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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산골프협회 초대회장 정용택 회장 - 20년 구력도 골프는 계속 목마르다광동성하나골프협회 제4대 회장 중산골프협회 초대회장 정용택 회장 “골프 없으면 못 살거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할 일이 줄어드니까 작년 2020년 한 해 중산에서만 307일을 골프를 쳤습니다. 골프 시작하고 가장 많이 친 한 해였습니다.” 정용택 회장은 구력 20년 동안 수 없이 많은 골프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1년은 그야말로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과거 출장이나 비즈니스로 해외 나갈 일도 없고 들어 오는 손님도 없고, 그렇다 보니 그에게는 골프장이 낙원이고 쉼의 터전이 된 셈이다. 그는 1995년 처음 심천에 왔다. 그리고 1996년 당시 여자친구가 중산에 있어서 그녀를 따라 중산에 온 것이 지금까지 중산 최초 조선민족 토박이로 남게 되었다. 중산에는 지금보다 과거에 일본회사가 꽤 많았는데 그때 일본회사 입사할 때는 일본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일본어를 구사하다 보니 도움을 받아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워 많은 활용을 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지금의 아내로 평생 동반자로 함께 하고 있으며, 1996년 취직한 회사 또한 지금도 다니고 있다. 그는 또 1999년 창업을 해서 지금까지 주방용, 화장실용 线材制品을 생산하고 있다. 그가 골프를 시작한 때는 회사 창업후 기존 회사와 겸직을 하면서 주변에 일본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며 골프를 하게 되었다. 정용택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매력은 첫째, 푸른잔디에서 티샷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골프는 역시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각 사람의 개성을 느끼고 함께 라운딩을 하다 보면 어느새 골프의 동질감을 나누다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늘 유쾌할 뿐만 아니라 오랜 구력으로 배려가 몸에 익숙해 있기에 어느 상황에도 잘 맞춰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너를 중시하기에 필드에 나갈 때 마다 각오하듯이 골프매너의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가 잘 하는 것이 칭찬을 많이 해 준다. 동반자가 유쾌하게 칭찬을 많이 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것들이 바로 정용택 회장의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골프 매력 둘째는, 내 뜻대로 안되는 게 골프이기에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치는 것 같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주는 것이라 하겠다. 골프를 칠 때 공이 안 맞으면 그만 쳐야 겠다고 맘을 먹다가도 어느새 오후가 되면 필드에 나가 있다며, 골프사랑에 푹빠져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고 한다. 구력 27년 동안 그의 골프사랑은 한 번도 변심없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중산에 온 그는 어느 덧 중산의 어른이면서 골프선배가 되었다. 광동에는 이제 제법 많은 후배들이 있고 대회나 모임을 가 보면 연령층들도 계속 젊어지고 있는 추세임을 느낀다. 그는 후배들이 다 잘 하고 있지만 골프에 대한 조언을 하자면, 골프를 치다보면 내기에 연연해 골프 본연의 즐거움을 놓치는 후배들을 종종 본다.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골프는 흔히 멘탈게임(mental game: 정신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운동 게임)이라고 한다. 멘탈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동반자, 주변을 돌아보는 것을 놓쳐 매너에 대한 실수와 운동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멘탈 관리를 잘하여 마음을 내려 놓고 즐기는 골프를 향유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정용택 회장 역시 과거에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골프를 치고 나서는 급한 성격이 많이 완화되고 자신을 통제하는 컨트롤을 배웠다. 18홀을 치다 보면 각 홀 마다 인생을 만난다. 내 생각대로 게임을 진행하지만 결국 생각과 다르게 쳐지는 공에 대해 스코어는 진행되어 벌써 과거가 되어 버렸는데 화가 올라온듯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러 사람과 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멋지게 컨트롤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도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이 깨달음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용택 회장의 골프인생에 영향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2대 회장이면서 하나골프협회 2대 회장을 맡은 이철호 회장이다. 중산에는 정용택 회장이 정착하면서 조선민족 사회가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광동지역에 비해 인원은 많지 않지만 중산조선민족협회가 조직되어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교류하고 있다. 2004년 광동성조선족연합회가 설립되고 첫 민속축제가 있을 때 중산 어르신 70명을 모시고 운동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때가 광동사회로 나오는 첫 계기였는데, 각 지역에서 참가한 축구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산을 벗어 날 일이 없었는데 2008년 이철호 회장님이 회장단을 모시고 중산을 방문하였다. 그 때 처음 중산에서 골프를 같이 하고 중산골프협회가 설립되었다. 이철호 회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주로 일본사람들과 어울리고 중산의 몇 안되는 지인들과 어울렸는데, 골프협회가 만들어 지고는 광동지역 대회를 참석하게 되면서 광동의 조선민족들과 어울리는 기회들이 점점 많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철호 회장님과의 만남과 배려가 없었다면 골프도, 중산조선민족 사회도 밖으로 나와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철호 회장님이 개인으로나 우리 중산을 위해서도 참 고마운 분이다. 지금은 중산에 조선민족이 약 1천명 정도가 된다. 주로 개인사업 보다 젊은 직장인들이 많고, 젊은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많이 있다. 숫자가 적으니 밖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아도 행사를 하면 평균 100~150명 정도는 참석을 한다. 