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관골프협회 초대 회장 강문화 회장 - 광동 골프 역사 조선민족 성장과 함께 하다

[인터뷰] 동관골프협회 초대 회장 강문화 회장 - 광동 골프 역사 조선민족 성장과 함께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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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성하나골프협회 초대 회장

동관골프협회 초대 회장


강문화 회장


■ 고향:흑룡강성 할빈시

■ 골프 구력: 23년



광동의 조선민족 골프모임은 형제골프회로 시작되어 2008년 하나골프회가 창립되면서 정식으로 광동성조선민족골프협회의 모습을 갖춰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초대 하나골프회 회장은 오랜 골프 구력과 동관동호골프회 회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는 강문화 회장으로 추대 되었다.  


강문화 회장은 광동성에 흩어져 있는 조선민족 골퍼들을 집합하는 데 매우 집중하였다. 어느 조직이든 시작이 일도 많고 체계를 잡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첫 모임을 개최하기 위해 여기 저기서 소개 받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는데, 그때는 위챗도 없는 시절이었다. 일일이 전화를 해 대회 참가를 권유해서 첫 모임에 100명이 모이는 성공적인 제1회 하나골프회 창단대회를 개최하였다. 


강문화 회장의 2년의 수고로 광동 골프 모임은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2대 회장으로 당시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회장인 이철호 회장과 각 지역을 방문하여 조선민족 화합과 골프모임을 조직하여 지역간의 골프 교류회를 확산해 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골프회 회원들은 대부분 기업인들로 사업도 어느정도 기반을 잡아 경제력도 있고, 민족 자부심도 아주 강하다. 따라서 광동성에 크고 작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산하 행사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며 민족 사업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지금 하나골프회는 후배들이 잘 이끌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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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화 회장은 1982년 하얼빈기술감독국에서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 당시 해외 출국이 쉽지 않았는데 공무원 신분으로 한국을 왕래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그리고 안정된 공무원 보다 좀 더 역동적인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1992년 지인의 소개로 심천의 완구 회사로 명성이 있는 한국 기업(정윤완구/正润玩具) 제2공장 총경리로 부임을 받아 왔다. 그 때 월급이 홍콩달러 7000원으로 꽤 높은 대우를 받았다. 이 회사에서 3년을 근무하고 완구 경력이 있는 한국인 지인과 창업을 했다. 


1997년도에 동관에 완구공장을 설립하였다. 당시에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만사람 또는 한족들이었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될 때 1998년 동종 업계 한국 사장님이 골프를 쳐보라는 권유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대만골프협회에 가입하여 2개 모임과 한국골프모임에 주로 참가했다. 그때만 해도 조선민족 골프 모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골프 친지 5년 만에 동관 펑징골프장(峰景高尔夫球场)에서 알바트로스를 했다. 첫 싱글 때도 기억이 생생한데 전날에 배탈이 나서 누워있다가 골프치러 나갔는데, 첫홀에 버디, 두번째 홀에 버디, 세번째 파, 네번째 버디, 다섯번째 내리 버디를 하는 바람에 당시 함께 치던 한국인들이 엄청 놀랐다고 한다. 강문화 회장은 골프를 잘 치려면 ‘한 번 미쳐야 잘 친다’고 말한다. 


그동안 세 번의 홀인원을 했다. 2006년, 2007년, 2008년 한 해에 한 번씩 홀인원을 했는데 그 중 가족 모임에서 한 홀인원이 특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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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일찍이 시작해서 수 많은 대회에 참가를 했다. 그에게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05년 연변에서 개최된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대회이다. 그는 하얼빈에서 살았기에 조선민족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골프 하나로 전국에 있는 조선민족 기업가들이 연변에 모여 우리 민족 음식을 맛보고, 그네띄기, 씨름 등 민속 놀이를 하면서 어렸을 때 추억을 되살려 보았다. 참 의미있고 특별한 대회였다. 


이 외에도 전국 오성회며 기업가 골프대회에 대부분 참석을 하며 각 지역 조선민족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류를 하였다. 


광동에도 골프를 치는 우리 민족 친구, 아우들이 한 두명씩 늘어 나면서 2006년도에 동관에서 동호골프회를 직접 설립했다. 이때 이영춘 회장도 함께 있었는데 당시 12명이 아주 재미있게 골프를 즐겼었다. 동호골프회가 지금의 동관골프협회이다.


골프를 치면서 한국인, 대만인, 조선민족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동안 골프로 만난 사람들 중 대만,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 갔으나 전국골프모임에서 만난 인연들은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그 중 이춘일 고문은 골프도 잘 치지만 지식이 넓고, 판단력도 좋으며,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이다. 심천에서는 전우회장이 참 멋지다. 정직하고 솔직해 배울점이 많다. 그리고 이철호 회장은 강문화 회장을 조선민족 사회에 나오게 한 고마운 사람이다. 


이처럼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기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어 이만한 플랫폼은 없다고 생각한다. 


강문화 회장이 골프를 치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있다면 거짓 없이 솔직하게, 첫 홀부터 마지막까지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스코어카드에 노예가 되지 말라’는 유명 골프선수 소렌스탐의 말처럼 골프 스코어 보다는 자신과 동반자를 위한 정직한 플레이를 하며 매 홀을 즐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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