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인역사] 중화노병소비에트 제1차 전국 대표대회에 조선인대표

[중국한인역사] 중화노병소비에트 제1차 전국 대표대회에 조선인대표

19303, 최정무는 공산당조직으로부터 장시성(江西省) 루이진() 중앙소비에트 구역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루이진으로 가는 도중에 푸젠성(福建省) 서부를 지나다가 광저우폭동을 지휘한 예젠잉(叶剑英, 1807~1986) 만나 밤새워 대화를 나눴습니다. 루이진에 도착해서 중앙소비에트의 홍군기계수리공장에 배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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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6, 중앙소비에트 지역에서 무산계급 전사로써 무한한 영예감을 느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마오저동(毛澤東, 1893~1976)의 동생 마오저탄(毛泽覃,1905~1935,)이 최정무를 불렀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임무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찾아갔는데 마오저탄은 잉어요리와 찹쌀로 빚 술상을 차려 놓고 기다렸습니다.  사람은 거의 한나절 술을 마시고 유쾌하게 담화만 나누다 돌아왔습니다. 

 

1931 117, 최정무는 중화노병소비에트 1차 전국 대표대회에 조선인대표로 참석했습니다. 회의는 루이진의  사당에서 열렸는데 사당 정면에는 대회를 경축하는 숱한 표어가 나붙고 대회를 경축하는 주민들이 가져온 돼지고기, 달걀, 고구마 등이 주석대 아래에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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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높이 마련된 주석대에 마오저동 위원과 주더(朱德, 1886~1976)총사령관이 앉아 있었습니다. 대표 회의에 약 200명이 참석했는데 몽골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모주석과 주사령관의 발언  각국 대표 발언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회 비서처에서 최정무에게 조선인을 대표하는 발언을 부탁했습니다. 최정무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혁명 경력도 없는 혁명 애송이인데 중국 최고 공산주의 대표자들 앞에서 발언을 하라니요. 머리는 새하얗게 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표 발언은 망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마오저동이 최정무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일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비록 조선인 대표 발언은 실패했지만, 최정무는 제1차 중화노병소비에트 회의에 참석한 조선대표라는 명예를 안았습니다. 1932년 봄, 마오저동의 특별한 배려로 중앙소비에트 홍군 군정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학교 사무도 보았습니다. 당시 홍군 군정학교에는 조선인 무정(武亭, 1905~?)이 사격훈련 교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8월 최정무는 홍군군정학교 제3기를 졸업하고 제22군 제1단 제2연대의 부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가 두 달 후 소속 연대 정치 지도원직에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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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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