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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공항에서 핑산까지 20분! 심천에서 비행택시를 타는 것은 매우 편리해, 가격은?4개 노선은 총 270편의 항공편을 운항했으며 하루 최고 항공편은 21편,총 승객 수는 1,300명을 넘었다. 핑산(坪山) 공역(空域)에서 "공중택시"(空中的士)가 질서있게 왕래하고 있다. 기업가들은 공중택시를 타고 출근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손님과 주문을 가져오고 있다. "우리는 핑산 생물의약 분야의 스타트업 기업으로 평소 많은 전문가와 고객을을 초대해 방문하고 교류한다. 보안공항에서 핑산까지 헬기를 이용하면 20분밖에 걸리지 않아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우리의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다.” 심천대학 부교수이자 심천시 군상이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의 공동설립자 리샤오정(李晓政)이 말했다. 중앙경제공작회의(中央经济工作会议)는 저공경제(低空经济) 등 전략적 신흥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최근에는 "심천시 저공경제 고품질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조치", "심천경제특구 저공경제 산업촉진에 관한 규정" 등 심천의 저공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중요한 문서가 발표되어 심천 전체에 저공경제 발전붐이 일어났다. “공중택시”는 심천이 저공경제 산업의 혁신적 발전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2023년 3월, 핑산구는 시내 최초로 "옌쯔호 컨벤션센터- 바오안 헬기장", "옌쯔호 컨벤션센터- 복전대중화" 2개의 헬리콥터 고정 항로를 개통했으며 헬리콥터를 타고 옌쯔호에서 바오안 공항까지 지상 90분에서 16분으로, 복전대중화까지 지상 60분에서 13분으로 단축하여 핑산과 중심도시 및 주요 교통 중심지 사이의 거리를 크게 좁혔다. 관할구역의 기업과 주민에게 전방위적이고 다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핑산구는 도시 전체에서 헬리콥터 고정 항로에 대한 보조금 정책을 도입하고 기업, 기관과 시민들이 헬리콥터를 이용하도록 장려하며 비용은 1인당 980위안으로 절감되어 빠른 항공 통근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전년도에 우수공헌상을 받은 기업 조직에는 헬리콥터 전세 쿠폰을 단계별로 포상하며 기업 임원 및 중요 고객의 고급 비즈니스 이동요구를 충족시켰다. 핑산구는 헬리콥터 이동항로 개설 외에도 다메이핑산(大美坪山)(핑산구내), 페이웨산하이(飞跃山海)(옌쯔후-다샤오메이사) 2개의 헬리콥터 항공항로를 만들었다. 2023년 말까지 4개 노선에 270편의 항공편이 운항됐고 하루 최고 운항편수는 21편, 총 승객수는 1,300명 이상이다. 지난 1년 동안 원활한 운영과 동시에 관할구역에 더 많은 이착륙지점을 증설하고 밀집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핑산 헬리콥터 전용선은 기업 시민의 효율적인 이동을 위한 새로운 선택이 되었다. 올해 2월 1일부터 시행될 "심천경제특구 저공경제산업 촉진에 관한 규정"은 항공 통근, 도시간 비행과 같은 새로운 도시 항공 교통 형식을 개발하고 택배, 즉시 배송 등 기타 물류 배송 서비스 분야의 무인 항공기의 적용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저공경제는 심천의 새로운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1.000억 규모의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며 심천은 산업기초, 정책환경, 공역조건 등 면에서 일정한 선제적 우위를 가지고 있으며 저공경제 발전을 위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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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0만 위안을 적금하려면 자금 출처를 말해야 할까?1월 8일, #한 여성이 은행에 현금 10만원을 적금하러 갔다가 돈의 출처에 대해 질문받았다#라는 화제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강서의 한 여성은 SNS에 글을 올렸는데 현금 10만 위안을 가지고 은행에 정기예금을 하러 갔는데 은행 직원이 출처를 물었다고 한다. 여성은 "당시 내 돈이 어디서 왔는지 무슨 상관인데 내가 말한 대로 업무를 처리하면 되는거 아닌가? 마치 이 돈을 내가 훔쳐온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 현금을 저금할 때도 물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자 은행직원은 은행 규정이라고 대답했다. 