정용택 회장은 중산조선민족협회나 골프협회에 대해 앞으로 큰 바람 보다는 수시로 후배들에게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중산에서만 머물지 말고 많은 기회를 누려 광동이고, 전국이고 밖으로 나가 우리 조선민족 사회 사람들을 많이 만나라고 한다. 그래야 중산이 단합이 되고 광동을 넘어 전국 조선민족이 단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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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광주지회 제6대 허호성 회장 - 봉사로 골프협회 섬겼더니 날씨도 따라 주더라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광주지회 제6대 회장 허호성 회장 ■ 고향: 길림성 연길시 ■ 기업: 广州卓王国际贸易有限公司 ■ 골프 구력: 20년 광주조선족골프협회 역대회장 초대회장 김철용(2008년-2009년) 2대회장 신영식(2010년-2011년) 3대회장 전우범(2012년-2013년) 4대회장 김철용(2014년-2015년) 5대회장 김기철(2016년-2018년) 6대회장 허호성(2019년-2020년) 7대회장 김철용(2021년-) * 현재 등록된 회원수: 120명 허호성 회장은 골프를 정말 사랑하고, 골프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가 말해서가 아니라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그 느낌이 전해 진다. 그는 2001년 부터 골프를 쳤는데, 연태(烟台)에서 신발 사업을 할 때 한국 바이어들이 모두 골프를 너무 좋아했다. 세계에서 한국인들이 골프를 최고로 좋아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보였으니, 당시 골프를 안치고 있었던 허호성 회장 눈에는 뭐가 저리 좋은가 할 뿐이었다. 그때 형, 아우로 지내던 한국 지인이 골프를 추천하길래, “내가 무슨 골프냐, 그 돈이면 돼지고기 몇 근 사서 집가서 먹을란다”하며 콧방귀를 뀌며 거절했다. 그래도 그 형은 골프 안치면 재미나는 일이 없으니 골프를 치라며, 골프채를 사주고 며칠 동안 연습을 시키더니만 골프장 비용까지 대주며 필드로 데려 갔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골프를 시작해서 10살 차이 나는 형들과 골프를 치며 여러 가지를 배웠다. 골프 매너는 물론 골프가 내 욕심으로 되는 게 아니고, 욕심을 가질수록 엇나간다 것, 마음을 내려놓고 힘을 뺄 때 공이 더 아름답게 가고, 멀리 간다는 것 등 골프의 지혜를 터득해 나갔다. 혈액형 A형의 완벽주의 성격인 그는 점점 더 골프의 마력에 빠져 들며, 한국 골프 프로그램을 매일 녹화해서 골프를 섭렵해 갔다. 얼마나 많이 봤는지 골프이론이 해박해져 주변에서는 골프코치를 하라 할 정도였다. 그는 한 번씩 연습장에 가면, 한 시간에 800원 코치비용을 들여서 일주일 동안 동작 하나 배우며 한 숨을 쉬는 젊은 친구들을 적잖게 본다. 그럼 조용히 다가가서 기본 동작 가이드를 해주면 매우 고마워 한다. 젊은 친구들에겐 허호성 회장이 연습장의 비밀병기인셈이다. 허호성 회장은 2004년에 광주에 와서 신발 제조, 신발 부자재를 한국에 납품하는 사업을 줄곧 해 오고 있다. 당시에 신발업계 한국인들과 광주에 오다 보니 아는 사람도 없고 조선민족 친구도 없었다. 그 때 골프모임도 한국인들만 알다보니 화두한인골프회와 한류회에서 골프를 쳤었는데, 뒤늦게 조선민족골프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양쪽 모임을 같이 나가다가, 후에 광주조선민족골프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한류회는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었다. 과거 양쪽 협회에서 골프를 치다 보니 한국인 골프와 조선민족 골프에 조금 차이를 느꼈다. 한국인 골프는 매너를 중시하기에 지켜야 할 골프 매너들이 굉장히 많다. 타인이 골프칠 때 말하면 안되고, 그림자가 비쳐도 안되고, 장갑 찍찍이 소리가 나도 안된다 등 굉장히 강박감이 몰려와 조심스러우나 반면, 조선민족 골프는 매너가 좀 더 향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앞에서 말한 강박관념이 없어 좀 느스한 분위기에서 골프를 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그는 광주골프협회에서 약 6년 회원으로 참가하다가 김철용 회장의 추천으로 회장을 맡게 되었다. 당시 18명 정도 회원이 있었는데 오래 활동하다 보니 나이도 있고, 늘 차려 놓은 밥상에 앉아 먹기만 한 것이 미안해서 봉사를 다짐하기로 했다. 그 날 허호성 회장은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집에 와서 첫째, 회원 30명만 되게 해달라는 것과 둘째, 협회 회장직을 맡는 동안은 건전한 골프모임이 될 수 있게 기도했다고 한다. 2년 동안 또 하나의 기적이 있는데, 남방은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기에 운동을 하다 보면 비 때문에 마지막 홀까지 다 치지 못하고 중단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허호성 회장의 임기 기간에는 날씨 때문에 한 번도 운동이 중단되거나 취소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 그의 말에 의하면 골프 치기 전날이면 사고 없이, 날씨 좋고 비로 영향 받지 않게 해달라고 꼭 기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비가 오는 날에 골프장에 도착하면 비가 딱 그치거나, 골프를 다 치고 나면 그제야 비가 왔다며, 2년간 스물 몇 번의 정기모임에 한 번도 비 때문에 영향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기적은 기적이다. 오죽하면 이후에 골프장 가는 날 번개치고 우뢰가 있으면 동생들의 문자가 오는데, “형님 오늘은 기도를 안했어요?”라고 묻는단다. 그가 회장이 되고 조별짜기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전에는 수준별로 80타 치는 사람들끼리, 90타 치는 사람들끼리 치곤 했든데, 잘치고 못치든, 나이 많고 적든, 외지인 현지인, 구분 없이 추첨을 통해서 함께 치게 했다. 이렇게 바꾸니 다양하게 어울려서 모든 회원들이 더 친목을 다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기를 하면 이기는 사람이 캐디비를 내고 돈을 다 돌려주게 했다. 이렇게 소소히 변화를 주다 보니 2년 사이 정식회원이 6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허호성 회장은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골프를 칠 수 있는 건 하늘이 내려준 복이다.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자기가 소홀했던 게 없는가를 점검하라”고 한다. 그는 초창기 회원들은 이제 3분의 1도 안된다며, 타지역으로 간 사람도 있지만, 골프를 더 못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 잘되고 있을 수록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골프에만 빠지지 말고 사업에도 더욱 집중하라고 당부한다. 과거에는 골프 안치는 사람이 있으면 쳐 보라고 권했는데, 종교가 있은 후 부터는 권하지 않는다. 골프때문에 사업 망하는 사람도 봤고, 도박 기질이 있는 사람은 골프에 너무 빠져서 사업과 일상에 영향을 받는다. 