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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류훠공원랴오레이 공관을 참관하고 우리 일행은 류훠공원으로 왔습니다. 가까운 거리지만 교통체증이 심해서 걸어오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네요. 류훠공원은 당나라 시기 문학의 대가 유종원(柳宗元)을 기념하는 공원입니다. 류훠공원에 류종원의 의관묘가 있지만 류저우 사람들은 유종원의 진짜 묘라고 믿을만큼 류종원을 존경합니다. 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고 류훠사(柳侯祠), 류훠의관묘(柳侯衣冠墓), 텐상정(甜香亭), 뤄츠(罗池), 음악정(音乐亭), 스류셴(思柳轩) 등이 있어서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입니다. 우리는 류훠공원에 스민 우리 민족 정신을 기념하려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류훠공원은 피난중이던 우리 임시정부 청년들이 항일을 해야한다고 결심하고 일어선 장소입니다. 류저우에 막 도착한 한인 젊은이들은 장시회관으로 추정되는 공원 옆 목조건물 이층집에 입주했습니다. 할 일도 없고 무료하니 류훠공원에 갔는데 중국 여러 항전단체가 시민을 대상으로 항일집회를 하고 항일노래를 가르치고 항일 연극 공연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총 들고 일선에 나가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후방에서 항전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주요한 항전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중국의 항일 방법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 젊은이들은 “그 정도는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마음 먹고 공원내 음악정에서 우리 민요를 불렀습니다. 중국민요을 연구하는 중국청년단 단장이 노래 연습을 도와 주었습니다. 항일노래를 배운 우리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가 중국인들을 상대로 항전가를 불렀습니다. 독창가수로 불리는 김병인이 혁명가곡을 부를 때면 길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듣고 박수를 쳤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던 농부들은 우리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손에 쥔 괭이나 농기구자루를 툭툭 치며 어깨를 으쓱이며 따라 불렀다고 합니다. 천부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조시제(趙時濟)가 대형 선전 벽보를 그려 부치러 나가면 나이 어린 이윤철이 풀통을 들고 따라 다니며 벽에 풀칠을 했습니다. 항일 벽보와 전단지도 만들어 담벽에 붙이거나 뿌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자기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항일 운동에 참여하려고 애썼습니다. 우리 탐방팀도 류훠공원 음악정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역사연구회에 국악선생님이 계십니다. 류저우에 피난 온 우리의 상황을 감안하면 ‘상주 아리랑’이 더 어울리는데 너무 슬퍼서 우리가 눈물 흘릴까 봐 ‘진도 아리랑”을 신나게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독립운동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불렀던 반달도 불렀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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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IMBA, 재중국 지원자 Zoom 설명회 개최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IMBA가 북경, 상해, 심천 온오프라인 설명회를 성황리 마치고, 오는 5/16(화) 중국시간 오후 6시 ZOOM 입학설명회를 개최한다. 해외에서 주재 근무기간 온라인 대학원 공부와 석사학위를 취득함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를 해외 및 국내로 확대할 수 있어 성균관대학교 IMBA는 일찍이 해외근무 주재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신청하기: https://events.skku-imba.net/enter2023/index.html IMBA 원서접수시작: 5/2(화) ~ 6/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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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영창 비서장 - 비서장의 임무는 ‘심부름을 많이 하는 것’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영창 비서장 ■ 고향:흑룡강성 목단강시 I 1971년생 ■ 기업: 深圳市利昌裕手袋有限公司 ■ 골프구력: 25년 이상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이하 전국골프협회) 총무 겸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창 비서장은 일본어를 전공하고 1990년에 심천으로 내려왔다. 일본 기업에서 10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 2000년에 가방 회사를 설립하고 20여년간 본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방전문 사업가이다. 