사용처에 따라 새로운 설비로 내부 구조를 개조, 보강하여 시공을 한다. 도시 건물 리모델링은 정부 정책과도 매우 밀접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이 발전하려면 정부의 전반적인 환경과 정책 변화, 지역 정책을 관심있게 보고 거기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이런 리모델링 시공은 빠른 현대화를 지향하는 중국에서 각 지역마다 계속 확장해 나갈 것으로 본다. 전 세계가 어려운 경제 상황이다. 중국 역시 부동산이 어렵기에 영향을 받을텐데, 어려운 시기 신규고객 창출은 어떻게 하는가? 호리존은 감사하게도 이전에 개발한 고객들이 전반적으로 크든 작든 신뢰성에서 우수하기 때문에 기존고객 자원이 지금 어려운 시기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신규는 기존고객이 연결해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존고객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개해 준 신규고객에게 잘 할 수밖에 없고, 신규고객은 또 제3의 신규고객을 창출해 준다. 협회 활동 및 업계 관계자 모임도 부지런히 하지만, 시간이 있으면 절반의 정력을 기존 고객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모든 기업에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실력있고 우수한 기업은 항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글씨체에는 글쓴이의 성품 또는 심정이 묻어난다고 한다. 또박 또박 반듯함, 간결하면서도 강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붓글씨는 한 잉 대표와 참 많이 닮음을 느낀다. 진취적인 사업 성향과 워킹맘으로 키워낸 대학생 아들 엄마의 자상함이 인터뷰 내내 솔직담백하게 나눠졌다. 사업가로서 그녀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실력과 신뢰는 사람 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통한다며 회사가 커지기 보다는 내실있는 회사로 장기적 성장을 이끄는 것이 목표이다. 같은 마음으로 한 잉 대표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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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국 심혈관의료기기 전세계 유일, 국가급하이테크 마이디 멍지엔(孟坚) 회장마이디(北京迈迪顶峰医疗科技股份有限公司) 의료기기는 선천성 심장병, 심장판막증, 부정맥의 전문 심혈관질병 치료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외 신기술 의료장비 및 의료소모품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창업자 멍지엔(孟坚) 회장은 1989년 베이징대학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베이징인민병원 종양외과 의사로 근무했다. 1993년 영국무역회사에 입사해 최초로 심혈관, 심장개입 기술 도입 및 중국과 의료선진국의 의학교류를 담당했다. 이후 무역회사 설립, 의료기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그는 30년간 심혈관(심장병) 전문 외과 의료기기만을 연구 개발하며 해외 의료기술을 빠르게 도입해 중국 의료분야 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수입에 의존되어 있는 의료기기 시장을 국산화 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마이디만의 경영철학, 핵심가치는? 첫째 환자의 수요, 소수의 환자를 위해서라도 의료기기는 개발해야 한다. 다수의 환자에 초점을 맞춰 비즈니스로만 의료기기 사업을 하지 않는다. 과거 의사 직분의 사명감과 사업에도 환자 우선순위는 의무와 책임이다. 둘째 국가의 수요, 국가가 필요로 하면 반드시 한다. 마이디에서 연구개발한 심혈관 솔루션은 유일한 중국산이다. 전세계적으로 이 분야에 3개의 회사 제품이 있는데 마이디의료기기와 미국의 두 개 회사의 제품이다. 현재 중국은 의료산업을 매우 중시하고 있어 국가의 정책과 수요는 기업목표의 혁신동력을 가져 온다. 셋째 진정한 기술혁신(真创新), 중국의 모든 수술기술은 국가위건위(国家卫健委)의 허가를 받고 시행할 수 있다. 그리고 수술관련 제품에도 국가의료보험국에서 의료보험 적용 여부 허가를 하는데, 두 개의 행정기관에 올라가지 않은 새로운 기술만이 진정한 기술혁신으로 인정 받는다. 마이디의료기기 제품은 진정한 기술혁신으로 국가급 하이테크기업으로 인정 받았다. 