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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김종국 회장 - 골프로 하나 되는 모습에 새로운 원동력 찾아광동성하나골프협회 중산골프협회 제3대 회장 김종국 회장 ■ 고향: 흑룡강성상지시 I 1975년생 ■ 기업: 高围精密模具有限公司 ■ 골프구력: 4년 중산골프협회 연혁 제1대 정용택 회장 (2008년-2013년) 제2대 강룡무 회장 (2013년-2018년) 제3대 김종국 회장 (2018년-현재) 김종국 회장은 골프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업에 좋은 영향력을 준다고 확신한다. 그에게 골프는 사교이면서 사업의 장을 마련해 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게 해 주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 지고, 자연스레 사업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인맥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 사업이 더 번창해졌다. 하지만, 골프에 매진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주말마다 오전에 골프를 치고 오후 시간은 온 마음을 다해 이쁜 두 딸과 놀아준다는 딸바보 아빠이다. 그리고 평일에는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매일 최소 30분~1시간 정도는 골프 연습을 한 후 업무를 시작한다. 축구 운동신경을 골프에 접목시켜 단기간 내에 실력을 제고 시켰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으로 실력을 다져가고 있다. 골프는 열정과 노력이 실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김종국 회장은 짧은 골프 구력이지만 홀인원 한 번과 지난 한 해는 300일을 넘게 골프를 쳤을 만큼 지독한 골프 매니아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천진에서 몇 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어느 날 중산에 있는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중산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눌러앉은 중산 토박이다. 그리고 중산 삼성에 취직해 15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2018년 과감히 자신의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안정된 회사를 그만 두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생각해서는 결단히 필요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삼성과 연결된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하다보니 삼성과의 인연은 사업에서도 지속되어 독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골프는 사업을 시작으로 여유시간이 많던 참에 골프를 즐기면서 좀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다. 중산은 중국에서 골프역사가 있는 도시이다. 유명한 두 개의 골프장이 있는데, 하나는 중국 최초의 골프장인 온천골프장(温泉高尔夫球场)과 또 하나는 중국 10대 골프장 중에 6위를 차지하는 장강골프장(长江高尔夫球场)이 있다. 과거에는 골프 수요가 많았으나 최근은 일본회사가 적어지고 조선민족도 많지 않다 보니 중산골프협회 회원은 30여 명으로 조선민족 뿐만 아니라 한족도 포함되어 주말마다 3, 4조로 나뉘어 골프를 즐기고 있다. 김종국 회장은 회장직을 맡으면서 골프에 대한 애착심이 원동력이 되어,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하는 동생들에게 골프채도 선물하고 틈틈히 골프 동작도 가르치고 있다. 중산골프협회 뿐만 아니라, 고향 모임에서도 골프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불러 소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또 쿨한 성격의 김종국 회장은 누구에게나 맞춰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 제각기 다르고, 실력도 다르지만 사람의 성향과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국적, 다른 민족, 다양한 사업분야, 각기 다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운동으로 만나 서로 부대끼며 하나 되는 모습이 골프의 큰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프도 시합이라 긴장한 분위기가 있기 마련인데, 모든 불화의 근원은 불명확한 룰 때문이라고 판단하기에 내기를 하든 순수한 게임을 하든 사전에 미리 룰을 명확히 정하고 시작하면 불편할 일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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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내놓은 99위안 호텔로비 숙박제품이 화제가 되어최근, 절강 타이저우(台州) 모 호텔에서 내놓은 99위안 호텔로비 숙박제품(大厅睡沙发)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상기 호텔은 타이저우 완다광장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5월 1일 체크인, 5월 2일 체크아웃을 검색하면 99위안 로비에서 숙박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오며 제품 페이지에 0.8m 소파침대 이미지가 있고 제품에 1인 조식과 2인 야식이 포함되어 있다. 호텔 직원은 '확실히 99위안 호텔로비 숙박 제품이 있으며 기타 시설(洗浴设施)은 없고 공용 티비가 있다'며 소개하였다. 사람들의 호기심에 대해 직원은 '우리도 많이 많이 이상하지만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전했다. 하지만 4월 24일에는 플랫폼에서 99위안 호텔로비 숙박 제품을 조회할 수 없었는데 직원은 '이미 예약되어서 제품을 내린 거 같다. 로비에 소파가 몇개 없다'며 말했다. 