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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부터 광저우 파저우(琶洲) - 홍콩공항 배편 운행 노선 증편광저우 파저우 홍콩-마카오 여객운송 커우안(口岸)소식에 따르면 9월 1일부터 광저우 파저우에서 홍콩공항 왕복 배편이 3회 왕복에서 4회로 늘어나며 오후 5시 30분 파저우 출발과 오전 9시 30분 홍콩공항 출발이 증편된다. 여행객은 파저우 홍콩-마카오 커우안에서 10여개 항공사의 탑승수속을 진행할 수 있고 캐리어도 직접 목적지까지 운송된다. 8월 25일부터 캐나다항공은 파저우항(琶洲港)에서 탑승수속을 진행할 수 있으며 캣세이항공(国泰航空), 차이나항공(中国航空), 화신항공(华信航空), EVA항공, 프랑스항공, 홍콩 항공, 아시아나항공, 일본항공 등 14개 항공사가 포함된다. 8월 12일부터 파저우항 출입경 해관검사에서 조건에 부합되는 여행객은 정보를 채취한 후 쾌속통로를 통해 통관할 수 있다. 2023년 9월 1일부터 파저우-홍콩공항행 편도 티켓가격은 20위안 인상되며 기타 배편 가격은 변함없다. 파저우항으로 가는 방식은 아래와 같다. 1. 콜택시를 이용해 항구(港口) 주차장에서 하차한 뒤 통로를 따라 해관빌딩(联检楼) 북측 입구로 들어간다. 2. 해주궤도전차(海珠有轨电车)를 이용해 후이잔동(会展东)역에서 내린다. 3. 광저우지하철 8호선을 이용해 파저우역 A출구에서 15분 보행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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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여러 은행: 신용카드 사용금액을 초과납부해서는 안돼최근, 중국 여러 은행은 신용카드 초과납부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공지하였다. 베이징은행, 닝바오은행은 ‘거액의 자금을 신용카드에 넣어 초과납부금(溢缴款) 관리(管控)로 인해 카드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공지하였다. 초과납부금(溢缴款)이란? 카드 소지자가 신용카드에 넣은 자금이 사용 금액을 납부하고도 남은 자금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카드 소지자가 1,000위안을 소비하고 1,500위안을 상환하면 남은 500위안은 초과납부금이다. 초과납부금은 개인신용에 영향을 줄까? 어떤 경우에 신용에 영향을 주는지? 전문가는 ‘신용카드 초과납부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양호한 신용카드 사용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신용카드가 보이스피싱, 돈세탁 등 위법범죄활동에 사용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고 개인신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일부 은행의 신용카드는 일정 기간내에 연체 상환 횟수가 일정하게 누적되면 신용에 영향을 준다’며 소개하였다. 특히 주의할 점은 어떤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여러 개 신청해 놓고 오래동안 사용하지 않아 ‘좀비 카드’(僵尸卡)로 변해 연차료, 카드비용을 지급하지 않거나 제때에 사용금액을 상환하지 않아 일정 기간을 초과했을 때 은행은 중국인민은행에 보고하므로 개인신용에 부정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용카드 초과납부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휴면계좌를 관리하는 조치와 유사하며 금융제품과 서비스를 규범화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 발표한《신용카드 업무의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통지》(关于进一步促进信用卡业务规范健康发展的通知)는 의심스러운 신용카드, 수상한 거래에 대해 법에 의거해 관리조치를 취하며 현금화(套现), 사기리스크를 확인하고 신용카드가 위법범죄활동에 사용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업계인사는 ‘금융감독관리부서는 은행의 신용카드업무에 대해 엄격한 규정이 있는데 은행은 신용카드업무를 규정에 맞게 관리하며 초과납부금에 대해서도 감독관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소개하였다. 전문가는 ‘소비의 회복과 확대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초과납부금은 자금계좌에 오래동안 놔두는 것은 순조롭게 시장에 들어가 소비와 경제성장을 촉진하지 못하고 소비를 촉진하려는 신용카드의 본의와 어긋난다'며 말하였다. 국제금융관리경험을 결합하면 일부 은행은 이자를 0으로 낮추고 일부 관리비용을 받고 있는데 그 목적은 화폐의 유통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며 초과납부금에 대한 관리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신용카드 소지자는 초과납부금을 장기적으로 신용카드에 놔두는 것에 대해 은행은 신용카드업무를 최적화해 일부 관리비용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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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황푸군관학교 진보 한인 청년들 - 전의창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 참여한 몇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조선공산당은 일제 강점기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려는 한 정당입니다. 