선천성 심장병, 심장판막증, 부정맥 3대 심혈관 질병의 의료기기 솔루션을 제공한다. 약품감독국(药监局) 11개 등록 제품중 4개가 국산 유일, 3개가 국내 유일, 1개가 전세계 유일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기술혁신의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가? 의사출신, 외국계기업 다년간 근무로 세계의 기술을 알고, 시장을 보는 눈이 확장되었다. 잘하는 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파고 들어 간 것이 업계에서 가장 필요한 복합성 인재(复合型人才)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 의료기기의 모든 혁신은 임상에서 비롯되어 기업의 혁신, 환자의 이익으로 연결해야 한다. 끊임없이 시대를 따라 이 순환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가 혁신을 할 때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혁신이 회사에 가져올 미래의 발전 공간이기에 끊임없이 다른 모델을 탐구하게 한다. 멍회장은 수술봉합매듭기, 좌심이폐시스템 등 제품들을 보여주며, 마이디 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사업분야는? 현재 중국의 의료업계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바로 ‘비대면 진료’다. 비대면 진료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2022년 기준 1,700개가 넘는다. 과거 명의(名医), 신뢰받는의료기술은 주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비대면 진료가 확산되면서 전국의 실력있는 의료진들이 전문화 세분화되어 플랫폼에서 진찰을 하고 있다. 마이디도 심혈관 분야로 현재 저명한 의사들과 합작하여 베이징과 무한에서 이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기대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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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이혼하고 주택 구입하면 계약금(首付款)을 30%만 지급하면 된다?심천(深圳) 호구가정은 이혼 후 소유한 주택이 없는 쪽이다시 집을 구입하면계약금(首付) 30%를 지불할 수 있다?! 최근 많은 중개업자가모멘트에서 '심천(深圳)호구가정, 주택 한 채를 가지고 있고 이혼 후 소유한 주택이 없는 쪽이 다시구매하면 계약금(首付) 30%를 지불하면 되며 2018년 ‘7.31'에 발표된 이혼소급기간 2년에 제한받지 않는다'는 소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2018년 7월 31일, 심천에서 출범한 이혼 주택 구매에 대한 대출 제한 정책에 따르면, 주택 구매자가 이혼 후 2년 이내에 주택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 계약금(首付) 금액이 70% 이상이다. 만약주택대출이 없고 이혼 전 무주택증명서를 제출할 수 있는 경우, 계약금(首付) 비율은 30% 이상이며 이혼 전 가정에서 주택 한 채를 가지고 있을 경우 50% 이상의 계약금이 지급해야 했다. 이 소식과 함께 심천의 이혼 등기 신청 예약 사진을 캡처한 사진이 전해졌는데, 사진은 심천의 각 지역 민정국 이혼 등기소가 예약이 꽉 찼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해당 사진은 '이혼 후 계약금(首付) 30% 지불하다'는 루머를 입증하듯블로거들이 '이혼 러시'(离婚潮来袭)라는 제목을 달아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면심천의 실제 상황은 도대체 어떨까? 이혼하고 주택을 구매하는 대출 규제는 과연 완화되었을까? 9월 5일, 중국은행, 건설은행, 농업은행, 공상은행 등 4대 은행 및 초상은행, 우정저축은행 등 일부 주식제 은행에 확인한 결과, '원래 정책대로 집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 은행의 대출 매니저는 '정책이 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공식적인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며 전했다. 중국은행 심천 모 지점의 대출 매니저는 '현재 이혼 전 가정이 단 1채의 주택만 소유하고 이혼 후 주택대출 기록이 없을 경우 계약금(首付) 50%로 집행하며 새로운 정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추가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계약금(首付) 30%'는 아직 확실치 않다'며 전했다. 