전국골프협회에서 그가 맡은 분야는 행사를 치르기 위한 전반을 다 담당하고 있다. 골프장 섭외, 호텔 안배, 손님 접대 등 그의 손을 안 거치는 것이 없다. 그는 비서장의 책임감은 ‘심부름을 많이 하는 것’이라며 대단하지 않다는 듯 겸손하게 말을 한다. 또한 그의 민족 사랑도 꾸준하다.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민속축제나, 노인협회, 골프대회 등 여러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후원을 하고 있다. 김영창 비서장은 서정파 비서장과 막연한 친구 사이로 1997년도 부터 서정파 사장과 함께 골프를 시작했다. 그 역시 2008년도 광동성하나골프협회가 설립될 때 초창기 회원으로 가입하여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 골프를 일처럼 할 정도로 그는 회사 고객들과 거의 운동을 함께 한다. 특히 그의 회사 제품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어 주로 일본 바이어를 상대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 일본 손님들이 3, 4일 일정으로 출장을 오면, 업무 미팅은 하루면 끝이 나서 나머지 일정은 함께 골프를 치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바이어라는 관계를 떠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미팅 때 물량을 못 도와준다고 거절했던 사람도 골프를 치고 난 다음 날이면 오케이 사인을 주는 경우가 있다며 골프가 사업에 도움을 주는 것을 직접 느낀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골프를 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골프를 하지 않고도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많듯이 자기 흥미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주일에 5일은 골프장에서 보낼 정도로 골프를 즐긴다. 홀인원은 10년전 동관에서 일본 손님과 골프를 쳤는데 그때 오더를 많이 주어 기분이 좋아 그런지 눈을 감고 쳤는데 홀인원이 되었다며 익살스럽게 웃는다. 최고의 골프명언 5가지 골프의 구성요소 중 50%는 멘탈, 40%는 셋업, 그리고 나머지 10%는 스윙이다. -잭 니클라우스 (Jack Nicklaus) 골프스코어는 그린 주변 70야드 에서 결정 된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이버를 잘치고 싶어하지만 골프는 거리가 짧아질수록,그린에 가까워질수록 더 집중해야하는 스포츠다. - 벤 호건 (Ben Hogan) 필드에 나가서 비거리가 안나오더라도 기본만 하고 오면 아주 잘 한거다. 기껏 갈고 닦은 실력,욕심 때문에 버리지말고 욕심은 잠시 접어두자! - 바비 존스 (Bobby Jones)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치기를 원한다면 천천히(slower) 짧게(shorter) 그리고 부드럽게(softer) 3S로 백스윙 하라. - 게리 플레이어 (Gary Player) 사람들이 내 스윙이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는걸 나도 안다. 난 내 스윙이 평평하다는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잘되면 바꿀 필요가 없다. - 세르히로 가르시아 (Sergio Gar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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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서정파 비서장 - 골프가 인생 마인드도 바꿔 놓았다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서정파 비서장 ■ 고향: 흑룡강 계동시 I 1971년생 ■ 기업: 东莞市港荣五金制品有限公司 ■ 골프구력: 25년 이상 전국조선민족기업가협회 서정파 비서장은 일본어를 전공하고 1994년도에 심천에 내려와 일본 기업에 취직하였다. 첫 직장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1999년도 일찍이 회사를 설립하고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회사는 주로 가위, 주방칼 등 금속제품을 취급한다. ‘코로나로 사업에 영향은 없었는지’라는 질문에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없다고 대답한다. 오히려 해외에서 출장을 오지 못하는 손님들이 오더를 부탁하는 상황이라며 그의 사업장이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골프는 첫 직장인 일본회사에서 배웠다. 당시 회사 사장이 일본에 있다보니, 심천 지사를 방문하는 바이어는 서정파 비서장이 대신 골프로 접대하였다. 서정파 비서장은 2008년 하나골프협회가 창립되면서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2019년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이하 전국골프협회) 전우 회장이 추대되면서 전우 회장의 추천으로 재무담당 비서장을 맡게 되었다. 전우 회장과의 인연은 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를 설립하고 홀로 서기를 할 때 한 일본인 바이어가 ‘힘든 일이 있으면 전우 회장을 찾아가라’고 소개해 주었다. 그 소개 한 마디가 25년간 친형처럼 모시게 된 인연의 시작이다. 비서장을 맡고 2019년 한국에서 열린 대회는 여느때보다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았다. 