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인역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81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1912년 신해혁명 성공 후 김규흥은 광동군정부의 고문으로 임명되었습니다.광동성의 군사와 치안을 담당하는 최고 기구广东总绥靖处(广东总经略处)의참의(參議)인데 광동성 도독(현재의 성장직)이 관할하는 최고 군사기관의 고문이 된 것입니다.그 이듬해는 광동성이 아닌 중앙정부의 호군사서(護軍使署)고문으로 승진했습니다. 사진, 황화강공원에 있는 광동도독부 참모장 등중위안 묘도 입구 김규흥은 용기가 생겨 광동도독부 참모장 등중위안(邓仲元,1866-1922)을 찾아가 조선의 독립운동...
1945년10월25일 충칭의 중앙일보에 실린 줘루(邹鲁)의 기고문입니다.줘루는 중산대학 초대 교장입니다.범재 김규흥과 중국동맹회 활동을 하면서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일제 침략하 한국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했습니다.한국 망국민의 실상을 목도하고 돌아온 후 줘루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와주려는 열정도 늘어나서 중산대학 교장 재임기간, 한국학생들의 중산대학 입학을 돕기 위해 이씨 성을 가진 한인 한 명을 고용하여 한국 청년들의 중산대학 입학을 도왔다고 합니다. 범재 김규흥이 고정 수입이 없을 때 줘루가 용돈을 ...
2013년1월 한국에 갔다가 옥천 문정리 범재 김규흥 지사의 생가를 찾았습니다.마침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의 눈을 푹푹 밟으며 문향헌으로 들어갔네요.그 때는 소형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설정이 잘못된 것을 모르고 사진을 찍어 이미지 질이 안 좋은데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김규흥의증조부는세도정치를피해충복옥천군교동으로낙향한 조선시대세가였습니다.당시기와85간, 초가12간을가진거부였으나대원군이경복궁중건할 때시무리한과세를 요구해집안이몰락하던때에범재공은청풍김씨23세손으로1872년6월13일옥천읍문정리문향헌에서출생...
이편지는 미국 대한인국민회의 문양목회장이 광저우에서 김복(김규흥)이 보낸 편지를 받고 쓴 회신입니다.김복은 광저우에 조선신문사를 설립하려고 하다가 인쇄기 구입할 돈을 사기당해서 한글 활자가 있는 인쇄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당시 미국의 대한인국민회의 상황을 어떠했을까요? 문양목회장이 김복에게 보낸 편지(1911.05.25) 오늘 조국의 상황은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둥지(터전)가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 뒤집혀진 현상인 바 마치 계란이 눌리어져 깨어지기 직전의 위험한 처지에 놓여 ...
弟는即时로그서한을여러분께보이니모두가기꺼히, 各各出资하여数日동안에资金이모였습니다. 이리하여제반설비가완비되고(*새机器값은벌써尹에게보냈고) 机器의到着만을기다리고있었는데此日彼日미루어진 것이数个月이지난지금에이르러불쑥回信이왔는데전하는말이前日尹이担当한机器에关한것이었고말인即趙锺缙이라이름하는사람이돈을훔칠계획을꾸미었고지금은이미그사기친돈을가지고멀리달아났다고하며尹역시어느 곳에있는지行方을모른다......라고云云합니다. 그러니弟는사기를당한 바가되었으며그것과더부러이미消费한돈을合하면机器한틀값을훨씬넘겼읍니다. 그런데机器는끝내오지않으니推进하던重要한일을할 수없...
하지만现今의중국은日本과러시아의风潮가침투하여나라전체를크게울려흐들거리게하므로(오히려) 국민의애국심(民气)이四方으로퍼져나가고있으니, 이야말로光复成就를为한아주좋은 때(大可为之秋) 일것입니다. 广东은중국에서가장먼저开化한땅일뿐아니라倭贼을증오하고원망하는'골'이아주깊게파여있는곳입니다. 그런까닭에弟는수년동안广东에서寄居하였고그러는동안여러志士의돌봄으로자못彼此에知己之间이되었으며, 지난겨울에는(그들志士들과) 会议를하여하나의新闻社를组织하고新报를发刊하기로하여한국과중국의人心을鼓吹사키는한편상호연락기관으로할 것을决议하였고그后다시하나의开垦公司를创立하고널리资金을...
From Conton China 보내는 이 : 清国广东省城小北门内十八洞二十七号 받는 이 : 米国桑港大韩人总国民会馆僉兄閣下 위 사진은 100여년 전 김복(범재 김규흥)이 광저우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하는 대한인국민회에 보낸 편지봉투입니다.미국에 계시는 범재 김규흥의 손자께서 봉투 사진을 제게 보내주셨습니다.비록 미국에 소재하는 대한인국민회에 보낸 글이나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사료인지라 전문을 올립니다.편지글은 김규흥께서 쓰신 한문 문장을 손자되시는 분께서 읽기 쉽게 풀어 주셨습니다. ...
벌써10여년전,2012년7월이었습니다. 옥천신문사사장님과연구가몇명이 광복절67주년특집으로옥천의독립운동가‘범재김규흥’을준비하면서자료를찾으러광저우에왔습니다. 급하게 마련된 점심시간에 제가 동석을 했습니다.그들의 대화는 김규흥께서 추노(邹鲁),호한민(胡汉民),진형명(陈炯明),오한지(吴汉持)등과 신해혁명에 참여했다는 것이었습니다.그 때 저는 손중산의 혁명동지들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던 때여서 추노, 호한민,진형명,오한지는 알지만 우리나라의 범재 김규흥은 첨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방문단이남긴자료중에자료중에 김규흥이미국...
유기석 지사는“망국민이 되고 싶지 않으면 반드시 자신의 조국과 민중을 열렬히 사랑하고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국가가 없는 망국민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체험한 유기석은 정치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국제법이나 당국의 보호라는 것은 집권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오직 망국 민중이 각성해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천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재중국 독립운동은 민족주의파,공산주의파,무정부주의파로 ...
1945년 봄, 일본 괴뢰국 왕징웨이(汪精卫, 1883~1944)정부가 운영하는 국립중앙대학에 반일 사상이 투철한 조선 학생 10여 명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일본 해군은 날마다 패배하고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도 흔들려 추락할 때입니다. 1944년 중앙대학에서 매국노 교장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동맹 휴학 운동을 일으켰는데 당국이 학생운동 간부를 체포했습니다. 그중 신변 위협을 느끼고 학교에서 탈출한 박철원(朴哲遠)과 중국 친구들로부터 일본군 중국 파견군 사령부 연락부(특무기관)에 통역관으로 일하는 조일문(趙一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