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19일 이틀간 역사연구회 선생님 등 18명이 류저우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했습니다. 올 8월에 우리 역사 교실 학원들과 류저우 탐방을 계획하고 있어서 이번 탐방은 현지답사 여행이었습니다.
광저우에서 류저우까지 약 570km, 자가운전은 5~ 6시간 정도 소요되고, 고속철도는 3시간 반~4시간 소요됩니다. 23인용 버스를 대절하려고 보니 버스는 시속 100km를 초과할 수 없고 또 기사가 한 시간마다 쉬어야 하는지라 광저우에서 류저우까지 8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연구회 회원 중 드라이버께서 자원해 주셔서 자동차 4대가 동원되었습니다. 선발팀은 오전 8시 각각 지정된 장소에서 출발하고 광저우 한글학교와 포산 한글학교 선생님 두 분은 토요일 오전 수업이 있어서 후발팀으로 방과 후 출발했습니다. 16명이 4대 자동차에 분승하고 두 분은 형편이 있어 고속철도로 오셔서 류저우에서 합류했습니다.
스롱대교(石龙大桥)에서 본 류강(柳江)
첫 탐방지는 류저우 샹저우현(象州縣) 스롱전입니다. 구이핑(桂平)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잠깐 쉬고 오후 2시 반쯤 스롱에 도착했습니다. 시장으로 들어가 식당을 찾아 준비해 온 도시락과 구이린 국수를 먹고 스롱대교 아래 류강 강변으로 갔습니다. 1938년 10월 20일, 포산을 출발한 임시정부 일행이 한 달간 해로를 따라 북상하다가 11월 19일 스롱 부두에 도착해 하룻밤을 머문 곳이 바로 스롱진입니다.
저는 임시정부 일행이 광저우에서 류저우로 이동하는 동안 경유한 지역명을 연구하다가 제 인상에 꽂힌 지역은 스롱(石龙)이었습니다. 포산에서 출발한 임시정부 일행은 가오야오현(高要縣)에서 광저우에 남아있던 일행과 합류해서 일행 140여명이 큰 배를 타고 류저우를 향했습니다. 배는 부엌,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백여 명이 함께 잠잘 수 있을 만큼 컸으나 사공이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기선이 앞에서 끌어야 갈 수 있는 목선이었습니다.
기선의 동력이 약해 상류로 올라갈수록 물살이 거세져 속력을 내지 못하고 10월 28일 광시성 구이핑현 북문 밖(北門外) 부두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목선을 끌고 온 기선이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기선 구하기가 어려운 때인지라 돈을 많이 준다는 곳으로 간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 젊은이 두 명이 도움을 구하러 구이핑현 정부를 방문했더니 “일행이 도착하면 타고 온 배를 그대로 태워 류저우까지 보내라”는 광서성 정부 전보가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시정부 일행이 탄 배를 끌고 온 기선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기선을 구하려고 다방면으로 애썼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꼼짝 못 하고 구이핑 북문 부두에서 찬거리 사다가 노천 강변에서 큰 돌 조각 서너 개를 깔아놓고 나뭇가지를 주워 와 불을 지피고 가마를 걸어 저마다 음식을 지어 먹으며 시비 싸움질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할 일 없이 구이핑에서 19일을 허송세월하다가 11월 16일, 산수이(三水) 선박 사령부에서 작은 기선을 보내 주어 오후 4시 반, 구이린 북문 부두를 떠나 류저우를 향해 북상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떠난 지 두 시간 남짓해서 백여 개나 되는 여울 중에 그 몇 번째인지 여울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여울을 벗어나려다 실패하여 좌초된 상태에서 밤을 지나고 다음 날 아침에서야 겨우 배를 끌어 올려 다음 날 17일 상오 11시경 여울을 벗어났습니다.
임시정부 일행의 안살림을 맡고 있던 정정화가 쓴 『長江日記』에는 그곳을 롱강(容江, 融江)이라고 합니다. “롱강은 물살이 몹시 빨랐다.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여울이 우리를 위협했는데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앞서가는 윤선도 뒤뚱거리다시피 하면서 겨우 여울을 빠져 나오곤 했다.”
『제시의 일기』를 쓴 최선화는 11월 19일 스롱에 도착했다고 기록합니다. “일기는 맑고 깨끗했다. 기선이 상오 중으로 떠나지 않는다는 발표가 있자 마음 놓고 즐기고 이야기하며 밤낮을 보낼 수 있었다. 청산녹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선원들이 밥을 해 주면 반찬은 된장, 고추장을 반찬삼아 밥을 먹었다. 배가 잠시 정박하면 육지로 올라가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고기를 사 가지고 와서 구해 온 토기에다가 장조림을 해 가지고 담아 오기도 했다. “선상의 이백여 식구는 끼리끼리 모여 앉아 부평초처럼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습니다.
2018년, 제가 류저우를 탐방하고 우저우(梧州)로 가는 길에 우연히 스롱대교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스롱이라는 글자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스롱대교를 건너니 바로 시장입니다. 시장 부근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스롱대교로 올라가 좌우를 걸었습니다.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북으로 올라온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대교 아래는 류강이 흐르고, “날씨가 맑고 깨끗했다.”, “배를 정박하고 육지로 올라오면 반찬거리를 살 수 있는 시장이 있다.”, “200여 명이 앉을 장소가 있다.” 바로 『제시의 일기』에 나오는 스롱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2018년 스롱의 류강 강변입니다.
스롱대교 위에서 반대쪽, 즉, 이제 류저우를 향해서 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강 끝에 보이는 곳이 목적지 류저우인데 스롱대교에서 약 30~40km 떨어진 곳입니다. 11월 21일 상현에서 쓴 『제시의 일기』에는 “강물은 푸르고 맑지만, 수심이 얕아서 행선은 어려웠다.“고 기록합니다.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물이 얕고 강폭이 좁은 이곳에서는 배가 아예 나갈 수 없어 뱃머리에 밧줄을 감고 한쪽 끝을 저만큼 앞쪽으로 끌고 가 든든한 바위에 잡아매고 건장한 청년 10여 명이 배를 맷돌질하는 것처럼 묶은 밧줄을 노래하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무거운 배를 강변으로 끌어올렸다”
『조소앙 일기』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11월 20일 하오 4시 20분에 石龍을 출발하였다. 11월 21일 상오 7시 얕은 여울에 좌초되었다. 하오 5시에 또 출발하였지만 역시 저녁에 얕은 여울에 좌초되었다. 네 사람이 걸어서 柳州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탐방한 3월 18일, 날씨가 흐렸습니다. 강변도 새롭게 조성되었네요. 크고 작은 바위들을 덮어 강둑이 가지런히 쌓이고 강물이 얕아 모래가 드러났던 곳에도 녹수가 넘실댑니다. 2018년, 제가 처음 보았던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2018년 탐방 때 스롱대교에서 류강를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스롱 류강 강변에 스민 우리 역사도 지나쳤을 것입니다. 이번 탐방에서는 류강 강변을 바라보아도 2018년만큼 『제시의 일기』에 쓰인 장면이 생동적으로 떠오르지 않네요. 그래도 우리는 긴 시간 해상 여행에서 지친 임시정부 일행이 하룻밤 쉬다간 스롱강변을 기억하고 탐방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현재의 스롱 류장 강변입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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