골프는 중독성이 있어서 자칫 자기 통제를 잘못하면 어려운 길로 빠질 수 있어 지금은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10년간 골프 방향이 늘 오른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는 건, 오른팔에 힘이 엄청 들어갔다는 뜻이다. 가볍게 해드 무게를 느끼면서 스윙을 하니까 80타를 쳤다며, 그동안 골프기술이 향상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한 것이라 한다. 기술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기를 컨트롤 못했기 때문, 골프는 결국 힘빼기 운동인 것이다. 옛날에 비즈니스 할 때도, 욕심으로 많은 이익을 붙일때는 손님이 적고, 다 내려놓고 적게 붙이니까 오더가 엄청 많이 밀려서 들어 온다며, 재밌는 일화를 비추어 말해 주는데 그만큼 욕심을 버리면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뜻이겠다. 골프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보람되는 일이 많지만, 그 중 한국에 코로나가 막 터졌을 때 김철용 회장이 선도해서 회원들과 함께 마스크를 사서 한국에 보낸 일과 행사때마다 모금함을 설치하여 노인협회에 전달하거나 어려운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일이다. 그 역시 아내가 신부전증으로 수술을 했는데 회원들이 마음을 모아 응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회원들 간의 우정이 중요한 것이다. 미국 속담에 ‘하루만 행복해지려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아라. 1주일만 행복해지고 싶다면 결혼을 해라. 1개월 정도라면 말을 사고, 1년이라면 새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토록 행복해지려면 골프를 쳐라’는 말이 있다. 허호성 회장은 ‘인생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골프’라는 참 뜻을 알고 있는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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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대학 졸업생, 5년 동안 적금이 5,000위안(약 100만원)?최근, 《나, 졸업 5년, 적금 5,000위안, 그녀, 석사, 훠궈가게 청소부》(我: 毕业5年, 存款5000 她: 中传硕士, 火锅店保洁)라는 영상에 온라인에서 화제이며 명문대 졸업생인 그들은 자신의 취업경력을 소개하였다. 두 사람은 화중사범대학(华中师范大学)을 졸업했으며 5년 동안 완완은 인터넷공장(互联网大厂)에서 근무했었으며 현재 적금은 5,000위안이다. 한 명은 중국전매대학(中国传媒大学) 연구생을 졸업하였으며 그녀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지만 여러번 좌절을 겪었고 얼마 전에 하던 일은 훠궈점(火锅店) 홀서빙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실패’된 인생에 대해 두 사람은 ‘명문대 나와서 이러고 사는가 하지만 앞으로의 선택이 더욱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느끼지 못했던 자유와 후련함(开阔)을 느끼고 있다’며 말했다. 완완(弯弯)은 ‘행복 기준은 적금이 얼마있고 탄탄한 직장, 승진과 꼭 연관되는 것이 아니다’며 ‘내심으로 봤을 때 저희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 영상을 찍어 올리는 초심은 되는데로 살겠다(躺平, 摆烂)를 보여주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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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륙 여객, 홍콩에서 11만 홍콩달러의 한의약 구입해누리꾼은 홍콩 코즈웨이베이(铜锣湾)의 한 약방(药坊)을 돌고 있을 때 약재를 가루내 신체에 사용하면 건강에 좋다는 소개를 듣고 한개를 약방직원에게 가루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은 결제금액이 109,600홍콩달러나 나왔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쇼셜미디이에 올려 도움을 청했고 다음날 약방에 가서 다시 갔을 때 약방은 2만 홍콩달러밖에 돌려주지 않았다. 누리꾼들은 ‘약재는 삼칠분(三七粉)일 수 있다. 예전에 홍콩에서 비슷한 경력이 있었는데 나중에 경찰에 신고해서 비싼 약 값을 내지 않았다’며 말했다. 일부 홍콩약방은 약재의 무게단위를 작게 기입해 소비자가 나중에 고가로 약품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약방(药房), 약행(药行), 약방(药坊) 한글자 차이지만 많이 달라 홍콩에서 약품도매상은 등록약방(药房)과 약행(药行)이 있으며 홍콩에서 부동한 종류의 약품을 취급할 수 있다. 그중 약방(药房)은 의사의 처방제 약품을 배급할 수 있고 약제사가 판매할 수 있는 통제약품(管制药品)을 취급할 수 있어 Rx표기를 사용한다. 약행(药行)은 약방(药坊), 약점(药店) 등 명칭을 사용하지만 감기약 등 일반 약품만 취급할 수 있다. 등록약방(注册药房)은 약방(药房)과 Rx표기가 있다. 그리고 약방 내에는 당직 약제사가 있고 등록증명서(注册证明书)도 볼 수 있다. 이로써 사건 발생 약방(药坊)에서는 Rx표기가 없고 단지 정부등록(政府注册)만 있었다. 특구정부는 홍콩에서 경영을 진행하려면 상업등기(商业登记)를 취득하도록 요구하므로 정부등록은 단지 상업등기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등록약방’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홍콩에서 약품을 구입할 때 주의할 점은 아래와 같다. - 약품 구입전 약품명칭, 포장, 가격 등 정보를 알아본다. - 홍콩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경우 정규적인 체인점, 오랜 전통이 있는 가게(老字号)을 찾아간다. mannings, 왓슨스(屈臣氏), 화룬탕(华润堂), 통런탕(同仁堂)을 선택할 수 있으며 약방에서 약품을 구입해야 할 경우 Rx표기가 있는 약방을 찾아간다. - 한약재 혹은 해산물을 구입하기 전에 반드시 무게단위와 가격을 알아본다. - 약품을 구입하고 영수증을 보관한다. - 이미 결제하였다면 영수증 등 결제단서로 소비자 위원회(email:cad@consumer.org.hk)에 신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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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모 여성, '입사하면 돌싱 총경리(总经理)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고 요구받아최근, 광저우 모 누리꾼은 ‘회사 면접볼 때 인사부(人事部)에서 돌싱 총경리와 함께 생활하도록 요구받았다’는 내용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2월 19일, 광저우의 왕여사는 모 회사의 보조직에 지원하였고 인사담당자와 위챗을 추가하고 업무 상황을 요해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인사담당자는 ‘총경리집에서 생활하고 총경리가 음식을 만들 때 도와주고 설거지를 일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총경리는 돌싱이기에 불편한 점이 없고 보조가 자신을 가족처럼 생각하길 바란다’며 덧붙여 말하였다. 