공상은행 심천 모 지점의 대출매니저는 '현재 런팡부런다이(认房不认贷) 정책만 나왔을 뿐 기타 구체적인 내용이 확실치 않으며, 현재 한 가정이 한 채의 주택이 있고 다시 주택을 구입할 경우 계약금(首付)은 최저 50% 이상이다'고 말했다. 중국농업은행 심천 모 지점의 대출 매니저는 '현재 첫번째 주택이 인정되는 이별 소급 기간은 아직 2년이다. 우리가 잠시 받은 통보는 현재 이혼(명의상 무주택)하면 첫 채가 아니다. 원래의 계약금(首付) 비율(50% 이상)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초상은행 심천 지점의 대출매니저는 '이혼 소급 기간은 여전히 기존 정책에 따라 집행하며 현재 이혼한지 2년 미만일 경우 명의로 된 주택이 없고 가정에 주택이 있고 대출금을 청산하지 못했을 경우 계약금(首付) 비율은 여전히 70%이다. 대출 기록이 없다면 계약금(首付) 비율은 50%이다'며 전했다. 최근 은행의 대출 제한 정책이 조정될 것인지에 대해 위 초상은의 대출 매니저는 정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책이 시작된 직후라 은행들이 여러 가지 상황을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있어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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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부동산 정책(认房不认贷) 시행후, 모 분양사무소 '하루 매출이 지난 1개월 매출과 맞먹어'9월 1일, 상하이, 베이징은 선후하여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 대출여부를 불문하고 자신 명의로 된 부동산이 없으면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전면적으로 집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4개 1선 도시에서는 이미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이 실시되었다.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이 시행된 후 첫 주말에 신규 주택과 중고 주택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여러 신규 분양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이 시행됨에 따라 주택 구매 수요자와 개선형 고객이 이미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 정책의시행 효과가 뚜렷이 나타났다. 9월 2일 저녁, 상하이 린강(临港)에 위치한중건구해운천(中建玖海云天) 분양사무실에서 저녁 8시가 지났지만 여전히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중건구해운천(中建玖海云天)의 영업직원은 "린강에서 집을 사면 3명 중 1명이 우리 프로젝트를 살 것이다"며 전했다. 상기 분양 아파트는 올해 6월부터 판매를 개시했으며 새 정책(认房不认贷)이 나온 후 이틀동안의 판매량이지난 한 달 판매량과 비슷했다. 직원은 "9월 1일 저녁에 정책이 나온 후 새벽 3시까지 고객을 접대했는데 하룻밤에 9채의 집을 팔았다. 오늘(9월 2일)은 벌써 40채 정도가 거래됐다”며 전했다. 영업직원은 '다른 업체는 고객의 계약금 지불시간에 따라 다른 할인 혜택을 적용한다고 들었다. 오늘 계약금을 내고 7일 이내에 계약금(首付)를 모두 지급하면 최고 할인은 5%이다. 133평방미터 정도의 주택은 할인한 후 약 18만 원이 적어진다. 할인이 계속될지는 불확실하다'며 전했다. 상하이시 바오산 구에 있는 대화금수사계절 분양사무실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9월 3일 오후, 대화금수사계절 분양사무실 입구 도로에는 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텅 비었던 주차장도 차들이 꽉 차 있었다. 영업직원은 '현재 아파트는 3기, 4기를 판매하고 있으며 3기는 올해 1월, 4기는 올해 4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정책이 출범한 후 아파트 분양 속도가 선명하게 높아졌다'며 전했다. 현장 직원은 "어제(9월 2일) 하루에만 30여 채가 팔렸다. 120㎡ 아파트는 모두 56채인데 3채 남았고 140㎡ 아파트는 60여 채인데 이제 모델하우스(2채)밖에 남지 않았다"며 소개했다. 그는 '새로운 정책이 출범한 후 일부 고객은 원래 소형주택에 살 계획이었는데, 새 정책(认房不认贷) 시행된 후 자신 명의로 된 주택이 없다면 첫 주택의 계약금(首付) 기준을 집행할 수 있고, 많은 고객들이 대형주택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전했다. 