상기 호텔의 5월 1일 체크인, 5월 2일 체크아웃 하는 호텔방의 보편적인 가격은 700~900위안이며 400위안 좌우의 더블룸(城景大床房)도 판매하고 있었다. 1.5만 명이 '호텔을 예약하지 못했을 경우 99위안의 호텔로비에서 하룻밤을 지내겠는가?'는 설문조사에 약 70%의 누리꾼들은 '아예 일정을 바꾸겠다'는 태도였다. 그들은 '집에서 누워 있는게 더 편하지 않은가?', '이렇게라도 여행을 가야 할까?'며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면 '수요가 있으니 시장이 있는 것이다. 로비에는 당직서는 사람도 있어 더욱 안전하다', '여행 예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여행할 수 있고 서로 이해하자'는 반응도 있었다. 현재 상기 호텔은 5.1절 기간 호텔방은 거의 모두 예약됐으며 220위안 더블룸만 몇개 남았다. 로비에서 숙박할 때 이불을 제공하는지, 어떻게 세면하는지 등 질문에 호텔직원은 '손님들을 로비 소파에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며 룸으로 안배해 예약되면 일반 더블룸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5월 3일 전에는 예약할 수 없으며 한정판매기 때문에 이미 플랫폼에서 내렸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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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여성, 2만 위안 내고 고양이에게 물고기 가죽 이식?! '치료하다 그만둘 수 없었다'최근, 심천 남산구 싸허지역구(沙河街道) 소방구원소는 '주민이 싸허골프장 주변 아파트내에서 2m짜리 구렁이를 발견하였다'는 제보를 받았다. 싸허지역구 응급관리소, 백석주 동지역구 응급관리소는 즉시 소방원을 현장에 파견했으며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주민들에게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구렁이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며 당부하였다. 현장에 도착한후, 소방원은 무관 인원들을 흩어지게 하고, 주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경계선을 세웠다. 구렁이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2명의 소방원은 개인방호를 철저히 하고 분공, 협조하여 구렁이를 주머니에 담았다. 현재 소방원은 구렁이를 심천시 야생동물구원센터에 넘겨주었으며 구원센터 직원은 '구렁이 무게는 10여 키로, 길이는 약 2m되는 미얀마구렁이이며, 국가 2급 보호동물이다'며 소개하였다. 남산구 싸허지역구 소방원은 '날씨가 차츰차츰 더워지고 기온이 상승하면서 뱀류의 활동이 빈번하다. 만약 뱀류가 집 혹은 차 안에 들어간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맹목적으로 쫗거나 잡으려 하지 말고 119에 연락에 도움을 구해야 한다'며 조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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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여성, 2만 위안 내고 고양이에게 물고기 가죽 이식?! '치료하다 그만둘 수 없었다'최근, 광서 베이하이(北海)의 모 여성이 버려진 고양이에게 2만 위안 들여 물고기가죽을 이식해줬다는 내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차이여사는 '애완동물 구조단톡방에서 가죽이 벗겨진 고양을 보았다. 그리고 데려왔다'며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물고기가죽 이식은 의사가 제안해 준 것이다. 병원에서도 처음으로 이런 수술을 한 것으므로 매일 병원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2차례 수술을 진행했다. 현재 고양이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이며 음식도 잘 먹는다'며 말했다. 많은 누리꾼들은 '물고기가죽을 직접 고양이에게 이식하다니?', '좋은 사람은 일생 평안하길 바란다'며 기이하고 지지하는 반응이 있는 반면 '고양이에게 2만 위안을 써다니?', '물고기는 생명이 아닌가?'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차이여사는 '온라인의 댓글들이 나에게 많은 고민거리가 되었다. 가족들 몰래 고양이를 구해준 것이며 처음에 병원에서 3~4천으로 말해주었는데 비용이 이렇게 많을 지 몰랐다. 하지만 치료하다 말고 그만둘 수도 없었다'며 말했다. 그러면서 '고양이를 구한 후 다른 사람이 데려가 키웠으면 했는데 지금은 아마 키우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계속 키우려 한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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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민폐(数字人民币)로 급여 받으면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최근, '모 도시에서 디지털 인민폐로 공무원들의 급여를 지급한다'는 소식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강소성 창수시(常熟市) 지방금융감독관리국과 창수시재무국은 《급여 전체를 디지털 인민폐로 지급하는데 관한 통지》를 발행하였다. 통지에는 5월부터 현지 공무원, 사업인원(事业人缘), 각급 국자단위(单位)인원들의 급여를 모두 디지털 인민폐로 지급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디지털 인민폐로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은 사업단위에서 직원급여를 직원 개인의 디지털 인민폐 지갑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하며 지난 해부터 일부 도시들에서 시도를 해왔었다. 예를 들면 강소성 타이창시(太仓市), 소주시 일부 지역에서 공무원들의 급여를 디지털 인민폐료 지급하였다. 그외에 산동성 지난시, 절강 닝보시 등 도시에서도 기업과 행정사업단위의 직원들에게 디지털 인민폐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호남의 모 여성은 '우리는 디지털 인민폐로 급여를 받은지 1년 됐다'며 말했다. 그녀가 근무하는 직장은 호남 디지털 인민폐를 보급하는 시범단위 중 하나이다. 