이 일은 누리꾼들의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많은 누리꾼들은 이것이 정상적인 절차이며 자금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누리꾼 1: 혹시 보이스피싱 당할까봐 당신을 위한것이다. 당신의 자금 안전을 위한건데 왜 귀찮아하는지 모르겠다. 누리꾼 2: 이것은 고객에 대한 책임이고 사기방지이다. 누리꾼 3: 이 요구사항은 일정기간 동안 이미 시행되었다. 우리의 돈이합법적인 경로에서 나오고 정상적인 소비와 사용에 쓰이는 한, 이 두가지 질문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10만 원 이상 예금하면 자금 출처를 설명해야 할까? 1월 8일, 베이징에 있는 초상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공상은행 등 은행들의 구체적인 요구가 없다고 답했다. 초상은행 직원은 "만약 10만 위안 이상의 현금을 예치할 경우 은행 창구에 직접 가서 예금 업무를 처리할 수 있고 20만원 이상의 현금을 예치할 경우 출처를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단, 당분간 관련 증명서를 제출할 필요는 없다. 중국공상은행의 한 직원은 "현재 베이징 지역에서 10만 위안 이상의 현금을 예금할 때 현금의 출처를 묻거나 관련 증명을 제시하는 등의 요구는 당분간 없다. 특별한 요구사항이 없다. 신분증과 카드, 돈을 가지고 오면 된다."며 말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없고 간단히 요해만 한것이다."며 중국농업은행 관계자는 증명서를 발급할 필요없이 (현금출처) 명확하게 설명하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이 돈이 어떻게 왔는지 전혀 모른다. 이런 경우는 우리가 다시 자세히 물어본다"며 말했다. 베이징 중국은행 법률사무소 류샤오위(刘晓宇) 파트너 변호사는 "2022년 2월 이후 고객의 예금액이 일정 한도에 도달하면 자금 출처 및 기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 시행을 유예했다"고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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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민관리국,외국인의 중국 입국 편의를 위한 5가지 새로운 조치 시행11일 국무원신문판공실주최 기자회견에서 중국이민관리국은 당일(1월11일)부터 외국인(外籍人员)의 중국입국 편의를 위한 5가지 조치를 공식적으로 시행하고 외국인의 비즈니스, 학습 및 관광에 대한 장벽을 더욱 개방하고 높은 수준의 대외개방을 보장하며 서비스는 고품질의 발전을 촉진한다고 발표했다. 5가지 새로운 조치는 다음과 같다. 1. 중국으로 오는 외국인의 도착비자(口岸签证) 신청 조건을 완화한다. 무역협력, 방문 교류, 투자 창업, 친척 방문 및 개인 사무 처리와 같은 비외교적 및 공무 활동을 위해 긴급히 중국에 가야 하는 외국인의 경우, 해외에서 비자를 발급받지 못할 경우, 초청장 등 관련서류가 있다면 공항, 항만에서 도착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2. 외국인은은 베이징서우두공항 등 허브 공항 항구에서 24시간안에 환승 출국하는 경우 검사 등 별도의 출국수속이 면제된다. 이 조치는 베이징서우두공항과 다싱공항, 상하이 푸둥공항, 항저우샤오산공항, 샤먼 가오치공항, 광저우 바이윈공항, 선전 바오안공항, 청두 톈푸공항, 시안 셴양공항 이 9개 국제공항에서 적용한다. 24시간 내 국제 항공권을 소지하고 위에서 언급한 공항 중 하나를 통해 제3국 또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출입국승객은 출국 검사 절차를 받지 않고 직접 무비자로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 3. 중국 내 외국인은 가까운 곳에서 비자 연장, 갱신, 재발급 수속을 밟을 수 있다. 무역 협력, 방문 교류, 투자 창업, 친척 방문, 관광 및 개인 사무 처리 등 비외교적 및 공무 활동을 목적으로 중국에 단기적으로 머물다 체류기간을 연장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체류지 공안기관 출입국관리기관에 비자 연장, 갱신 및 재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 4. 중국에 여러 차례 출입국을 해야 하는 외국인은 재입국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중국 내 외국인이 정당한 이유로 여러 차례 출입국이 필요한 경우, 초청장 등 관련 증빙서류를 제시하면 공안기관 출입국관리기관에 복수입국비자로 바꿔 발급 받을 수 있다. 5. 중국 체류 외국인의 비자 신청서류를 간소화한다. 비자 신청을 할 외국인이 숙박 등록기록이나 기업 영업 허가증 등 문건을 별도로 출력해 제출할 필요 없이 정보 공유를 통해 확인할 것이다. 중국 체류 외국인이 단기 가족방문 및 친척 방문 비자를 처리할 경우, 초청인의 친족관계성명으로 친족관계 증명서를 대체할 수 있다. 