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인역사] 랴오레이공관(廖磊公館)

[중국한인역사] 랴오레이공관(廖磊公館)

류저우시내도 교통 체증이 아주 심각하네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그치고, 주룩주룩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날입니다. 자동차로 꽉 메인 류저우 시내 도로를 뚫고 랴오레이 공관을 찾아갔습니다. 

3년 전 제가 탐방을 왔을 때는 대외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문밖에서 건축물만 볼 줄 알았는데 뜻밖에 대문이 열렸네요. 들어가 보니 랴오레이 공관은 중국과 류저우 시민들의 항일전쟁활동 전시관을 조성하여 대외개방을 했습니다.

640 (12).png



랴오레이 공관은 류저우 국민당 제7군장 랴오레이(廖磊,1890~1939)가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동창 광동성 우테청(吴铁成) 주석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행이 류저우에 온다는 연락을 받고 제공한 자신의 저택입니다. 랴오레이는 안후이(安徽) 전선에 나가고 그의 부인은 전시 아동보육원 원장인데 주로 보육원에서 생활해서 그의 집에는 친척들이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640 (13).png
우톄청 광동성 성장과 랴오레이 류저우제7군총사령

 


국무위원 10~20여명이 랴오레이공관에 입주하여 일을 하다보니 랴오레이 공관은 자연스럽게 임시정부 또 하나의 사무실이 되었습니다. 랴오레이 공관을 임시정부 사무실로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 한국 광복전선청년공작대 대원이었던 이윤철(1925~2017)과 민영애(1927~2013) 부부가 류저우를 방문하여 고증했습니다. 

640 (14).png
민영애와 이윤철 지사 부부

 


이윤철은 당시 14세였습니다. 2001년 류저우를 방문한 민영애(1927~2013)는 1938년 3월 안창호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차리석이 랴오레이 공관 화장실에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증언하고 화장실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이 랴오레이 공관에 거주하면서 사무를 보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640 (15).png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