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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3만보 특수병식 여행(特种兵式旅行) 마치고 곧바로 병원으로5.1연휴기관, 샤오후는 친구와 함께 항저우에서 특수병식 여행을 했다. 그는 서호, 단교(断桥), 태자완(太子湾), 시시습지(西溪湿地), 류허타(六和塔), 올림픽 스포츠센터 등 관장지를 돌았으며 하루에 3만보를 걸었다. 그리고 이튿날에 걸을 수 없었던 그는 병원을 찾아갔다. 절강병원 정형외과 의사는 '오래 걸어 무릎관절 반월판(膝关节半月板)이 손상됐다. 이미 환자에게 소염진통 약물치료를 진행했다'며 소개했다. 그러면서 '환자는 이미 반월판 손상증상이 있었고 장시간의 보행으로 관절손상이 더욱 심해졌다. 특수병식 여행은 신체로 하여금 지속적인 피로상태에 처해있게 하며 근육의 힘이 부족할 때 뼈로 지탱해 일부 동작을 완성하므로 무릎관절과 발바닥에 무리를 줄 수 있다'며 소개했다. 만약 여행할 때 요천골(腰骶部), 무릎관절, 발바닥에 통증이 나타날 때는 제때에 휴식을 취하고 족욕 혹은 마사지를 통해 다리 근육을 이완할 수 있다. 특수병식 여행은 짧은 시간에 여행한 곳이 많고 비용을 적게 쓰는 고효율적인 여행방식을 가르키며 참여자들은 대부분 대학생 등 젊은 층이 위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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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장사 모 회사, 수요일은 유급휴가, 내년은 주 3일 근무 고려중최근, 호남 장사의 모 회사는 ‘매주 수요일은 유급휴가 날이다’고 공지하였으며 ‘잔업을 격려하지 않으며 남은 일은 담당상사와 상의해서 자택근무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수요일 당일은 인터넷 서핑(上网冲浪) 혹은 외출여행을 격려하며 자신이 본 것 그리고 재미있다고 느낀 것, 아이디어가 있는 내용을 온라인 문서파일에 기입하면 된다. 상기 통지가 쇼셜플랫폼에 발표된 후 누리꾼들을 ‘다른 사람의 회사이다’, ‘나도 취직하고 싶다’며 부러워했다. 회사 관계자는 ‘상기 통지는 사실이며 토요일도 정상 휴무하므로 일주일에 3일 쉰다’며 소개했다. 그러면서 ‘신규 오픈한 회사이므로 현재 충원중이며 약 30~50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수요일 유급휴가공지가 발표되자 하루사이에 수천 명 사람들이 채용정보를 문의하였다’며 말하였다. 회사 직원은 ‘지난 해에 입사했으며 그때는 북경 본사에서 일했는데 당시는 수요일도 정상 근무하였다. 현재 팀과 함께 장사 지사에 왔으며 수요일 유급휴가정책도 실시되고 있다’며 소개하였다. 눈낄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회사는 범엔터테인먼트(泛娱乐: 팬층이 형성된 IP를 1개 이상 활용하여 여러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확장하는 사업 모델을 의미함) 내용을 취급하며 직원들이 저욱 더한 환경에서 좋은 내용을 만들기 바란다. 내년에는 3일 근무, 4일 휴무도 고려하고 있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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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숙박의 새로운 트랜드, 너는 내 집으로 나는 너의 집으로?5.1연휴기간 많은 사람들은 여행계획을 세웠으며 쇼셜플랫폼에 새로운 여행방식 '교환식 여행'(交换式旅行)이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두 낯선 사람이 상대방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여행할 때 '0비용'으로 상대방 집에서 머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여행방식은 비용이 적고, 개성적이라 많은 젊은 누리꾼 특히 대학생들이 많이 선호했다. 교환여행의 방식은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같은 시간에 교환하기로 약속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간 차이를 두고 상대방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쇼셜플랫폼의 투표결과를 보면, 약 62%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태도였고 약 30%의 사람들은 '한번 시도해 봐도 된다'는 태도였다. IP주소가 산동인 모 여성은 '교환 여행을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IP주소가 서안인 95后 여성이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둘 다 요가와 줌바를 좋아했고 좋아하는 스타도 동일했다'며 즉시 교환여행을 결정하였다. 그러면서 '안전문제와 기본적인 숙박환경도 고려한다'며 상대방과 군자협의(君子协议)를 체결해 인신재산안전의 보호방식을 상의하였다. 장사의 대학교 1학년 학생 왕모는 '기숙사교환을 신청할 때 안전을 고려해 귀중한 물품을 잠그고 상대방의 학생증도 확인한다'며 전했다. 상해에 거주하는 90后 유여사는 '5.1절 기간에 호텔을 검색하면서 교환여행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 서로가 합의보았다면 0위안 입주를 완전 실현할 수 있고 괜찮은 체험이다'며 말하였다. 