다행이도 한국 협찬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챙겨주어 사고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작년은 코로나로 개최를 못했고, 금년 행사는 10월에 심천 미션힐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서정파 비서장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의 든든한 기부천사이기도 한다. 1999년도 부터 사업을 하면서 호황기도 맞아 보고,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조선민족 사회 행사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는 ‘百善孝为先 : 백가지 미덕 중에 효도가 최우선이다’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소문난 효자이다. 심천에 내려와 자리를 잡자마자 부모님을 모셔왔다. 타향살이에 적적한 부친이 노인협회를 결성해서 당시 초대회장을 맡으셨는데 그 분이 바로 서재봉 회장이시다. 서재봉 회장님은 자식들 따라 낯선 땅에 와서 외롭게 보내는 노인들을 모이게 할 만한 장소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다채로운 문화활동과 고향의 향수를 달래게 하였다. 그 장소가 마련되기 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지원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식된 도리로 서정파 비서장은 아버지의 일에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정파 비서장은 일주일에 3회 정도 필드에 나간다. 최근 2년은 골프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며, 평균 스코어는 90타 정도로 동반자한테 민폐는 끼치지 않을 수준이라며 웃는다. 골프에 있어 매너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국골프협회도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에 회원들에게 매너의 중요함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서정파 비서장이 생각하는 골프 매너는 타인에게 주는 피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남이 모를 줄 알고 하는 ‘모르기식 행동’,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 팀원에게 영향을 주는 일, 나의 기분을 그대로 들어내 타인의 기분도 상하게 하는 일 등이 있다. 매너는 첫 만남에서도 알아 볼 수가 있다. 악수를 할 때, 두 손으로 공손하게 하는 악수가 있고,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하는 악수가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문화에 속하지만, 조선민족골프협회에 왔을 때만큼은 공손한 문화를 지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골프가 기업 운영에서 필수는 아니지만 필요한 수단이라고 정리한다. 지금은 거의 조선민족들과 골프를 즐기고 있지만, 사업 초창기에는 한족들과 인맥 쌓기에 골프가 아주 기특한 역할을 했다고 추억한다. 과거에는 바이어가 오면 술 접대를 했지만 지금은 골프를 치며 건전한 접대를 하다보니 작은 회의실에서 상담을 하기보다 확 트인 골프장에서 사업 얘기를 하면 일이 더 쉽게 성사 될 때가 많다고 한다. 그 뿐인가, 서정파 비서장은 골프가 인생 마인드도 바꿔 놓았다 한다. 골프를 치면서 우수한 선배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배울점이 많았다. 어느 순간 그들의 봉사정신에 매료되어 나도 무언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골프는 참 묘한 매력을 가진 운동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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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심천조선민족골프협회 제6대 회장 백성욱 회장 - 골프는 나를 조선민족 사회로 이끌었다!심천조선민족골프협회 제6대 회장 백성욱 회장 ■ 고향: 길림성룡정시 I 1976년생 ■ 기업: 深圳市千丰实业有限公司 ■ 골프구력: 13년 심천조선민족골프협회 연 혁 제1기 리철호 (2007년~2011년) 제2기 김재광 (2011년~2012년) 제3기 김영일 (2012년~2013년) 제4기 박성남 (2012년~2015년) 제5기 김관걸 (2015년~2018년) 제6기 백성욱 (2019년~현재) * 현재 등록된 회원수: 220명 심천골프협회 제6대 백성욱 회장은 일본어를 배우고 1997년도에 심천에 내려와, 일본회사에 취직하여 10년 가까이 근무하다 2006년말에 개인사업을 시작하였다. 사업은 무역회사로 시작하여 지금은 제조공장, 회사 직원식당업까지 그룹형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무역회사는 철, 강재, 전기에 들어가는 원자재, 공업용 화학원료를 취급하여 해외에 수출하고 있고, 제조공장은 칼라박스 등 포장재를 생산한다. 그리고 관리하는 회사식당도 7개로 각각 내실이 탄탄한 기업들이다. 백성욱 회장이 창업을 할 때만 해도 주변에는 다 한족들이고 조선족 친구가 없었다. 그가 광동 한족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연구해서 찾아낸 아이템이 폐기물 처리와 공장식당으로 도전을 하게 되었다. 폐기물 처리업을 막상 시작해서 보니 이 업계의 텃새가 매우 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기존에 장악한 업체들과 밥그릇을 나눠 가지려 했으니 초반에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뚝심을 갖고 버티다 보니 곧 자리를 잡았다. 그가 광동성조선민족 사회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골프를 치면서 부터다. 2008년, 한국 부산에 있는 친구가 심천에 놀러 올 때마다 골프장을 갔는데 그 친구 동반을 위해 골프를 배워야 했다. 