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인역사] 마안산(马鞍山)에 올라

[중국한인역사] 마안산(马鞍山)에 올라

스롱에 들렀다 좀 일찍 류저우에 도착하면 수상버스를 타고 류강을 유람하려고 했는데 부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반, 이미 마지막 배가 출발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날은 어둑어둑 어두워지고 갑자기 기온이 하강하여 찬바람이 세게 붑니다. 류강 유람은 취소하고 저녁 식사하고 류저우 야경을 보러 마안산에 올랐습니다. 코로나 기간 마안산 정상을 오르는 엘레베이터가 운행을 하지 않았는데 마침 재개를 한지라 운 좋게 에레베이터를 타고 몇 분 만에 마안산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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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안산에 천연동굴이 많아서 일제가 공습하면 임시정부 일행은 동굴로 피했다고 합니다. 마안산, 위펑산(玉峰山), 자허산( 嘉鹤山)에는 천연동굴이 99개나 있다고 합니다. 


일제의 공습이 심할 때 동굴은 임시 반공호로 이용되었습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류저우 시민과 임시정부 사람들은 동굴로 도피했습니다. 동굴의 단점은 입구에 작탄이 떨어지면 그대로 무덤이 되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저 동굴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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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2월 5일,『제시의 일기』입니다. 오전 10시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우리 일행은 허겁지겁 뒷문을 빠져나와 5분이면 닿는 산굴로 갔다. 도착했을 때 산굴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기에 우리를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공습은 금방 시작될 것 같은데 우리는 피난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허둥지둥하면서 제5호 동굴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그 동굴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우리 가 그 동굴로 들어가자마자 일본군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동굴이 심하게 흔들렸다. 당장 무너질 것만 같았다. 


동굴 안에서조차 폭탄 터지는 소리에 귀청이 멍멍할 정도였다. 돌조각이 천정에서 굴러떨어져 내렸다. 나는 제시를 보호해주면서 공습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몇십분이 지나자 폭발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십여분이 자나자 경보를 해제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주저주저하면서 동굴에서 나왔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참담한 광경뿐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던 집 주변의 집들은 모두 다 불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 동굴 앞의 넓은 전야도 폭탄 구덩이가 수없이 나 있었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시체들로 덮여 있었다. 


……후에 들은 소식이지만 우리가 들어갔던 5호 동굴 근처의 다른 동굴들은 모두 다 폭탄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가 원래 달려갔던 그 동굴에 사람이 차 넘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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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임시정부 요원과 가족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숨 가쁘게 공습을 피하던 산인데 우리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멋진 류저우 야경을 즐기며 님들의 발자취를 더듬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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