주택 구매가 꼭 필요한 고객(刚需客户)일 경우, 총 가격이 비교적 낮기 때문에 99평(㎡)의 주택은 여전히 대부분의 주택 구매자들이 선호했다. 신축 주택 외에 중고 주택 시장도 이전보다 나아졌고 일부 구매자들은 망설이던 마음을 바꾸어 직접 계약을 맺고 주택을 구입했다. 하지만 일부 판매자는 매도를 철회하 가격을 인상하는 자들도 있었다. 전환형 집주인의 경우,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 호재에 따라, 적지 않은 집주인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업계 인사는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은 시장 거래량을 확실히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주택 구매자들은 정책이 명확해지면 시장에 진입하려는 의향이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하며, 9월부터 신규 및 중고 주택 분야의 거래 활성화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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뎅기열 유행 계절에 들어서, 부부가 동시에 뎅기열에 감염최근 복건(福建)성 푸저우(福州)의 여러 병원의 발열 문진에서 뎅기열 환자를 접수하였다. 전문가는 현재 중국은 뎅기열 유행 계절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뎅기열 전염병이 발생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타이완 타이난의 뎅기열 환자가 3천 명을 돌파하여 2015년의 대유행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 8월 28일 샤먼 해관 소속 공항해관에서 입국한 항공편 중 올해 첫 뎅기열 환자를 발견하였다. 8월 30일(현지 시각) 과테말라 보건부는 올해 들어 보고된 확진자는 10,914명으로 전년 대비 135% 증가했고, 이 중 22명이 사망했으며 3개월간 보건 비상사태라고 발표했다. 8월 29일 베트남 보건부에 따르면, 8월 23일까지 올해 베트남 전역에서 뎅기열 확진자는 총 6만 1,799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14명이다. 8월 27일(현지시각) 콜롬비아 언론에 따르면, 국립보건원은 올해 초부터 8월 중순까지 67,944명의 뎅기열 환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누적 사망자는 44명이다. 8월 27일(현지 시간) 온두라스 보건부 뎅기열 역학 감시관은 2023년 이후 11,540명의 뎅기열 환자가 보고됐다고 밝표했다. 9월 1일자 복건위생보 보도에 따르면, 복건의과대학 부속 제1병원 감염과 잔의사의 말에 따르면 지난주 60대 부부가 병원을 찾아왔다. 아내는 5일동안 고열이 계속되었고 근육통, 설사, 구토 등 소화기 증상이 뚜렷했으며, 진찰 당일 팔다리에 붉은 1-2mm의 출혈성 구진이 있었고, 뎅기열 항원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타났다. 남편도 이날 미열이 있었고 피를 뽑아 검사한 결과 양성으로 나왔다. 부부는 최근 여행 경력이 없다. 뎅기열은 뎅기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며 숲모기(속칭 "꽃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급성 전염병이다. 뎅기 바이러스는 뎅기열 환자나 스텔스 감염자의 혈액에 존재하는데, 수컷모기가 환자의 피를 빨아 다른 사람을 물어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올해 들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뎅기열이 유행하여 광저우 세관은 입국자 중에서 뎅기열을 주로 하는 모기 매개 전염병을 여러 건 검출했다. 광저우 백운공항에서 입국하는 여행객들이 속속 위생 검역 통로를 통과했다. 직원은 '7월 이후 출입국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뎅기열과 같은 해외 유입 모기 매개 전염병의 위험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세관은 출국 여행객에게 여행 전에 목적지의 전염병상황을 확인하고, 여행 도중에 모기 방지 조치를 잘 해야 하며, 귀국 시 발열, 발진 등 관련 증상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세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복건 질병통제센터 전문의 린주(林竹) 부주임의사는 '사람이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돌발적인 