처음에는 골프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한 1년이 지났을 무렵, 골프 연습장에서 알게 된 친구 몇 명과 함께 필드에 나갔는데, 바로 내기를 하는 것이다. 그날 실력부진으로 실패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 돌아와서 연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후 골프를 좀 치기 시작했다. 2013년 BMW 골프모임에 갔다가 식사 테이블에서 우리 조선민족 분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선민족인줄 모르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는 데 조선말로 통화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다가가 ‘나도 조선민족이다, 어디 사람이냐’고 인사를 건넸다. 당시 심천골프협회 비서장으로 조선민족 골프모임에 꼭 한 번 나오라고 초대를 했다. 그 분이 바로 지금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비서장이면서 하나골프협회 회장인 김관걸 회장이다. 백성욱 회장은 지금도 과거 김관걸 회장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조선민족 친구들도 만날 수 없었다며 김관걸 회장에게 늘 감사함이 있다고 한다. 김관걸 회장을 알면서 그 주변의 많은 형님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나이대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골프를 자주 쳤는데, 친구들과 의견을 모아 동우(东友)회를 설립하고 백성욱 회장이 초대회장으로 3년간 활동했다. 동우회 회원은 대부분 70년대생으로 그 때 당시 약 60명의 회원이 있었다. 심천골프협회는 김관걸 회장이 4년 임기가 마감되면서 이철호, 이영춘 회장과 함께 백성욱 회장을 불러 “동우회를 조직했던 열정으로 심천골프협회도 맡아서 공헌 좀 해봐라”고 권하였다. 처음에는 부담이 있었는데 ‘먹고 살만큼은 되니, 이젠 조선민족 사회에 무언가 공헌 해보자’는 각오로 심천골프협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현재 심천골프협회는 활발하게 운영되어 회원이 170명이다. 하지만 두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모임에는 평균 50~60명 정도가 출석하고 있다. 큰 모임이 있으면 출석율은 100명에 달한다. ‘홀인원은 아직 한 번도 못했지만 금방 할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는 백성욱 회장은 13년의 구력을 가지고 있다. 일주일에 4, 5번은 꾸준히 필드에 나갔지만 최근은 회사일에 신경을 많이 쓰느라 예전만큼은 못하고 있다. 그래도 13년 동안 한 번도 골프를 끊은 적은 없다. 그는 골프 칠 때 거리보다 기술적인 면, 멀리 치기보다 정확성을 중요시 한다. 평소 한 시간반 정도 어프로치를 연습하며 연습장에 가서도 어떻게 하면 실수 없이 곧게 칠까를 많이 연구한다. 그 덕분에 아이언샷이 가장 자신이 있다. 현재 평균 스코어는 80대를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백성욱 회장은 타이거우즈, 리하오퉁 선수를 좋아한다. 리하오퉁 선수가 어릴 때부터 골프를 쳤다며 프로선수가 목표는 아니지만 15살 딸에게도 4년전 부터 골프를 시키고 있다. 그가 정의하는 골프는‘인연’이다. 골프를 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특히 조선민족 사회에 들어 오게 된 것을 골프의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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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김종국 회장 - 골프로 하나 되는 모습에 새로운 원동력 찾아광동성하나골프협회 중산골프협회 제3대 회장 김종국 회장 ■ 고향: 흑룡강성상지시 I 1975년생 ■ 기업: 高围精密模具有限公司 ■ 골프구력: 4년 중산골프협회 연혁 제1대 정용택 회장 (2008년-2013년) 제2대 강룡무 회장 (2013년-2018년) 제3대 김종국 회장 (2018년-현재) 김종국 회장은 골프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업에 좋은 영향력을 준다고 확신한다. 그에게 골프는 사교이면서 사업의 장을 마련해 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게 해 주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 지고, 자연스레 사업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인맥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 사업이 더 번창해졌다. 하지만, 골프에 매진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주말마다 오전에 골프를 치고 오후 시간은 온 마음을 다해 이쁜 두 딸과 놀아준다는 딸바보 아빠이다. 그리고 평일에는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매일 최소 30분~1시간 정도는 골프 연습을 한 후 업무를 시작한다. 축구 운동신경을 골프에 접목시켜 단기간 내에 실력을 제고 시켰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으로 실력을 다져가고 있다. 골프는 열정과 노력이 실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김종국 회장은 짧은 골프 구력이지만 홀인원 한 번과 지난 한 해는 300일을 넘게 골프를 쳤을 만큼 지독한 골프 매니아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천진에서 몇 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어느 날 중산에 있는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중산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눌러앉은 중산 토박이다. 