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인역사] 노식: 강릉공산청년운동 신문배달부 공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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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노식: 강릉공산청년운동 신문배달부 공작원

1935년, 황푸군관학교 6기생 노식은 강릉에서 조선공산 당재건운동에 종사하다가 검거되었습니다. 신분은 신문 배달부였습니다. 1933년 9월 하순부터 10월 11일까지, 서대문 경찰서에서 공산당 간부급 인물과 각지의 남녀학생 공작원, 여자 직공 등 80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취조 중 우연히 강릉 공산청년동맹 연구원들이 동지를 획득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공산주의를 선전하며 활동한다는 것이 포착되어 비밀 조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경성, 강릉, 평양 등 남북 각지의 시골까지 형사대를 출동시켜 석 달 동안 관련 공작원 230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강릉에는 농민운동이 활발했습니다. 베이징에서 레닌 정치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권오훈(權五勳, 1911~1951)이 협력하여 강릉 도립병원에서 『정치교육 뉴스』를 비밀리 인쇄하여 농촌 진흥 운동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등 활발하게 공산주의를 선전했습니다. 또 야학을 개설하고 연극을 공연하며 강연회를 개최하고 삐라를 살포했습니다. 연극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담당자가 경찰에 검거되었으나 1932년 1월경 이들은 전국에 결성하려던 공산청년 동맹준비위원회를 기필코 결성했습니다.

 

1932년 1월, 강릉군 구정면 학산리에서는 공산 청년공작위원회의 지도하에 농민 300명이 땔감 수수료(지게세) 징수에 항의하여 면사무소에 몰려가서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강릉농업학교 안에도 반제동맹 준비조직에 해당하는 독서회 등 군내 각지에 적색노동조합 하부조직을 두었습니다.

 

1932년 메이데이를 며칠 앞둔 4월 26일, 반일 격문이 발각되어 검거 선풍이 일었습니다. 공산그룹의 국내 거점이 경찰에 탐지되고 인쇄거점도 털리고 사회운동 주요 간부가 속속 검거되었지요. 이에 따라 비밀조직 구성원이 대거 체포되고 국경을 통해 이뤄지던 국내외 연락도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코민테른이 직접 지도하던 당 재건 운동은 침체에 빠졌습니다. 지속적인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강릉에는 공산당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1932년 12월 중순, 강릉군 주문진에서는 전보 배달부, 학교 사환, 면사무소 급사 등이 공산 청년공작위원회의 지도하에 좌익 지도자 양성기관인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회를 조직했습니다.

 

1933년 2월 12일, 적색 농민조합 지도하에 농민 100명이 강릉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당국이 강제적으로 판매용 가마니를 검사했습니다. 이에 항의해서 농민들은 가마니검사소에 쳐들어갔고 대열을 형성해 군청으로 몰려가 집단으로 시위했습니다.

 

일체 보도를 금지하고 비밀히 조사를 진행하던 일제는 2년이 지난 1935년 8월 재판을 일단락 짓고 보도 금지를 해제했습니다. 강릉 적색 농민조합 결성준비위원회가 전국적으로 각 산업 분야마다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전모가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湖南省档案馆校编, 『黄埔军校同学录』, 湖南人民出版社,1989년 7월
「被告姓名」, 『동아일보』, 1935년 8월 24일 호외.
「江陵共靑準備會組織經過」, 「朝鮮共産黨再建同盟事件」 호외, 『동아일보』1935년 8월 24일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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