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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중국아시아경제협회 조선족기업발전위원회 방문단 미팅 및 MOU 체결지난 12월14일 중국아시아경제협회 조선족기업발전위원회(中国亚经协.朝鲜族企业发展委员会, 아래 조선족기업가위원회) 강성민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일행이,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사무실을 방문하여 연합회 황남철 회장 등 임원진과 심도 깊은 대화 및 앞으로의 협력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날 방문단에는 강성민 회장 외, 신광성 상무부회장 겸 비서장, 안금화 상무부회장, 김철 부비서장, 리해영 사무실주임이 동행하였으며,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는 황남철 회장 외, 이영춘 명예회장, 남기학 명예회장, 정용택 수석부회장, 마학철 감사장, 한성진 비서장, 김철 광주연합회 회장, 마춘화 여성협회 회장, 전경숙 광동성조선족여성협회 명예회장 겸, 코위너 평생이사(글로벌), 전국애심여성포럼 민족공익사업발전기금회 이사장(중국), 전명숙 여성협회 명예회장이 참석하여 방문단을 맞이하였다. 특히 조선족기업가위원회는 2025년 세계한상대회의 주최측으로서, 중국 조선족 기업가들의 자원 공유, MOU 체결 등 협력을 통해 조선족들이 국제 무대에서 좀 더 활약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보여, 현장에 있던 임원진들에게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이날 두 협회 회장은 각자 협회의 발전 과정과 조직 구조, 회원 규모, 향후 발전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며, 중국 조선족 경제발전과 문화전승에서 조선족 기업가들이 앞장서야 하는 사명감과 역할에 대해 강조하며, 양단체 공동 발전을 위한 MOU를 체결하였다. 동시에 강성민 회장은 황남철 회장에게 联席会长 임명장을 전달하였고, 남기학 명예회장에게 고문 임명장을 발급하였다. 방문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간 강성민 회장은 “어제 두 협회의 공식적인 미팅과 MOU체결은 아주 의미있었으며, 저의 협회에게 있어 올해안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것이다. 향후 북경과 광동은 실질적인 공동체가 되어 우리민족의 위상을 지키고 높이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지와 바람을 전하며 이번 방문을 환대해준 연합회 임원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기업가위원회의 심천 방문은, 양 단체 합작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서로의 발전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전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번 만남을 통해, 두 협회는 각자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여, 더 많은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이 이루어지는 등 조선족 기업가 협력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앞으로 협회간의 MOU 체결을 통해, 중국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들을 하나로 집결시키는 데 든든한 초석이 되길 바라는 기대도 안겨주었다. 자료제공: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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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영창 비서장 - 비서장의 임무는 ‘심부름을 많이 하는 것’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김영창 비서장 ■ 고향:흑룡강성 목단강시 I 1971년생 ■ 기업: 深圳市利昌裕手袋有限公司 ■ 골프구력: 25년 이상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이하 전국골프협회) 총무 겸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창 비서장은 일본어를 전공하고 1990년에 심천으로 내려왔다. 일본 기업에서 10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 2000년에 가방 회사를 설립하고 20여년간 본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방전문 사업가이다. 전국골프협회에서 그가 맡은 분야는 행사를 치르기 위한 전반을 다 담당하고 있다. 골프장 섭외, 호텔 안배, 손님 접대 등 그의 손을 안 거치는 것이 없다. 그는 비서장의 책임감은 ‘심부름을 많이 하는 것’이라며 대단하지 않다는 듯 겸손하게 말을 한다. 또한 그의 민족 사랑도 꾸준하다.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민속축제나, 노인협회, 골프대회 등 여러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후원을 하고 있다. 김영창 비서장은 서정파 비서장과 막연한 친구 사이로 1997년도 부터 서정파 사장과 함께 골프를 시작했다. 그 역시 2008년도 광동성하나골프협회가 설립될 때 초창기 회원으로 가입하여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 골프를 일처럼 할 정도로 그는 회사 고객들과 거의 운동을 함께 한다. 특히 그의 회사 제품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어 주로 일본 바이어를 상대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 일본 손님들이 3, 4일 일정으로 출장을 오면, 업무 미팅은 하루면 끝이 나서 나머지 일정은 함께 골프를 치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바이어라는 관계를 떠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미팅 때 물량을 못 도와준다고 거절했던 사람도 골프를 치고 난 다음 날이면 오케이 사인을 주는 경우가 있다며 골프가 사업에 도움을 주는 것을 직접 느낀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골프를 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골프를 하지 않고도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많듯이 자기 흥미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주일에 5일은 골프장에서 보낼 정도로 골프를 즐긴다. 홀인원은 10년전 동관에서 일본 손님과 골프를 쳤는데 그때 오더를 많이 주어 기분이 좋아 그런지 눈을 감고 쳤는데 홀인원이 되었다며 익살스럽게 웃는다. 최고의 골프명언 5가지 골프의 구성요소 중 50%는 멘탈, 40%는 셋업, 그리고 나머지 10%는 스윙이다. -잭 니클라우스 (Jack Nicklaus) 골프스코어는 그린 주변 70야드 에서 결정 된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이버를 잘치고 싶어하지만 골프는 거리가 짧아질수록,그린에 가까워질수록 더 집중해야하는 스포츠다. - 벤 호건 (Ben Hogan) 필드에 나가서 비거리가 안나오더라도 기본만 하고 오면 아주 잘 한거다. 기껏 갈고 닦은 실력,욕심 때문에 버리지말고 욕심은 잠시 접어두자! - 바비 존스 (Bobby Jones)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치기를 원한다면 천천히(slower) 짧게(shorter) 그리고 부드럽게(softer) 3S로 백스윙 하라. - 게리 플레이어 (Gary Player) 사람들이 내 스윙이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는걸 나도 안다. 난 내 스윙이 평평하다는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잘되면 바꿀 필요가 없다. - 세르히로 가르시아 (Sergio Gar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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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혜주골프협회 제9대 회장 김표 회장 - 골프의 배려심, 협회 운영에도 발휘한다!