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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편지는 미국 대한인국민회의 문양목회장이 광저우에서 김복(김규흥)이 보낸 편지를 받고 쓴 회신입니다. 김복은 광저우에 조선신문사를 설립하려고 하다가 인쇄기 구입할 돈을 사기당해서 한글 활자가 있는 인쇄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대한인국민회의 상황을 어떠했을까요?
문양목회장이 김복에게 보낸 편지(1911.05.25)
오늘 조국의 상황은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둥지(터전)가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 뒤집혀진 현상인 바 마치 계란이 눌리어져 깨어지기 직전의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조국의 비참한 현실은 원수 왜적의 교활한 정책으로 말미암아 큰 홍수가 밀려와 봇물이 터지고 둑을 흘러 넘쳐 넓고 멀리 퍼진 것처럼 중국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동포들은 슬프고 참혹한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나뭇가지에 달려 있던 잎사귀들이 벌레에 먹혀 힘없이 떨어져 분분히 날려 흩어진 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호, 이러한 시기에서의 진정한 지사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온갖 정성으로 공을 세우는 영웅이 되기를 원하는 것보다 이 어려운 때를 인내하며 더욱 내핍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좋은 효과를 나타내기에 알맞은 입지를 만들고 그 때의 시세를 고루고루 관찰하여 정확한 판단아래 조국을 위해 충성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볼 때 조국의 국권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략으로는 군사와 외교 이 두가지 틀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의 정략이 짜임새 있게 진행된다면 이는 실로 신묘한 계책입니다. 이를 빗대어 말씀드리면, 군사상의 문제는 먼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감히 내지(朝鮮)에서 살겠다는 희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뜻을 버려야 하고 반드시 중국에 적(籍)을 두고 서로 돕는 힘을 갖추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외교상의 관계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는 교유할 수 없을 것이며 반드시 중국과 연면(連綿)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한국 사람에 있어서 중국의 토지는 곧 이와 입술과 같은 관계로서 서로가 의지하는 종족이며 한편, 뼈와 살이 서로 친근해지는 까닭이 바로 군사인 것이며 외교인 것입니다.
중국과 군사와 외교 양 방면을 추진하는 것은 실로 긴요하고 절실하게 착수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 중국에서 이러한 일을 착수할 수 없게 된다면 오늘날 패망한 한국의 장래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조국의 독립 쟁취라는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중국의 운명이 아직 왕성하지 못한 이때에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실현 방법의 하나는 스스로 본회(國民會)를 성립한 후에 뜻을 기울여 하나하나의 모든 행동이나 동정에 있어서 관연 중국의 뜻있는 인사들과 더불어 친교를 맺어 대의로서 긴 안목의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도모할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형세가 어렵고 힘이 넉넉하지 못하여 그 시도하는 바가 현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주저앉지 말고 반드시 그 뜻을 이루려고 애쓰는데까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청(請)해 오신 것에 대하여 대략 진술하고자 합니다. 미국에 건너온 한인들의 실상을 말하면 그 가부(可否)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주 전역에 산재한 동포의 수는 모두 칠백여인으로 헤아려집니다. 그들이 미국에 건너온 초기에는 가지고 온 돈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 기본적인 현실이었습니다. 이들은 빈손으로 상륙하여 서둘러서 그리고 성실하게 일을 한 곳이 노동계인데, 자기 한 몸 생활하는데도 몹시 힘들고 곤란한데다 또 하나의 상황은 내지(本國)에 살고 있는 부모 형제 처자들, 딸린 식구들이 살아가는 실정은 춥고 배고픔의 연속이었으며 이러한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나가고자 기를 쓰는 이들이 백명 중 아흔아홉명은 그러하다고 헤아려 집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 누구든 목석이 아니고서야 자기의 친속들이 추위에 얼어붙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찌 구제하지 않고 방관만 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실제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지라, 이에 동포들은 서로가 힘을 합치고 온 힘을 다하여 밤늦게까지 꾸준하고도 부지런하게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각기 의무를 다하면서도 서로 논(論)하는 것은 간(肝)과 뇌(腦)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은 애국을 하고자 하는 성향(性向)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동포들은 본회 기관보인 신한민보(新韓民報) 유지를 위한 제반 경비의 지출과 용도를 알아채고 성심껏 후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피 같은 돈으로 근근이 유지는 하고 있으나 그날그날의 경비를 맞추는데 급급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별다른 여력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신한민보 역시 필히 구입해야 할 기계도 아직 못 들여오고 있는 형편이니 어떤 행운이 있어 본 기관보를 계속 운영하는 소임을 다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 속에 적혀 있는 일반회원(발기인을 뜻함, 구봉갑. 진형명, 추노 등)들은 멀지 않은 앞날에 북치는 소리 둥둥 울려 퍼지게 할 수 있는 분들이며 지조(志操)가 고상하며 세속을 초탈한 기상(氣像)을 지니고 있는 대단히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의 세력은 다 같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어 뜻하는 바를 성취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듯합니다.
오호라! 우리들의 처지가 어찌하여 이와 같이 어려움이 심하단 말입니까. 조국의 미래에 빛을 던져주는 희망을 발견했지만, 큰 기대를 갖고 요청한 일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처지에 긴 한 숨만 나올 뿐이며 가슴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무엇으로든 채워 넣어야 할 기가 막힌 상황입니다. 이 안타까움에 덧붙여 말씀드리기가 민망하여 이만 줄이옵니다. 이에 바라건대 오로지 좋은 일만 있기를 축원합니다.
의사(義士)님의 건강이 크게 편안하시어 나라를 소종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옵소서, 아아! 그 일들을 하시는데 하늘의 돌보심이 있어 탈이 없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에 대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좋은 일만 정착되기를 빌고 또 바라옵니다.
檀聖紀元 四千二百四十四年(檀紀 4244년) 五月 二十五日 (5월25일)
대한인국민회북미총회장 문양목(文讓穆)
총무 조원두(趙元斗)
서기 김형필(金亨弼) 등
김복 대인 각하(金復 大人 閣下)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