산서의 조모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산다는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안전하지 못하다'며 말하였다. 많은 누리꾼들은 교환여행에 대해 '여행이 끝나고 집에 귀중한 물품이 분실하면 어떡하냐?', '집에 물건을 고장하게 하면 어떻게 배상받아야 하는지?', '집에 카메라를 달아놓으면 어떡하냐?'는 질문들을 내놓았다. 상해 사범대학 법학과 교수 위샤오(于霄)는 '물품도난, 훼손 등 문제를 대비해 사전에 사진을 찍고 계약서에 기입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집을 교환하는 데는 법률 리스크도 존재한다. 하나는 개인 프라이버시가 노출되는 문제도 직면해야 한다'며 소개했다. 그리고 '교환여행은 치안리스크도 존재할 수 있다. 호텔과 정규적인 플랫폼은 입주할 때 실명등기를 요구하지만 교환여행은 인원의 유동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만약 쌍방이 익명을 사용했을 경우 교환 대상이 마약, 매음 혹은 도주범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교환여행이 일정한 규모를 형성하면 상응한 감독관리조치도 나올 것이다'며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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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에 떨어진 핸드폰 건져내는 비용이 1,500위안? 관광지: 무료!최근, 모 관광객은 '핸드폰이 서호에 떨어졌는데 응급구원(应急救援)이라는 글씨가 적힌 옷을 입은 남성이 건져내면 1,500위안, 건져내지 못하면 반 값(700위안)을 요구'하는 영상을 쇼셜플랫폼에 올렸다. 항저우서호수역관리처(西湖水域管理处)는 '서호관광지는 관련부서와 함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며 초보 조사에 따르면 영상속 남성은 관광지 응급구원팀 직원이 아니며 규정위반 혹은 위법행위가 존재하면 제때에 처치할 것이다'며 전했다. 서호관광지는 여러 해 동안 관광객들에게 각종 도움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이 도움을 청하면 자체로 만든 인양봉(打捞杆) 등 도구로 서호에 떨어뜨린 물품을 무료로 건져주었다. 이번 5.1절 연휴기간, 관광지는 관광객들을 도와 30여 개의 물품을 무료로 건져주었으며 무료 지원팀(西湖劳哥团队)도 부단히 확대돼 가고 있다. 만약 관광객의 핸드폰이 서호에 떨어지는 등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근처 관광지 직원 혹은 지원자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들은 핸드폰을 건져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서호의 평균 물깊이는 2m좌우, 그리고 진흙이 비교적 깊으므로 안전상 문제로 관광지는 관광객 혹은 관광지 직원이 아진 인원들이 스스로 물품을 건져내는 것을 제안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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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랴오레이공관(廖磊公館)류저우시내도 교통 체증이 아주 심각하네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그치고, 주룩주룩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날입니다. 자동차로 꽉 메인 류저우 시내 도로를 뚫고 랴오레이 공관을 찾아갔습니다. 3년 전 제가 탐방을 왔을 때는 대외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문밖에서 건축물만 볼 줄 알았는데 뜻밖에 대문이 열렸네요. 들어가 보니 랴오레이 공관은 중국과 류저우 시민들의 항일전쟁활동 전시관을 조성하여 대외개방을 했습니다. 랴오레이 공관은 류저우 국민당 제7군장 랴오레이(廖磊,1890~1939)가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동창 광동성 우테청(吴铁成) 주석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행이 류저우에 온다는 연락을 받고 제공한 자신의 저택입니다. 랴오레이는 안후이(安徽) 전선에 나가고 그의 부인은 전시 아동보육원 원장인데 주로 보육원에서 생활해서 그의 집에는 친척들이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국무위원 10~20여명이 랴오레이공관에 입주하여 일을 하다보니 랴오레이 공관은 자연스럽게 임시정부 또 하나의 사무실이 되었습니다. 랴오레이 공관을 임시정부 사무실로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 한국 광복전선청년공작대 대원이었던 이윤철(1925~2017)과 민영애(1927~2013) 부부가 류저우를 방문하여 고증했습니다. 이윤철은 당시 14세였습니다. 2001년 류저우를 방문한 민영애(1927~2013)는 1938년 3월 안창호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차리석이 랴오레이 공관 화장실에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증언하고 화장실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이 랴오레이 공관에 거주하면서 사무를 보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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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류훠공원랴오레이 공관을 참관하고 우리 일행은 류훠공원으로 왔습니다. 