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저우는 곳곳에 수십 미터 높이의 검은 바위산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마치 넓은 정원에 인공으로 산을 만들어 세운 듯 풍치가 아름답습니다.
3월 19일 첫 탐방지는 임시정부 류저우 청사 러췬사(樂群社)입니다. 우리 일행은 러췬사 부근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러취산가 개관하는 9시까지 약간 시간이 있어서 인접한 위펑산에 올랐습니다. 산봉우리가 입 벌린 물고기 모양이어서 위펑산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공습이 있을 때면 류저우 강남에 거주하던 임시정부 요원과 가족들은 위펑산 동굴로 피했습니다. 위펑산에는 천연 동굴이 많은데 18개 동굴이 연결된 대형 동굴도 있다고 합니다.
1938년 11월 30일 오전 9시경, 임시정부 일행은 류저우(柳江, 柳江县)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39일간 해상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하는데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여기도 안전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내색은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숨을 죽이고 공습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류저우는 전란으로 인해 광둥 후난(호남) 등지에서 수만 명의 난민이 몰려 와 거리에는 노숙자가 들끓고 크고 작은 여관은 물론 임대주택조차 구할 수 없는 실정이라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후 2시경이 되어서야 공습경보가 해제되고 류저우 정부가 마련해 준 각자의 숙사를 찾아들었습니다.
광동성 주석 우테청(吴铁成)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행이 류저우로 이동한다는 연락을 받은 류저우 국민당 당부가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시내를 가로지르는 류강 남북으로 임시정부 일행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여기저기 구해 놓았습니다.
전쟁 중이라 한곳에 모여 살만한 주택이 없었기 때문에 흩어져 살았는데 강남에는 위펑산(魚峰山) 일대에, 강북에는 랴오공관 주변에, 또 형편에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도 했습니다. 일본군의 공습이 있으면 임시정부 요원과 가족들도 류저우 시민들과 위펑산 동굴로 도피했습니다. 우리가 올라온 바로 이 위펑산입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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