나중에 왕여사는 ‘이상한 회사같다’며 상기 회사에 입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텐옌차(天眼查)에 따르면 상기 회사는 2017년 8월에 설립되었고 광저우 백운구에 위치해 있으로 컴퓨터기술개발, 기술서비스와 네트워크 기술연구를 위주로 하고 있다. 2월 20일 오후, 광저우 인사국은 ‘현재 관련 상황에 대해 요해하고 있으며 관련 부서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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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 입장료가 2,000위안? 가장 큰 물고기를 3만 위안에 회수?낚시질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 외에 최근 낚시질을 도박처럼 즐기는 사람도 있다. 강문 신후이(江门新会)의 아청은 ‘지난해 12월달부터 집근처에 낚시터가 생겼으며 대부분은 태래어(罗非鱼)를 취급하였다. 입장료는 1,680위안(약 28만 한화)이고 네시간 낚을 수 있다’며 말했다. 하지만 낚은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가는게 아니라 낚시터에서 다시 회수한다. 물고기는 표어(标鱼)와 비표어(非标鱼)로 구분하며 표어의 지느러미에 있는 라벨이 물고기의 회수가격(回收价格)을 대표한다. 비표어 가격은 동일하다. 비표어는 한마리에 100위안으로 회수하며 표어의 가격은 500~2,000위안이며 최고가격은 3만 위안이다. 낚시의 즐거움과 물고기 가격의 유혹에 동관, 중산의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갔지만 기대보다 실망이 컸다. 낚시꾼 아청은 ‘이미 1만 여위안(약 200만원)을 손해보았다’며 말했다. 낚시꾼들은 한마리라도 낚으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물고기를 낚는 성취감도 누릴 수 있어 낚시터를 찾아갔다. 아청이 있는 낚시터단체방에는 78명이 있었는데 직원은 단체방에 낚시하는 동영상을 올렸고 오전 10시와 오후 4시에 다음 차례 신청자 정보를 올려 주었다. 오전 9시가 넘자 낚시터의 60여개 낚시자리에 이미 20여 명의 낚시꾼이 앉았으며 4시간 뒤에 단지 몇 명만 물고기를 잡아 2,000여 원의 입장료를 만회하였다. 4시간 사이에 낚시터의 수입은 3만 위안이 넘었다. 강문 외에 동관에도 비슷한 낚시터가 있는데 낚시꾼은 ‘낚시터의 입장료는 1,600위안이며 가장 큰 태래어 가격은 3만 위안, 작은 것은 200위안이다’며 소개하였다. 심천에서 낚시하러 온 한 낚시꾼은 ‘지난해부터 낚시하러 왔는데 이미 가족 몰래 몇 만위안을 손해봤다’며 말했다. 중산 모 낚시터 주인은 ‘입장료는 400~800위안이며 60여 마리의 표어가 있으며 가장 큰 물고기 회수가격은 8,000위안이다’며 소개하였다. 그럼 이와 같은 낚시질은 도박에 속하지 않는냐는 질문에 변호사는 ‘고가의 입장료를 받고 값 비싼 표어를 낚시터에 넣은 것은 도박혐의가 있다. 강서 안휘 우후(芜湖) 등 지역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여 낚시터 관계자는 도박장개설죄로 입안되었다’며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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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주조선민족협회 회장 김철용 회장 - 광동성 한민족 골프로 하나 되다!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광주지회 광주조선민족협회 회장 김철용 회장 ■ 고향:길림성 화룡시 I 1975년생 ■ 기업: 스피드물류 / 삼구김치 ■ 골프 구력: 20년 이상 광주의 동포사회는 광동성 각 지역 중에서 조선민족과 한국인의 화합이 가장 좋은 곳으로 평이 나있다. 특히 광동성 동포사회에서 자랑할 만한 전통대회가 하나 있는데 바로 광저우한민족골프대회다. 이 대회는 광주조선족협회와 광주한국인상공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광동성의 200여명의 조선민족과 한국인 골프애호가들이 함께 모여 우정을 나누며 한민족의 화합을 다지는 대회이다. 그리고 한민족 화합에 큰 기여를 한 광주조선민족 민속축제가 2019년 개최되었는데 이날 행사에는 약 5000명의 관중들과 선수단, 각 단체 인사들이 민족을 불문하고 대거 참석하여 우리 조선민족의 위상은 물론 한민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장이 마련되어 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크고 굵직한 행사가 치뤄지는 데 숨은 공로자는 바로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광주지회 회장이면서 광주조선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철용회장이다. 김철용 회장은 1993년, 19살 광주에 첫 발을 딛어 지금까지 광주 토박이로 살고 있다. 광주 발전은 물론 광주 조선민족 사회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 지에 대해서 누구 보다 자세히 알고 있기에 광주조선족협회 회장으로 그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젊기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발전해 나간 김철용 회장은 광동에서는 최연소 성공사업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시절이 있었다. 골프 역시 이 시절에 시작했다. 당시 광동성 통틀어 조선민족 중 골프 치는 사람이 30~40명 정도 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2년 광동성형제골프회 설립 멤버로 활동하며 한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가졌다. 그 후 2004년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가 설립되면서 당시 형제골프회 강문화 초대 회장이 하나골프협회로 명칭을 바꾸고 정식으로 지역별 골프지회를 설립하였다. 김철용 회장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설립초부터 협회 부회장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광주 민족사회에서 활약하면서, 광주골프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광동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은 조선민족들은 2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은 일본 비즈니스를 했고, 또 90년대에 광동에 온 사람들이다. 김철용 회장은 일찍이 광동에는 왔지만 일본이 아닌 한국과 관련된 악세사리, 완구 무역과 제조를 하다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물류사업에 뛰어 들었는데 이게 성공가도를 달리게 해 주었다. 김철용 회장은 사업이던 골프던 남과 똑같은 방식, 똑같은 시스템으로 경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늘 남다른 혁신과 개발, 역발상을 추구했다. 