가까운 거리지만 교통체증이 심해서 걸어오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네요. 류훠공원은 당나라 시기 문학의 대가 유종원(柳宗元)을 기념하는 공원입니다. 류훠공원에 류종원의 의관묘가 있지만 류저우 사람들은 유종원의 진짜 묘라고 믿을만큼 류종원을 존경합니다. 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고 류훠사(柳侯祠), 류훠의관묘(柳侯衣冠墓), 텐상정(甜香亭), 뤄츠(罗池), 음악정(音乐亭), 스류셴(思柳轩) 등이 있어서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입니다. 우리는 류훠공원에 스민 우리 민족 정신을 기념하려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류훠공원은 피난중이던 우리 임시정부 청년들이 항일을 해야한다고 결심하고 일어선 장소입니다. 류저우에 막 도착한 한인 젊은이들은 장시회관으로 추정되는 공원 옆 목조건물 이층집에 입주했습니다. 할 일도 없고 무료하니 류훠공원에 갔는데 중국 여러 항전단체가 시민을 대상으로 항일집회를 하고 항일노래를 가르치고 항일 연극 공연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총 들고 일선에 나가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후방에서 항전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주요한 항전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중국의 항일 방법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 젊은이들은 “그 정도는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마음 먹고 공원내 음악정에서 우리 민요를 불렀습니다. 중국민요을 연구하는 중국청년단 단장이 노래 연습을 도와 주었습니다. 항일노래를 배운 우리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가 중국인들을 상대로 항전가를 불렀습니다. 독창가수로 불리는 김병인이 혁명가곡을 부를 때면 길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듣고 박수를 쳤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던 농부들은 우리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손에 쥔 괭이나 농기구자루를 툭툭 치며 어깨를 으쓱이며 따라 불렀다고 합니다. 천부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조시제(趙時濟)가 대형 선전 벽보를 그려 부치러 나가면 나이 어린 이윤철이 풀통을 들고 따라 다니며 벽에 풀칠을 했습니다. 항일 벽보와 전단지도 만들어 담벽에 붙이거나 뿌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자기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항일 운동에 참여하려고 애썼습니다. 우리 탐방팀도 류훠공원 음악정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역사연구회에 국악선생님이 계십니다. 류저우에 피난 온 우리의 상황을 감안하면 ‘상주 아리랑’이 더 어울리는데 너무 슬퍼서 우리가 눈물 흘릴까 봐 ‘진도 아리랑”을 신나게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독립운동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불렀던 반달도 불렀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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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IMBA, 재중국 지원자 Zoom 설명회 개최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IMBA가 북경, 상해, 심천 온오프라인 설명회를 성황리 마치고, 오는 5/16(화) 중국시간 오후 6시 ZOOM 입학설명회를 개최한다. 해외에서 주재 근무기간 온라인 대학원 공부와 석사학위를 취득함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를 해외 및 국내로 확대할 수 있어 성균관대학교 IMBA는 일찍이 해외근무 주재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신청하기: https://events.skku-imba.net/enter2023/index.html IMBA 원서접수시작: 5/2(화) ~ 6/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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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영창 비서장 - 비서장의 임무는 ‘심부름을 많이 하는 것’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영창 비서장 ■ 고향:흑룡강성 목단강시 I 1971년생 ■ 기업: 深圳市利昌裕手袋有限公司 ■ 골프구력: 25년 이상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이하 전국골프협회) 총무 겸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창 비서장은 일본어를 전공하고 1990년에 심천으로 내려왔다. 