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웃으시는 볌재 김규흥

한인·동포

빙그레 웃으시는 볌재 김규흥

범재 김규흥의 후손이 소지하고 있는사진중에 범재 김규흥이 광동성 후이저우뤄푸산(惠州罗浮山)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편지 뒷장에서 산천 경관이 멋지고 깍아지른 듯 험하고 깊은 뤄푸산에는 위당 전병준씨가 수도를 하고 있어서 전병준을 통해 참동계라는 책을 읽었고 명산을 알게 되었으며 기회가 생겨 풍경을 즐겼다고 사진 뒷장에 썼습니다.

 

이 글을 쓴 날은1910년 3월 13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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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있는 사람이 취당 전병준이고, 풍요로운 얼굴에 두 손을 무릎위에 가만히 얹어 있는 사람이 환제 왕은장(王恩章)이고, 긴 수염에 맨 가에서 빙그레 웃으며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또 후어저우를 관할하는 왕은장의 병사가 여행길을 녹 호위했고 뤄푸산에서 십여일을 머물고 돌아오는 길에 몇몇 관공서에 들러 정겨운 말들을 나누게되어 즐거웠고 이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고 썼습니다.


광저우에서 뤄푸산까지 약 70-80킬로미터, 뤄푸산에서 십여일 머물고 또 몇몇 관공서를 시찰하는데 며칠을 소요했고, 광저우에서 뤄푸산까지 오고 가는 시간을 합치면 약 한 달을 뤄푸산 여행에 소요했습니다.


김규흥이 보관하던 동맹회의 비밀문건과 물품들을 가지고 뤄푸산으로 도피했다고 추정하는 대목입니다. 사진 뒤에 글을 쓴 날이 1910년 3월 13일인데 2월 12일 신군기의 후, 한 달이 지난 시간입니다.

 

신군기의 실패로 인해 신군 100여명이 무참히 희생을 당하고 작전을 지휘하던 예잉뎬은 사형을 당하고 가담한 중국 혁명인들은 모두 홍콩 등지로 피신을 했습니다.

 

청정부가 혈안이 되어 혁명인을 체포하는지라 조선의 옛날 옷과 관을 쓴 김규흥이 혁명당원이라고 의심도 받지 않으면서 극도로 위험한 물품을 가지고뤄푸산으로 피했다고 봅니다.

 

비록 도피하는 시간이었지만 김규흥의 뤄푸산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왜 즐거웠을까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듯, 중국혁명의 깊숙한 현장에 들어가서 혁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했고, 또 지역 정부와 어떻게 협력하는지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체험을 우리 독립운동에 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고 심중에도 확신이 섰을 것입니다. 그래서 빙그레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요? 뤄푸산 여행 이후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돌아가실 때까지 빙그레 웃음을 띄울만큼 즐거운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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