예전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대립하는 운동으로 보았습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 학계에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특수성으로 인해 한인 사회주의자들은 국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에 앞서 민족문제 해결을 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민족해방을 위해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확인된 바에 의하면, 많은 분이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하기 전, 이미 독립운동에 종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민족해방에 대한 열정이 그들이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정부는, 늦었지만 공산주의도 독립운동의 한 분파에서 출발했다고 인정하고 사회주의자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했습니다. 황푸군관학교 4~6기 학생 중 진보 청년들은 주로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활동합니다. 1925년 4월 조선공산당이 조직될 때 조선공산당 성원들은 대부분 학생과 지식인이었습니다. 1928년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에 지식인이 많고 노동자나 농민이 적으며 대중과 연대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산시켰습니다. 조선공산당이 직면한 과제는 공장이나 농촌, 학교 등지에서 대중을 모아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한 진보 청년들은 어떻게 조선공산당재건을 위해 활동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천도교 당원 전의창 전의창(田義昌, 1904~?)은 평안북도 선천(宜川) 출신입니다. 황푸군관학교 보병과 1사단 보병 6중대에서 훈련받고 졸업 후 만주 고려공산당에서 활동했습니다. 1929년 조선총독부가 삼일 만세운동 이후 10년간 일제통치 발전 상황을 보이기 위해 조선박람회를 개최할 때입니다. 만주의 고려공산당은 이 기회를 이용해 크게 공산주의를 선전할 준비를 했습니다. 전의창도 이 일의 한 부분을 수행하기 위해 경의선(京義線)을 타고 경성으로 오던 중 기차안에서 검거되었습니다. 조선박람회 방해자들이 잠입한다는 정보를 접수한 당국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엄청난 경비를 쓰면서 이들을 잡으려고 애썼습니다. 70일 동안 이만 삼사천 원 돈을 썼으나 단서를 잡지 못하고 긍긍하던 중 전의창을 잡을 때 사동된 경비는 고작 사백삼십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시 고향에서 활동한 것을 보면 전의창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이 된듯 합니다. 전의창은 평안북도 선천 천도교 종리원(宗理院)에 몸담고 있으면서 고려공산당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선천은 기독고와 천도교가 발달한데다 조선 제일의 광산왕이라고 불리는 최창학(崔昌學)이 경영하는 동면(東面) 금광, 백현(白岘) 금광, 삼성(三成) 광업사무소가 있어서 지식층이나 노동자 계층 모두 비교적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럽게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1929년8월 중순, 경찰이 선천 천도교 교당을 수색하던 중 청년 당원 전의창을 체포했습니다. 전의창은 자신은 상인이며 금궤 9개 시가 80백 원어치를 거래한 밀수꾼이라고 진술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전의창은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펑톈(奉天)에서 경성여관을 운영하며 상업에 종사한던 김의종(金義鐘)이란 동료가 금장사를 하러 한국에 들어왔다가 체포되었는데 그가 전의창은 밀수꾼이 아니라 사실 고려공산당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진술해서 신상이 밝혀졌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湖南省档案馆校编, 《黄埔军校同学录》湖南人民出版社, 1989년 7월 97쪽 朝搏开期中(조박개기중)에 入京(입경)한 青年四名(청년사명), 조선일보 1929년 11월 27일[선천서 활동개기, 청년1명 검거] 중외일보 1929년 9월 30일[금궤밀수는 虚傳, 共黨혐의로 被逮] 중외일보 1930년 9월 24일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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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RA코트라 광저우무역관, 중국취업관련 채용에서 입사까지 지원KOTRA 광저우무역관은 중국에서대한민국구직자들의취업관련다양한서비스를지원하고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광저우무역관 담당자를 바로 찾아 문의하시면 됩니다. 