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혜주골프협회 제9대 회장 김표 회장 ■ 고향: 흑룡강성 성화향 I 1975년생 ■ 기업: 惠州市普乐斯吉克商贸有限公司 ■ 골프구력: 2년 이상 혜주골프협회 연 혁 설립년도 : 2010년 7월 제1대 최춘서(2010-2011) 제2대 허명국(2011-2012) 제3대 정장일(2012-2014) 제4대 이용남(2014-2015) 제5대 김문(2015-2016) 제6대 정예호(2016-2017) 제7대 최문철(2017-2018) 제8대 최광(2018-2020) 제9대 김표(2020-2022) 김표 회장은 혜주골프협회 제9대 회장으로 그의 젊은 시절은 그야말로 고진감래(苦盡甘來) 사자성어를 떠오르게 하는 인생이었다. 고향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94년 광동 불산의 한 신발회사에 취직하여 십여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2006년 독립하여 동관에서 신발공장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회사가 꽤 잘 되었는데 2008년도 미국발 금융위기로 월 매출액 10만불이 절반으로 줄고, 800명의 직원은 200명으로 줄게 되었다. 4년 남짓 경영한 신발공장은 빚만 남긴채 결국은 문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재취업을 했지만 직장인 월급으로 빚을 갚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늘 재기의 기회를 연구했던 중 2011년에 친구와 함께 지금의 회사(惠州市普乐斯吉克商贸有限公司)를 설립하였다. 회사는 주로 플라스틱 가공으로 각종 디스플레이 제품을 생산하는데, 산더미 같았던 빚은 회사 설립 7년만에 다 갚았다. 회사가 안정되자 결혼도 하였고 이쁜 두 딸을 낳아 지금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김표 회장에게 혜주는 매우 특별하다. 빚의 더미에서 헤어 나오게 하고, 평생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한 곳으로 그에게 혜주는 출발의 도시, 행복의 도시, 성공의 도시로 늘 감사할 뿐이다. 골프는 2019년 부터 시작해서 이제 2년반 정도 쳤다. 골프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청도에서 골프채를 만드는 친구가 골프채 한 세트를 선물해 줬고, 같이 동업하는 친구가 사람도 사귀고 사업에도 도움이 되니 적극 하라고 추천해서 주변 친구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시작한 골프는 레슨도 안 받고 연습장 두 번 가고, 세 번째 바로 필드로 나갔는데 공이 너무 잘 맞아 첫 필드에 놀라기도 하고 골프에 관심을 더 갖기 시작했다. 평소 여러가지 운동을 했던 운동신경 때문인지 처음에는 120타 이상을 치다가 2년반이 지나고 나니 평균 90~95타에서 맴돌고 있다. 지금까지 베스트스코어는 78타다. 나름 짧은 시간에 골프 스코어를 올리려고, 퇴근하면 집에 가서 골프채널을 열심히 보고 주변의 조언을 늘 경청했다. 또 기술에 부족하다 싶으면 주저없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골프 성적을 올리려고 열을 올렸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골프회 회장을 맡고 나서도 스코어가 100타에서 맴돌자 친구들이 “회장이면 기본적으로 80타는 쳐야 되는 거 아니냐”라고 놀려서 한 동안 집중해서 골프를 연습했다고 한다. 김표 회장은 2019년에 혜주골프협회에 가입해서 1년을 활동하고 회장에 임명되었다. 그가 회장이 되고는 기존 30여 명의 회원이 점차 늘어 지금은 60명이 되었다. 아직까지 여성 회원은 없고 연령대는 30, 40, 50대로 광동성 분회중에서 평균 연령대가 가장 낮은 협회이다.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에는 평균 30명 정도가 나오고 있다. 회장을 맡고 나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데, 경기장에서 성격이 강하거나 승부욕이 강하다 하여 편견을 가지거나 동참을 못하게는 하지 않는다. 이기든 지든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려고 노력하며 분위기가 흐려지지 않도록 항상 중심에서 조율한다. 그리고, 골프가 서툰 친구들이 공이 잘 맞지 않아 한숨을 쉬거나 애간장을 태우면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가끔 그린피를 내주며 격려를 해 주기도 한다. 김표 회장은 남은 임기 2년간 현 회원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활동이나, 예전에 해보지 못했던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혜주에는 탕취안(汤泉), 허우냐오(候鸟), 토우징(涛景), 뤄푸산(罗浮山), 중뤼다오(棕榈岛) 5개 골프장이 있다. 그동안 주로 혜주에서도 가까운 탕취안이나 허우냐오, 토우징에서만 골프를 쳤는데, 앞으로는 회원들과 함께 원정 골프를 계획중이다. 광동성 뿐만 아니라 1년에 한 번 정도는 멀리 성 밖으로 나가 새로운 코스에 대한 도전, 회원들의 힐링과 친목을 더욱 강화하고 싶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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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혜주지회 제4대 회장 이용남 회장 - ‘골프가 너무 재미있어 잠이 안왔다’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혜주지회 제4대 회장 이용남 회장 ■ 고향: 흑룡강성 목단강시 ■ 기업: 大诚兴精密五金(惠州)有限公司 ■ 골프 구력: 14년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혜주분회 제4대 회장, 혜주조선민족협회 회장을 역임한 이용남 회장은 평소에도 골프 모임이 많지만 두 개의 중책으로 더 많은 행사와 골프 대회에 초청되어 바쁜 일상을 보냈었다. 이용남 회장이 골프를 처음 시작한 때는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다. 친동생 이성남이 ‘사업을 하려면 골프를 쳐야 한다’고 적극 권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골프를 시작하여 2개월만에 80타를 쳤고, 6개월만에 이글을 두 번할 정도로 골프에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다. 심지어 머리를 올리러 첫 필드에 나갔을 때 97타를 쳐서 함께 한 동반자들이 ‘골프 신동이 태어났다’라고 격찬을 했을 정도다.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타수도 잘 나오고 주변의 칭찬을 들으니 자연히 골프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한창 골프를 칠 때는 4,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를 이길자가 없다고 자부했는데, 나이 앞에서는 교만할 수 없음을 실감했다. 50대가 넘어가니 확실히 몸이 달라져 골프도 체력이 받쳐줘야 잘 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의 골프 사랑은 대단하다. 운동량을 늘리기 위해 배드민턴을 했는데 배드민턴을 한 참 치다 보니 손목을 꺾는 운동인 것을 발견하고, 팔을 곧게 펴고 치는 골프와 맞지 않았다. 또한 탁구도 손목을 꺾는 운동이라 골프에 영향이 있어 두 가지 운동을 과감히 버렸다고 한다. 또 골프가 너무 재미 있어서 잠이 안 올 정도였다. 한 번은 한 밤중에 골프 생각으로 조용히 일어나 유리창에 비친 그림자로 스윙동작을 연습하다가 옆에서 아내가 자다 깜짝 놀라 일어나 한바탕 소동이 있을 정도로 골프 때문에 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골프를 잘 치는 비결을 묻자, 골프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정서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급해 하지 말고, 심적으로 자아 통제를 하며, 기분을 항상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공이 안 맞았을 때, 화내기 보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영향을 받았는 지를 조용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팁을 전해 준다. 이용남 회장은 골프가 본인한테 아주 잘 맞는 운동이라고 한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역도선수를 할 만큼 남들 보다 힘이 강했고, 학구열도 굉장히 높았는데, 골프 역시 힘이 필요하고 평소 남들이 치는 걸 보고 연구를 많이 한 것이 골프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골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기에 주변에 골프를 막 배우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어느새 다가가서 코치를 해주곤 했다. 