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한국학교(교장 김성희)에서는 지난 6월 7일과 9일 양일간 외부전문가를 초빙하여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하였다. 광저우한국학교 학생들은 여러 인권 테마의 연수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였을 뿐 아니라 단위교육청, 구청, 센터, 학회 등에서 다년간 강의를 진행해 온 최민정 강사와 만나 '자기 이해와 성장을 위한 여정'이라는 단체 특강으로 한 번, '행복한 삶을 위한 나의 마음 다스리기'라는 주제의 학급별 활동으로 또 한 번, 총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행복한삶을위한나의마음다스리기'를제목으로학급별활동은최근MBTI검사...
1926년 6월, 서응호는 페이잉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경영자인 미국인 부인에게 유학을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더니 미국으로 가는 여비만 조달하면 유학 중의 모든 경비는 보조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고향에 가서 여비를 조달하고, 국내 내연의 처와 결혼을 해약하기 위해 귀국하려고 했으나 여비가 없었습니다. 페이정중학교의 이학현이 서응호에게 인삼을 선물해서 서응호는 인삼을 팔아 여비 40여 원을 마련해 고향으로 갔습니다. 결혼은 해약을 했지만 미국으로 갈 여비는 마련할 가망이 없었습니다. 광둥에서 인삼 행상을 해서 미국유학 경비를 마...
북경한국국제학교와 천진한국국제학교에서 예선 통과한 재외동포 청소년 50명 출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베이징협의회(회장 서만교)는 지난 6월 4일 오전 10시 천진한국국제학교 강당에서 ‘2023 해외청소년 통일골든벨 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회에는 북경한국국제학교에서 예선을 통과한 25명과 천진한국국제학교에서 예선을 통과한 25명 등 총 50명의 재외동포 청소년들이 출전했다.북경한국국제학교는 지난 5월 10일 재학생 380명이 참가한 가운데, 천진한국국제학교는 6월 1일 재학생 240명이 참가한 가운데 예선을 개최한 바...
페이잉학교에 재학하던 중 중산대학에 재학하는 조선인 학생으로부터 의열단 재무부장 권준(權晙, 1895~1959)을 소개받았습니다. 권준은 산책하자고 중앙공원으로 서응호를 데리고 갔습니다. 권준 권준은 서응호에게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된 의열단(義烈團)이 있는데 조선인으로서는 누구라도 조선 독립을 바라지 않는 자가 없을 테니. 당신도 그것에 가입하여 서로 독립을 위해 노력하자”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서응호는 학업을 목적으로 도항한 자이고 나 같은 학생이 그것에 가입...
서응호는 고향인 함경남도 덕원군(德原郡) 적전면(赤田面) 신풍리(新豊里)에서 소학교와 중학을 졸업했습니다. 이어 원산(元山) 공립보통학교와 원산 보광(保光)학교 고등과도 졸업했습니다. 191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서응호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자형과 누나가 있는 간도(間島) 롱징(龍井) 쥐즈가(局子街, 현재의 옌볜)로 건너갔습니다. 누나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며 장사를 하고 자형은 롱징의 푸차오 신한촌(浦潮 新韓村) 일본 헌병대에서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응호는 롱징에서 여인숙을 경영하기도 하고, 일본 영사관의 통역도...
서응호의 본명 서의준(1899-? 徐義駿, 徐应浩 徐应洛) 본적: 함남 덕원군 적전면 신풍리 광저우시 팡춘 바이허동(白鶴洞) 페이잉(倍英)중학교는 광저우에서 손꼽는 중점학교입니다. 1920년대, 가난해서 학비가 없었던 고학생 서응호가 미국인 교장의 특별후원으로 입학하여 3년간 공부하고 졸업한 학교입니다. 서응호의 학구열이 뜨겁기도 했지만 외국인 학생을 받아준 교장이 고맙기도 하고 페이잉학교 교정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2013년 12월 2...
민주평통광저우협의회(회장 우제하)가 지난 5월 27일 중국 광저우에 있는 광저우한국학교에서 ‘2023 해외청소년 평화통일 골든벨’을 개최했다. 이번대회에는 중국 광동성에 거주하는 15개 학교의 103명의 한인 학생들과 민주평통 자문위원들 포함해 130여 명이 참여했다. 대회결과 대상에는 최세은 학생(광저우한국학교)이 최우수상에는 박하영/신수빈 학생(광저우한국학교), 우수상에는 한지민(QSI), 위민혁/이세림(광저우한국학교), 배성훈(정홍실험학교), 반지인(선전한국국제학교)학생이 수상하였다. 광저우협의회 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모금공연은 류저우에서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입장권 판매액 중에서 각종 홍보경비와 공연비용을 빼고도 440원이 남았네요. 100원은 류장 당부에서 보관하였다가 류저우 “부상병의 벗”이라는 모임을 결성하기로 하고 나머지 340원은 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부상병들에게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1939년 3월10일, 우리 공작대 대표가 위문금을 전달하러 당부, 경찰국, 민단지휘부, 문화계 구국협회 등 10개 단체 대표가 위펑산 기슭에 자리 잡은 군 병원으로 갔습니다. 비가 내리고 진흙탕 길이지만 한국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