문의처: 86-20-2208-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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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MZ들, 출근 보다 해고를 기다린다중국 청년들이 실업수당을 받고자 회사에 직접적인 해고를 요구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탕피은 중국 젊은이들이 취직이 잘 되지 않자 적극적인 근로도 소비도 회피하고 최소한의 생계활동만 수행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누워서 보내는 것을 이른다. 최근 중국 SNS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단어는 ‘N+1’이다. 이는 중국 기업이 직원을 해고하기 위해서는 퇴직금에 1개월의 월급을 더한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탕핑족들은 이 같은 보상을 받고 해고당한 뒤 한동안 편안하게 탕핑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젊은층에서는 해고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국의 토론 사이트인 더우반에 한 누리꾼은 “직장에서 해고될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해고되기 위해 매우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해고되면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유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중국 젊은층의 실업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실업률이 20%를 돌파했으며 이는 전체 실업률 4%의 5배에 해당한다. 청년층 실업률이 폭등하자 당국은 이번 달부터 관련 통계를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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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국 사회와 조선민족 발전에 기여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기업가, 커시안그룹 박걸(朴杰) 회장커시안(可喜安, www.kexian.com.cn)은 중국 10대 건강 브랜드로 가정의료기기, 건강식품 등 다양한 제품으로 중국 소비자들에게 높은 신뢰도를 받고 있다. 커시안 건강생활관은 중국 전역에 500개 이상이다. 건강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이 온열치료기와 온열펄스치료기 체험 및 다양한 건강관련 제품들을 만나며 충성고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커시안그룹은 2004년 설립, 의료기기와 건강식품 분야로 연구 개발, 생산, 판매를 한다. 의료기기, 바이오테크, 장삼원 홍삼, 베이징광지양, 커시안동양전자, 성우신소재, 칭다오커시안도자기, 영흥축산, 추예인테리어, 생태공원 등 10개 이상의 회사가 있다. 커시안 본사는 베이징 창핑구 미래과학도시에 위치한 유일한 단독빌딩의 민간기업이다. 박걸 회장은 흑룡강 출생으로 유년기부터 연길에서 성장하였다. 젊은 시절 취직보다는 창업에 힘을 쏟으며 갖은 고생으로 수십차례 실패를 오갔으나 결국 그의 고난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현재는 중국의 바이두, 한국의 네이버에 ‘박걸 회장’ 이름만 치면 수많은 기사와 내용이 나올 정도로 성공한 기업가가 되었다. 중국 의료기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커시안도 일조를 했다고 보는데 어떤가? 의료기기도 성장하지만 특히 가정용 의료기기와 건강제품이 코로나 이후 급성장하고 있다. 다행히 이 두 분야가 커시안 주력상품으로 온열매트와 홍삼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어 많은 생산량으로 현재 공장이 계속 풀가동 되고 있다. 우리 회사도 지난 코로나 기간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으로 코로나 이후 건강바람이 더욱 거세지며 생각보다 회사가 빨리 회복세로 올라 왔다. 건강산업은 앞으로 꾸준하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커시안의 미래가 밝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앞으로 계획은? 중국에서 온돌매트 동종업계가 몇 천개, 홍삼은 몇 만개가 있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많은 곳이 문을 닫아 안타깝다. 이왕이면 동종업계가 활발히 되어야 이 업계도 활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직까지 우리 사업분야로 브랜드가 정착되지 않았다. 