본인이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어떤 동작은 아무리 연습을 해도 안되어 속으로 ‘누가 조금만 가르쳐 주면 바로 알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기에, 비기너들의 속마음을 헤아려 주저 없이 코치를 해주면 다들 고마워 한다고 한다. 이용남 회장은 지금까지 홀인원 2번, 이글 6번을 했다.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플레이는 골프 1년차 때 미션힐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한족 기업가 류사장(温州人)과 골프를 쳤는데, 버디 3번에 마지막 홀이 남았을 때 이글까지 했다. 버디를 한 번 할 때마다 캐디에게 100원씩 주었는데 마지막 이글을 했을 때 200원을 줬더니 캐디가 미안해서 더 받지 않았던, 매우 유쾌했던 플레이로 오래 기억하고 있다. 그는 골프를 시작하기 전에는 인맥이 별로 없었다. 골프를 하고 나서, 훌륭한 조선민족 선배, 후배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한족 기업가들도 만나는 기회가 많아 졌다며 골프를 시작해서 가장 유익함은 역시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혜주에는 5~6천 명 정도의 조선민족이 살고 있다. 과거에는 8천 명 정도였는데, 한국 대기업들이 대거 빠지면서 하청 업체들도 따라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원수가 많이 줄었다. 또 혜주가 작은 도시는 아닌데 많이 흩어져 살다보니 단합이 잘 안되어 아쉬웠다. 그래서 이용남 회장은 혜주조선민족협회 회장을 맡을 때, 당시 혜주한국상공회 손종수 회장과 손을 잡고 여러차례 한민족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그때부터 혜주 조선민족과 한인사회가 자주 교류를 가지며 지금은 한글주말학교에 우리민족 아이들도 함께 공부를 해서 이전보다 더 가까운 소통과 화합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용남 회장은 대성정밀유한공사 대표로 각종 스프링, 스콜을 전문으로 제조하고 있으며 4년전에는 위 내시경 의료기기를 개발하여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 의료기기는 현재 한국 시장의 20%를 장악하고 있다. 골프는 사업이 안정되어야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경제가 받침이 되지 못하면 이어가기 힘든 운동이다. 그도 사업이 안정되기 전에는 무척 좋아하는 골프였지만 자제하며 쳤다고 한다. 또 골프는 신사운동이기 때문에 후배들한테 늘 남들이 운동할 때 말을 삼가하고, 돈 내기를 해서 지더라도 얼굴에 표정을 흐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이용남 회장은 앞으로도 골프는 계속 칠 계획이라며, 사업도 몸이 건강해야 유지할 수 있듯이 스스로 몸이 좋아지는 골프를 영원히 칠 생각이라고 건강한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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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 조선족연합회 명예회장 남기학회장 - 골프는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행복도구다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고문 광동성 오성 골프협회 고문 심천시조선족골프협회 고문 광동성 조선족연합회 명예회장 세계한인무역협회 수석부회장 남기학 회장 ■ 고향: 흑룡강성계서시 ■ 기업: 예지아기술그룹 ■ 골프구력: 13년 남기학 회장의 이름에는 항상 월드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가 따라 다닌다. 전국에서 월드옥타 하면 ‘남기학’이 빠질 수 없고, 남기학 하면 ‘월드옥타’를 뺄 수 없을 정도로 그와 월드옥타의 인연은 매우 끈끈하다. 2009년 월드옥타 심천지회 초대회장을 맡아 강일식 광주지회 초대 회장과 함께 광동성 조선민족 기업인과 한인기업인들을 가깝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실제로 남기학 회장은 본인의 사업도 잘 챙기면서 조선민족 사회는 당연하고 중국 한인사회 및 한국의 많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조선민족의 자부심과 열정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그는 사업적, 사회적으로 중국과 한국에서 공헌하였고 한국에서 “대한민국 국가생산성 대상-대통령상”, “한중경제발전 추진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월드옥타 본부 수석부회장으로 세계 한민족의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아 사업 뿐만 아니라 한민족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남기학 회장이 골프를 시작한 것은 2003년 중국 골프 붐이 일어날 때 한족친구가 골프채를 사주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2001년 예지아 기술그룹(烨嘉科技集团)을 창업하여 한창 일에 집중할 때라 한가하게 골프를 즐기기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때는 2008년 비즈니스로 손님들이 회사를 방문하면서 골프로 접대를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시기이다. 골프를 막 치기 시작할 때 미션힐(观澜)에서 코치한테 레슨을 받았는데, 총 10회 짜리 레슨도 바빠서 2개월에 한 번씩 밖에 못해, 1년 반이 넘도록 다 사용하지를 못했다. 그 때는 사업이 급선무라 골프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골프를 잘 치도록 동기부여를 아주 강하게 준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대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전국대회는 대회에 앞서 전국 각 지역 회장들이 모여 회장대회를 먼저 치른다. 그래서 성적별로 팀이 나뉘는데 다들 90대라며 실력이 높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줄만 알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대부분의 회장단이 거의 70대를 치는 게 아닌가! 내기로 돈을 잃는 건 고사하고 다들 싱글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심한 충격을 받고 코치를 찾아 레슨을 받았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한 동안 골프를 우선순위로 하고 부지런히 실력을 배양하여 드디어 76타의 베스트스코어를 기록하였다. 76타를 친날, 일본에서 새로 사온 골프채로 운동을 했는데 감이 좋았고 운도 따랐다. 그는 속으로 ‘이제 부터 나도 싱글이다’ 라고 좋아했는데 그 실력이 지속적이지는 않았다. 더 잘 치려고 동작을 바꾸고 욕심을 부린 탓으로 본다며 역시 골프는 어떤 스트레스도 없이 마음을 비우고 쳐야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남기학 회장은 2001년부터 회사도, 골프도 꾸준하게 성장시켜 왔다. 그 이면에는 성공기업가의 정신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를 실천해 왔다. 그동안 대여섯개 대학교를 거쳤는데, 东北重型机械学院(现燕山大学)电气自动化专业, 哈尔滨科技大学(现哈尔滨理工大学)计算机工程专业,阜新矿业大学(现辽宁工程技术大学)研究生院, 中山大学 EMBA, 延世大学AMP, 长江商学院 EMBA를 연수했다. 거의 3, 4년에 한 번씩 공부를 하며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 왔다. 공부한 곳 중 중국최고경영자과정의 최고봉인 장강상학원(2017년~2019년)에서의 공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장강상학원은 ‘성공할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라,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컨셉을 많이 강조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GDP의 20%가 장강상학원의 학생들이 창출해 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이 학원의 위상이 대단함을 실제로 느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장강상학원의 네트워크는 중국에서 내로라 하는 인맥을 자랑하기에, 남기학 회장은 이처럼 한민족 사회 뿐만 아니라 중국 주류사회에서의 활동도 부단히 노력했음을 볼 수 있다. 