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재 김규흥지사는 주즈신(朱執信, 1885~1920)이 기획한 신군기의(新軍起義)에 참여했습니다. 청나라의 신식군인을 신군이라고 하는데 지식과 교양을 갖춘 신군 사병들로하여금 청나라를 타도하려는 구상했습니다. 범재 김규흥 지사도 신군기의에 참여했습니다.
먼저 신군기의를 기획한 주즈신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청나라 말엽, 일본 유학을 하는 중국 학생들은 변발을 하고 중국 전통 장포 입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즈신은 늘 변발을 늘이고 장포를 즐겨 입었지요.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고 장난삼아 변발을 자르려고 했으나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사실 주즈신은 변발과 중국 전통 복장으로 청나라 당국의 눈을 가렸습니다. 일어와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면서 당시 청나라가 엄금하는 쑨원의 혁명이론을 가르치고 또 직접 무기를 들고 무장투쟁도 실천한 혁명가입니다.
주즈신의 가문은 사대부 집안이었으며 그의 부친은 양광총독 장지동(张之洞,1837~1909)의 막료였으며 시사(诗词)에 능하고 거문고를 잘 타서 “거문고 왕(琴王)”이라고 불리던 학자였습니다.
1895년, 주즈신이 서당교육에서 공부할 때, 청일전쟁에 패한 청정부는 일본에 은 2억량을 배상하고 요동반도와 대만을 일본에 할양했습니다. 1898년, 주즈신이 13세 때, 청나라 정부는 유신변법으로 나라를 구하려던 애국인 ‘6군자’를 처형했는데 그 중에 양루이(楊銳, 1857~1898)는 부친의 절친이었습니다.
그 때 광저우 최고 신식학부 광야서원(廣雅書院)에서 공부하던 주즈신은 작문시간에 청정부가 자기 백성을 진압하고 처형한 것에 대한 분개를 《读辛幼安南渡录感叹题后》라는 문장을 썼는데 문학부에 1등으로 뽑혔습니다.
1902年, 주즈신은 광저우 유신학파가 창설한 신식학교 교충학당(教忠学堂)에서 외삼촌 왕징웨이(汪精衛), 친구 후한민(胡汉民) 등과 함께 “군지사(群智社)”라는 독서서클을 만들어 헉슬리의 《언연론(天演论)》, 아담 스미스의 《원부(原富)》, 룻소의 《민약론(民约论)》등 서방의 저서들을 탐독하면서 구국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1904年 경사대학당(京师大学堂, 현재의 북경대학)에서 주최하는 국비 일본유학생 선발에서 1등으로 뽑혀 1905년 동경법정대학 속성 경제과에 입학했습니다. 1905년 7월, 쑨원이 동경에서 혁명에 뜻을 둔 유학생과 화교 70여명을 초청해서 중국동맹회 창립준비 회의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주즈신은 쑨원이 주장하는 혁명이론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고, 회의가 끝나고 동맹회 가입 선서식이 있었는데 주주신은 그 자리에서 가입을 했습니다.
문장력이 뛰어난 주즈신은 1906년부터 동맹회 기관지《民报》에 약 100여편의 문장을 발표했습니다. 쑨원의 삼민주의를 소개하고, 황제제도를 회복하려는 개량 유신파들의 이론을 반박하고, 민생주의(民生主义)를 고취하는 문장 등을 기고해서 청정부 타도의 당위성과 독립적인 중화공화국 건립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광저우에 돌아와서 광동고등학당과 법정대학, 방언대학 등에서 교원신분으로 청정부의 눈을 가리고, 청정부의 군대에까지 잠복해서 군인들에게 혁명사상을 강의하고 군대에서 비밀히 활동하던 혁명인들과 긴밀히 연락하면서 반청투쟁 및 민군(民军) 합동 무장봉기도 계획했습니다.
1910년 2월, 주즈신이 기획했던 신군 쿠데타는 실패했습니다. 쑨원의 다음 쿠데타가 1911년 4월 27일(음력 3월 29일) 황화강 봉기였습니다. 주즈신이 긴 장포를 입고 결사대원으로 앞장을 섰습니다. 옷이 불편해서 어떻게 전쟁을 하겠느냐는 동료들에게 장포를 갈라 허리에 숨긴 수류탄 두 개를 보이면서 양광총독을 죽이겠다고 앞장섰습니다.
중화민국 2년(1913년), 신해혁명이 성공했으나 위안스카이가 임시대총통에 되자 주즈신은 광동정부가 주는 유학경비 3000위안을 전부 쑨원의 혁명경비로 내놓고 일본으로 갔습니다. 중화민국 4년(1915년) 쑨원이 제2차 혁명을 시도하자 《民国》잡지에 "내란의 희생은 없다", "폭민 정치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똑똑한 독재" 등의 문장을 발표하면서 위안스카이가 죽을 때 까지 문장을 써서 언론에 발표하는 방법으로 독재 통치를 공격했습니다.
중화민국 6년(1917년) 주즈신은 쑨원과 광저우에 와서 《건국방략(建国方略)》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주즈신이 희생했을 때, 쑨원은 "주즈신은 혁명중의 성인이다" 라고 애통해 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저작권자 © (칸칸차이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2025 칸칸차이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