일본 기업에서 10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 2000년에 가방 회사를 설립하고 20여년간 본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방전문 사업가이다. 전국골프협회에서 그가 맡은 분야는 행사를 치르기 위한 전반을 다 담당하고 있다. 골프장 섭외, 호텔 안배, 손님 접대 등 그의 손을 안 거치는 것이 없다. 그는 비서장의 책임감은 ‘심부름을 많이 하는 것’이라며 대단하지 않다는 듯 겸손하게 말을 한다. 또한 그의 민족 사랑도 꾸준하다.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민속축제나, 노인협회, 골프대회 등 여러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후원을 하고 있다. 김영창 비서장은 서정파 비서장과 막연한 친구 사이로 1997년도 부터 서정파 사장과 함께 골프를 시작했다. 그 역시 2008년도 광동성하나골프협회가 설립될 때 초창기 회원으로 가입하여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 골프를 일처럼 할 정도로 그는 회사 고객들과 거의 운동을 함께 한다. 특히 그의 회사 제품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어 주로 일본 바이어를 상대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 일본 손님들이 3, 4일 일정으로 출장을 오면, 업무 미팅은 하루면 끝이 나서 나머지 일정은 함께 골프를 치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바이어라는 관계를 떠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미팅 때 물량을 못 도와준다고 거절했던 사람도 골프를 치고 난 다음 날이면 오케이 사인을 주는 경우가 있다며 골프가 사업에 도움을 주는 것을 직접 느낀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골프를 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골프를 하지 않고도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많듯이 자기 흥미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주일에 5일은 골프장에서 보낼 정도로 골프를 즐긴다. 홀인원은 10년전 동관에서 일본 손님과 골프를 쳤는데 그때 오더를 많이 주어 기분이 좋아 그런지 눈을 감고 쳤는데 홀인원이 되었다며 익살스럽게 웃는다. 최고의 골프명언 5가지 골프의 구성요소 중 50%는 멘탈, 40%는 셋업, 그리고 나머지 10%는 스윙이다. -잭 니클라우스 (Jack Nicklaus) 골프스코어는 그린 주변 70야드 에서 결정 된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이버를 잘치고 싶어하지만 골프는 거리가 짧아질수록,그린에 가까워질수록 더 집중해야하는 스포츠다. - 벤 호건 (Ben Hogan) 필드에 나가서 비거리가 안나오더라도 기본만 하고 오면 아주 잘 한거다. 기껏 갈고 닦은 실력,욕심 때문에 버리지말고 욕심은 잠시 접어두자! - 바비 존스 (Bobby Jones)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치기를 원한다면 천천히(slower) 짧게(shorter) 그리고 부드럽게(softer) 3S로 백스윙 하라. - 게리 플레이어 (Gary Player) 사람들이 내 스윙이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는걸 나도 안다. 난 내 스윙이 평평하다는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잘되면 바꿀 필요가 없다. - 세르히로 가르시아 (Sergio Gar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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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서정파 비서장 - 골프가 인생 마인드도 바꿔 놓았다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서정파 비서장 ■ 고향: 흑룡강 계동시 I 1971년생 ■ 기업: 东莞市港荣五金制品有限公司 ■ 골프구력: 25년 이상 전국조선민족기업가협회 서정파 비서장은 일본어를 전공하고 1994년도에 심천에 내려와 일본 기업에 취직하였다. 첫 직장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1999년도 일찍이 회사를 설립하고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회사는 주로 가위, 주방칼 등 금속제품을 취급한다. ‘코로나로 사업에 영향은 없었는지’라는 질문에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없다고 대답한다. 오히려 해외에서 출장을 오지 못하는 손님들이 오더를 부탁하는 상황이라며 그의 사업장이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골프는 첫 직장인 일본회사에서 배웠다. 