커시안은 이미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따라서 건강브랜드로 확고한 자리를 잡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우리 목표는 커시안 모든 제품이 중국을 넘어 세계 1등이 되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학생들한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강조하는 기사를 봤다 젊은 날에 다들 어렵기에 공부보다 생존이 우선인 시절이었다. 사회에서 몸으로 배우고 부딪치며 사업을 성장시켰지만, 한편으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책으로 채웠기에 지금의 커시안 그룹이 만들어졌다 생각한다. 그래서 외부에 대학 강의 요청이나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책을 많이 읽으라 한다. 좋은 책을 읽으면 직원부터 주변 지인들에게 읽은 책을 선물한다. 개인적으로 앤드류 카네기가 쓴 책을 좋아한다. 그가 쓴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박걸 장학금’, 자선사업가, 다양한 사회 공헌은 카네기와 많이 닮았다 과찬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기부와 지역사회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은 기업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특히 내가 조선족으로서 민족인재양성은 책임이고 의무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영속성을 위하여 민족문화사업과 어르신들 후원은 효를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이며 민족문화 보존은 곧 조선민족의 존재와 같다. 커시안 공장이 연변에 있다. 연변 지역발전을 위해서라도 나는 우리 회사를 더욱 발전시켜 더 많은 사회공헌을 하길 원한다. 전체적으로 경기가 많이 좋지 않다. 후배 사업가들한테 조언을 부탁한다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생각에 달려있다. 무엇을 하던 최고를 바라보고 해라. 일하면서 힘든 일은 꼭 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하자고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 생각을 안 해서 그렇지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다잡아 계속해서 정진해 나아가라. 직원들한테도 늘 하는 말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라’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회사가 지지할테니 꿈을 펼치라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하려면 빠르다.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부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며 돈은 사회 복지를 위해 환원해야 한다’_앤드류카네기 커시안 사옥을 둘러볼 때 각 층의 모든 설비가 직원들 눈높이와 업무환경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또한 가는 곳 마다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모두가 일어나서 인사를 건네어 주었다. 중국 전역에 커시안 고객이 급성장으로 늘어남은 바로 내부의 힘이 강하다는 것. 그리고 박걸 회장의 정신이 그대로 기업문화에 깊히 담겨 있음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박걸 회장, 그가 수없이 많이 읽은 카네기 책이 앤드류카네기와 많이 닮게 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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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황푸군관학교 진보 한인 청년들 - 김호원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 참여한 몇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조선공산당은 일제 강점기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려는 한 정당입니다. 예전에는 일제 강점기 한국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대립하는 운동으로 보았습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 학계에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특수성으로 인해 한인 사회주의자들은 국제적인 사회주의운동에 앞서 민족문제 해결을 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민족해방을 위해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확인된 바에 의하면, 많은 분이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하기 전, 이미 독립운동에 종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민족해방에 대한 열정이 그들이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정부는 늦었지만, 공산주의도 독립운동의 한 분파에서 출발했다고 인정하고 사회주의자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했습니다. 