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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기 “배협컵” 광동성조선족배구경기 개최1895년에 처음 창안된 배구는 그 역사만큼 국제적으로도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구기종목중 하나이다. 광동성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민족도 휴일이면 동료나 친구들과 모여서 배구를 치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그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4월 20일, 21일 제12기 "배협컵" 광동성조선족배구경기가 광동성 혜주시에서 개최되였다. 여자 20개팀, 남자 11개팀의 250여명의 선수가 이번 경기에 참석하였으며 그 열정과 실력을 한껏 뽐냈다. 이번 대회의 개막식은 광동성조선족배구협회 김성화 비서장의 사회로 시작이 되였다. 개막식에는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정용택회장, 광동성조선족배구협회 박봉철회장,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이영춘명예회장,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한성진수성부회장, 동관조선족연합회 김정식회장, 전국조선족배구협회 문철수회장, 심천조선족배구협회 안성실회장, 광주조선족배구협회 김종식회장, 광주조선족여성협회 이화회장, 광동성조선족배구협회 임성무, 초해연 상무부회장, 신현춘재판장, 광주조선족배구협회 정성손수석부회장, 심천조선족배구협회 김선실 수석부회장이 개막식에 참가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특히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정용택회장은 축사에서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회장으로 임명되여 처음으로 참석한 배구대회이며 말로만 듣던 배구경기를 현장에서 느껴보니 참가한 선수들의 열정과 끈기에 탄복했고 제일 단결되고 호응도가 높은 운동이라는걸 느겼다. 제12기《배협컵》광동성조선족배국경기의 원만한 성공을 바라며 이 기세 이 열정 쭉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하셨다. 광동성조선족배구협회 박봉철회장은 개회사에서 "제가 광동성조선족배구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한지 얼마 안된것 같은데 벌써 일년이란 시간이 흘러 또 다시 이자리에 모이게 되여 감개무량하다. 원만한 경기의 개최를 위하여 열심히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리며 이틀동안의 경기에서 모든 선수분들 다치지 말고 안전한 운동하시기 바란다."고 말하셨다. 경기의 시작은 중국조선족배구협회 문철수 회장이 선포하셨다. 심사위원대표와 운동선수대표 선서발언을 통해서도 누구나 얼마나 열정적이고 공정하게 이번 대회에 임했는지를 알수가 있었다. 이틀동안 진행된 경기에 선수들은 누구보다 더 열정적이고 승부욕있게 임했으며 평소에 갈고 닦은 배구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치열한 경기를 통하여 여자 중년조에서는 1등에 광동여협팀, 2등에 하니팀, 3등에 주말팀이; 남자 중년조에서는 1등에 주말팀, 2등에 계동팀, 3등에 하니팀이; 여자청년조에서는 1등에 위너팀, 2등에 우봉팀, 3등에 행복팀이; 남자청년조에서 1등에 위너팀, 2등에 우봉팀, 3등에 위너B팀이 입상의 영광을 안았고 문명상은 해피스팀이 가져갔다. 수많은 선수들가운데서도 시합중에 날로 일취월장해나가는 실력으로 자신이 속한 배구팀을 입상시키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이 있다. * 장외 이번 대회에 광동성조선족배구협회에서는 매번 대회마다 사심없는 봉사정신으로 대회의 활성화와 진행을 위하여 애써주신 분들을 위한 작은 선물로 광동성배구협회운영진들만의 센스를 발휘하였다. 광동성내 우리민족의 여가생활을 더욱 풍부히 해주고 있는 배구운동의 활성화와 광동성조선족배구협회의 더욱 찬란한 미래를 응원해본다. 글/사진: 박미선(광주) 심사: 김성화(광동배협) -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중국아시아경제협회 조선족기업발전위원회 방문단 미팅 및 MOU 체결지난 12월14일 중국아시아경제협회 조선족기업발전위원회(中国亚经协.朝鲜族企业发展委员会, 아래 조선족기업가위원회) 강성민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일행이,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사무실을 방문하여 연합회 황남철 회장 등 임원진과 심도 깊은 대화 및 앞으로의 협력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날 방문단에는 강성민 회장 외, 신광성 상무부회장 겸 비서장, 안금화 상무부회장, 김철 부비서장, 리해영 사무실주임이 동행하였으며,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는 황남철 회장 외, 이영춘 명예회장, 남기학 명예회장, 정용택 수석부회장, 마학철 감사장, 한성진 비서장, 김철 광주연합회 회장, 마춘화 여성협회 회장, 전경숙 광동성조선족여성협회 명예회장 겸, 코위너 평생이사(글로벌), 전국애심여성포럼 민족공익사업발전기금회 이사장(중국), 전명숙 여성협회 명예회장이 참석하여 방문단을 맞이하였다. 특히 조선족기업가위원회는 2025년 세계한상대회의 주최측으로서, 중국 조선족 기업가들의 자원 공유, MOU 체결 등 협력을 통해 조선족들이 국제 무대에서 좀 더 활약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보여, 현장에 있던 임원진들에게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이날 두 협회 회장은 각자 협회의 발전 과정과 조직 구조, 회원 규모, 향후 발전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며, 중국 조선족 경제발전과 문화전승에서 조선족 기업가들이 앞장서야 하는 사명감과 역할에 대해 강조하며, 양단체 공동 발전을 위한 MOU를 체결하였다. 동시에 강성민 회장은 황남철 회장에게 联席会长 임명장을 전달하였고, 남기학 명예회장에게 고문 임명장을 발급하였다. 방문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간 강성민 회장은 “어제 두 협회의 공식적인 미팅과 MOU체결은 아주 의미있었으며, 저의 협회에게 있어 올해안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것이다. 향후 북경과 광동은 실질적인 공동체가 되어 우리민족의 위상을 지키고 높이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지와 바람을 전하며 이번 방문을 환대해준 연합회 임원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기업가위원회의 심천 방문은, 양 단체 합작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서로의 발전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전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번 만남을 통해, 두 협회는 각자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여, 더 많은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이 이루어지는 등 조선족 기업가 협력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앞으로 협회간의 MOU 체결을 통해, 중국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들을 하나로 집결시키는 데 든든한 초석이 되길 바라는 기대도 안겨주었다. 자료제공: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