고열(때로는 40℃까지 도달), 홍역 또는 출혈성 발진이 나타날 수 있으며, 동시에 두통, 눈시울이 아프고, 근육 관절과 골격통증, 얼굴, 목, 가슴 홍조 등 증상을 동반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메스꺼움, 구토, 복통, 설사 등의 위장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출혈 쇼크, 다기관 부전 등이 나타날 수 있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만약 관련 증상이 나타나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나 거리, 심지어 도시에서 뎅기열이 발생했거나 최근 뎅기열이 유행하는 지역을 방문했다면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럴 때 정규병원을 빨리 찾아 치료를 받고 모기를 차단하여 질병이 더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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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44세가 넘는 여직원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최근, 섬서 쉰양시인민병원의 ‘초빙인원 관리방법’(聘用人员管理办法)이 화제가 되고 있다. 중급 직명을 취득한 의사(执业医师), 특수 인력이 부족한 초빙인원에 대해 남성은 만 60세, 여성은 만 50세가 되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며 기타 직위는 남성 만 55세, 여성 만 44세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였다. 지난해에 이씨는 만 44세이며 병원으로부터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쉰양시인민병원의 의료인원이며 병원에서 10여년 근무하였으며 그동안 여러 영예(荣誉)를 수여받았다. 그녀는 ‘병원에서 초빙제를 실시한 후 병원에 취직하였으며 처음은 3년에 한번 계약을 체결했지만 2017년부터 1년에 한번 계약을 체결하였고 지난해에 노동관계를 해지할 때까지 지속하였다’며 밝혔다. 병원 통보문에 따르면 2022년 7월에 이씨를 포함한 8명의 만 44세 여성 직원이 계약기간 만료라는 이유로 노동관계를 해지하고 노동계약서를 종료하였다. 병원의《초빙인원 관리방법》에 따르면 병원에서 노동자와 노동계약을 해지 또는 종료할 때《노동계약법》에 따라 일정한 경제보상(직위급여+근무 기간)을 해주며 보상금은 노동계약을 해지할 때 일시불로 지급한다. 24조 규정에 따르면 초빙인원의 급여는 직위급여, 근무기간(院龄), 실적과 각종 보조금으로 구성된다. 이씨는 ‘지난해에 기본급여부분을 보상받았는데 약 2만 위안이 된다. 사건이 보도된 후 병원측에서는 추가보상을 해줄 수 있다며 연락이 왔는데 대부분 해고된 사람들은 보상보다 다시 병원에서 출근하기를 원한다’며 전했다. 쉰양시인민병원은 1950년에 설립되었으며 1996년에 2급 갑등병원으로 변경되었고 2023년 3월부터 3급 갑등병원 신청업무를 가동하였다. 병원은 현재 1,050명의 직원이 있으며 879명은 전문 기술인원이다. 현재 쉰양시 인력자원과 사회보장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관련 조사결과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공개할 예정이다. 병원 관계자는 ‘시인력자원과 사회보장국에서 병원제도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규정에 어긋하고 합법적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통보를 철회하고 개정할 것이다’며 밝혔다. 중앙재정대학 법학원 교수 선지엔펑(沈建峰)은 ‘현재 중국의 정년퇴직 나이는 남성은 만 60세, 여성 간부(干部)는 만 55세, 여성 노동자는 50세이다. 만약 노동계약이 만기되지 않았고 정년퇴직 나이가 되지 않았음에도 나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노동계약을 위법으로 해지한 것에 속한다. 그리고 노동계약이 만기되었을 때 노동자의 나이가 특정 나이가 되었다며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것 또한 위법행위이다’며 소개하였다. 이번 사건에서 노동자의 계약서가 1년에 한번 체결하고 연속 2회 넘게 체결하였기 때문에 《노동계약법》에 따르면 기간이 없는 노동계약서이며 특정 나이가 되어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계약에 속하지 않는다. 