그리고 중산 삼성에 취직해 15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2018년 과감히 자신의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안정된 회사를 그만 두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생각해서는 결단히 필요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삼성과 연결된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하다보니 삼성과의 인연은 사업에서도 지속되어 독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골프는 사업을 시작으로 여유시간이 많던 참에 골프를 즐기면서 좀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다. 중산은 중국에서 골프역사가 있는 도시이다. 유명한 두 개의 골프장이 있는데, 하나는 중국 최초의 골프장인 온천골프장(温泉高尔夫球场)과 또 하나는 중국 10대 골프장 중에 6위를 차지하는 장강골프장(长江高尔夫球场)이 있다. 과거에는 골프 수요가 많았으나 최근은 일본회사가 적어지고 조선민족도 많지 않다 보니 중산골프협회 회원은 30여 명으로 조선민족 뿐만 아니라 한족도 포함되어 주말마다 3, 4조로 나뉘어 골프를 즐기고 있다. 김종국 회장은 회장직을 맡으면서 골프에 대한 애착심이 원동력이 되어,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하는 동생들에게 골프채도 선물하고 틈틈히 골프 동작도 가르치고 있다. 중산골프협회 뿐만 아니라, 고향 모임에서도 골프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불러 소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또 쿨한 성격의 김종국 회장은 누구에게나 맞춰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 제각기 다르고, 실력도 다르지만 사람의 성향과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국적, 다른 민족, 다양한 사업분야, 각기 다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운동으로 만나 서로 부대끼며 하나 되는 모습이 골프의 큰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프도 시합이라 긴장한 분위기가 있기 마련인데, 모든 불화의 근원은 불명확한 룰 때문이라고 판단하기에 내기를 하든 순수한 게임을 하든 사전에 미리 룰을 명확히 정하고 시작하면 불편할 일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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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내놓은 99위안 호텔로비 숙박제품이 화제가 되어최근, 절강 타이저우(台州) 모 호텔에서 내놓은 99위안 호텔로비 숙박제품(大厅睡沙发)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상기 호텔은 타이저우 완다광장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5월 1일 체크인, 5월 2일 체크아웃을 검색하면 99위안 로비에서 숙박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오며 제품 페이지에 0.8m 소파침대 이미지가 있고 제품에 1인 조식과 2인 야식이 포함되어 있다. 호텔 직원은 '확실히 99위안 호텔로비 숙박 제품이 있으며 기타 시설(洗浴设施)은 없고 공용 티비가 있다'며 소개하였다. 사람들의 호기심에 대해 직원은 '우리도 많이 많이 이상하지만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전했다. 하지만 4월 24일에는 플랫폼에서 99위안 호텔로비 숙박 제품을 조회할 수 없었는데 직원은 '이미 예약되어서 제품을 내린 거 같다. 로비에 소파가 몇개 없다'며 말했다. 상기 호텔의 5월 1일 체크인, 5월 2일 체크아웃 하는 호텔방의 보편적인 가격은 700~900위안이며 400위안 좌우의 더블룸(城景大床房)도 판매하고 있었다. 1.5만 명이 '호텔을 예약하지 못했을 경우 99위안의 호텔로비에서 하룻밤을 지내겠는가?'는 설문조사에 약 70%의 누리꾼들은 '아예 일정을 바꾸겠다'는 태도였다. 그들은 '집에서 누워 있는게 더 편하지 않은가?', '이렇게라도 여행을 가야 할까?'며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면 '수요가 있으니 시장이 있는 것이다. 로비에는 당직서는 사람도 있어 더욱 안전하다', '여행 예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여행할 수 있고 서로 이해하자'는 반응도 있었다. 현재 상기 호텔은 5.1절 기간 호텔방은 거의 모두 예약됐으며 220위안 더블룸만 몇개 남았다. 로비에서 숙박할 때 이불을 제공하는지, 어떻게 세면하는지 등 질문에 호텔직원은 '손님들을 로비 소파에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며 룸으로 안배해 예약되면 일반 더블룸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5월 3일 전에는 예약할 수 없으며 한정판매기 때문에 이미 플랫폼에서 내렸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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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여성, 2만 위안 내고 고양이에게 물고기 가죽 이식?! '치료하다 그만둘 수 없었다'최근, 심천 남산구 싸허지역구(沙河街道) 소방구원소는 '주민이 싸허골프장 주변 아파트내에서 2m짜리 구렁이를 발견하였다'는 제보를 받았다. 