[인터뷰]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영창 비서장 - 비서장의 임무는 ‘심부름을 많이 하는 것’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영창 비서장 ■ 고향:흑룡강성 목단강시 I 1971년생 ■ 기업: 深圳市利昌裕手袋有限公司 ■ 골프구력: 25년 이상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이하 전국골프협회) 총무 겸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창 비서장은 일본어를 전공하고 1990년에 심천으로 내려왔다. 일본 기업에서 10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 2000년에 가방 회사를 설립하고 20여년간 본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방전문 사업가이다. 전국골프협회에서 그가 맡은 분야는 행사를 치르기 위한 전반을 다 담당하고 있다. 골프장 섭외, 호텔 안배, 손님 접대 등 그의 손을 안 거치는 것이 없다. 그는 비서장의 책임감은 ‘심부름을 많이 하는 것’이라며 대단하지 않다는 듯 겸손하게 말을 한다. 또한 그의 민족 사랑도 꾸준하다.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민속축제나, 노인협회, 골프대회 등 여러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후원을 하고 있다. 김영창 비서장은 서정파 비서장과 막연한 친구 사이로 1997년도 부터 서정파 사장과 함께 골프를 시작했다. 그 역시 2008년도 광동성하나골프협회가 설립될 때 초창기 회원으로 가입하여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 골프를 일처럼 할 정도로 그는 회사 고객들과 거의 운동을 함께 한다. 특히 그의 회사 제품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어 주로 일본 바이어를 상대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 일본 손님들이 3, 4일 일정으로 출장을 오면, 업무 미팅은 하루면 끝이 나서 나머지 일정은 함께 골프를 치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바이어라는 관계를 떠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미팅 때 물량을 못 도와준다고 거절했던 사람도 골프를 치고 난 다음 날이면 오케이 사인을 주는 경우가 있다며 골프가 사업에 도움을 주는 것을 직접 느낀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골프를 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골프를 하지 않고도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많듯이 자기 흥미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주일에 5일은 골프장에서 보낼 정도로 골프를 즐긴다. 홀인원은 10년전 동관에서 일본 손님과 골프를 쳤는데 그때 오더를 많이 주어 기분이 좋아 그런지 눈을 감고 쳤는데 홀인원이 되었다며 익살스럽게 웃는다. 최고의 골프명언 5가지 골프의 구성요소 중 50%는 멘탈, 40%는 셋업, 그리고 나머지 10%는 스윙이다. -잭 니클라우스 (Jack Nicklaus) 골프스코어는 그린 주변 70야드 에서 결정 된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이버를 잘치고 싶어하지만 골프는 거리가 짧아질수록,그린에 가까워질수록 더 집중해야하는 스포츠다. - 벤 호건 (Ben Hogan) 필드에 나가서 비거리가 안나오더라도 기본만 하고 오면 아주 잘 한거다. 기껏 갈고 닦은 실력,욕심 때문에 버리지말고 욕심은 잠시 접어두자! - 바비 존스 (Bobby Jones)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치기를 원한다면 천천히(slower) 짧게(shorter) 그리고 부드럽게(softer) 3S로 백스윙 하라. - 게리 플레이어 (Gary Player) 사람들이 내 스윙이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는걸 나도 안다. 난 내 스윙이 평평하다는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잘되면 바꿀 필요가 없다. - 세르히로 가르시아 (Sergio Garcia) -
[인터뷰]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서정파 비서장 - 골프가 인생 마인드도 바꿔 놓았다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서정파 비서장 ■ 고향: 흑룡강 계동시 I 1971년생 ■ 기업: 东莞市港荣五金制品有限公司 ■ 골프구력: 25년 이상 전국조선민족기업가협회 서정파 비서장은 일본어를 전공하고 1994년도에 심천에 내려와 일본 기업에 취직하였다. 첫 직장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1999년도 일찍이 회사를 설립하고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회사는 주로 가위, 주방칼 등 금속제품을 취급한다. ‘코로나로 사업에 영향은 없었는지’라는 질문에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없다고 대답한다. 오히려 해외에서 출장을 오지 못하는 손님들이 오더를 부탁하는 상황이라며 그의 사업장이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골프는 첫 직장인 일본회사에서 배웠다. 당시 회사 사장이 일본에 있다보니, 심천 지사를 방문하는 바이어는 서정파 비서장이 대신 골프로 접대하였다. 서정파 비서장은 2008년 하나골프협회가 창립되면서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2019년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이하 전국골프협회) 전우 회장이 추대되면서 전우 회장의 추천으로 재무담당 비서장을 맡게 되었다. 전우 회장과의 인연은 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를 설립하고 홀로 서기를 할 때 한 일본인 바이어가 ‘힘든 일이 있으면 전우 회장을 찾아가라’고 소개해 주었다. 그 소개 한 마디가 25년간 친형처럼 모시게 된 인연의 시작이다. 비서장을 맡고 2019년 한국에서 열린 대회는 여느때보다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았다. 다행이도 한국 협찬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챙겨주어 사고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작년은 코로나로 개최를 못했고, 금년 행사는 10월에 심천 미션힐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서정파 비서장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의 든든한 기부천사이기도 한다. 1999년도 부터 사업을 하면서 호황기도 맞아 보고,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조선민족 사회 행사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는 ‘百善孝为先 : 백가지 미덕 중에 효도가 최우선이다’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소문난 효자이다. 