남기학 회장 역시 2008년 하나골프회 창립 멤버로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골프실력 향상을 위해 바쁜 일상에 연습장은 자주 못가지만, 집에서 한국TV 골프 채널을 꾸준하게 보았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14일간 격리를 할 때 골프를 위한 보람된 시간을 보냈는데, 제한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오직 골프TV를 열심히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골프선수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바로 최경주 선수라고 답한다. 최경주 선수와 직접 만나 운동을 하게 되어 인연이 되었는데, TV에서 본 강한 인상과 달리 실제로 만나보니 말도 재미있게 하고, 상대를 편하게 해 주어 정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같이 골프를 치면서 손동작을 잡아 주고, 필요한 부분의 포인트를 잡아주었다. 골프를 치면서 이 친구, 저 친구 말을 듣다 보면 내용이 다 다른데, 세계 골프 선수의 코치라 그런지 큰 신뢰감으로 믿음이 갔다고 한다. 내기 골프를 좋아하지만 즐거움이 지나치게 까지는 안한다. 골프에 내기가 빠지면 재미가 없기에 백원 짜리 정도로 하고, 따면 돌려 주던가 식사를 대접한다. 그는 과거 월드옥타 모임일 때도 ‘1000원 이상을 따면 돌려주기’로 룰을 정해 놓았다. 운동으로 돈 잃고, 기분 상할 필요가 없고, 힘들게 번 돈을 굳히 운동에서 낭비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골프 매력은 나이와 상관 없이 운동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게 골프가 아닌가 싶다. 건강하기만 하면 80세가 넘어도 칠 수 있다며, 밍샹골프장(名商高尔夫)에서 만난 심천시 제1기 시위서기 부인(당시 84세)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할머니는 보좌관을 동행하여 늘 혼자 와서 골프를 치는데 100야드를 치는 걸 보고 참 대단했다. 동양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령인 여성이 혼자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골프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고 한다. 그는 아내와 아들이랑 주말골프를 즐긴다. 한 번은 셋이 골프를 치다 아내가 홀인원을 한 것이다. 본인은 아직까지 홀인원 운이 따르지 못했는데 아내가 대신 홀인원을 해서 매우 기뻤다고 한다. 골프를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를 돌아 보면, 초창기에는 비즈니스를 위해서 골프를 치려 했고, 중반에는 동반자들이 싱글이 많다 보니 자극을 받아서 열심히 하게 되었다. 지금은 골프에 대한 생각이 좀 더 여유로워 졌는데, 간혹 동반자가 매너가 안 좋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푸른 산천에 가서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을 하다 보면 건강에도 좋고 행복감을 느낀다 한다. 또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면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감사를 느끼게 해주는 것 또한 골프라고 한다. 골프가 없었으면 일상이 어땠을까 할 정도로 그는 지금도 시간만 되면 골프가 치고 싶다며 골프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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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김수국 회장 - 골프는 동기부여 중요, 구력 7년에 홀인원 3번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김수국 회장 ■ 고향: 흑룡강성 목단강시 ■ 기업: 深圳市禾善贸易有限公司 ■ 골프 구력: 7년 동관골프협회 5대 김수국 회장(흑룡강 목단강, 1974년생)은 올해가 구력 7년차 일 뿐인데,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 하는 홀인원을 이미 3번이나 한 행운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반자 홀인원은 8번이나 목격한 행운남이다. 첫 번째 홀인원은 2018년2월10일 广州南沙高尔夫球场 山场코스에서 140야드, 9번 아아언, 그 다음달 이어서 두 번째 홀인원은 2018년3월10일 东莞峰景高尔夫球场 C场2号洞에서 145야드, 8번 아이언으로 하고, 세 번째 홀인원은 2020년12월9일 东莞观澜湖高尔夫球场 安妮卡 5号洞에서 150야드, 8번 아이언으로 했다. 세 번의 홀인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홀인원은 세 번째 미션힐(观澜) 애니카 코스를 꼽는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공이 들어 가는 느낌이 바로 왔는데, 세 번째는 공이 떨어졌는데 오르막길이라 바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봐서야 공이 세 개만 있고 자신의 공은 홀컵에 있는 걸 보고 매우 짜릿함을 느꼈다고 한다. 홀인원은 운인가? 실력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운과 실력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라고 답을 했다. 김수국 회장을 골프에 빠지게 한 에피소드가 참 재미있다. 그는 골프를 좋아하기 전 축구를 꽤나 좋아하고 열심히 하였다. 광동에서 특히 심천에서 70, 80, 90년대 동생이나 친구들 중 축구 좀 하는 사람은 그를 모르지 않을 정도로 실력도 대단했다. 매주 축구장이 그의 놀이터였는데, 그렇게 사랑하는 축구를 안하고 골프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축구를 하다 보면 부상은 늘 있는 일인데, 하루는 축구하다 다리를 다쳤는데 늘 같이 운동을 하는 강윤걸 친구가 “축구하다 더 다치지 말고 이제 우리 골프를 치자”라고 제안을 하였단다. 그 때 당시 김수국 회장은 일본 손님들이 있어 종종 골프를 쳤는데, 친구는 한 번도 골프채를 잡아 보지 않았을 때이다. 그래서 “야 나랑 골프 치려면, 연습장 가서 1년은 휘두르고 와라”라며 농담조로 말을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정말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3개월간 무섭게 연습을 하더니만 머리를 올려 달라는 요청을 하더란다. 그래서 미션힐에서 머리를 올려 주는데 오히려 친구 골프실력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고, 김수국 회장도 크게 자극을 받아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골프에 매진하게 되었다. 지금 그 때를 회상하면 강윤걸 친구와 골프 의기투합이 된 날부터 두 사람은 남들 1년 정도 칠 골프를 3-4개월만에 칠 정도로 많이 쳤다고 한다. 그 덕분에 싱글도 2년차에 달성했다. 그의 베스트스코어는 1오버파, 73타이며, 장끼는 벙커 샷, 퍼터이다. 짧은 시간에 필드 경험이 많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은 ‘룰과 매너’를 더 철저히 지키고 싶은 욕심이다. 그리고 그가 느낀 골프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배려심’이라고 한다. 아무리 골프실력이 좋고 운동 경험이 많더라도, 골프는 신사운동이기에 배려심이 갖춰 있지 않다면 진정한 골퍼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배려심’을 말하면서 그동안 골프를 치면서 좋은 영향력을 받은 한 분을 소개했다. 바로 동관골프협회 4대 허영철 회장이다. “허영철 회장님은 매너도 좋고 배려심도 깊고 성격도 좋습니다. 거기에 사업도 잘하시기에 우리 후배들이 존경할 수 밖에 없습니다.”라며 선배 허영철 회장에 대해 존경심을 전했다. 그가 동관골프협회 5대 회장을 맡은 것도 허영철 회장이 “민족에 대해 애착심을 갖고 하는 일이지 회장 자리가 위대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권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5대 회장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김수국 회장은 1996년 심천에 와서 화장품, 시계 케이스를 만드는 일본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당시 제조업이 활발했기에 안정적이긴 하였으나 3년 정도 근무하다 무역에 관심이 많아서 과감히 그 일을 그만 두고 무역을 하기 위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광주외무외어대학(广州外贸外语大学)에서 1년 반을 공부했는데 당시 8000원 홍콩달러를 주는 멀쩡한 회사를 포기하고 영어를 뜬금없이 공부하는 것에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 보면 그 때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김수국 회장도 없었기에 공부에 매진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한다. 