노동법 규정에 따르면 사업단위에서 위법으로 노동자와의 노동계약을 종료 혹은 해지하였을 경우 경제보상기준의 2배로 노동자에서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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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노식: 강릉공산청년운동 신문배달부 공작원1935년, 황푸군관학교 6기생 노식은 강릉에서 조선공산 당재건운동에 종사하다가 검거되었습니다. 신분은 신문 배달부였습니다. 1933년 9월 하순부터 10월 11일까지, 서대문 경찰서에서 공산당 간부급 인물과 각지의 남녀학생 공작원, 여자 직공 등 80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취조 중 우연히 강릉 공산청년동맹 연구원들이 동지를 획득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공산주의를 선전하며 활동한다는 것이 포착되어 비밀 조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경성, 강릉, 평양 등 남북 각지의 시골까지 형사대를 출동시켜 석 달 동안 관련 공작원 230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강릉에는 농민운동이 활발했습니다. 베이징에서 레닌 정치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권오훈(權五勳, 1911~1951)이 협력하여 강릉 도립병원에서 『정치교육 뉴스』를 비밀리 인쇄하여 농촌 진흥 운동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등 활발하게 공산주의를 선전했습니다. 또 야학을 개설하고 연극을 공연하며 강연회를 개최하고 삐라를 살포했습니다. 연극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담당자가 경찰에 검거되었으나 1932년 1월경 이들은 전국에 결성하려던 공산청년 동맹준비위원회를 기필코 결성했습니다. 1932년 1월, 강릉군 구정면 학산리에서는 공산 청년공작위원회의 지도하에 농민 300명이 땔감 수수료(지게세) 징수에 항의하여 면사무소에 몰려가서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강릉농업학교 안에도 반제동맹 준비조직에 해당하는 독서회 등 군내 각지에 적색노동조합 하부조직을 두었습니다. 1932년 메이데이를 며칠 앞둔 4월 26일, 반일 격문이 발각되어 검거 선풍이 일었습니다. 공산그룹의 국내 거점이 경찰에 탐지되고 인쇄거점도 털리고 사회운동 주요 간부가 속속 검거되었지요. 이에 따라 비밀조직 구성원이 대거 체포되고 국경을 통해 이뤄지던 국내외 연락도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코민테른이 직접 지도하던 당 재건 운동은 침체에 빠졌습니다. 지속적인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강릉에는 공산당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1932년 12월 중순, 강릉군 주문진에서는 전보 배달부, 학교 사환, 면사무소 급사 등이 공산 청년공작위원회의 지도하에 좌익 지도자 양성기관인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회를 조직했습니다. 1933년 2월 12일, 적색 농민조합 지도하에 농민 100명이 강릉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당국이 강제적으로 판매용 가마니를 검사했습니다. 이에 항의해서 농민들은 가마니검사소에 쳐들어갔고 대열을 형성해 군청으로 몰려가 집단으로 시위했습니다. 일체 보도를 금지하고 비밀히 조사를 진행하던 일제는 2년이 지난 1935년 8월 재판을 일단락 짓고 보도 금지를 해제했습니다. 강릉 적색 농민조합 결성준비위원회가 전국적으로 각 산업 분야마다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전모가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湖南省档案馆校编, 『黄埔军校同学录』, 湖南人民出版社,1989년 7월「被告姓名」, 『동아일보』, 1935년 8월 24일 호외.「江陵共靑準備會組織經過」, 「朝鮮共産黨再建同盟事件」 호외, 『동아일보』1935년 8월 24일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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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오상선 : 조선공산당재건동맹 경성지부 핵심인물오상선(吳尙善, 1900~?)은 경성 출신이며 황푸군관학교 2총대 보병과 1중대 소속입니다. 