심천에 내려와 자리를 잡자마자 부모님을 모셔왔다. 타향살이에 적적한 부친이 노인협회를 결성해서 당시 초대회장을 맡으셨는데 그 분이 바로 서재봉 회장이시다. 서재봉 회장님은 자식들 따라 낯선 땅에 와서 외롭게 보내는 노인들을 모이게 할 만한 장소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다채로운 문화활동과 고향의 향수를 달래게 하였다. 그 장소가 마련되기 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지원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식된 도리로 서정파 비서장은 아버지의 일에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정파 비서장은 일주일에 3회 정도 필드에 나간다. 최근 2년은 골프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며, 평균 스코어는 90타 정도로 동반자한테 민폐는 끼치지 않을 수준이라며 웃는다. 골프에 있어 매너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국골프협회도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에 회원들에게 매너의 중요함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서정파 비서장이 생각하는 골프 매너는 타인에게 주는 피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남이 모를 줄 알고 하는 ‘모르기식 행동’,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 팀원에게 영향을 주는 일, 나의 기분을 그대로 들어내 타인의 기분도 상하게 하는 일 등이 있다. 매너는 첫 만남에서도 알아 볼 수가 있다. 악수를 할 때, 두 손으로 공손하게 하는 악수가 있고,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하는 악수가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문화에 속하지만, 조선민족골프협회에 왔을 때만큼은 공손한 문화를 지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골프가 기업 운영에서 필수는 아니지만 필요한 수단이라고 정리한다. 지금은 거의 조선민족들과 골프를 즐기고 있지만, 사업 초창기에는 한족들과 인맥 쌓기에 골프가 아주 기특한 역할을 했다고 추억한다. 과거에는 바이어가 오면 술 접대를 했지만 지금은 골프를 치며 건전한 접대를 하다보니 작은 회의실에서 상담을 하기보다 확 트인 골프장에서 사업 얘기를 하면 일이 더 쉽게 성사 될 때가 많다고 한다. 그 뿐인가, 서정파 비서장은 골프가 인생 마인드도 바꿔 놓았다 한다. 골프를 치면서 우수한 선배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배울점이 많았다. 어느 순간 그들의 봉사정신에 매료되어 나도 무언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골프는 참 묘한 매력을 가진 운동이라고 말한다. -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신년하례회 및 민속축제 폐막식, 하나골프대회 개최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회장 황남철)는 지난 2023년 3월 1일, 동관 미션힐에서 신년하례회 및 제8기 민속축제 폐막식과 제42기 하나골프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이날 행사는 하나조선족골프협회(회장 김철용)가 주최한 제42기 골프대회를 시작으로 광동성 조선족 골프애호가들이 우의를 다지며 2023년 신년회를 힘차게 열어 나갔다. 신년하례회 및 민속축제 폐막식에는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산하의 각 지역 단체 임원과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성진 비서장이 2022년 행사보고, 2023년 연합회 조직구성 안내와 신년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부터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제4대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황남철 회장은 개회사로 “조선족의 열정과 끈기로 뭉친 연합회가 날로 발전하고 있는 것에 강한 긍지를 느끼며, 앞으로 광동성 조선족을 위하고 후대를 위한 연합회 역할을 더욱 활성화 하겠다”며 민족발전에 강한 의지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초청된 주요인사는 十一届全国人大常委/延边州企业联合会 金硕仁 会长, 延边州人大常委会(一级巡视员)李忠文 副主任, 월드옥타본부 남기학 감사, 세계한인여성네트워크 중국지역담당관 겸 전국애심여성포럼 전경숙 의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광저우협의회 손종수 수석, 칸칸차이나/라이프매거진 김대순 대표가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연변TV 연예인들과 연변가무단이 대거 참석하여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조선족 민족문화 공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광동성 조선족사회 각계각층의 행사 참석자들은 코로나의 힘든 시기를 마치고 개최된 이번 광동성조선족연합회 신년회는 어느 해 보다도 타향살이 시름을 달래 준 멋진 행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광동성조선족연합회는 2008년에 성립되어, 연합회를 중심으로 산하에 광주/동관/혜주/중산협회/불산협회, 기업가협회, 노인협회, 중년협회, 여성협회, 청년협회, 축구협회, 배구협회, 골프협회, 한글주말학교 등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경제, 문화, 교육, 스포츠 각 분야에서 광동성 조선족사회를 하나로 융합시키고 있으며, 광동성에 진출하여 새롭게 정착해 나가는 젊은 조선족들에게 본보기와 든든한 뒷심이 될 수 있는 우수 회원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이다. -
[인터뷰] 형제골프회 초대 회장 박용남 회장 - 진정한 골프매니아 가족 중심, 사업 중심형제골프회 초대 회장 박용남 회장 ■ 고향:길림성 룡정시 I 1969년생 ■ 기업:深圳市佳马钟表有限公司 ■ 골프 구력: 21년 천지개벽의 심천 발전이나 광동의 빠른 경제발전 속에는 일찍이 80, 90년대 꿈을 찾아 광동으로 모여든 전국 청년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심천, 광주, 동관, 혜주, 중산 등에는 조선민족 뿐만 아니라 전국의 60, 70后가 오피니언 리더의 중심이 되어 있다. 광동 조선민족 골프 모임의 창시자 박용남 회장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지금은 중국 패션시계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며 매출 5억원 이상을 자랑하는 줄리어스(聚利时, Julius) 시계의 중견기업 회장이지만, 그 역시 1988년 청년 드림을 꿈꾸며 심천 기차에 올라 탄 것이 어언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의 고향은 연변 룡정으로 해란강, 일송정, 윤동주 생가와 가까운 곳으로 유명하다. 18살 대학 진학 준비자금 700원을 어머니께 받아 학원으로 가야할 길을 돈 벌 궁리의 준비자금으로 챙겨 심천으로 줄행랑을 쳤다. 박용남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연변일보나 여러 매스컴에 많이 알려 진 것처럼 ‘도전, 인생 역전의 사나’이로 유명하다. 