황푸군관학교 4~6기 학생 중 진보 청년들은 주로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활동합니다. 1925년 4월 조선공산당이 조직될 때 조선공산당 성원들은 대부분 학생과 지식인이었습니다. 1928년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에 지식인이 많고 노동자나 농민이 적으며 대중과 연대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산시켰습니다. 조선공산당이 직면한 과제는 공장이나 농촌, 학교 등지에서 대중을 모아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한 진보 청년들은 어떻게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활동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김호원 : 강계군 조선일보 지국 기자 김호원(金浩元, 1905~?)은 황푸군교 5기 보병과 소속이며 연락처는 펑톈성(奉天省) 통화현(通化县) 강산(岗山) 산다오거우(三道沟) 다취엔옌동(大泉眼東)입니다. 본적은 한국이라고만 기록되었습니다. 황푸군교 5기생은 1927년 8월 졸업했습니다. 김호원은 평안북도 강계에서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28년 코민테른이 조선공산당을 해체한 직후인지라 조선공산당원들이 노동자, 농민, 학생 대중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을 선전할 때입니다. 코민테른 한국위원회가 5월 노동절을 앞두고 메이데이의 의의를 일반 노동자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투쟁을 전개하며 격문을 살포했습니다. 1929년 3월, ‘조선 학생 청년 대중아 궐기하라’, ‘검거된 광주의 조선 학생을 즉시 탈환하라’,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대한다.’ ‘무산계급은 전면 투쟁을 개시하라’는 등 등사판에 찍은 전단과 유인물이 길거리나 영화관, 전신주에 나붙었습니다. 전단과 유인물은 경성 시내는 물론이고 전 조선 각지에도 발송되었습니다. 일본경찰은 광화문우편국과 경성우편국에서는 지방으로 발송하려는 격문 8천 장을 압수했습니다. 전국 경찰에 비상이 걸리고 1,500여 명이 검거되었습니다. 1929년 11월, 김호원은 강계군 조선일보 지국 기자로 재직하면서 조선 적화운동을 전개하다가 검거되었네요. 죄명은 치안유지법 위반입니다. 강계군 당지의 농민사, 신간회, 청년동맹과 협력하면서 공산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불온 문서를 배포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일본 경찰은 300여 명을 체포하고 강계공산당이 벽지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전 조선을 적화하려는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김호원을 비롯한 4명은 송치되고 나머지는 석방되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참고문헌 및 자료]湖南省档案馆校编, 『黄埔军校同学录』,湖南人民出版社,1989년 7월.「六種檄文(육종격문)을 印刷(인쇄) 全朝鮮各地(전조선각지)에 配付(배부) 」『동아일보』호외, 1929년12월 28일.「벽지부터 점진적으로 전조선 적화기도 」, 『중외일보』, 1929년 11월 12일.「南滿靑總中心(남만청총중심)으로 三百餘名網羅活動(삼백여명망라활동)」, 『조선일보』, 1929년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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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때 새로 생겨난 동반촬영(陪拍) 서비스, 많은 00后들도 동반촬영업에 종사올해여름 방학에 샤오홍슈(小红书)와 떠우인(抖音) 등 소셜 플랫폼에 “동반촬영”(陪拍)이라는 신흥 직업이 조용히 떠올랐다. 소위 동반촬영은 일종의 "상업 여행 촬영"같은 것으로 사진사는 고객에게 사진 촬영과 사진 보정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함께 쇼핑도 할 수 있고 관광지를 유람할 수 있는데 마치 돈을 주고 사진을 찍고 놀수 있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것과 같다. 변호사는 "동반촬영은 현재 아직 발전 초기에 있어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서비스 표준이 부족하며, 거래 쌍방이 사전에 서면 문건 혹은위챗 문자 등 방식을 통해 서비스 내용과 비용 세부 사항을 명확히 정하는 동시에 초상권, 저작권 및 개인 프라이버시와 신변 안전 등 문제에 주의해야 한다'며 당부하였다. 샤오홍슈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동반촬영” 키워드를 검색하면 여러 도시의 동반 촬영 사진사가 자신의 서비스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검색할 수 있다. 그들의 가격은 일반 한 시간에 20-80위안이고, 촬영 기기에 따라 다르며 휴대폰이나 CCD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비교적 싸고, 만약 필름 제작에 대한 요구가 비교적 높다면 돈을 추가하여 더 전문적인 카메라를 선택할 수 있다. 또한 메이크업, 보정 등 부가 서비스도 있지만 가격은 특별히 높지 않다. 