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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군관학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있어서 펌프처럼 지사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 군사 학교였습니다. 황푸군관학교에 입교하려는 한인 젊은이 가운데는 의욕과 열정만 앞서 시험준비를 하지 않고, 자격도 갖추지 못한 채, 돈도 없이 무작정 광저우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입교만 하면 학비와 숙식비가 무료인데다 매월 소정의 월급도 있었으니까요.
형편이 어려운 한인 청년들은 비모집시기에도 광저우로 와서 황푸군교 입학을 시도했습니다. 입교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객지에서 먹고, 자고, 이동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한인입교생들은 대부분 가난합니다. 입교하려는 희망자도 딱하지만 학교측에서도 낭패스러웠습니다.
1926년 9월 『독립신문』에 황푸군관학교에 입교하려는 자들에 대한 주의사항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황푸군교 한국인 교관 양림이 『독립신문』을 편집하는 최창식(崔昌植, 1892-1957)에게 황포군관학교 입교 희망자들을 위해 주의사항을 기재해 달라고 요청한 글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근래에 광둥국민정부가 우리를 동정한다. 황포군관학교가 우리 학생에게 만흔 편의를 준다하야 상하이와 남만주, 북만주 및 기타지역에서 광둥에로 특히 황포군관학교를 목적하고 모혀 오는 우리 청년학생이 실로 수백명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아모리 동정하야 편의를 준다할지라도 그져 무시로 아모에게나 다 하는 것은 아니올시다. 또한 상당한 시기라야 되며 아울너 상당한 자격자라야만 되는 것이올시다.
신입생의 제일 문제는 기회를 생각지 아니하고 무시로 그져 한 두사람 혹은 두 세사람이 짝을 지어 오는 것이올시다. 이것은 이곳 잇서 소개하는 일을 하는자가 성가심을 이기지 못함보다 학교 당국이 매우 즐겨하지 아니하는 것이올시다. 그런즉 학생을 보이나 학생으로 오시는 동지들은 못조록 정기, 즉 학생모집 시기를 택하야 보내거나 오시거나 할 것이오 또 보내거나 오는데는 못조록 다수가 함께 동반함을 매우 바라는 바이올시다.
신입생의 제이 문제는 자격이올시다. 우리 학생도 중국학생과 가치 상당한 고시를 치러야 합니다. 설혹 다수의 편의가 잇다하야도 너무 탁업는 일은 절대 되지 못할 것이올시다. 그럼으로 왼쪽에 일반시험과목을 져거 참고에 편케 합니다.
국문 즉 중문은 대부분은 백화체로 시국문제의 재료를 제목으로 하는 작문입니다. 역사 중국근백년외교사, 지리 중국지리, 정치, 사회주의, 삼민주의 학설에 관한 것, 수학 대수, 기하, 삼각, 화학, 보통생리화학, 신체검사 물론 건장함을 요하며 년령은 35세 이하라야 됨니다.
입학생의 제삼문제는 기실 제1요건되는 것은 곳 비용에 대한 준비올시다. 설사 막 도착해서 입교가 된다할지라도 생지에 처음와서 상당한 절차를 발븜에는 여러날 시일을 요하는 것이어 늘 하물며 사고가 생기거나 혹 합격되지 못하면 메우 곤란한 일 만흔 것이니 이에 대하야 가장 소홀히 하지 말기를 바라며 이곳 도착하야 약 1주일 동안의 숙식비는 져거도 대양으로 십원 가량은 가져야되겠습니다.
독립신문에 위에 기록한 내용을 발표하야 주심을 바라고 다시 삼가 행운이 있기를 송축합니다.
대한민국 8년(1926년) 9월3일
이런 이야기는1926년 12월 광저우에 주재하는 일본영사관 공문서에 남아 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