당시 회사 사장이 일본에 있다보니, 심천 지사를 방문하는 바이어는 서정파 비서장이 대신 골프로 접대하였다. 서정파 비서장은 2008년 하나골프협회가 창립되면서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2019년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이하 전국골프협회) 전우 회장이 추대되면서 전우 회장의 추천으로 재무담당 비서장을 맡게 되었다. 전우 회장과의 인연은 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를 설립하고 홀로 서기를 할 때 한 일본인 바이어가 ‘힘든 일이 있으면 전우 회장을 찾아가라’고 소개해 주었다. 그 소개 한 마디가 25년간 친형처럼 모시게 된 인연의 시작이다. 비서장을 맡고 2019년 한국에서 열린 대회는 여느때보다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았다. 다행이도 한국 협찬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챙겨주어 사고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작년은 코로나로 개최를 못했고, 금년 행사는 10월에 심천 미션힐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서정파 비서장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의 든든한 기부천사이기도 한다. 1999년도 부터 사업을 하면서 호황기도 맞아 보고,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조선민족 사회 행사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는 ‘百善孝为先 : 백가지 미덕 중에 효도가 최우선이다’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소문난 효자이다. 심천에 내려와 자리를 잡자마자 부모님을 모셔왔다. 타향살이에 적적한 부친이 노인협회를 결성해서 당시 초대회장을 맡으셨는데 그 분이 바로 서재봉 회장이시다. 서재봉 회장님은 자식들 따라 낯선 땅에 와서 외롭게 보내는 노인들을 모이게 할 만한 장소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다채로운 문화활동과 고향의 향수를 달래게 하였다. 그 장소가 마련되기 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지원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식된 도리로 서정파 비서장은 아버지의 일에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정파 비서장은 일주일에 3회 정도 필드에 나간다. 최근 2년은 골프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며, 평균 스코어는 90타 정도로 동반자한테 민폐는 끼치지 않을 수준이라며 웃는다. 골프에 있어 매너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국골프협회도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에 회원들에게 매너의 중요함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서정파 비서장이 생각하는 골프 매너는 타인에게 주는 피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남이 모를 줄 알고 하는 ‘모르기식 행동’,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 팀원에게 영향을 주는 일, 나의 기분을 그대로 들어내 타인의 기분도 상하게 하는 일 등이 있다. 매너는 첫 만남에서도 알아 볼 수가 있다. 악수를 할 때, 두 손으로 공손하게 하는 악수가 있고,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하는 악수가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문화에 속하지만, 조선민족골프협회에 왔을 때만큼은 공손한 문화를 지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골프가 기업 운영에서 필수는 아니지만 필요한 수단이라고 정리한다. 지금은 거의 조선민족들과 골프를 즐기고 있지만, 사업 초창기에는 한족들과 인맥 쌓기에 골프가 아주 기특한 역할을 했다고 추억한다. 과거에는 바이어가 오면 술 접대를 했지만 지금은 골프를 치며 건전한 접대를 하다보니 작은 회의실에서 상담을 하기보다 확 트인 골프장에서 사업 얘기를 하면 일이 더 쉽게 성사 될 때가 많다고 한다. 그 뿐인가, 서정파 비서장은 골프가 인생 마인드도 바꿔 놓았다 한다. 골프를 치면서 우수한 선배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배울점이 많았다. 어느 순간 그들의 봉사정신에 매료되어 나도 무언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골프는 참 묘한 매력을 가진 운동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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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심천조선민족골프협회 제6대 회장 백성욱 회장 - 골프는 나를 조선민족 사회로 이끌었다!