일반적으로 메이크업 한 번에 20위안이나 사진 한 장에 5-6위안이다. 상업 촬영과는 달리, 동반 촬영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진입장벽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휴대폰 한대로 대부분의 사진을 촬영하고 보정할 수 있으며, 사진 촬영은 주로 모멘트, 샤오홍슈 등 소셜 플랫폼에 많이 사용된다. 모든 동반촬영 서비스가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반촬영은 신흥 사물인 만큼 가격도 싸고 진입 장벽도 낮아 평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양극화 양상을 띠고 있다. 또한 다수의 동반촬영 사진사들은 촬영 장소, 비용 등 세부적인 사항은 모두 고객과 위챗이나 전화로 약속한 것이며, 서면으로 합의하지 않았고, 위반 책임도 나누지 않는다고 밝혔다. "동반촬영"은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일부 전문 사진작가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아이미디어자문 수석 애널리스트 장이(张毅)는 '동반 촬영은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의 사회적 관계와 사진 촬영에 대한 수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찍는다”와 “놀아주는 것” 두가지 체험을 강조하여 젊은이들의 사회적, 정서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장이는 '동반촬영이 성숙한 규모로 발전하려면 두 가지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첫째, 지금처럼 분산되고 진입장벽이 낮은 형태가 아닌 전문적인 플랫폼 규격과 지침을 갖추는 것이다. 둘째, 서비스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기존 전문촬영기관과 비교할 때 동반 촬영은 더 유연하고 친근하게 촬영할 수 있어 전통적인 가이드 제품 사고를 도입할 수 있다. 광저우를 예로 들면, 동반 촬영사는 사진을 찍은 후 고객에게 광저우의 인문 풍경을 소개할 수 있고, 여행 코스를 계획하고, 입장권을 예약하고, 광동 요리와 미식을 대신 주문하는 등 "동반촬영"을 더욱 전문적이고 전면적인 새로운 가이드모델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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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동차 충전소 가격 87% 인상! 차주들: 충전이 너무 비싸다최근 여러 지역의 공공 충전소 충전 가격이 인상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7월 이후 정저우, 상하이, 칭다오, 충칭 등 지역의 여러 브랜드의 충전소 충전 가격이 1%에서 2배로 올랐다. 상하이의 한 신에너지차 차주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 충전소 충전 가격이 도당 1.15위안이었는데 지금은 2.15위안으로 87%나 올랐다고 말했다. 상하이 외에도 안후이성 일부 브랜드 충전소는 6~7월 두 차례 연속으로 0.2위안 올랐고, 칭다오 일부 브랜드 충전소 비용도 1~2% 올랐다. 여러 지역에서 신에너지 충전소 충전 가격이 오르자 적지 않은 전기차 차주와 새로 구입하는 사람들은 전기차 사용 비용이 연료차를 추월할 것이라는 걱정을 내비치고 있다. 신에너지 충전소 충전가격은 전기요금과 서비스요금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가격 인상의 원인은 전기요금의 상승, 충전소 서비스요금의 인상 혹은 둘 다 동시에 가격이 인상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낮 12시에 퇴근하면 상하이의 택시기사 소사(小司)는 가까운 충전소에 가서 충전을 한다. 7월부터 그는 점심 전기 가격이 1.15원에서 1.9원으로 크게 올랐음을 느꼈다. 7월 2일 충전서에 따르면 27.57도를 충전했는데 10위안의 보조금을 받고 40위안을 썼다. 전에 그는 34.88도를 충전하는 데 26위안도 들지 않았다. "충전소 충전 가격이 단번에 두 배로 뛰었다. 1도당 1원 정도 올랐다"며 밝혔다. 상하이의 스타충전소 고객센터 직원은 '충전소 충전은 시간대별 전기요금을 사용한다'면서 상하이의 운전자들이 뚜렷한 가격 인상을 느끼는 이유는 상하이시가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첨봉평곡'(尖峰平谷) 4개 시간대 전기요금을 시행하기 때문이며, 기존 '펑핑구'(峰平谷) 시간대를 기초로 12시부터 14시까지 '첨시'(尖时)로 구분해 이 시간대에 전기요금이 가장 높다. "전력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운전자는 할인 시간대를 선택해 충전하는 것이 좋다."며 소개했다. 소사는 '지난 한달 동안 매일 15시가 지나면 즉 평상시 에 전체 충전소는 택시와 인터넷 예약 차량으로 가득 차 있고 충전소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떤 기사는 심지어 3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어느 시간대에 충전량이 증가하면서 운영비가 많이 들어 서비스 요금이 비싸다." 