중국이민관리국 관련 책임자는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회복과 호전에 따라 대외개방 수준이 끊임없이 확대됐고 해외 기업과 인력의 출입국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민관리국은 주동적으로 관련 주관부문과 협력하여 외국인이 중국에서 비즈니스, 학습, 관광을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이민관리서비스 개혁과 정책제도 혁신을 지속적으로 심화하며 제도형 개방을 서둘러 추진하고 일류 비즈니스 환경 조성에 적극 참여하여 새로운 발전구도의 구축을 촉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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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 젊어 보이려고 4년 동안 건강식품 먹었는데 암 확정 받아 의사: 함부로 먹어서는 안돼주씨는 4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또래보다 피부도, 몸매도 어려 보여 자신의 관리 결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달간 주씨는 자신의 생리 시간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4일이던 것이 지금은 7-10일이 되었고, 이번에는 보름 가까이 지속되었다. 주씨는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으며 검사 결과 자궁 내막이 두꺼웠고 후속 검사 결과 자궁내막암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는 그녀에게 에스트로겐 건강식품이나 약품을 먹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주씨는 '여성이 35세가 넘으면 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면서 차츰 늙어간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에스트로겐을 보충하면 젊음을 연장할 수 있고 피부를 더욱 탄력있게 유지할 수 있어 피부 관리 제품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는 소개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친구로부터 이 건강식품을 구입해 4년 동안 매일 복용했다. 57세의 마씨도 주씨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마씨는 폐경이 된지 5년이 넘었는데 최근 계속해서 원인 모를 출혈을 보이고 있다. 자궁강경 검사 결과 자궁내막암진단을 받았다. 마씨는 늙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여 그도 에스트로겐이 함유된 건강식품을 구입해 4년 정도 먹고 있었다. 원래 또래보다 어려보여서 효과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에서 자궁내막암의 발병률은 해마다 높아져 현재 자궁경부암에 이어 여성 생식기 악성종양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궁내막암의 80-90%는 에스트로겐 의존성이다. 단일 에스트로겐을 장기간 사용하면 자궁내막을 자극하여 자궁내막암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몸을 토양에 비유한다면, 종양은 몸에서 미친 듯이 복제되어 자라는 잡초와 같다. 에스트로겐의 남용은 농작물 밭에 끊임없이 비료를 첨가하는 것과 비슷하므로 잡초가 계속 자라게 한다. 임상적으로 에스트로겐계 건강식품을 함부로 복용하면 자궁내막암의 발병률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간, 신장 등 장기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의사들은 에스트로겐이 여성의 전반적인 생리적 기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감소하는데, 특히 폐경 후에는 불면증, 다몽, 조열, 발한 등의 갱년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에스트로겐의 적절한 사용은 확실히 여성들이 갱년기를 더 잘 넘기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기업에서는 이를 영원한 젊음을 위한 '영약'(灵药)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의사는 '에스트로겐은 양날의 검이며 결핍이든 과량이든간에 신체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스트로겐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 대다수의 여성은 반드시 의사의 지도하에 규범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평생 후회하지 않도록 절대 맹목적으로 남용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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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관광지, 손오공으로 분장해 음식을 먹을 사람 모집, 급여는 월 6,000위안최근 한 관광지에서 손오공으로 분장해 음식을 먹을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정보가 온라인에서 화제다. 