골프 시작은 1999년도, 그가 심천에 온지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30살에 커피숍을 운영할 때, 우연히 한국인 사장과 인연이 된 것이 골프도 시작하게 되고 시계사업 외길도 걷게 하였다. 그동안 그는 시계줄 조립공장, 완구공장 일을 거쳐 연변 무역부 임원, 한국 옷 도매사업, 커피숍 사업 등 그야말로 파라만장한 삶을 살아 왔다. 첫 골프채는 선물받은 것이 있었어도 한 쪽에 진열품으로 세워 놨다가 갑작스럽게 연습장도 한 번 가보지 않고 바로 필드에서 처음 잡았다. 당시 심천 롱강 绿色골프장이었는데 같이 동반한 한국분이 파3에서 170야드의 공을 쳤는데 정말 환상적으로 날아 가는 것을 보고, 첫 라운딩에서 바로 골프에 빠지게 되었다. 그 후 연습장에서 3개월간 매일 집중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필드를 갔는데, “지인들이 필드 몇 번째냐 해서, 두 번째라고 솔직히 말했더니, 나머지 세 사람이 핸디를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 때는 ‘핸디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을 정도로 골프의 지식이 전혀 없었다”라며 박용남 회장은 골프 초기의 추억을 재미나게 이야기 해 주었다. “그들은 개당 50원에 10개씩 핸디를 주더라. 그래서 1500원을 가지고 골프를 시작했는데, 3개월간 연습을 열심히 한 결과인지 90타 이상을 쳤다. 반면 동반자 3명은 다 100타대를 쳐서, 그 날 골프 첫 내기로 몇 천원을 따자 동반자들이 사기골프라며 짧은 시간에 배운 골프 실력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박용남 회장은 골프에 자신감이 붙었고 한동안 골프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골프를 권하며 같이 어울렸었는데, 그 중 이조화라는 친구가 가장 먼저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대회에 참석을 하고 와서, 광동에도 이런 골프회가 세워지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조선 화교인 이조화는 신분상 본인이 설립하기는 적합하지 않으니 박용남 회장이 할 것을 건의해서 2001년 박용남 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아 이조화, 김성걸, 김수, 주호산, 옥경진, 최청림, 임호철, 김철용, 장철호 10명이 정식으로 ‘형제골프회’를 설립하였다. 그래서 이게 바로 광동성 최초 조선민족 골프모임이 된 것이다. 2002년 청도에서 개최된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대회에 광동성을 대표하여 회원중 일부가 참석하였으며, 그후로 전국대회에 매년 참가하였다. 해를 거듭할 수록 형제골프회는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 외에도 조선민족 기업인들이 모이기 시작해 광동에도 우리 민족 단체를 만들자는 마음들이 모여졌다. 결국 2004년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가 결성되고, 제1회 민속축제가 개최되며 광동의 조선민족 역사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하나골프회 모태는 형제골프회로 제3대를 맞이할 때, 이름을 ‘하나골프회’로 변경하여 지금까지 광동조선민족골프회로 이어오고 있다. 정리하자면 하나골프회는 제1대 박용남 회장, 제2대 전효동 회장(2006년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대회 혜주 개최), 제3대 강문화 회장, 제4대 이철호 회장, 제5대 이영춘 회장, 제6대 정용택 회장, 현재 제7대 김관걸 회장이 맡고 있다. 이처럼 박용남 회장은 골프라는 운동 하나로 골프회 초대 회장에서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결성까지 조선민족 사회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박용남 회장은 본인의 기여도는 크게 생각하지 않으며 당시에는 “우리민족이 소수민족이라는 서러움을 받지 않도록 뭉쳐야 산다”라는 생각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박용남 회장은 2012년부터 싱글을 자랑하는 골프실력을 뒤로 하고 골프채를 잠시 내려 놓았다. 이유는 시계사업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일과 골프를 병행하기에는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과감하게 골프를 멈추고 사업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운동을 안하니 자연스럽게 조선민족 사회와는 한동안 떨어졌다. 바이어가 30여개 나라에 있어 출장도 많고, 한국에 디자인실이 있다보니 한 달에 한 번은 한국에 있어야 했다. 이처럼 골프할 환경도 안되었지만 골프보다 사업 성장에 재미를 더 붙였다. 그 덕분에 회사는 고속 성장하여 중국 시계업계에서는 제법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는 골프를 한 동안 쉬었지만 후회는 없으며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작년에 골프를 다시 시작하였다. 사업도 자리를 잡고, 코로나 여파로 출장이며 바이어 왕래가 없다 보니 골프 생각이 났던 것이다. 골프채를 막 잡았을 때는 100대를 치다가 지금은 80대를 치고 있다. 그리고 한 동안 외부활동을 안하다 오랜만에 조선민족 지인들과 골프를 치면서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나니옛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다. 그가 작년에 다시 골프채를 잡으면서 12살 아들도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들이 골프에 꽤 흥미를 가지고 향후 프로골퍼를 꿈꾸기에, 실력있는 한국인 골프 전문 교수한테서 레슨을 받고 있다. 박용남 회장은 요즘 하루 건너 골프를 친다. 특히 주말 토요일, 일요일은 무조건 아내와 아들과 함께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2021년 1월2일은 골프를 시작해서 21년만에 사허골프장(沙河高尔夫球场) A6코스, 165야드로 첫 홀인원을 했다. 그날도 아내와 아들이 함께 골프를 치는데 아들이 “爸爸, 进了!进了!” 소리를 지르길래 직접 가서 보니 믿기지 않게 홀인원이 된 것을 보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아들을 가르치는 교수님 말씀이 “박회장은 특별한 홀인원을 했네요. 타이거우즈도 가족과 함께 홀인원을 못했습니다.”라며 가족 동반 홀인원은 더욱 축복 받는 것이라고 전해 주었다. 사업에도 성공한 그이지만 가족을 중시하는 박용남 회장은 진정한 성공사업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인터뷰] 동관골프협회 초대 회장 강문화 회장 - 광동 골프 역사 조선민족 성장과 함께 하다광동성하나골프협회 초대 회장 동관골프협회 초대 회장 강문화 회장 ■ 고향:흑룡강성 할빈시 ■ 골프 구력: 23년 광동의 조선민족 골프모임은 형제골프회로 시작되어 2008년 하나골프회가 창립되면서 정식으로 광동성조선민족골프협회의 모습을 갖춰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초대 하나골프회 회장은 오랜 골프 구력과 동관동호골프회 회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는 강문화 회장으로 추대 되었다. 강문화 회장은 광동성에 흩어져 있는 조선민족 골퍼들을 집합하는 데 매우 집중하였다. 