물류경험이 없었어도 빠른 시간에 업계 선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니즈(needs) 핵심을 파악하고 광동 물류의 특성을 제대로 캐치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한국 15일 물류를 7, 8일로 줄였다가 경쟁사가 동일한 방법으로 따라오면 그는 더 빠른 길을 찾아 3, 4일로 물류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다 보니 고객이 줄을 서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2000년 초반 <스피드물류>는 물류업계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광동의 물류브랜드로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과거 젊은 사업가로 돈 좀 벌었다는 소리를 듣었던 김철용 회장은 월매출이 100만원이었던 지난 날에 많이 벌기도 했지만, 그만큼 쓰기도 많이 썼다고 한다. 늘 위기감을 갖고 신사업을 개척하며 도전하고 보냈기에 누린 것도 많고, 아쉬움도 있지만 지난 일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물류사업과 골프는 먼 거리가 아니다. 김철용 회장은 주로 운동을 하면서 고객접대를 하였고, 자연스럽게 사업에도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 그에게 골프는 일이면서 운동이고, 운동이면서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필드를 나가는데, 골프가 제일 재미있었을 때는 막 시작하고 몇 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골프는 꾸준함이 없으면 바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비기너들에게 팁을 주자면 일주일에 연습장 3번, 필드 2번 정도를 꾸준히 하다 보면 안정적인 실력을 보장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한다. 덧붙여 필드만 많이 나가서도 안되고 연습장을 꼭 같이 병행할 것을 당부했다. 홀인원 경험은 한 번 있다. 2019년 风神高尔夫(풍신골프클럽), 8번 코스 8번 홀에서 170야드로 굉장히 어려운 코스여서 감히 생각도 못했는데 홀인원이 된 것이다. 구력 20년인데 19년만에 들어간 첫 홀인원 기분은 ‘나도 할 수 있네’ 정도였지 크게 흥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광주골프협회는 회원 단합과 화목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 현재까지 광주골프협회에 등록된 인원수는 130명이나 정기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40명 정도이다. 주중 일정이다 보니 개인사업가는 상관 없지만 기업 임원들은 시간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가 광동성 타지역 협회와 골프 문화가 좀 다른 것은 내기를 하되 원칙이 있다. 게임에서 아무리 잘 친 사람도 그린피는 직접 지불한다. 예를 들어 4명이 내기를 해서 3천원을 땄다면 거기서 그린피를 내고 나머지는 다 돌려 준다. 그리고 꼴찌가 캐디비용과 일부식비를 담당하는 문화이다. 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과거에는 내기를 좋아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가 끼리끼리 모이니 화합에도 영향이 있어서 지금은 추첨을 해서 잘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이 섞이게 한다. 그리고 내기를 해서 딴 돈은 개인 주머니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끼리 사용되도록 건강한 광주골프협회만의 룰을 정한 것이다. 김철용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지만 골프매너가 그 사람의 사업의 위치와 거의 정비례 된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은 센스가 있고 판단력도 좋기에 사업을 잘하는 사람과 골프를 치면 시작부터 끝까지 상대를 배려해 주기에 유쾌함은 물론 그 사람에게 사업과 골프에 대해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 전반적으로 사업을 멋지게 하는 사람들이 골프도 즐기며 치고, 내기를 하더라도 돈과 상관 없이 과정을 즐기기에 그들은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을 중시한다. 그는 20년간 골프를 쳤는데 시간대 별로 골프를 치는 마음과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스스로 ‘나는 매너가 좋고, 멋있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는 70점 밖에 되지 않은 시절이었고 오히려 지금이 그때 보다 성장했다고 말한다. 또, 김철용 회장만의 골프철학은 골프를 통해서 조선민족의 경제 핵심 인물들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가 창립되고 첫 광동성조선민족민속축제를 대규모의 큰 행사로 치르는데 당시 모든 자금이 각 지역 골프협회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골프협회는 과거나 지금이나 조선민족기업인들의 핵심단체라 볼 수 있다. 골프협회의 회원들은 나름 사업이 안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사업에 성공을 하였다면 응당 민족사회에 기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게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함)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철용 회장의 골프철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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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허영철 회장 - 진정한 성공은 다른 사람이 평가해 준다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허영철 회장 ■ 고향: 길림성 반석시 ■ 기업: 广东永星建设工程有限公司 ■ 골프 구력: 15년 성공한 사람의 보편적인 기준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 돈이 많은 것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과연 부와 명예만이 진정한 성공일까? “성공한 사람은 잘 살고, 잘 웃고, 사랑을 많이 한 사람이다. 순결한 여성의 신뢰와 영리한 남자의 존경과 어린이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태어날 때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으려 하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_앤더슨 스탠리(Anderson Stanley) 광동성 동관골프협회 제4대(2016~2018) 허영철 회장(吉林省磐石市, 1969년생)은 广东永星建设工程有限公司董事长으로 사업도 잘하고 가정에 충실한 모범 아버지상에 대화를 나눌 때 늘 미소가 함께 한다. 그와 인터뷰를 나누면서 앤더슨스탠리 작가의 ‘성공한 인생’이라는 시(诗)가 떠올랐다. 허영철 회장의 광동 드림(dream)은 30세 나이로, 남들 보다 늦은 감이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광동行 날짜 2001년 4월9일, 천진에 있는 형님집에 놀러 갔다가 가방 하나 메고 무작정 광동을 향한 기찻길에 오른 것이다. 