누리꾼들은 "직업이 좋다! 진짜 먹는 게 일이다"며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먹다 병 나는 거 아니겠냐"며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허베이성 한단시(邯郸)에 위치한 타이항우즈산(太行五指山) 관광지에서 올린 모집공고이며 관광지에서는 지난 해부터 사람이 우즈산 아래에 깔린 손오공을 연기하려고 했다. 1월 4일, 손오공 역할 구인 정보가 사실인지에 관해 관련 책임자 신씨는 "사실이다. 지난해 봄에 발표한 구인광고로 손오공연기자 2명이 고용돼 일을 하고 있지만 올해 추가로 사람을 더 뽑으려고 한다. 아직 적합한 사람을 뽑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채용하고 있다."며 전했다. 손오공 연기자의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신씨는 "학력사항에 제한이 없다. 주로 손오공을 좋아하고, 일정한 연기 재능이 있고 활기차고 쾌활하며 친화력이 있고 관광객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한다."며 설명했다. 6,000위안의 월급에 대해 그는 "기본급이 있다. 올해는 연기력 등을 보고 평가해 급여에 반영된다. 조건이 우수하다면 더 오를 수 있다. 연기자가 관광객과 소통하는 것을 장려하며 잘 말할 수 있고 라이브를 할 수 있다면 급여도 그에 따라 인상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관광지 손오공 연기자가 배불리 먹어#가 실검에 오르기도 했다. 펑파이뉴스에 따르면, 5월 4일 손오공분장을 한 연기자는 돌무덤처럼 생긴 동굴의 작은 입구 앞으로 상체와 얼굴을 내밀고 관광객들이 내미는 바나나 등을 받아먹고 있었다. 손오공 연기자는 매일 오전 2시간 반, 오후 3시간 정도 근무한다. 관광객이 적을 경우에는 휴식이 보장된다. 반년이 지난 지금 신씨는 관광객들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기자는 동굴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 오래 버틸 수 없어서 교대할 사람을 모집한다. 관광객들이 음식을 계속 줘서 연기자는 점심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며 말했다. 신씨는 "손오공 연기자가 바나나, 간식, 라면, 판면, 통닭, 맥주 등 음식과 음료를 먹고, 다 먹지 못해 남은 다른 직원들과 나누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누리꾼들은 "매일 출근해서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받아먹는 손오공이 너무 먹어뚱뚱해져 동굴 틈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며 걱정하기도 했다. 신씨는 "동굴 틈이 꽤 커서 그런 상황은 없을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두 연기자만 있었다면 2년 동안 먹고 못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한 명을 더 뽑고 싶다"고 전했다. 작년 연말에 한단에 큰 눈이 내렸는데, 손오공 연기자가 "서유기"의 손오공처럼 우즈산 아래에서 추운 겨울 야외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신씨는 "눈이 왔을 때도 많은 관광객들이 손오공을 보러 갔다. 연기자가 일하는 곳은 천연동굴이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동굴 안에는 작은 전기 히터도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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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여러 지역 관광지 입장 무료 혹은 할인, 광서, 안후이, 산동, 사천 등 성(省) 포함최근 동북 사람들이 남방 관광객들에 대한 따뜻한 접대에보답하기 위해 광시성 여러 관광지에서는 동북지역 관광객을 위한 무료입장 등 우대 행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하였다. 바이써(百色) 1월 8일부터 2월 29일까지 바이써시의 모든 A급 관광지(51개)는 동북 3성 관광객에게 입장료 우대 정책을 시행한다. 충쭤시(崇左) 1월 8일부터 2월 8일까지 동북 3성 관광객은 유효 신분증을 가지고 충쭤시 모든 A급 관광지의 첫번째 입장권 전액 면제 정책을 누릴 수 있다. 허저우(贺州) 1월 5일부터 2월 9일까지, 5A급 관광지 황요고진(黄姚古镇)은 첫 번째 입장권을 면제한다. 4A급 관광지 린허고성(临贺故城)관광지, 중공광시성공위기념원관광지, 부천고명성관광지는 장기무료이다. 