그 후 2005년 창업을 해서 창업초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액정필름 분야로 꾸준하게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이 분야에서는 전문기업이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회사나 골프나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도전도 좋지만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못해서 결과를 보기 전에 쉽게 포기를 하는데, 한 가지를 꾸준하게 한 사람을 절대 따라 올 수 없다고 말한다. 동관골프협회는 5대(2019~2021) 김수국 회장이 맡고 부터는 회원들도 많이 늘었음은 물론 회원들 평균 연령대도 많이 내려 갔다. 그의 역할은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 최단시간 협회에 적응하게 하는 것과 회원간의 단합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는 젊은 회원들이 많기에 동관골프협회는 앞으로 더욱 활기있게 단결이 잘되는 협회로 거듭나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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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광주지회 제6대 허호성 회장 - 봉사로 골프협회 섬겼더니 날씨도 따라 주더라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광주지회 제6대 회장 허호성 회장 ■ 고향: 길림성 연길시 ■ 기업: 广州卓王国际贸易有限公司 ■ 골프 구력: 20년 광주조선족골프협회 역대회장 초대회장 김철용(2008년-2009년) 2대회장 신영식(2010년-2011년) 3대회장 전우범(2012년-2013년) 4대회장 김철용(2014년-2015년) 5대회장 김기철(2016년-2018년) 6대회장 허호성(2019년-2020년) 7대회장 김철용(2021년-) * 현재 등록된 회원수: 120명 허호성 회장은 골프를 정말 사랑하고, 골프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가 말해서가 아니라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그 느낌이 전해 진다. 그는 2001년 부터 골프를 쳤는데, 연태(烟台)에서 신발 사업을 할 때 한국 바이어들이 모두 골프를 너무 좋아했다. 세계에서 한국인들이 골프를 최고로 좋아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보였으니, 당시 골프를 안치고 있었던 허호성 회장 눈에는 뭐가 저리 좋은가 할 뿐이었다. 그때 형, 아우로 지내던 한국 지인이 골프를 추천하길래, “내가 무슨 골프냐, 그 돈이면 돼지고기 몇 근 사서 집가서 먹을란다”하며 콧방귀를 뀌며 거절했다. 그래도 그 형은 골프 안치면 재미나는 일이 없으니 골프를 치라며, 골프채를 사주고 며칠 동안 연습을 시키더니만 골프장 비용까지 대주며 필드로 데려 갔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골프를 시작해서 10살 차이 나는 형들과 골프를 치며 여러 가지를 배웠다. 골프 매너는 물론 골프가 내 욕심으로 되는 게 아니고, 욕심을 가질수록 엇나간다 것, 마음을 내려놓고 힘을 뺄 때 공이 더 아름답게 가고, 멀리 간다는 것 등 골프의 지혜를 터득해 나갔다. 혈액형 A형의 완벽주의 성격인 그는 점점 더 골프의 마력에 빠져 들며, 한국 골프 프로그램을 매일 녹화해서 골프를 섭렵해 갔다. 얼마나 많이 봤는지 골프이론이 해박해져 주변에서는 골프코치를 하라 할 정도였다. 그는 한 번씩 연습장에 가면, 한 시간에 800원 코치비용을 들여서 일주일 동안 동작 하나 배우며 한 숨을 쉬는 젊은 친구들을 적잖게 본다. 그럼 조용히 다가가서 기본 동작 가이드를 해주면 매우 고마워 한다. 젊은 친구들에겐 허호성 회장이 연습장의 비밀병기인셈이다. 허호성 회장은 2004년에 광주에 와서 신발 제조, 신발 부자재를 한국에 납품하는 사업을 줄곧 해 오고 있다. 당시에 신발업계 한국인들과 광주에 오다 보니 아는 사람도 없고 조선민족 친구도 없었다. 그 때 골프모임도 한국인들만 알다보니 화두한인골프회와 한류회에서 골프를 쳤었는데, 뒤늦게 조선민족골프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양쪽 모임을 같이 나가다가, 후에 광주조선민족골프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한류회는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었다. 과거 양쪽 협회에서 골프를 치다 보니 한국인 골프와 조선민족 골프에 조금 차이를 느꼈다. 한국인 골프는 매너를 중시하기에 지켜야 할 골프 매너들이 굉장히 많다. 타인이 골프칠 때 말하면 안되고, 그림자가 비쳐도 안되고, 장갑 찍찍이 소리가 나도 안된다 등 굉장히 강박감이 몰려와 조심스러우나 반면, 조선민족 골프는 매너가 좀 더 향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앞에서 말한 강박관념이 없어 좀 느스한 분위기에서 골프를 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그는 광주골프협회에서 약 6년 회원으로 참가하다가 김철용 회장의 추천으로 회장을 맡게 되었다. 당시 18명 정도 회원이 있었는데 오래 활동하다 보니 나이도 있고, 늘 차려 놓은 밥상에 앉아 먹기만 한 것이 미안해서 봉사를 다짐하기로 했다. 그 날 허호성 회장은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집에 와서 첫째, 회원 30명만 되게 해달라는 것과 둘째, 협회 회장직을 맡는 동안은 건전한 골프모임이 될 수 있게 기도했다고 한다. 2년 동안 또 하나의 기적이 있는데, 남방은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기에 운동을 하다 보면 비 때문에 마지막 홀까지 다 치지 못하고 중단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허호성 회장의 임기 기간에는 날씨 때문에 한 번도 운동이 중단되거나 취소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 그의 말에 의하면 골프 치기 전날이면 사고 없이, 날씨 좋고 비로 영향 받지 않게 해달라고 꼭 기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비가 오는 날에 골프장에 도착하면 비가 딱 그치거나, 골프를 다 치고 나면 그제야 비가 왔다며, 2년간 스물 몇 번의 정기모임에 한 번도 비 때문에 영향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기적은 기적이다. 오죽하면 이후에 골프장 가는 날 번개치고 우뢰가 있으면 동생들의 문자가 오는데, “형님 오늘은 기도를 안했어요?”라고 묻는단다. 그가 회장이 되고 조별짜기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전에는 수준별로 80타 치는 사람들끼리, 90타 치는 사람들끼리 치곤 했든데, 잘치고 못치든, 나이 많고 적든, 외지인 현지인, 구분 없이 추첨을 통해서 함께 치게 했다. 이렇게 바꾸니 다양하게 어울려서 모든 회원들이 더 친목을 다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기를 하면 이기는 사람이 캐디비를 내고 돈을 다 돌려주게 했다. 이렇게 소소히 변화를 주다 보니 2년 사이 정식회원이 6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허호성 회장은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골프를 칠 수 있는 건 하늘이 내려준 복이다.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자기가 소홀했던 게 없는가를 점검하라”고 한다. 그는 초창기 회원들은 이제 3분의 1도 안된다며, 타지역으로 간 사람도 있지만, 골프를 더 못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 잘되고 있을 수록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골프에만 빠지지 말고 사업에도 더욱 집중하라고 당부한다. 과거에는 골프 안치는 사람이 있으면 쳐 보라고 권했는데, 종교가 있은 후 부터는 권하지 않는다. 골프때문에 사업 망하는 사람도 봤고, 도박 기질이 있는 사람은 골프에 너무 빠져서 사업과 일상에 영향을 받는다. 