1933년 10월 16일, 경성 서대문경찰서장이 경무국장에게 발송한 공문 ‘조선공산당 재건동맹 사건 발각에 관한 건’에 의하면 오상선은 조선공산당재건동맹 경성지부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1925년 결성된 조선공산당은 여러 차례 일제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당원들을 사상범이라고 체포해서 당 조직 자체 유지가 어렵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소련의 공산국제는 조선공산당 조직은 지식인이 아닌 노동대중 속으로 들어가 결성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와 농민대중을 의식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공장, 농촌, 어촌으로 침투하여 노농대중을 토대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조선공산당 재건동맹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안광천(安光泉, 1897~?)이 일제를 피해 도피차 베이징에 왔습니다. 그때 김원봉은 중국 국공합작의 파탄을 겪고 심란할 때였습니다. 기대했던 중국의 국공합작은 깨어지고 중국 공산당 난창봉기에도 참여했으나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의 힘에 계속 밀렸습니다. 의열단도 거의 해체되다시피 해서 중국에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할때 입니다. 김원봉은 자신의 입지를 재정비하면서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이 활발하게 주도하는 노동자, 농민, 학생 등 대중운동과 연합하기로 의열단의 노선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 무렵, 원산에서는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단행하고 일제와 자본가들의 온갖 탄압 속에서도 4개월이나 버팀으로써 단결력과 강인함을 과시했습니다. 그해 11월부터는 전국적으로 일제의 민족차별 교육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위와 동맹휴학도 진행했습니다. 안광찬과 김원봉은 협력해서 조선공산당 재건동맹을 결성했습니다. 1930년 4월부터 조선공산당 재건동맹 산하에 레닌주의 정치학교를 개설해 조선 공산주의 대중운동을 이끌 간부를 육성했습니다.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학생운동이나 청년운동 경력을 가진 자들이 레닌주의 정치학교에 입교했고 6개월 교육 기간으로 ‘공산주의 이론’, ‘조직 및 투쟁’, ‘조선 혁명사’ 등을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1930년 4월~9월, 1930년 10월~1931년 2월까지 레닌주의 정치학교 2기를 운영하여 21명을 배출했습니다. 1930년 5월부터 8월 사이에 레닌주의 정치학교 졸업생 공작원 20여 명이 한국의 주요 도시와 농촌으로 잠입해서 각지에 공작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이 조직이 완성되면 중앙부에서 간부를 파견하여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고 동시에 중앙부 간부를 국제 공산에 파견해서 조선공산당을 완성하려는 계획이었지요. 조선공산당 재건동맹은 하부조직으로 베이징, 만주, 조선에 지부를 설립했다. 조선지부는 간사국 산하에 목포, 부산, 강릉, 대구, 경성, 평양, 신의주, 원산 지방조직을 설치했습니다. 조선공산당 재건동맹 사건은 해체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해 국제공산당 밀령을 받은 조선공산당, 베이징 레닌학교 등 7개 기관이 연합하여 진행하던 조직적인 비밀 활동이라고 드러났습니다. 1933년 9월, 동대문 밖에 있던 종방제사회사(鐘紡製絲會社) 조사과(造絲科) 직공 500여 명이 동맹파업을 일으켰습니다. 서대문경찰서에서 남녀 직공 다수를 검거하여 조사하다가 베이징의 레닌주의 정치학교 졸업생 10여 명이 조선공산당 재건을 목적으로 경성, 평양, 강릉, 부산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술했습니다. 1933년 10월, 일제의 정보망에 포착된 레닌주의 정치학교 졸업생은 정인갑(鄭麟甲), 김진일(金鎭一), 정동원(鄭東源), 이강명(李康明), 이윤경(李允慶), 어윤봉(魚允鳳), 오필득(吳必得), 심인택(沈仁澤) 등 9명이었는데, 취조 결과, 요원들은 인테리, 학생, 노동자, 농민 등 신분으로 위장하여 활동했다고 합니다. 운동자금도 해외 지도부로부터 공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임금과 학자금 등으로 충당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1933년 9월 25일부터 1934년 3월까지 경찰은 질풍 같은 비밀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대문경찰서가 검거를 개시해 경기도 경찰부로 이관하고 경기도 경찰부가 본부가 되어 시내 다섯 개 경찰서의 인원을 동원해서 6개월 동안 경기, 경남, 경북, 평남, 강원, 충남, 충북, 전북 등 8개 도에서 400명이나 검거했습니다. 