난닝 다밍산(南宁大明山) 관광구 1월 8일부터 2월 8일까지 동북 3성 관광객은 유효한 신분증을 가지고 입장권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춘절 연휴가 다가옴에 따라 전국의 많은 관광지에서는 입장권 무료, 반값 할인 행사 등 할인 혜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안후이(安徽) 황산풍경구 소식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공휴일이 아닌 매주 수요일(총 12일)에 전 세계 관광객을 대상으로 '입장권 무료 개방의 날'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간쑤(甘肃) "간쑤발표" 소식에 의하면 2024년 춘절 연휴 및 보름날에 명사산 월야천(鸣沙山月牙泉), 옥문관 유적지, 야단(雅丹)세계지질공원이 관광객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동시에, 4개월간의 겨울과 봄 관광 시즌에 막고굴 참관 동굴이 8개에서 12개로 증가하였으며, 비행기를 타고 둔황(敦煌)에 가는 관광객은 관련 증명서를 가지고 시 소속 관광지를 무료로 참관할 수 있다. 티베트(西藏) 포탈라궁의 공식 플랫폼에 따르면, 3월 15일까지 포탈라궁은 무료 예약과 무료방문은 물론 러시아워를 피하고 유동량을 제한하며 예약제를 실시한다. 방문 시간은 9시 30분에서 15시 20분이다. 산시(陕西) 산시성 문화관광청의 소식에 따르면, 2024년 1월 31일까지 화산관광지는 전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화산 입장권 무료 정책(입산 승차권과 케이블카 티켓 제외)을 실시하며, 최소 1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복건(福建) 우이산 관광지 소식에 따르면 2024년 1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관광지는 전국 관광객에게 입장권을 면제한다(관광버스 티켓과 대나무 뗏목 표류티켓은 포함하지 않는다). 쓰촨(四川) “쓰촨 발표” 소식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이전에 아바주(阿坝州), 간쯔주(甘孜州), 량산주(凉山州)와 판즈화시(攀枝花市) “3개주 1개시” 국유 4A급 및 그 이상의 관광지에서는 “티켓 구매 1+1”, 국유 4A급 이하의 관광지에는 입장권 전액을 면제하는 우대정책을 실시하며 구채구, 황룡, 따오청야딩, 쓰구냥산 등 인기 관광지를 포함한다. 산둥(山东) 2023년 12월 8일에 제정(济郑) 고속철도 전노선이 개통된다. 산둥성 문화관광청 소식에 따르면 2024년 2월 8일까지 제정 고속철도를 타고 산둥에 오는 관광객은 3일 이내에 고속철도 티켓으로 국유 A급 관광지 첫 입장료의 50% 이상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천하제일천, 태산, 노산, 이멍산, 태아장고성, 봉래각, 취푸 "삼공" 관광구, 천불산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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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회원제 대형마트 곧 롱화에 오픈 예정!코스트코(开市客)와 선전은 기업과 정부 사이의 '쌍방향 행보'다. 1월 4일, 코스트코 중국 본토 총경리 장수원(章曙蕴)은 선전은 젊고 활력과 혁신이 가득하며 국제화 및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시장 환경이 특히 코스트코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1월 12일에 정식 오픈 후 코스트코(영어: Costco)은 선전에 기반을 두고 대만구(大湾区) 소비자에게 국제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코스트코 선전매장의 오픈은 중국 남부지역에서의 브랜드 사업 배치의 핵심 부분이다. 선전 회원점은 룽화구(龙华区)에 위치해 있으며 코스트코가 중국본토에서 오픈한 6번째 매장이자 중국 남부 지역 최초의 오프라인매장이며 총 면적은 44,500㎡, 거의 15,000㎡에 달하는 쇼핑 공간이 있다. 코스트코 선전회원점은 선전의 도시 발전 잠재력과 경제 허브의 지위를 활용하여 선전 주민과 대만구가정에게 글로벌한 쇼핑경험을 제공하고 만구 소비를 촉진할 것이다. 코스트코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창고형 회원제 할인매장으로 "대규모"와 "세계화"라는 우세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870개 이상의 매장이 있고, 회원은 1억 2천만 명에 달한다. 코스트코는 글로벌화 구매 플랫폼의 장점을 활용하여 생선육류, 미용 및 건광관리용품, 가정용품, 가구 및 계절 상품을 포함하여 4,000개 이상의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제품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택한다. 통일된 높은 수준의 매장경험과 창고형 도매 모델을 통해 소비자는 매장제품을 스스로 탐색할 수 있으며 독창적인 보물 찾기식 쇼핑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2019년 상하이 민항(闵行)에 중국본토 1호점을 오픈한 이후, 화동지역 소주, 항저우, 닝보 등 지역에 많은 매장을 오픈하여 점점 더 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코스트코에 들어가 코스트코만의 특색 있는 고품질 쇼핑경험을 즐길 수 있다. 장수원은 "코스트코는 줄곧 중국을 중요한 전략시장으로 여겼다."