어느 조직이든 시작이 일도 많고 체계를 잡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첫 모임을 개최하기 위해 여기 저기서 소개 받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는데, 그때는 위챗도 없는 시절이었다. 일일이 전화를 해 대회 참가를 권유해서 첫 모임에 100명이 모이는 성공적인 제1회 하나골프회 창단대회를 개최하였다. 강문화 회장의 2년의 수고로 광동 골프 모임은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2대 회장으로 당시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회장인 이철호 회장과 각 지역을 방문하여 조선민족 화합과 골프모임을 조직하여 지역간의 골프 교류회를 확산해 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골프회 회원들은 대부분 기업인들로 사업도 어느정도 기반을 잡아 경제력도 있고, 민족 자부심도 아주 강하다. 따라서 광동성에 크고 작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산하 행사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며 민족 사업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지금 하나골프회는 후배들이 잘 이끌어 나가고 있다. 강문화 회장은 1982년 하얼빈기술감독국에서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 당시 해외 출국이 쉽지 않았는데 공무원 신분으로 한국을 왕래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그리고 안정된 공무원 보다 좀 더 역동적인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1992년 지인의 소개로 심천의 완구 회사로 명성이 있는 한국 기업(정윤완구/正润玩具) 제2공장 총경리로 부임을 받아 왔다. 그 때 월급이 홍콩달러 7000원으로 꽤 높은 대우를 받았다. 이 회사에서 3년을 근무하고 완구 경력이 있는 한국인 지인과 창업을 했다. 1997년도에 동관에 완구공장을 설립하였다. 당시에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만사람 또는 한족들이었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될 때 1998년 동종 업계 한국 사장님이 골프를 쳐보라는 권유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대만골프협회에 가입하여 2개 모임과 한국골프모임에 주로 참가했다. 그때만 해도 조선민족 골프 모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골프 친지 5년 만에 동관 펑징골프장(峰景高尔夫球场)에서 알바트로스를 했다. 첫 싱글 때도 기억이 생생한데 전날에 배탈이 나서 누워있다가 골프치러 나갔는데, 첫홀에 버디, 두번째 홀에 버디, 세번째 파, 네번째 버디, 다섯번째 내리 버디를 하는 바람에 당시 함께 치던 한국인들이 엄청 놀랐다고 한다. 강문화 회장은 골프를 잘 치려면 ‘한 번 미쳐야 잘 친다’고 말한다. 그동안 세 번의 홀인원을 했다. 2006년, 2007년, 2008년 한 해에 한 번씩 홀인원을 했는데 그 중 가족 모임에서 한 홀인원이 특별했다고 한다. 골프를 일찍이 시작해서 수 많은 대회에 참가를 했다. 그에게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05년 연변에서 개최된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대회이다. 그는 하얼빈에서 살았기에 조선민족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골프 하나로 전국에 있는 조선민족 기업가들이 연변에 모여 우리 민족 음식을 맛보고, 그네띄기, 씨름 등 민속 놀이를 하면서 어렸을 때 추억을 되살려 보았다. 참 의미있고 특별한 대회였다. 이 외에도 전국 오성회며 기업가 골프대회에 대부분 참석을 하며 각 지역 조선민족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류를 하였다. 광동에도 골프를 치는 우리 민족 친구, 아우들이 한 두명씩 늘어 나면서 2006년도에 동관에서 동호골프회를 직접 설립했다. 이때 이영춘 회장도 함께 있었는데 당시 12명이 아주 재미있게 골프를 즐겼었다. 동호골프회가 지금의 동관골프협회이다. 골프를 치면서 한국인, 대만인, 조선민족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동안 골프로 만난 사람들 중 대만,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 갔으나 전국골프모임에서 만난 인연들은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그 중 이춘일 고문은 골프도 잘 치지만 지식이 넓고, 판단력도 좋으며,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이다. 심천에서는 전우회장이 참 멋지다. 정직하고 솔직해 배울점이 많다. 그리고 이철호 회장은 강문화 회장을 조선민족 사회에 나오게 한 고마운 사람이다. 이처럼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기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어 이만한 플랫폼은 없다고 생각한다. 강문화 회장이 골프를 치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있다면 거짓 없이 솔직하게, 첫 홀부터 마지막까지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스코어카드에 노예가 되지 말라’는 유명 골프선수 소렌스탐의 말처럼 골프 스코어 보다는 자신과 동반자를 위한 정직한 플레이를 하며 매 홀을 즐기라고 말한다. -
[인터뷰] 중산골프협회 초대회장 정용택 회장 - 20년 구력도 골프는 계속 목마르다광동성하나골프협회 제4대 회장 중산골프협회 초대회장 정용택 회장 “골프 없으면 못 살거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할 일이 줄어드니까 작년 2020년 한 해 중산에서만 307일을 골프를 쳤습니다. 골프 시작하고 가장 많이 친 한 해였습니다.” 정용택 회장은 구력 20년 동안 수 없이 많은 골프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1년은 그야말로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과거 출장이나 비즈니스로 해외 나갈 일도 없고 들어 오는 손님도 없고, 그렇다 보니 그에게는 골프장이 낙원이고 쉼의 터전이 된 셈이다. 그는 1995년 처음 심천에 왔다. 그리고 1996년 당시 여자친구가 중산에 있어서 그녀를 따라 중산에 온 것이 지금까지 중산 최초 조선민족 토박이로 남게 되었다. 중산에는 지금보다 과거에 일본회사가 꽤 많았는데 그때 일본회사 입사할 때는 일본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일본어를 구사하다 보니 도움을 받아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워 많은 활용을 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지금의 아내로 평생 동반자로 함께 하고 있으며, 1996년 취직한 회사 또한 지금도 다니고 있다. 그는 또 1999년 창업을 해서 지금까지 주방용, 화장실용 线材制品을 생산하고 있다. 그가 골프를 시작한 때는 회사 창업후 기존 회사와 겸직을 하면서 주변에 일본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며 골프를 하게 되었다. 