가족이 모두 의사 직업인 엘리트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아버지가 병원 원장으로 있던 고향의 시(市)병원에서 약제사로 근무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였으나 반복적인 일상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동관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던 고모와 연락이 되어 동관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취업을 한 곳이 전자회사였는데 그곳에서 기전관련 기능을 배웠다. 그때 월급이 잔업비까지 합쳐 600원 미만이었다. 회사에서 익힌 기전기술을 바탕으로 2008년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경제공황의 타격으로 회사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하루 사이에 머리가 희어진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래도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음으로 버텼더니, 2009년 부터 운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그 이튿날 큰 오더가 들어 왔다. 이때부터 회사는 안정을 찾고, 2012년부터 빠른 성장을 해 2019년도까지 연간 매출액 10억원을 거두는 회사로 성장했다. 첫 딸이 출생되면서 그의 사업 성장과 여러 일들이 순탄해지다 보니 딸(허주연)을 복덩이라 생각 안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딸(12살)과 아들(6살)이 있다. 복덩이 딸은 현재 동관시 8명 우수 청소년(东莞市8名优秀青少年) 일원으로 북경 참관까지 다녀온 인재 중에 인재이다. 6살에 가야금을 배웠는데. 8살에 가야금 9급을 통과하였고 전국 대회에서 1등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관시 청소년 골프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거리가 200야드를 칠 정도로 수준이 상당하다. 그는 본인은 한 게 없으며 모든 게 아내의 헌신으로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고 겸손해 한다. 허영철 회장이 골프를 시작한 때는 2006년 근무를 하면서 골프채를 잡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치기 시작한 때는 회사 창업을 한 이후였다. 어릴때 부터 육상선수로 운동을 좋아한 편이라 골프도 매우 익숙하게 좋아하게 되었다. 골프를 시작한지 3년이 안되어 이글을 했었다.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72로 실력자 답게 숏게임에 강하다. 허영철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의 매력은 나이가 들어도 평생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또한 술을 마시지 않는 그에게 골프는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 과거에는 접대문화가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났지만 지금은 술보다 골프를 선호하는 접대문화로 바뀌었기에 그에게는 골프가 안성맞춤의 사교 수단이기도 하다. 골프를 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았다고 한다. 골프를 너무 미화하면 안되지만 한 사람의 신용평가는 골프를 한 번만 쳐보면 바로 눈에 들어 온다며, 반대로 골프를 하면서 나의 인품도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골프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이 연습하고 필드를 많이 나가는 것 밖에 없다고 한다. 기술을 높이기 위해서 한국 코치한테 레슨을 받았는데 확실히 실력이 향상 되었다며, 가능하면 골프 초반에는 반드시 코치의 도움을 받아야 됨을 강조했다. 그의 인생 철학은 ‘밑지는 게 낫다, 큰 데서 말고 작은 데서 믿지는 건 복이다’라는 말을 새기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한테 1전 한 푼 공짜로 얻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허영철 회장 주변에는 많은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후하게 베풀며, 이타주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영철 회장이 4대 회장을 역임할 때 동관골프협회의 회원은 꾸준히 늘어 났다. 초기의 십 여명에서 지금은 80명이 되었다. 전임 회장들이 하나하나 쌓아온 성과를 퇴보시킬 수 없었다며 그걸 지켜가고자 노력했다. 매 정기모임의 회원수는 다르지만 평균 30명은 정도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몇 번 안나왔더니 새로운 얼굴들이 많네’ 최근 들어서도 동관골프협회는 새로운 회원이 늘고 있어서 명예회장으로서 매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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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이영춘회장 - 시간과 돈, 골프에 투자할지? 사업에 투자할 지를 잘 판단하라!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이영춘 회장 ■ 고향: 흑룡강성 계동시 ■ 기업: 东莞市雄威玩具有限公司 ■ 골프 구력: 20년 이상 이영춘 회장(1962년생, 흑룡강 계동)은 광동성 동관골프협회 2대회장(2009~2013년)과,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3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조선민족 사회 발전에 헌신적인 공헌과 기여를 많이 한 공로자이다. 그는 내년이면 환갑을 앞두고 있지만 그냥 봐서는 그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안(童顔) 얼굴에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업도 왕성하게 하고 있어 지난해 코로나가 닥쳤어도 그의 사업장은 오더 수주로 기계들이며 일손이 쉼 없이 바쁘게 돌아 갔다. 东莞市雄威玩具有限公司는 완구회사로 이영춘 회장이 1996년도에 설립한 회사다. 그는 92년도에 광동에 첫 발을 들여 오직 완구분야 외길로 근 30년을 오늘까지 일하고 있다. 雄威의 메이드인 차이나 라벨은 전세계 완구시장에 퍼져 나가 있을 정도로 완구 빅브랜드들이 모두 이영춘 회장의 거래선들이다. 완구가 사양산업이라며 전업하거나 포기한 회사들이 많지만 지금까지 외길 산업으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雄威는 오히려 세계 완구 오더를 집중해서 받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광동성에서 조선민족 중에 90년대에 골프채를 잡은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그 중 한 명이 이영춘 회장이다. 그가 골프와 인연이 된 것은 정말 단순하다. 1998년 동관 펑징골프장(东莞峰景高尔夫球会)이 막 생겼을 때 주변에서 회원권이 싸니까 사라는 권유로 회원권을 사 놓고 골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후에 완구사업 외에 서비스 사업을 병행할 때 지인의 추천으로 골프를 치게 되어, 그의 구력은 펑징골프장과 함께 성장해 왔다. 동관골프협회는 1대 강문화 회장, 2대 이영춘 회장, 3대 김정식 회장, 4대 허영철 회장, 5대 김수국 회장까지 각 3년의 회장 임기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조직되어 오고 있다. 