골프는 중독성이 있어서 자칫 자기 통제를 잘못하면 어려운 길로 빠질 수 있어 지금은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10년간 골프 방향이 늘 오른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는 건, 오른팔에 힘이 엄청 들어갔다는 뜻이다. 가볍게 해드 무게를 느끼면서 스윙을 하니까 80타를 쳤다며, 그동안 골프기술이 향상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한 것이라 한다. 기술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기를 컨트롤 못했기 때문, 골프는 결국 힘빼기 운동인 것이다. 옛날에 비즈니스 할 때도, 욕심으로 많은 이익을 붙일때는 손님이 적고, 다 내려놓고 적게 붙이니까 오더가 엄청 많이 밀려서 들어 온다며, 재밌는 일화를 비추어 말해 주는데 그만큼 욕심을 버리면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뜻이겠다. 골프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보람되는 일이 많지만, 그 중 한국에 코로나가 막 터졌을 때 김철용 회장이 선도해서 회원들과 함께 마스크를 사서 한국에 보낸 일과 행사때마다 모금함을 설치하여 노인협회에 전달하거나 어려운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일이다. 그 역시 아내가 신부전증으로 수술을 했는데 회원들이 마음을 모아 응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회원들 간의 우정이 중요한 것이다. 미국 속담에 ‘하루만 행복해지려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아라. 1주일만 행복해지고 싶다면 결혼을 해라. 1개월 정도라면 말을 사고, 1년이라면 새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토록 행복해지려면 골프를 쳐라’는 말이 있다. 허호성 회장은 ‘인생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골프’라는 참 뜻을 알고 있는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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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주조선민족협회 회장 김철용 회장 - 광동성 한민족 골프로 하나 되다!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광주지회 광주조선민족협회 회장 김철용 회장 ■ 고향:길림성 화룡시 I 1975년생 ■ 기업: 스피드물류 / 삼구김치 ■ 골프 구력: 20년 이상 광주의 동포사회는 광동성 각 지역 중에서 조선민족과 한국인의 화합이 가장 좋은 곳으로 평이 나있다. 특히 광동성 동포사회에서 자랑할 만한 전통대회가 하나 있는데 바로 광저우한민족골프대회다. 이 대회는 광주조선족협회와 광주한국인상공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광동성의 200여명의 조선민족과 한국인 골프애호가들이 함께 모여 우정을 나누며 한민족의 화합을 다지는 대회이다. 그리고 한민족 화합에 큰 기여를 한 광주조선민족 민속축제가 2019년 개최되었는데 이날 행사에는 약 5000명의 관중들과 선수단, 각 단체 인사들이 민족을 불문하고 대거 참석하여 우리 조선민족의 위상은 물론 한민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장이 마련되어 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크고 굵직한 행사가 치뤄지는 데 숨은 공로자는 바로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광주지회 회장이면서 광주조선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철용회장이다. 김철용 회장은 1993년, 19살 광주에 첫 발을 딛어 지금까지 광주 토박이로 살고 있다. 광주 발전은 물론 광주 조선민족 사회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 지에 대해서 누구 보다 자세히 알고 있기에 광주조선족협회 회장으로 그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젊기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발전해 나간 김철용 회장은 광동에서는 최연소 성공사업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시절이 있었다. 골프 역시 이 시절에 시작했다. 당시 광동성 통틀어 조선민족 중 골프 치는 사람이 30~40명 정도 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2년 광동성형제골프회 설립 멤버로 활동하며 한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가졌다. 그 후 2004년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가 설립되면서 당시 형제골프회 강문화 초대 회장이 하나골프협회로 명칭을 바꾸고 정식으로 지역별 골프지회를 설립하였다. 김철용 회장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설립초부터 협회 부회장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광주 민족사회에서 활약하면서, 광주골프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광동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은 조선민족들은 2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은 일본 비즈니스를 했고, 또 90년대에 광동에 온 사람들이다. 김철용 회장은 일찍이 광동에는 왔지만 일본이 아닌 한국과 관련된 악세사리, 완구 무역과 제조를 하다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물류사업에 뛰어 들었는데 이게 성공가도를 달리게 해 주었다. 김철용 회장은 사업이던 골프던 남과 똑같은 방식, 똑같은 시스템으로 경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늘 남다른 혁신과 개발, 역발상을 추구했다. 물류경험이 없었어도 빠른 시간에 업계 선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니즈(needs) 핵심을 파악하고 광동 물류의 특성을 제대로 캐치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한국 15일 물류를 7, 8일로 줄였다가 경쟁사가 동일한 방법으로 따라오면 그는 더 빠른 길을 찾아 3, 4일로 물류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다 보니 고객이 줄을 서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2000년 초반 <스피드물류>는 물류업계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광동의 물류브랜드로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과거 젊은 사업가로 돈 좀 벌었다는 소리를 듣었던 김철용 회장은 월매출이 100만원이었던 지난 날에 많이 벌기도 했지만, 그만큼 쓰기도 많이 썼다고 한다. 늘 위기감을 갖고 신사업을 개척하며 도전하고 보냈기에 누린 것도 많고, 아쉬움도 있지만 지난 일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물류사업과 골프는 먼 거리가 아니다. 김철용 회장은 주로 운동을 하면서 고객접대를 하였고, 자연스럽게 사업에도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 그에게 골프는 일이면서 운동이고, 운동이면서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필드를 나가는데, 골프가 제일 재미있었을 때는 막 시작하고 몇 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골프는 꾸준함이 없으면 바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비기너들에게 팁을 주자면 일주일에 연습장 3번, 필드 2번 정도를 꾸준히 하다 보면 안정적인 실력을 보장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한다. 덧붙여 필드만 많이 나가서도 안되고 연습장을 꼭 같이 병행할 것을 당부했다. 홀인원 경험은 한 번 있다. 2019년 风神高尔夫(풍신골프클럽), 8번 코스 8번 홀에서 170야드로 굉장히 어려운 코스여서 감히 생각도 못했는데 홀인원이 된 것이다. 구력 20년인데 19년만에 들어간 첫 홀인원 기분은 ‘나도 할 수 있네’ 정도였지 크게 흥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광주골프협회는 회원 단합과 화목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 현재까지 광주골프협회에 등록된 인원수는 130명이나 정기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40명 정도이다. 