정용택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매력은 첫째, 푸른잔디에서 티샷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골프는 역시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각 사람의 개성을 느끼고 함께 라운딩을 하다 보면 어느새 골프의 동질감을 나누다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늘 유쾌할 뿐만 아니라 오랜 구력으로 배려가 몸에 익숙해 있기에 어느 상황에도 잘 맞춰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너를 중시하기에 필드에 나갈 때 마다 각오하듯이 골프매너의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가 잘 하는 것이 칭찬을 많이 해 준다. 동반자가 유쾌하게 칭찬을 많이 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것들이 바로 정용택 회장의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골프 매력 둘째는, 내 뜻대로 안되는 게 골프이기에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치는 것 같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주는 것이라 하겠다. 골프를 칠 때 공이 안 맞으면 그만 쳐야 겠다고 맘을 먹다가도 어느새 오후가 되면 필드에 나가 있다며, 골프사랑에 푹빠져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고 한다. 구력 27년 동안 그의 골프사랑은 한 번도 변심없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중산에 온 그는 어느 덧 중산의 어른이면서 골프선배가 되었다. 광동에는 이제 제법 많은 후배들이 있고 대회나 모임을 가 보면 연령층들도 계속 젊어지고 있는 추세임을 느낀다. 그는 후배들이 다 잘 하고 있지만 골프에 대한 조언을 하자면, 골프를 치다보면 내기에 연연해 골프 본연의 즐거움을 놓치는 후배들을 종종 본다.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골프는 흔히 멘탈게임(mental game: 정신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운동 게임)이라고 한다. 멘탈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동반자, 주변을 돌아보는 것을 놓쳐 매너에 대한 실수와 운동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멘탈 관리를 잘하여 마음을 내려 놓고 즐기는 골프를 향유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정용택 회장 역시 과거에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골프를 치고 나서는 급한 성격이 많이 완화되고 자신을 통제하는 컨트롤을 배웠다. 18홀을 치다 보면 각 홀 마다 인생을 만난다. 내 생각대로 게임을 진행하지만 결국 생각과 다르게 쳐지는 공에 대해 스코어는 진행되어 벌써 과거가 되어 버렸는데 화가 올라온듯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러 사람과 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멋지게 컨트롤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도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이 깨달음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용택 회장의 골프인생에 영향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2대 회장이면서 하나골프협회 2대 회장을 맡은 이철호 회장이다. 중산에는 정용택 회장이 정착하면서 조선민족 사회가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광동지역에 비해 인원은 많지 않지만 중산조선민족협회가 조직되어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교류하고 있다. 2004년 광동성조선족연합회가 설립되고 첫 민속축제가 있을 때 중산 어르신 70명을 모시고 운동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때가 광동사회로 나오는 첫 계기였는데, 각 지역에서 참가한 축구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산을 벗어 날 일이 없었는데 2008년 이철호 회장님이 회장단을 모시고 중산을 방문하였다. 그 때 처음 중산에서 골프를 같이 하고 중산골프협회가 설립되었다. 이철호 회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주로 일본사람들과 어울리고 중산의 몇 안되는 지인들과 어울렸는데, 골프협회가 만들어 지고는 광동지역 대회를 참석하게 되면서 광동의 조선민족들과 어울리는 기회들이 점점 많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철호 회장님과의 만남과 배려가 없었다면 골프도, 중산조선민족 사회도 밖으로 나와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철호 회장님이 개인으로나 우리 중산을 위해서도 참 고마운 분이다. 지금은 중산에 조선민족이 약 1천명 정도가 된다. 주로 개인사업 보다 젊은 직장인들이 많고, 젊은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많이 있다. 숫자가 적으니 밖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아도 행사를 하면 평균 100~150명 정도는 참석을 한다. 정용택 회장은 중산조선민족협회나 골프협회에 대해 앞으로 큰 바람 보다는 수시로 후배들에게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중산에서만 머물지 말고 많은 기회를 누려 광동이고, 전국이고 밖으로 나가 우리 조선민족 사회 사람들을 많이 만나라고 한다. 그래야 중산이 단합이 되고 광동을 넘어 전국 조선민족이 단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터뷰] 광주조선민족협회 회장 김철용 회장 - 광동성 한민족 골프로 하나 되다!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광주지회 광주조선민족협회 회장 김철용 회장 ■ 고향:길림성 화룡시 I 1975년생 ■ 기업: 스피드물류 / 삼구김치 ■ 골프 구력: 20년 이상 광주의 동포사회는 광동성 각 지역 중에서 조선민족과 한국인의 화합이 가장 좋은 곳으로 평이 나있다. 특히 광동성 동포사회에서 자랑할 만한 전통대회가 하나 있는데 바로 광저우한민족골프대회다. 이 대회는 광주조선족협회와 광주한국인상공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광동성의 200여명의 조선민족과 한국인 골프애호가들이 함께 모여 우정을 나누며 한민족의 화합을 다지는 대회이다. 그리고 한민족 화합에 큰 기여를 한 광주조선민족 민속축제가 2019년 개최되었는데 이날 행사에는 약 5000명의 관중들과 선수단, 각 단체 인사들이 민족을 불문하고 대거 참석하여 우리 조선민족의 위상은 물론 한민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장이 마련되어 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크고 굵직한 행사가 치뤄지는 데 숨은 공로자는 바로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광주지회 회장이면서 광주조선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철용회장이다. 김철용 회장은 1993년, 19살 광주에 첫 발을 딛어 지금까지 광주 토박이로 살고 있다. 