싸허지역구 응급관리소, 백석주 동지역구 응급관리소는 즉시 소방원을 현장에 파견했으며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주민들에게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구렁이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며 당부하였다. 현장에 도착한후, 소방원은 무관 인원들을 흩어지게 하고, 주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경계선을 세웠다. 구렁이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2명의 소방원은 개인방호를 철저히 하고 분공, 협조하여 구렁이를 주머니에 담았다. 현재 소방원은 구렁이를 심천시 야생동물구원센터에 넘겨주었으며 구원센터 직원은 '구렁이 무게는 10여 키로, 길이는 약 2m되는 미얀마구렁이이며, 국가 2급 보호동물이다'며 소개하였다. 남산구 싸허지역구 소방원은 '날씨가 차츰차츰 더워지고 기온이 상승하면서 뱀류의 활동이 빈번하다. 만약 뱀류가 집 혹은 차 안에 들어간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맹목적으로 쫗거나 잡으려 하지 말고 119에 연락에 도움을 구해야 한다'며 조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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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여성, 2만 위안 내고 고양이에게 물고기 가죽 이식?! '치료하다 그만둘 수 없었다'최근, 광서 베이하이(北海)의 모 여성이 버려진 고양이에게 2만 위안 들여 물고기가죽을 이식해줬다는 내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차이여사는 '애완동물 구조단톡방에서 가죽이 벗겨진 고양을 보았다. 그리고 데려왔다'며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물고기가죽 이식은 의사가 제안해 준 것이다. 병원에서도 처음으로 이런 수술을 한 것으므로 매일 병원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2차례 수술을 진행했다. 현재 고양이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이며 음식도 잘 먹는다'며 말했다. 많은 누리꾼들은 '물고기가죽을 직접 고양이에게 이식하다니?', '좋은 사람은 일생 평안하길 바란다'며 기이하고 지지하는 반응이 있는 반면 '고양이에게 2만 위안을 써다니?', '물고기는 생명이 아닌가?'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차이여사는 '온라인의 댓글들이 나에게 많은 고민거리가 되었다. 가족들 몰래 고양이를 구해준 것이며 처음에 병원에서 3~4천으로 말해주었는데 비용이 이렇게 많을 지 몰랐다. 하지만 치료하다 말고 그만둘 수도 없었다'며 말했다. 그러면서 '고양이를 구한 후 다른 사람이 데려가 키웠으면 했는데 지금은 아마 키우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계속 키우려 한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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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민폐(数字人民币)로 급여 받으면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최근, '모 도시에서 디지털 인민폐로 공무원들의 급여를 지급한다'는 소식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강소성 창수시(常熟市) 지방금융감독관리국과 창수시재무국은 《급여 전체를 디지털 인민폐로 지급하는데 관한 통지》를 발행하였다. 통지에는 5월부터 현지 공무원, 사업인원(事业人缘), 각급 국자단위(单位)인원들의 급여를 모두 디지털 인민폐로 지급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디지털 인민폐로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은 사업단위에서 직원급여를 직원 개인의 디지털 인민폐 지갑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하며 지난 해부터 일부 도시들에서 시도를 해왔었다. 예를 들면 강소성 타이창시(太仓市), 소주시 일부 지역에서 공무원들의 급여를 디지털 인민폐료 지급하였다. 그외에 산동성 지난시, 절강 닝보시 등 도시에서도 기업과 행정사업단위의 직원들에게 디지털 인민폐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호남의 모 여성은 '우리는 디지털 인민폐로 급여를 받은지 1년 됐다'며 말했다. 그녀가 근무하는 직장은 호남 디지털 인민폐를 보급하는 시범단위 중 하나이다. 그녀는 '디지털 인민폐로 받은 급여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디지털 인민폐 APP를 다운하면 된다'며 전했다. 소주 모 사업단위의 직원은 '급여를 받은 후 디지털 인민폐를 은행카드로 이체해 소비할 수 있고 위챗, 즈푸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며 밝혔다. 디지털 인민폐의 사용장소가 부단히 늘어나면서 디지털 인민폐로 받은 급여를 사용하는데도 더욱 편리해졌다. 강소 양저우(扬州)에서 주민은 디지털 인민폐 지갑의 돈으로 아이의 식대비용을 지급할 수 있었고 소주에서는 가스비, 수도비, 전기비도 디지털 인민폐로 지급 가능했고, 대형 공용 주차장, 백화점에서도 결제할 수 있었다. 2022년 년말까지, 중국 여러 지역에 디지털 인민폐를 개통하는 수량이 백만이 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의 누계 거래금액은 천 억 위안이 넘었다. 비록 디지털 인민폐가 차츰 생활에 스며들지만 여전히 개통하지 않았다는 누리꾼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