상하이 지커(极氪) 신에너지차 충전소 고객센터는 최근 충전소 전기요금과 서비스 요금이 모두 다른 정도의 상승폭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2015년부터 신에너지차 공공 충전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충전소 운영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다. "충전 1전" "서비스 요금 0"…2021년엔 충전소 사업자들이 신에너지차 차주를 놓고 돈 싸움을 벌였다. 전기요금이 들쑥날쑥한 상황에서 서비스 요금을 낮추는 것은 각 브랜드 충전소들이 사용자들을 끌어들이는 경쟁 수단이 되었다. 올해 6월까지 전국의 충전 인프라는 누계 665만 2천 대이며, 그 중 공공 충전소는 214만 9천 대이다. 국내 신에너지차 보유량은 1,620만 대이며, 전체 충전소 자동차 비율은 1:2.44, 공공 충전소 자동차 비율은 1:7.54이다. 제3 기관에 따르면 2030년까지 중국의 신에너지차 보유량은 6,420만대에 달할 것이며 1:1 충전소 자동차 비율 목표에 따르면 충전소 시장은 아직도 거대한 공간을 가지고있다. 올해 6월, 재정부, 세무총국, 공업과 정보화부는 신에너지차 차량 취득세 감면 정책을 2027년 12월 31일까지 4년 더 연장한다는 공고를 발표하였고, 신에너지차 구입 보너스 논란도 계속 끊이지 않고 있다. 정책의 강력한 지지 하에 많은 소비자들은 정책의 '동풍'을 타고 신에너지차를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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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젊은이들의 새로운 인기 재테크, "1개월에 한 알씩 금콩(金豆) 모으기금 액세러리, 금괴(金条), 금화(金币) 등 실물 금을 사는 것은 사람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금 투자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적지 않은 금 액세서리 브랜드에서 미니금, 금콩, 황금해바라기씨 등 작은무게의 제품을출시하기 시작했으며 가격은 1그램에 약 500여 위안이다. 금콩을 구매해 본 많은 네티즌들은 이를 젊은이들의“재테크 방식”이라고 부르며 심지어“사면 가치를 보장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검색해보니 많은 네티즌들이 자신이 구매한 작은 무게의 금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공유했다. 누군가 모은 금콩은 이미 투명 유리병에 가득 차 있었다. 댓글에는 "돈을 모으는 것보다 금콩을 모으는 것이 낫다", "펀드를 사는 것보다 금콩을 사는 것이 낫다"는 글도 자주 올라왔다. 금콩을 모으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재테크 방식이 되었다. 베이징에 사는 류 여사는 친구 소개로작은 무게의 금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월 금콩을 한 알씩 모으는 것이 그녀의 재테크 목표인데, 그녀가 보기에 이것은 정기 투자 재테크와 비슷하기에 장기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한 달에 한 알씩 모아서 작은 병에 금콩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면서 만족해요." "금콩"이란 일반적으로 무게가 1g그램 정도인 황금을 말하며, 가공비가 없고 시장 시세에 따라판매 가격이 정해져 현재 500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수십 그램, 수백 그램의골드바와 비교했을 때 1g의 금콩은 구매 문턱을 낮춰 금에 투자하려는 젊은 층에게 기회가 되었다. 금콩은 금괴(金条) 투자에 상응하는 현금화경로에 속한다. 베이징 모 쇼핑센터 1층에서 금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 직원은 "최근 매장 안에 많은 소비자들이 와서 금콩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며 "금 가치가 유지되고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으며 금콩 1그램에 수백 위안이니 비교적 인정한다"고 말했다. 매장 진열장에는 무게가 50g이 넘는 금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매장 직원은 금콩은 투자 골드바의 일종이며, 매장에는 다양한 소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그램의 투자 골드바가 있다고 한다. 1g짜리 금콩이든, 큰 그램의 골드바든, 브릭스든 소비자가 투자목적으로구매하는 경우위험 부담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투자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요? 1. 재테크 투자는 개인의 위험선호, 투자능력, 투자경험 등 요소에서 출발하며 개인은 자신의 자산배분을 잘 해야 하며, 어느 한 가지 투자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는다; 2. 기본적인 투자 재테크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특히 귀금속 투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3. 자신이 알고 있는 상품에 투자해야 된다. 요즘 젊은이들의 투자는 "양떼효과"가 발생하기 쉬우므로 모두가 사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테크 투자는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