광주 발전은 물론 광주 조선민족 사회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 지에 대해서 누구 보다 자세히 알고 있기에 광주조선족협회 회장으로 그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젊기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발전해 나간 김철용 회장은 광동에서는 최연소 성공사업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시절이 있었다. 골프 역시 이 시절에 시작했다. 당시 광동성 통틀어 조선민족 중 골프 치는 사람이 30~40명 정도 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2년 광동성형제골프회 설립 멤버로 활동하며 한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가졌다. 그 후 2004년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가 설립되면서 당시 형제골프회 강문화 초대 회장이 하나골프협회로 명칭을 바꾸고 정식으로 지역별 골프지회를 설립하였다. 김철용 회장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설립초부터 협회 부회장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광주 민족사회에서 활약하면서, 광주골프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광동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은 조선민족들은 2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은 일본 비즈니스를 했고, 또 90년대에 광동에 온 사람들이다. 김철용 회장은 일찍이 광동에는 왔지만 일본이 아닌 한국과 관련된 악세사리, 완구 무역과 제조를 하다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물류사업에 뛰어 들었는데 이게 성공가도를 달리게 해 주었다. 김철용 회장은 사업이던 골프던 남과 똑같은 방식, 똑같은 시스템으로 경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늘 남다른 혁신과 개발, 역발상을 추구했다. 물류경험이 없었어도 빠른 시간에 업계 선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니즈(needs) 핵심을 파악하고 광동 물류의 특성을 제대로 캐치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한국 15일 물류를 7, 8일로 줄였다가 경쟁사가 동일한 방법으로 따라오면 그는 더 빠른 길을 찾아 3, 4일로 물류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다 보니 고객이 줄을 서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2000년 초반 <스피드물류>는 물류업계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광동의 물류브랜드로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과거 젊은 사업가로 돈 좀 벌었다는 소리를 듣었던 김철용 회장은 월매출이 100만원이었던 지난 날에 많이 벌기도 했지만, 그만큼 쓰기도 많이 썼다고 한다. 늘 위기감을 갖고 신사업을 개척하며 도전하고 보냈기에 누린 것도 많고, 아쉬움도 있지만 지난 일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물류사업과 골프는 먼 거리가 아니다. 김철용 회장은 주로 운동을 하면서 고객접대를 하였고, 자연스럽게 사업에도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 그에게 골프는 일이면서 운동이고, 운동이면서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필드를 나가는데, 골프가 제일 재미있었을 때는 막 시작하고 몇 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골프는 꾸준함이 없으면 바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비기너들에게 팁을 주자면 일주일에 연습장 3번, 필드 2번 정도를 꾸준히 하다 보면 안정적인 실력을 보장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한다. 덧붙여 필드만 많이 나가서도 안되고 연습장을 꼭 같이 병행할 것을 당부했다. 홀인원 경험은 한 번 있다. 2019년 风神高尔夫(풍신골프클럽), 8번 코스 8번 홀에서 170야드로 굉장히 어려운 코스여서 감히 생각도 못했는데 홀인원이 된 것이다. 구력 20년인데 19년만에 들어간 첫 홀인원 기분은 ‘나도 할 수 있네’ 정도였지 크게 흥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광주골프협회는 회원 단합과 화목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 현재까지 광주골프협회에 등록된 인원수는 130명이나 정기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40명 정도이다. 주중 일정이다 보니 개인사업가는 상관 없지만 기업 임원들은 시간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가 광동성 타지역 협회와 골프 문화가 좀 다른 것은 내기를 하되 원칙이 있다. 게임에서 아무리 잘 친 사람도 그린피는 직접 지불한다. 예를 들어 4명이 내기를 해서 3천원을 땄다면 거기서 그린피를 내고 나머지는 다 돌려 준다. 그리고 꼴찌가 캐디비용과 일부식비를 담당하는 문화이다. 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과거에는 내기를 좋아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가 끼리끼리 모이니 화합에도 영향이 있어서 지금은 추첨을 해서 잘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이 섞이게 한다. 그리고 내기를 해서 딴 돈은 개인 주머니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끼리 사용되도록 건강한 광주골프협회만의 룰을 정한 것이다. 김철용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지만 골프매너가 그 사람의 사업의 위치와 거의 정비례 된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은 센스가 있고 판단력도 좋기에 사업을 잘하는 사람과 골프를 치면 시작부터 끝까지 상대를 배려해 주기에 유쾌함은 물론 그 사람에게 사업과 골프에 대해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 전반적으로 사업을 멋지게 하는 사람들이 골프도 즐기며 치고, 내기를 하더라도 돈과 상관 없이 과정을 즐기기에 그들은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을 중시한다. 그는 20년간 골프를 쳤는데 시간대 별로 골프를 치는 마음과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스스로 ‘나는 매너가 좋고, 멋있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는 70점 밖에 되지 않은 시절이었고 오히려 지금이 그때 보다 성장했다고 말한다. 또, 김철용 회장만의 골프철학은 골프를 통해서 조선민족의 경제 핵심 인물들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가 창립되고 첫 광동성조선민족민속축제를 대규모의 큰 행사로 치르는데 당시 모든 자금이 각 지역 골프협회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골프협회는 과거나 지금이나 조선민족기업인들의 핵심단체라 볼 수 있다. 골프협회의 회원들은 나름 사업이 안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사업에 성공을 하였다면 응당 민족사회에 기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게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함)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철용 회장의 골프철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향하고 있다. -