동관에서 골프협회가 막 시작할 때는 12명 밖에 안되었으나 3년 정도 지나니 30명 정도로 회원이 늘었다. 회원이 늘면서 협회도 더욱 활성화 되었고 젊은층들도 요즘 많아져서 현재는 80여 명이 된다고 한다. 그는 한 달에 골프약속이 적지 않게 잡히지만, 특히 매주 펑징골프장의 토요일, 일요일 골프모임 만큼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반드시 참석한다고 한다. 동반자는 펑징골프장 회원권을 오랜 시간 함께 갖고 있는 지인들과 후배들이다. 동관이 제2의 고향인 만큼 골프도 마음 편한 사람끼리 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그다. 골프를 잘 치면 뭐가 좋은가? 라는 질문에 그는 “내기에서 이기니까 재밌다.”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답을 해준다. 골프에서 내기가 빠지면 재미를 못 느낀다며 어느 정도 긴장감과 승부욕이 있어야 진정한 골프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골프는 사업이 안되면 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업에 집중해야지 골프를 좋아한다고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과거에도 골프에 빠져 사업을 소홀해서 결국은 사업도 골프도 둘 다 놓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골프는 분명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과감히 말한다. 시간과 돈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시간과 돈은 사업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기본이다. 시간과 돈을 골프에 투자할 형편이 되는지? 사업에 투자할 시점인지? 를 잘 파악하며 공을 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젊은이들을 보면 운동할 형편이 안되는데, 기회나 정보를 앞서 생각하며 무작정 필드에 나와서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로 동반자에게 지장을 주거나 운동에 집중하지 못한 모습으로 오히려 운동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것을 종종 보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골프는 신사게임이다. 먼저 사업과 골프가 어느 정도는 평행하게 컨트롤을 할 수 있을 때 기본을 갖추고 나와서, 함께 어울리다 보면 좋은 매너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운동의 만족감과 사업적인 도움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게 골프실력 노하우는 특별한 게 없다. 많은 필드 경험과 다양한 동반자 그리고 내기에서 받는 상처나 동기부여 등이 골프실력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한다. 저마다 홀인원 경험담과 스토리는 재미나다. 이영춘 회장은 홀인원을 두 번 했는데 그 두 번의 홀인원이 한 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연이어 하게 되었다. 첫 홀인원은 2020년 12월26일 동관 펑징골프장 C코스 5번홀(160yd) 한 번 하고, 두번째 홀인원은 2021년 1월18일 역시 펑징골프장 D코스 2번홀(165yd) 에서 하였다. 남들은 인생에 한 번도 할까 말까하는 홀인원을 연말연초 두 번이나 하게 되어 2021년도는 대박운수를 기대할만 하다. 홀인원 기념 초청골프 모임은 역시 펑징골프장에서 3월6일 172명이 함께 운동을 하고 저녁파티에는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를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웨라벨(Work-life balance)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데 이영춘 회장이야말로 진정한 웨라벨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영춘 회장은 골프는 평생하는 운동으로, 칠 수 있을 때 까지는 늘 즐기고 싶다고 한다. 사업이 지금도 안정적으로 잘 되고 있지만 크게 욕심이 없으며, 아들 딸도 다 커서 각자 독립적인 사업들을 하고 있는 것이 기특하다고 한다. 그는 젊은 날의 고생이 지금의 여유로움을 보상해 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여유로운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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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회장 겸 중국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관걸 비서장 - 골프는 무조건 잘 쳐야 해!티아골프여행사 김관걸 대표 광동성하나골프협회 회장 겸 중국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비서장 ■ 고향: 길림성 매하구시 I 1970년생 ■ 기업: 티아골프여행사 ■ 골프 구력: 25년 이상 김관걸 회장은 1992년 청년 드림을 꿈 꾸며 심천에 첫 발을 딛었다. 당시에는 통행증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경제특구만의 특별함이 있었던 때였다. 그는 여느 청년 시절과 비슷하게 열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천지개벽으로 발전한 심천의 개혁개방의 일대기와 함께 자신만의 자리를 잡아 왔다. 골프 하면 김관걸! 김관걸 하면 골프! 중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비서장, 광동성하나골프협회 5대 회장, 김관걸 회장은 광동성 동포사회(조선민족, 한국인)에서는 일찍이 골프 매니아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운동도 좋아하지만 25년간 골프사업을 꾸준하게 하고 있기에 중국, 한국에서 골프를 좀 친다는 사람은 심천 김관걸 회장을 모를 수가 없다. 심천은 골프 치기에 최적의 날씨와 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는 도시이다. 김관걸 회장이 20대부터 골프채를 잡은 것은 심천에 있었기에 더욱 골프와 인연이 가깝기도 하였다. 90년대 역시 겨울이면 한국, 일본에서 공을 치러 심천이나 주변 남방 도시를 찾아 오는 골프 관광객이 많았다. 당시 김관걸 회장이 무역을 하고 있을 때 거래처 한국 사장이 골프 치기 좋은 곳에 살면서 왜 골프를 안치냐며 골프채 풀세트를 선물로 준 것이 그의 골프인생의 시작이었다. 25년 구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동반자를 꼽으라면 그는 1997년 첫 필드 라운딩 즉 머리를 올려 준 분이라고 말한다. 홍콩영사관에서 근무한 서준석 영사님이 동반을 해 주었는데 게임의 룰은 물론 남의 라인을 밟지 말고, 공을 친 후 빨리 움직여 다음 준비를 해야 하는 에티켓 등 내기를 해도 즐거운 내기로 해야 한다는 아주 세심한 골프 매너들을 하나 하나 알려 준 것이 평생 기억에 남으며, 늘 필드에 나가면 그걸 상기시키게 된다고 한다.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정통 골프 매너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아쉬워 하며, 첫 필드 라운딩 동반자가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다. 