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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6)지린(吉林) 도산 안창호 강연회에서 체포
기사입력 2023.12.04 15:49항공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 타이위안(太原)에 머무르고 있을 때, 유기석은 도산 안창호로부터 3개월 휴가를 낼 수 있다면 함께 동북으로 여행 가기를 희망한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동북 지린에 조선 교민이 약 4~5,000명 살고 있었는데 당시 산만한 만주의 독립운동 진영을 단결하려고 도산이 고안한 여행이었습니다.
아직 학교가 정식으로 개교하지 않아서, 1927년 설을 전후해서 유기석은 도산 안창호와 함께 동북 지역 지린에 갔습니다. 도산의 수행비서는 유기석이었습니다. 도산은 긴 두루마기의 마괘자, 중국 모자, 검은색 솜 신발, 손에는 신사 지팡이를 들어 마치 중국의 지주나 지방 호족처럼 변장했습니다. 유기석은 도산의 큰아들처럼 변장하여 지린으로 왔습니다.
지린의 지방 유지 최명식(崔明植, 1880~미상)의 정미소에서 설 모임 겸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도산의 강연 후 조선 학생 극단이 「강산의 눈물(山河淚)」이라는 연극을 공연했습니다. 이 극본은 난징(南京) 동남(東南)대학의 허우야오(侯耀)가 '3.1운동 민중 봉기'를 주제로 창작한 작품인데, 1924년 난징에서 첫 공연을 할 때 유기석도 극 중 배역을 연기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 설 모임에서는 자진해서 연극 감독을 맡았습니다.
연극 중 무장한 일본 군경이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한 여학생의 오른손을 군도로 찍자 손에 있던 태극기가 땅에 떨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여학생이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줍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자, 일본 군경은 다시 칼을 휘둘러 그녀의 목을 베었습니다.
「강산의 눈물(山河淚)」은 지린 교포 수백 명을 엄청 감격하게 했습니다. 관중 가운데는 생전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는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연극 줄거리와 배우의 연기도 대단했지만 태극기가 무대에서 휘날리는 장면이 나오자 관중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대성통곡하면서 이 피맺힌 원한을 갚자고 다짐하며 환호하고 만세를 부르며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첫 강연회가 워낙 큰 효과를 거두어서 1월27일 저녁 7시에도 같은 장소에서 2차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200여명이었습니다. 안창호가 관중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강단에 올라가 강연할 때 중국 경찰과 일본 헌병들이 강연장을 포위하고 한 무리 경찰이 집회장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체포된 사람들은 밤새 심문받았는데 혐의가 없다고 여겨지면 그 자리에서 석방하고 안창호와 유기석 등 지식인 40명이 지린성 경찰청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중국에 적화를 선전한다는 것이 죄명이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중국 측 경찰에게 이들을 인도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중국 측은 끝까지 조선총독부에 인도할 의무가 없다고 변명하며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유기석은 친구 심여추에게 도움을 구하고, 일본 경찰은 군벌정부와 중국 여론에 떠밀려 20여 일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유기석은 지린 사건 이후, 안창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1928년 흥사단을 출단했습니다. 비록 안창호를 비판적으로 이해했지만 매우 존경하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