[인터뷰]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이영춘회장 - 시간과 돈, 골프에 투자할지? 사업에 투자할 지를 잘 판단하라!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이영춘 회장 ■ 고향: 흑룡강성 계동시 ■ 기업: 东莞市雄威玩具有限公司 ■ 골프 구력: 20년 이상 이영춘 회장(1962년생, 흑룡강 계동)은 광동성 동관골프협회 2대회장(2009~2013년)과,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3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조선민족 사회 발전에 헌신적인 공헌과 기여를 많이 한 공로자이다. 그는 내년이면 환갑을 앞두고 있지만 그냥 봐서는 그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안(童顔) 얼굴에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업도 왕성하게 하고 있어 지난해 코로나가 닥쳤어도 그의 사업장은 오더 수주로 기계들이며 일손이 쉼 없이 바쁘게 돌아 갔다. 东莞市雄威玩具有限公司는 완구회사로 이영춘 회장이 1996년도에 설립한 회사다. 그는 92년도에 광동에 첫 발을 들여 오직 완구분야 외길로 근 30년을 오늘까지 일하고 있다. 雄威의 메이드인 차이나 라벨은 전세계 완구시장에 퍼져 나가 있을 정도로 완구 빅브랜드들이 모두 이영춘 회장의 거래선들이다. 완구가 사양산업이라며 전업하거나 포기한 회사들이 많지만 지금까지 외길 산업으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雄威는 오히려 세계 완구 오더를 집중해서 받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광동성에서 조선민족 중에 90년대에 골프채를 잡은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그 중 한 명이 이영춘 회장이다. 그가 골프와 인연이 된 것은 정말 단순하다. 1998년 동관 펑징골프장(东莞峰景高尔夫球会)이 막 생겼을 때 주변에서 회원권이 싸니까 사라는 권유로 회원권을 사 놓고 골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후에 완구사업 외에 서비스 사업을 병행할 때 지인의 추천으로 골프를 치게 되어, 그의 구력은 펑징골프장과 함께 성장해 왔다. 동관골프협회는 1대 강문화 회장, 2대 이영춘 회장, 3대 김정식 회장, 4대 허영철 회장, 5대 김수국 회장까지 각 3년의 회장 임기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조직되어 오고 있다. 동관에서 골프협회가 막 시작할 때는 12명 밖에 안되었으나 3년 정도 지나니 30명 정도로 회원이 늘었다. 회원이 늘면서 협회도 더욱 활성화 되었고 젊은층들도 요즘 많아져서 현재는 80여 명이 된다고 한다. 그는 한 달에 골프약속이 적지 않게 잡히지만, 특히 매주 펑징골프장의 토요일, 일요일 골프모임 만큼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반드시 참석한다고 한다. 동반자는 펑징골프장 회원권을 오랜 시간 함께 갖고 있는 지인들과 후배들이다. 동관이 제2의 고향인 만큼 골프도 마음 편한 사람끼리 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그다. 골프를 잘 치면 뭐가 좋은가? 라는 질문에 그는 “내기에서 이기니까 재밌다.”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답을 해준다. 골프에서 내기가 빠지면 재미를 못 느낀다며 어느 정도 긴장감과 승부욕이 있어야 진정한 골프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골프는 사업이 안되면 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업에 집중해야지 골프를 좋아한다고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과거에도 골프에 빠져 사업을 소홀해서 결국은 사업도 골프도 둘 다 놓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골프는 분명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과감히 말한다. 시간과 돈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시간과 돈은 사업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기본이다. 시간과 돈을 골프에 투자할 형편이 되는지? 사업에 투자할 시점인지? 를 잘 파악하며 공을 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젊은이들을 보면 운동할 형편이 안되는데, 기회나 정보를 앞서 생각하며 무작정 필드에 나와서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로 동반자에게 지장을 주거나 운동에 집중하지 못한 모습으로 오히려 운동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것을 종종 보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골프는 신사게임이다. 먼저 사업과 골프가 어느 정도는 평행하게 컨트롤을 할 수 있을 때 기본을 갖추고 나와서, 함께 어울리다 보면 좋은 매너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운동의 만족감과 사업적인 도움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게 골프실력 노하우는 특별한 게 없다. 많은 필드 경험과 다양한 동반자 그리고 내기에서 받는 상처나 동기부여 등이 골프실력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한다. 저마다 홀인원 경험담과 스토리는 재미나다. 이영춘 회장은 홀인원을 두 번 했는데 그 두 번의 홀인원이 한 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연이어 하게 되었다. 첫 홀인원은 2020년 12월26일 동관 펑징골프장 C코스 5번홀(160yd) 한 번 하고, 두번째 홀인원은 2021년 1월18일 역시 펑징골프장 D코스 2번홀(165yd) 에서 하였다. 남들은 인생에 한 번도 할까 말까하는 홀인원을 연말연초 두 번이나 하게 되어 2021년도는 대박운수를 기대할만 하다. 홀인원 기념 초청골프 모임은 역시 펑징골프장에서 3월6일 172명이 함께 운동을 하고 저녁파티에는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를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웨라벨(Work-life balance)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데 이영춘 회장이야말로 진정한 웨라벨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영춘 회장은 골프는 평생하는 운동으로, 칠 수 있을 때 까지는 늘 즐기고 싶다고 한다. 사업이 지금도 안정적으로 잘 되고 있지만 크게 욕심이 없으며, 아들 딸도 다 커서 각자 독립적인 사업들을 하고 있는 것이 기특하다고 한다. 그는 젊은 날의 고생이 지금의 여유로움을 보상해 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여유로운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