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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지도자 안전 보위

기사입력 2023.07.1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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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색간부단의 임무는 행군 중 마아저둥, 저우은라이, 주더(朱德, 1886~1976) 등 중앙군사위원회 지도자들의 안전을 보위하는 것입니다. 1935년 4월 29일, 저우은라이, 류바이청(刘伯承, 1892~1986) 등 간부들이 김훈에게 5월1일 전까지 진사자오 핑두(金沙皎 平渡)를 점령하여 홍군이 북상을 할 수 있는 근거지를 학보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임무를 부여받은 김훈은 곧바로 선발대를 조직해서 국민당부대로 변장했죠. 밤낮 180리길을 도보로 강행군해서 다음 날 새벽 국민당 병사들이 잠을 자고 있는 이른 시간에 진사강변에 도착해서 보초 선 국민당군 60명을 체포하고 진사자오 핑두를 점령했습니다.

     

    진사자오 핑두 점령 후 중앙군사위원회는 양림에게 통안진(通安鎭)으로 진입하는 입구 화염산(火焰山)을 점령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화염산은 깍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인데 산과 산 사이에 꼬불꼬불한 골짜기를 따라 좁은 길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5월 1일 새벽, 김훈은 간부단 전위대를 인솔해서 화염산의 좁은 골짜기로 진입했습니다. 국민당 군인들은 유리한 고지에 잠복해서 사격을 하거나 돌을 굴러 홍군의 진입을 방해했습니다. 김훈은 빗발치는 총탄속에서도 기묘한 방법으로 바위 뒤로 숨으면서 고지를 향하고 뒤따르던 부하들도 김훈의 동작을 모방하여 화염산 협곡의 고지를 올라 점령했습니다.

     

    김훈이 화염산에서 전쟁을 하는 동안 중앙군사위원회와 홍군이 진사강을 건넜습니다. 화염산 전쟁에서 김훈은 수하 사병 12명을 잃었지만 국민당군 1개 사단을 섬멸하고 100여 명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중앙군사위원회는 김훈의 군사작전을 높이 평가하여 간부단에게 특별 표창을 하고 김훈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혁명군사위원회가 산시성(陝西省) 북쪽에 도착한 후 간부단을 다시 홍군대학으로 조정하고 김훈은 홍군제15군단 75사단 참모장에 임명되었습니다. 1936년 1월 19일, 중앙군사위원회는 산시(山西)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군벌 옌시산(阎锡山, 1883~1960)을 토벌한다는 동정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김훈의 임무는 옌시산이 설치한 천리 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옌시산은 홍군의 기습을 막기 위해 황하의 동쪽 기슭에 소재하는 20개 현에 반공구역을 설치했습니다. 주요 지역마다 토치카(보루)를 벌집처럼 총총히 세우고 보초를 세워 거미줄 같은 방어선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켰습니다.   

     

    또 홍군이 황하(黃河)를 건너지 못하도록 강변과 모래섬에 초소를 설치했는데 그것이 천리나 이어졌습니다. 천연의 요새로 작용하는 황하가 있고 황하에 인접한 촌락, 도로, 산봉우리마다 초소를 설치한지라 옌시산은 홍군이 나는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철벽같은 방어를 뚫을 수 없다는 봉쇄선입니다.

     

    김훈은 농민으로 변장하고 현장를 정찰한 후 지세가 제일 험난한 곳에서 황하를 건너기로 전략을 세웠습니다. 1936년 2월 20일 밤 8시, 선발대 제74사단 223단 제1영 병사들이 목선 5척을 나눠 타고, 나머지 병사들은 두 대의 큰 목선을 이용해 칭젠현(清涧县) 허코우(河口)에 이르렀습니다.

     

    옌시산의 군사들이 홍군을 발견하고 토치카에서 맹렬하게 총을 쏘았습니다. 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앞으로 나가 허자와쥐터우(贺家洼咀头)에 닿자 보총, 기관총, 수류탄 등 모든 무기를 총동원하여 국민당군을 향해 저격을 했습니다. 배가 상륙하고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허자야오(贺家凹)촌 길어귀에 있는 토치카와 중심 전지를 뺏고 국민군 병사들이 투항을 했습니다.

     

    1936년 2월 22일, 하자야오촌 전투장을 수습하던 김훈은 숨어있던 국민당군이 쏜 총에 복부를 맞아 죽었습니다. 그 때 나이 36세였습니다. 2월20일 김훈이 하자야오 촌에서 전투를 하는 동안 마오저둥은 쑤이더현(绥德县) 거우코우(沟口)에서 남쪽 칭젠현(清涧县) 허커우(河口)까지 황하 100여리길을 목선과 양가죽 뗏목으로 무사히 건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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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의 죽음 장면을 그린 유화. 출처, 바이두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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