며 "올해 우리는 난징에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며 주유소 사업에도 앞장서 중국의 더 많은 지역으로 비즈니스 발자취를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코스트코의 온라인 쇼핑 경험도 디지털 시대의 온라인 소비 트렌드에 발맞춰 올해 안에 점진적으로 시범 운영될 것이며 소비자에게 더 다양한 쇼핑 경험을 체험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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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18)망국민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니유기석 지사는“망국민이 되고 싶지 않으면 반드시 자신의 조국과 민중을 열렬히 사랑하고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국가가 없는 망국민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체험한 유기석은 정치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국제법이나 당국의 보호라는 것은 집권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오직 망국 민중이 각성해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천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재중국 독립운동은 민족주의파, 공산주의파, 무정부주의파로 갈래가 나눠집니다. 유기석은 무정부주의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했지만,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30년간 일제의 잔혹한 착취와 종족 말살 폭정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며 망명과 유랑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생은 한국독립운동사를 이루는 한 부분입니다. 조일문이 가져온 일제의 자료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유기석은 전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획득한 적측 자료를 보고하고 충칭의 조선 혁명 단체와 관계를 강화하기 위하여 나는 조와 함께 징현(景縣)에서 장시(江西) 옌산(铅山)으로 가고 있었다.” 결국 이 자료를 충칭의 임시정부에 보고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일을 끝내고 기지가 있는 안후이(安徽)로 돌아가려고 잉저우(颍州)를 지날 때, 일본제국주의가 투항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폭죽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순식간 거리에는 기쁨과 환희에 벅찬 사람들이 몰려나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동안 민중들이 이렇게 기뻐 날뛰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망국노의 굴레를 벗은 날, 유기석은 너무 기뻐 모든 피곤을 깨끗이 잊어버렸습니다. 온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평소 3일간 걸리던 100km의 길을 이틀 만에 걸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1945년 5월, 유기석 지사는 서울을 방문하여 만 2개월 머물렀으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남은 여생은 중국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역사학자로 살았습니다. 1952년 11월부터 장수 사범대학(江苏师范学院) 역사과 교수로 취임하고 1955년 조선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사범학원이 수저우대학(苏州大学) 사회학원(社会学院)으로 개편된 이후에도 사망참할 때까지 재임하고, 1980년 11월 심장발작으로 75세의 일생을 소주의 자택에서 마무리했습니다. 참고문헌 유기석, 『30년 유기석 회고록』, 국가보훈처, 201년12월박정신 외, 『희산 김승학선생 독립운동사 자료 정리』,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8년정화암, 『이 조국 어디로 갈 것인가』, 자유문고, 1982년.이정규,『우관문존』,(사)국민문화연구소 출판부, 2014년면담 이정식,『혁명가들의 항일회상』민음사, 2006년.국사편찬위원회, 「중국에서의 무정부주의 운동」,『한민족독립운동사』44권한시준, 「백범 김구와 한인애국단」,『한국독립운동과 의열투쟁』, 이봉창•윤봉길 의거 8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홍석표, 「독립운동가 류수인, ‘멀리서 돌아온 그대 떠니니, 다시 이별시를 짓다’」이대학보 2014년 11월 2일.