광동성 조선민족 골프모임은 21개 도시만큼이나 매우 많다. 그 중 대표적으로 중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지회를 주축으로 각 지역별 모임이 있고, 하나골프협회가 있는데 이 모임은 400명의 회원들이 3개월에 한 번 광동지역을 순회하며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현재 하나골프협회 5대 회장을 맡고 있는 김관걸 회장은 선대(제1대 강문화 회장/심천, 제2대 이철호 회장/심천, 제3대 이영춘 회장/동관, 제4대 정용택 회장/중산) 회장들의 리더십을 이어 받아 2018년부터 3년 임기의 회장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하나골프협회 정기모임 외에도 5개 지역(광저우, 심천, 동관, 혜주, 중산) 월례회에도 그는 거의 참석을 하여 회원들을 독려하고 후원하며, 모임의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김관걸 회장의 성격은 우리 조선민족의 민족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열정 사나이’다. 비즈니스도 골프 업종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수 백번의 행사를 개최하고 참석하는 게 그의 일이면서 일상이다. 그렇기에 골프협회 일이라면 그에게는 하루 삼시세끼 먹는 것과 별반 다른 일도 아니다. 하지만 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차별화를 추구하고 민족사회에 사명을 다하려고 한다. 골프모임은 민족사회 발전에 사명 다해야 해 매 골프행사마다 그 지역 노인협회 어르신들에게 일부러 전통 음식과 공연을 요청드려서 골프 회원들과 어우러져 신명나는 시간을 보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면 어르신들도 즐거워 하시며 타지에서 느끼는 우리민족 고향의 향수를 젊은이들과 나누기에 매우 좋아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후원금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조선어를 배우는 우리 후대들을 위해 주말학교에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하나골프협회는 정해진 회비가 없어도 단합이 잘 되어 각 지역 회장과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민족사회 발전을 위해 마땅한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게 바로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들의 선행문화를 확산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김관걸 회장은 2018년 부터 제6대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비서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19년 서울에서 20주년 행사를 치뤘는데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보람된 행사였다고 한다. 조선민족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골프로 대형 행사를 개최한 것 자체에 큰 자부심을 느꼈고, 우리 민족의 성공한 기업가들이 한국에서 모인 것에도 매우 뿌듯함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6번을 한국에 다녀왔다. 작년은 코로나 때문에 전국대회를 못 치루었고 올해는 10월에 광동성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그동안 전국대회가 20년간 각 도시를 이미 두 번씩은 돌아가며 개최를 하였다. 이번 광동성 개최는 김관걸 회장이 비서장을 맡아 도시별 첫 스타트로 세번째 맞이하는 대회이니 만큼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싶다고 그 마음을 전했다. 코로나 전후의 중국 골프시장의 변화 김관걸 회장의 골프 비즈니스는 세계에서 제일 큰 216홀 미션힐 골프장(观澜湖高尔夫球会)의 중국, 한국, 일본 총판을 맡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한국, 일본 골프관광객이 줄을 섰기에 중국시장은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코로나 후로는 중국 골프시장이 크게 확대되어 중국시장을 전면적으로 키워가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전에는 골프 손님들이 주로 그룹, 단체가 많았다면, 현재는 친구, 가족단위의 소규모 모임이 크게 활성화 되고 있다. 그리고 접대 골프로 고위급 인사들이 한 번 오면 보름씩(15일) 있으며 골프를 쳤는데, 이제는 그런 문화가 없어 졌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골프시장은 점점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움직임에 제약이 있다 보니 시간이 자유로운 사업가들은 모두 골프장으로 모이고 있다. 또, 여성골퍼가 많이 늘어남에 따라 골프패션도 더 세련되어져 가고 있다. 골프가 다양한 연령으로 확산되면서 청소년 골프교육과 골프대회도 꽤 많아졌다. 이런 틈새 시장으로 청소년 골프아카데미가 성행을 하고 있다. 10년전만 해도 학원, 유치원 차리는 게 최고였는데. 지금은 골프 아카데미가 교육사업으로는 최고라고 말한다. 요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골프교육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골프대회에서 우승. 준우승만 해도 까오카오(高考)에 가점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 대학교에서 골프 전공이 많아졌는데, 그 중 심천대학 골프과가 중국 최초로 가장 오래되었다. 골프장이 전국적으로 줄어들어 과거에는 500개에서 380개로 줄었으며, 심천 역시 18개에서 12개만 남아 있다. 골프회원권이 계속 귀해지는 것은 이처럼 골프장은 줄어들고 회원은 늘고 있기에 회원권 가격은 상승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들어 중국도 스크린 골프가 늘어나면서 도시 골프가 활성화 되고 있기에 한국과 같은 골프문화로 자리 잡아 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골프는 무조건 잘 치고 봐야 해 골프는 잘쳐야 하나? 라는 질문에 김관걸 회장은 잠시 주저함도 없이 무조건 잘 쳐야 한다고 대답한다. ‘운동이 끝나면 잘 친 사람이 떠들지, 못 친 사람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며 우스갯말을 한다. 골프를 잘 치면 보통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하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시간과 돈이 투자한 만큼 실력은 그대로 따라 온다고 말한다. 또한 골프를 잘 하는 사람이 사업도 잘한다고 생각한다. 사업이 안되면 골프는 자연스레 어려워 지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록 비즈니스의 기회를 더 많이 얻는 게 바로 골프의 매력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을 듣고 나면, 유명 CEO들이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골프를 아무 의미 없이 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