심천조선민족골프협회 제6대 회장 백성욱 회장 ■ 고향: 길림성룡정시 I 1976년생 ■ 기업: 深圳市千丰实业有限公司 ■ 골프구력: 13년 심천조선민족골프협회 연 혁 제1기 리철호 (2007년~2011년) 제2기 김재광 (2011년~2012년) 제3기 김영일 (2012년~2013년) 제4기 박성남 (2012년~2015년) 제5기 김관걸 (2015년~2018년) 제6기 백성욱 (2019년~현재) * 현재 등록된 회원수: 220명 심천골프협회 제6대 백성욱 회장은 일본어를 배우고 1997년도에 심천에 내려와, 일본회사에 취직하여 10년 가까이 근무하다 2006년말에 개인사업을 시작하였다. 사업은 무역회사로 시작하여 지금은 제조공장, 회사 직원식당업까지 그룹형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무역회사는 철, 강재, 전기에 들어가는 원자재, 공업용 화학원료를 취급하여 해외에 수출하고 있고, 제조공장은 칼라박스 등 포장재를 생산한다. 그리고 관리하는 회사식당도 7개로 각각 내실이 탄탄한 기업들이다. 백성욱 회장이 창업을 할 때만 해도 주변에는 다 한족들이고 조선족 친구가 없었다. 그가 광동 한족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연구해서 찾아낸 아이템이 폐기물 처리와 공장식당으로 도전을 하게 되었다. 폐기물 처리업을 막상 시작해서 보니 이 업계의 텃새가 매우 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기존에 장악한 업체들과 밥그릇을 나눠 가지려 했으니 초반에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뚝심을 갖고 버티다 보니 곧 자리를 잡았다. 그가 광동성조선민족 사회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골프를 치면서 부터다. 2008년, 한국 부산에 있는 친구가 심천에 놀러 올 때마다 골프장을 갔는데 그 친구 동반을 위해 골프를 배워야 했다. 처음에는 골프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한 1년이 지났을 무렵, 골프 연습장에서 알게 된 친구 몇 명과 함께 필드에 나갔는데, 바로 내기를 하는 것이다. 그날 실력부진으로 실패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 돌아와서 연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후 골프를 좀 치기 시작했다. 2013년 BMW 골프모임에 갔다가 식사 테이블에서 우리 조선민족 분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선민족인줄 모르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는 데 조선말로 통화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다가가 ‘나도 조선민족이다, 어디 사람이냐’고 인사를 건넸다. 당시 심천골프협회 비서장으로 조선민족 골프모임에 꼭 한 번 나오라고 초대를 했다. 그 분이 바로 지금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비서장이면서 하나골프협회 회장인 김관걸 회장이다. 백성욱 회장은 지금도 과거 김관걸 회장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조선민족 친구들도 만날 수 없었다며 김관걸 회장에게 늘 감사함이 있다고 한다. 김관걸 회장을 알면서 그 주변의 많은 형님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나이대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골프를 자주 쳤는데, 친구들과 의견을 모아 동우(东友)회를 설립하고 백성욱 회장이 초대회장으로 3년간 활동했다. 동우회 회원은 대부분 70년대생으로 그 때 당시 약 60명의 회원이 있었다. 심천골프협회는 김관걸 회장이 4년 임기가 마감되면서 이철호, 이영춘 회장과 함께 백성욱 회장을 불러 “동우회를 조직했던 열정으로 심천골프협회도 맡아서 공헌 좀 해봐라”고 권하였다. 처음에는 부담이 있었는데 ‘먹고 살만큼은 되니, 이젠 조선민족 사회에 무언가 공헌 해보자’는 각오로 심천골프협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현재 심천골프협회는 활발하게 운영되어 회원이 170명이다. 하지만 두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모임에는 평균 50~60명 정도가 출석하고 있다. 큰 모임이 있으면 출석율은 100명에 달한다. ‘홀인원은 아직 한 번도 못했지만 금방 할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는 백성욱 회장은 13년의 구력을 가지고 있다. 일주일에 4, 5번은 꾸준히 필드에 나갔지만 최근은 회사일에 신경을 많이 쓰느라 예전만큼은 못하고 있다. 그래도 13년 동안 한 번도 골프를 끊은 적은 없다. 그는 골프 칠 때 거리보다 기술적인 면, 멀리 치기보다 정확성을 중요시 한다. 평소 한 시간반 정도 어프로치를 연습하며 연습장에 가서도 어떻게 하면 실수 없이 곧게 칠까를 많이 연구한다. 그 덕분에 아이언샷이 가장 자신이 있다. 현재 평균 스코어는 80대를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백성욱 회장은 타이거우즈, 리하오퉁 선수를 좋아한다. 리하오퉁 선수가 어릴 때부터 골프를 쳤다며 프로선수가 목표는 아니지만 15살 딸에게도 4년전 부터 골프를 시키고 있다. 그가 정의하는 골프는‘인연’이다. 골프를 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특히 조선민족 사회에 들어 오게 된 것을 골프의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