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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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17) 호랑이 잡으로 호랑이 굴로1945년 봄, 일본 괴뢰국 왕징웨이(汪精卫, 1883~1944)정부가 운영하는 국립중앙대학에 반일 사상이 투철한 조선 학생 10여 명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일본 해군은 날마다 패배하고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도 흔들려 추락할 때입니다. 1944년 중앙대학에서 매국노 교장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동맹 휴학 운동을 일으켰는데 당국이 학생운동 간부를 체포했습니다. 그중 신변 위협을 느끼고 학교에서 탈출한 박철원(朴哲遠)과 중국 친구들로부터 일본군 중국 파견군 사령부 연락부(특무기관)에 통역관으로 일하는 조일문(趙一文, 1917~2016)이란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일문은 1980년 건국대학교 제8대 총장이십니다. 조일문은 나카하라 스스무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중국 동학들과 일본 동학들도 조일문을 일본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조일문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입조심을 하면서 조선인과도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연락부(특무기관)에서 상당한 높은 직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조일문은 졸업 후 큰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반일 사업에 참가했습니다. 유기석은 혁명동지들을 일본군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상인과 왕진 의사로 변장해서 난징에 잠입했습니다. 이들과 일은 상의하려면 회의해야 하는데 5명 이상 사람이 모일만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조일문이 일하는 특무기관 응접실에서 회의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연락부에 가서 나카라하 스스무를 찾고 안내에 따라 응접실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유기석은 갈색 군복을 입고 망토를 걸치고 긴 가죽신을 신은 괴뢰군 소장으로 가장해서 응접실로 들어갔습니다. 중앙에 자리 잡고 나카하라 스스무가 통역하면서 10~20분 정도 중·일 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경비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모두 7명이 일본어와 중국어로 대화하고 중요한 일은 조선어를 사용하며 약 1시간 동안 일본군에서 기의를 일으키는 방법, 적의 포위망에서 탈출해 후방으로 오는 길, 일제 점령 지역에서의 연락 장소 등을 알려주었습니다. 난징을 떠날 때, 유기석은 괴뢰군의 고급 군관으로 가장했습니다. 중국 친구 두 명이 호위병 복장을 하고, 완장, 이정표 등을 준비해서 경호해 주었습니다. 기차를 탈 때는 차표조차 끊지 않고 열차에 올랐습니다. 검표원이 차표를 검사할 때, 호위병이 우선 장관을 차에 오른 후 기차표를 사겠다고 하고 기차를 탔습니다. 우호(蕪湖)역에 내려서는 최고급 호텔로 갔습니다. 우쭐거리며 기차역을 나와 인력거를 타고 몇 개 모퉁이를 돌아 비밀지역에 도착해서 하루를 묵었는데 유기석은 호랑이 가죽옷 덕분에 고급 군관 대접을 받았습니다. 나카라라 스스무는 적군 특무기관(연락부)에서 일주일 동안 몰래 살피다가 아주 주요한 기밀자료를 훔쳤습니다. 칭다오(靑島)에서 샤먼(廈門)까지 연해 지역 일본군 방어지도, 미군 상륙에 대처하는 작전계획, 현재의 적 상황도, 중국에 있는 조선인 반일 분자 활동 상황 등이었습니다. 일제로는 심각한 타격입니다. 전략 부서, 방어계획, 그리고 군사 사업이 모두 노출되었으니까요. 조일문은 상급 비밀자료를 훔친 후 일본 군복과 일본 칼을 착용하고 난징을 떠나 유기석을 찾아왔습니다. 일제 특무기관에서는 월요일이 되어서야 조선 관적 인원이 출근하지 않은 것을 알고 조사한바, 기밀문건 한 무더기와 지도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비군에게 뒷조사하라고 명령했을 때 이들은 벌써 안전 지대에 진입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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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16)한교전지공작대(1944~1945)1938년부터 일제는 '육군 특별지원병 명령'을 공포하고 조선 청년들은 징용해서 중국 전쟁터에 종군시켰습니다. 일제는 조선 관적 병사들이 총부리를 돌릴까 봐 별도 대오를 편성하지 못하고 일본관적 병사 부대에 편입시켰습니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중국 전쟁터에 일본군에 소속된 수만 명 조선관적 병사가 총알받이로 등장합니다. 