1935년 8월 24일 조선중앙일보 호외에 의하면 오상선은 조선공산당 재건동맹 조선지부 산하 경성지부의 핵심 간부였습니다. 경성지국의 간부들은 공장노동자를 포섭하기 위해 스스로 공장에 취직해서 옆 동료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고 공산청년회 또는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노력했으나 두드러진 활동은 없었습니다. 일본경찰은 이 사건은 조선공산당재건동맹 일본 총국에서 활동하던 이재유(李載裕,1903~1944)와 식민지 조선의 최고학부인 경성 제국대학 미야게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1899~1982)도 교수신분으로 조선 민족운동에 가담하여 전국적으로 한국의 각 산업분야마다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사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湖南省档案馆校编, 『黄埔军校同学录』, 湖南人民出版社,1989년 7월 325쪽.「레닌 主義政治學校 卒業生 朝鮮에 潛入赤化工作」, 「朝鮮共産黨再建同盟事件」 호외, 『동아일보』, 1935년 8월 24일「朝鮮共産黨再建同盟事件 發覺에 관한 件」, 『경성지방법원 검사국문서 사상에 관한 정보 6』, [DB/OL]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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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문선재 : 조선공산당 비서장 비서1927년 12월 11일 새벽, 중국 공산당이 광저우 기의를 시작할 때입니다. 국민당 장교 차이션시(蔡愼熙)와 타오저우(濤鑄, 1908~1969)를 설득해서 공산당 봉기에 참여하도록 끌어들이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두 사람을 설득하고 곧 경비단 전체 단원을 선동해서 경비단 한 개 중대가 전향하여 공산당 봉기에 참여했습니다. 국민당 경비단 장교 문선재와 김병현입니다. 문선재(文善哉, 1902~?)는 본명이 문종목(文宗穆)이며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출신입니다. 황푸군교 4기 정치과 대대(政治科大隊) 2대 소속이며 연락처는 헤이롱장성(黑龍江省) 통하현(通河縣) 송강의원(松江醫院)이라고 남아 있습니다. 문선재는 평양농업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국으로 와서 지린 사범학교를 수학했습니다. 상하이에서 병인의용대에 가담해 친일파를 처형하는 등 임시정부를 보호하는 활동을 하다가 황푸군관학교 4기에 입학했습니다. 군교 졸업 후 소련고문단을 수행해서 광저우에 온 동포 김병현(미상)과 제3경비단에 근무하다가 중국공산당 광저우봉기에 참여했습니다. 김병현에 대해서는 모스크바 홍군사관학교 출신 장교이며 광주봉기 실패 후 김병현은 하이루펑(海陸豊)으로 철퇴했다는 짤막한 자료만 남아 있네요. 문선재는 난징 국민당 헌병사령부 정치부에서 당 업무 사무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곧 사임하고 중국공산당에 입당해서 조선공산당 비서장 구연흠(具然欽, 1883~1937)의 비서직을 수행했습니다. 1931년 12월 6일, 상하이 조계지에서 비밀활동을 하던 구연흠이 체포되었습다. 공산당원들이 조계지를 도피처로 삼으니, 일본 뿐 아니라 프랑스나 영국, 미국 영사관도 공산당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일본 경찰이 조계지에 들어와 공산당원을 검거해도 묵인하고 이들을 체포하는데 협조했습니다. 구연흠이 체포되어 문선재가 중화소비에트대표회의에 참석하려고 상하이 공공 조계지 자푸로(乍浦路)에 있는 한 중국인 집에 숨어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되고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문선재에 대한 자료는 보이지 않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湖南省档案馆校编, 『黄埔军校同学录』, 湖南人民出版社, 1989년 7월金山:『广州公社』,『广州起义』,中共党史资料出版社,1988년『文善裁(문선재)에 二年役求刑(이년형구역)』, 『조선일보』, 1932년 1월 30일『全中国苏维埃大会』,『东亚日报』,1932年 1月 12日.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