주중 일정이다 보니 개인사업가는 상관 없지만 기업 임원들은 시간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가 광동성 타지역 협회와 골프 문화가 좀 다른 것은 내기를 하되 원칙이 있다. 게임에서 아무리 잘 친 사람도 그린피는 직접 지불한다. 예를 들어 4명이 내기를 해서 3천원을 땄다면 거기서 그린피를 내고 나머지는 다 돌려 준다. 그리고 꼴찌가 캐디비용과 일부식비를 담당하는 문화이다. 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과거에는 내기를 좋아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가 끼리끼리 모이니 화합에도 영향이 있어서 지금은 추첨을 해서 잘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이 섞이게 한다. 그리고 내기를 해서 딴 돈은 개인 주머니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끼리 사용되도록 건강한 광주골프협회만의 룰을 정한 것이다. 김철용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지만 골프매너가 그 사람의 사업의 위치와 거의 정비례 된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은 센스가 있고 판단력도 좋기에 사업을 잘하는 사람과 골프를 치면 시작부터 끝까지 상대를 배려해 주기에 유쾌함은 물론 그 사람에게 사업과 골프에 대해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 전반적으로 사업을 멋지게 하는 사람들이 골프도 즐기며 치고, 내기를 하더라도 돈과 상관 없이 과정을 즐기기에 그들은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을 중시한다. 그는 20년간 골프를 쳤는데 시간대 별로 골프를 치는 마음과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스스로 ‘나는 매너가 좋고, 멋있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는 70점 밖에 되지 않은 시절이었고 오히려 지금이 그때 보다 성장했다고 말한다. 또, 김철용 회장만의 골프철학은 골프를 통해서 조선민족의 경제 핵심 인물들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가 창립되고 첫 광동성조선민족민속축제를 대규모의 큰 행사로 치르는데 당시 모든 자금이 각 지역 골프협회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골프협회는 과거나 지금이나 조선민족기업인들의 핵심단체라 볼 수 있다. 골프협회의 회원들은 나름 사업이 안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사업에 성공을 하였다면 응당 민족사회에 기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게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함)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철용 회장의 골프철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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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허영철 회장 - 진정한 성공은 다른 사람이 평가해 준다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허영철 회장 ■ 고향: 길림성 반석시 ■ 기업: 广东永星建设工程有限公司 ■ 골프 구력: 15년 성공한 사람의 보편적인 기준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 돈이 많은 것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과연 부와 명예만이 진정한 성공일까? “성공한 사람은 잘 살고, 잘 웃고, 사랑을 많이 한 사람이다. 순결한 여성의 신뢰와 영리한 남자의 존경과 어린이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태어날 때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으려 하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_앤더슨 스탠리(Anderson Stanley) 광동성 동관골프협회 제4대(2016~2018) 허영철 회장(吉林省磐石市, 1969년생)은 广东永星建设工程有限公司董事长으로 사업도 잘하고 가정에 충실한 모범 아버지상에 대화를 나눌 때 늘 미소가 함께 한다. 그와 인터뷰를 나누면서 앤더슨스탠리 작가의 ‘성공한 인생’이라는 시(诗)가 떠올랐다. 허영철 회장의 광동 드림(dream)은 30세 나이로, 남들 보다 늦은 감이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광동行 날짜 2001년 4월9일, 천진에 있는 형님집에 놀러 갔다가 가방 하나 메고 무작정 광동을 향한 기찻길에 오른 것이다. 가족이 모두 의사 직업인 엘리트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아버지가 병원 원장으로 있던 고향의 시(市)병원에서 약제사로 근무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였으나 반복적인 일상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동관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던 고모와 연락이 되어 동관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취업을 한 곳이 전자회사였는데 그곳에서 기전관련 기능을 배웠다. 그때 월급이 잔업비까지 합쳐 600원 미만이었다. 회사에서 익힌 기전기술을 바탕으로 2008년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경제공황의 타격으로 회사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하루 사이에 머리가 희어진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래도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음으로 버텼더니, 2009년 부터 운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그 이튿날 큰 오더가 들어 왔다. 이때부터 회사는 안정을 찾고, 2012년부터 빠른 성장을 해 2019년도까지 연간 매출액 10억원을 거두는 회사로 성장했다. 첫 딸이 출생되면서 그의 사업 성장과 여러 일들이 순탄해지다 보니 딸(허주연)을 복덩이라 생각 안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딸(12살)과 아들(6살)이 있다. 복덩이 딸은 현재 동관시 8명 우수 청소년(东莞市8名优秀青少年) 일원으로 북경 참관까지 다녀온 인재 중에 인재이다. 6살에 가야금을 배웠는데. 8살에 가야금 9급을 통과하였고 전국 대회에서 1등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관시 청소년 골프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거리가 200야드를 칠 정도로 수준이 상당하다. 그는 본인은 한 게 없으며 모든 게 아내의 헌신으로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고 겸손해 한다. 허영철 회장이 골프를 시작한 때는 2006년 근무를 하면서 골프채를 잡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치기 시작한 때는 회사 창업을 한 이후였다. 어릴때 부터 육상선수로 운동을 좋아한 편이라 골프도 매우 익숙하게 좋아하게 되었다. 골프를 시작한지 3년이 안되어 이글을 했었다.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72로 실력자 답게 숏게임에 강하다. 허영철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의 매력은 나이가 들어도 평생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또한 술을 마시지 않는 그에게 골프는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 과거에는 접대문화가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났지만 지금은 술보다 골프를 선호하는 접대문화로 바뀌었기에 그에게는 골프가 안성맞춤의 사교 수단이기도 하다. 골프를 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았다고 한다. 