유기석 지사는 일본군에 소속된 조선족 병사들을 주목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소속된 부대에서 “의를 일으켜, 기의(起義)” 즉 한인이 일본 군에 강제 종군하는 불의를 의식하고 탈출하도록 지휘해서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는 일입니다. 임시정부가 류저우에서 충칭으로 이동하는 사이, 유기석의 동지 정현섭(鄭賢燮, 1896~1981)이 일본군에서 탈출한 조선족 병사들을 모아 푸젠(福建) 젠양(建陽)에서 한·중합동유격대를 조직했습니다. 정현섭은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일행이 있는 충칭으로 가려고 하다가 계획을 변경해서 푸젠성 젠양으로 왔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잘 아는 중국동지들과 긴밀히 연락하고 또 우리 동지를 규합하여 한·중합동유격대를 조직한다면 항일투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결성된 한·중합동유격대는 시안(西安)에 주둔하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 협력했습니다.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임시정부는 스촨성 치장(綦江)에서 관내의 모든 독립운동 단체와 당(黨)을 해산하고 하나의 단일조직으로 단합을 시도했으나 최종적 합의를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치권 단합이 실패하자 김신(金信, 1922~2016)과 이하유(李何有, 1909~1950) 등 청년들이 나서서 “상하이에서 지하 공작하던 사람들 중심으로 우리만의 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전방으로 나가겠다”며 김구에게 의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중국군 장교로 복무 중인 동지들을 설득해서 결성한 공작대입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 한·중합동유격대는 유기석과 정현섭 등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선으로 시안에서 서북 방위를 담당하고 있던 중앙군 제34집단군사령관 후종난(胡宗南호종남) 장군의 태항산 유격대 정훈부에 배속었습니다. 이런 일은 아나키스트인 후종난의 스승 예징슈(葉淨秀)와 후장군의 비서이자 결의 형제인 후보이(胡保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 한·중합동유격대는 후방을 교란시키고, 일본군 점령지역까지 잠입하여 산발적인 유격전도 전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군 점령지역 내에 거주하는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군인도 모집했습니다. 모집된 청년들은 서안으로 후송되어 국민당 중앙부가 경영하는 한국 청년훈련반(약칭 한청반)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전지공작대 대원으로 편입되었습니다. 활발한 군인 모집 활동을 통해 결성 당시 28명이던 대원이 1940년 말에는 100여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정현섭이 젠양에 한·중합동유격대를 조직할 때 유기석은 안후이(安徽) 우호(蕪湖)에서 전시공작대를 조직했습니다. 우호에서 기관총을 들고 완전무장을 한 한인 군사 7명이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중국군과 접촉하며 활동하다가 전시공작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유기석은 한국 군인들과 일하려고 수많은 난관을 뚫고 한국광복군 제1지대와 제2지대가 주둔하는 장시성(江西省) 상라오(上饶)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광복군 제1지대와 제2지대는 구대장과 분대장 사이의 반목으로 인해 협력하지 못하고 대원들은 이유 없이 적대시하며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유기석은 상라오에서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동포 연합을 위해 몇 개월 동안 작업을 벌여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어 “제3전구 한교전지공작대를 결성했습니다. 인원은 일본 군대에서 기의를 일으킨 병사와 의사, 상인, 노동자, 학생, 전도사 등 모두 십여 명이고 유기석이 부대장 직무를 맡았습니다. 일본군에서 탈출한 한인 사병들이 중국 정규군이나 유격대에 발견되면 젠양이나 상라오에 주둔하는 한국인에게로 넘겨졌습니다. 한·중 동지와 그 휘하의 청년들, 일본군에서 탈출해 온 장병들 등 한 부대를 편성할 만한 인원이 되자 젠양에 주둔하는 중국군의 협조를 얻어 1939년 초가을에 한교전지공작대를 발족했습니다. 한교전지공작대의 주된 작업은 일제 침략 전쟁을 반대하고 한적병사가 일본군 부대에서 기의를 일으키도록 책동하고 필요하면 일본 병사에 대해서도 반전을 선전했습니다. 1944년과 1945년, 한교전지공작대는 적 점령지인 난징(南京)을 중심으로 공작 활동을 벌였습니다. 특히 조일문이나 박철원 등 난징 중앙대학 출신들과 첩보영화 같은 반일 공작을 전개합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