골프를 너무 미화하면 안되지만 한 사람의 신용평가는 골프를 한 번만 쳐보면 바로 눈에 들어 온다며, 반대로 골프를 하면서 나의 인품도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골프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이 연습하고 필드를 많이 나가는 것 밖에 없다고 한다. 기술을 높이기 위해서 한국 코치한테 레슨을 받았는데 확실히 실력이 향상 되었다며, 가능하면 골프 초반에는 반드시 코치의 도움을 받아야 됨을 강조했다. 그의 인생 철학은 ‘밑지는 게 낫다, 큰 데서 말고 작은 데서 믿지는 건 복이다’라는 말을 새기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한테 1전 한 푼 공짜로 얻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허영철 회장 주변에는 많은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후하게 베풀며, 이타주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영철 회장이 4대 회장을 역임할 때 동관골프협회의 회원은 꾸준히 늘어 났다. 초기의 십 여명에서 지금은 80명이 되었다. 전임 회장들이 하나하나 쌓아온 성과를 퇴보시킬 수 없었다며 그걸 지켜가고자 노력했다. 매 정기모임의 회원수는 다르지만 평균 30명은 정도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몇 번 안나왔더니 새로운 얼굴들이 많네’ 최근 들어서도 동관골프협회는 새로운 회원이 늘고 있어서 명예회장으로서 매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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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이영춘회장 - 시간과 돈, 골프에 투자할지? 사업에 투자할 지를 잘 판단하라!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이영춘 회장 ■ 고향: 흑룡강성 계동시 ■ 기업: 东莞市雄威玩具有限公司 ■ 골프 구력: 20년 이상 이영춘 회장(1962년생, 흑룡강 계동)은 광동성 동관골프협회 2대회장(2009~2013년)과,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3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조선민족 사회 발전에 헌신적인 공헌과 기여를 많이 한 공로자이다. 그는 내년이면 환갑을 앞두고 있지만 그냥 봐서는 그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안(童顔) 얼굴에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업도 왕성하게 하고 있어 지난해 코로나가 닥쳤어도 그의 사업장은 오더 수주로 기계들이며 일손이 쉼 없이 바쁘게 돌아 갔다. 东莞市雄威玩具有限公司는 완구회사로 이영춘 회장이 1996년도에 설립한 회사다. 그는 92년도에 광동에 첫 발을 들여 오직 완구분야 외길로 근 30년을 오늘까지 일하고 있다. 雄威의 메이드인 차이나 라벨은 전세계 완구시장에 퍼져 나가 있을 정도로 완구 빅브랜드들이 모두 이영춘 회장의 거래선들이다. 완구가 사양산업이라며 전업하거나 포기한 회사들이 많지만 지금까지 외길 산업으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雄威는 오히려 세계 완구 오더를 집중해서 받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광동성에서 조선민족 중에 90년대에 골프채를 잡은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그 중 한 명이 이영춘 회장이다. 그가 골프와 인연이 된 것은 정말 단순하다. 1998년 동관 펑징골프장(东莞峰景高尔夫球会)이 막 생겼을 때 주변에서 회원권이 싸니까 사라는 권유로 회원권을 사 놓고 골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후에 완구사업 외에 서비스 사업을 병행할 때 지인의 추천으로 골프를 치게 되어, 그의 구력은 펑징골프장과 함께 성장해 왔다. 동관골프협회는 1대 강문화 회장, 2대 이영춘 회장, 3대 김정식 회장, 4대 허영철 회장, 5대 김수국 회장까지 각 3년의 회장 임기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조직되어 오고 있다. 동관에서 골프협회가 막 시작할 때는 12명 밖에 안되었으나 3년 정도 지나니 30명 정도로 회원이 늘었다. 회원이 늘면서 협회도 더욱 활성화 되었고 젊은층들도 요즘 많아져서 현재는 80여 명이 된다고 한다. 그는 한 달에 골프약속이 적지 않게 잡히지만, 특히 매주 펑징골프장의 토요일, 일요일 골프모임 만큼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반드시 참석한다고 한다. 동반자는 펑징골프장 회원권을 오랜 시간 함께 갖고 있는 지인들과 후배들이다. 동관이 제2의 고향인 만큼 골프도 마음 편한 사람끼리 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그다. 골프를 잘 치면 뭐가 좋은가? 라는 질문에 그는 “내기에서 이기니까 재밌다.”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답을 해준다. 골프에서 내기가 빠지면 재미를 못 느낀다며 어느 정도 긴장감과 승부욕이 있어야 진정한 골프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골프는 사업이 안되면 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업에 집중해야지 골프를 좋아한다고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과거에도 골프에 빠져 사업을 소홀해서 결국은 사업도 골프도 둘 다 놓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골프는 분명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과감히 말한다. 시간과 돈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시간과 돈은 사업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기본이다. 시간과 돈을 골프에 투자할 형편이 되는지? 사업에 투자할 시점인지? 를 잘 파악하며 공을 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젊은이들을 보면 운동할 형편이 안되는데, 기회나 정보를 앞서 생각하며 무작정 필드에 나와서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로 동반자에게 지장을 주거나 운동에 집중하지 못한 모습으로 오히려 운동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것을 종종 보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골프는 신사게임이다. 먼저 사업과 골프가 어느 정도는 평행하게 컨트롤을 할 수 있을 때 기본을 갖추고 나와서, 함께 어울리다 보면 좋은 매너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운동의 만족감과 사업적인 도움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게 골프실력 노하우는 특별한 게 없다. 많은 필드 경험과 다양한 동반자 그리고 내기에서 받는 상처나 동기부여 등이 골프실력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한다. 저마다 홀인원 경험담과 스토리는 재미나다. 이영춘 회장은 홀인원을 두 번 했는데 그 두 번의 홀인원이 한 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연이어 하게 되었다. 첫 홀인원은 2020년 12월26일 동관 펑징골프장 C코스 5번홀(160yd) 한 번 하고, 두번째 홀인원은 2021년 1월18일 역시 펑징골프장 D코스 2번홀(165yd) 에서 하였다. 남들은 인생에 한 번도 할까 말까하는 홀인원을 연말연초 두 번이나 하게 되어 2021년도는 대박운수를 기대할만 하다. 홀인원 기념 초청골프 모임은 역시 펑징골프장에서 3월6일 172명이 함께 운동을 하고 저녁파티에는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를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웨라벨(Work-life balance)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데 이영춘 회장이야말로 진정한 웨라벨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영춘 회장은 골프는 평생하는 운동으로, 칠 수 있을 때 까지는 늘 즐기고 싶다고 한다. 사업이 지금도 안정적으로 잘 되고 있지만 크게 욕심이 없으며, 아들 딸도 다 커서 각자 독립적인 사업들을 하고 있는 것이 기특하다고 한다. 그는 젊은 날의 고생이 지금의 여유로움을 보상해 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여유로운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