그녀는 '디지털 인민폐로 받은 급여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디지털 인민폐 APP를 다운하면 된다'며 전했다. 소주 모 사업단위의 직원은 '급여를 받은 후 디지털 인민폐를 은행카드로 이체해 소비할 수 있고 위챗, 즈푸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며 밝혔다. 디지털 인민폐의 사용장소가 부단히 늘어나면서 디지털 인민폐로 받은 급여를 사용하는데도 더욱 편리해졌다. 강소 양저우(扬州)에서 주민은 디지털 인민폐 지갑의 돈으로 아이의 식대비용을 지급할 수 있었고 소주에서는 가스비, 수도비, 전기비도 디지털 인민폐로 지급 가능했고, 대형 공용 주차장, 백화점에서도 결제할 수 있었다. 2022년 년말까지, 중국 여러 지역에 디지털 인민폐를 개통하는 수량이 백만이 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의 누계 거래금액은 천 억 위안이 넘었다. 비록 디지털 인민폐가 차츰 생활에 스며들지만 여전히 개통하지 않았다는 누리꾼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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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비대면 의료' 지속적 성장 분석 (중국어 뉴스 원문)중국의 비대면 의료 시장이 포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분석 자료이다. http://news.sohu.com/a/668134395_11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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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모터쇼(上海车展)에서 BMW MINI직원이 중국인과 외국인을 차별대우?!최근,누리꾼은 '상하이 모터쇼 BMW MINI부스에서 직원은 아이스크림이 없다며 중국인 방문객에게 아이스크림을 제공하지 않았다. 반면 해외 방문객은 아이스크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현장 직원은 먹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며 반영하였다. 현장 방문객이 직원들의 행위에 대해 이의가 있자 남성 직원은 아이스크림 보온박스를 가져갔으며 현장 영상이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많은 누리꾼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사건 발생후 MINI중국은 웨이보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MINI에서 준비한 '상하이 모터쇼현장선물(甜宠)’행사는 전시장을 구경하는 어른과 아이들에게 달콤함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내부 관리 착오와 직원들의 실수로 여러분들의 불만을 자아낸 점에 대해 사과하며 앞으로 관리를 개선하고 내부교육을 강화할 것이다며 밝혔다. 사건 연루 아이스크림 브랜드 Luneurs는 ‘Luneurs에 관한 영상, 여론과 보도를 보고 많이 유감스러웠고 제1시간에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 Luneurs브랜드는 상하이 모터쇼 기간 BMW MINI브랜드 활동의 현장 운영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단지 아이스크림제품을 공급한 업체이다. 영상속 두 직원과 구제적인 서비스는 Luneurs회사측에서 책임진 것이 아니며 Luneurs브랜드와 상관없다’며 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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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파저우 홍콩-마카오 여객운송 부두 임시 대외개방!광저우시에서 홍콩국제공항까지 2시간4월 10일, 교통운수부의 허가를 받고 파저우 홍콩-마카오 여객운송부두가 임시 개방되었다. 이는 파저우 홍콩-마카도 여객운송 부두가 머지 않아 곧 시운행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부두가 사용에 투입된 후, 여행객은 쾌속선을 타고 약 120분이면 홍콩국제공항으로 직행할 수 있다. 부두가 사용되기 시작하면 여행객은 1층에서 안전검사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2층 출국장에 도착할 수 있다. 여행객은 출발대기실 창구에서 배표를 구입하거나 셀프로 티켓을 찾아 홍콩국제공항 체크인을 하고 출국장 검사통로를 통해 승선구에 도착할 수 있다.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한후 별도로 출입경 수속을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출국 여행객은 2층에서 수속을 마친 후 연결 통로를 통해 고속 여객선에 오를 수 있으며 1등석 60개, 일반석 200개가 있다. 만약 여행객이 부두에서 탑승수속(登机手续), 탑승권을 받으면 파저우 부두에서 캐리어를 보내고 목적지에서 캐리어를 찾을 수 있어 무거운 캐리어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부두건설 1기는 2척의 캐속 여행객선 '하이주호'호(海珠湖号)와 '하이주완'호(海珠湾号)를 투입시켜 파저우와 홍콩국제공항노선을 개통한다. 여행객은 쾌속선을 탑승하고 파저우에서 홍콩국제공항까지 약 120분이면 직행할 수 있다. 부두건설 2기는 주해를 포함한 따완취 도시간 수상 여객운송노선(大湾区城际水上客运航线)을 개통할 예정이며 파저우에서 홍콩 시내, 마카오 국제공항을 오가는 노선도 증편할 예정이다. 시민 조모는 '부두가 개통되면 홍콩국제공항으로 가는게 너무 편리하다. 큰 짐, 작은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배를 타면 경치도 구경할 수 있다'며 '4월 18일 홍콩에서 미국으로 출발하는 항공권을 구입했는데 오늘 부두에서 어떻게 배표를 구입해야 되는지 알아보려고 왔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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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러췬사러췬사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이 업무를 본 곳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류저우 청사입니다. 1927년, 도로공사가 류저우-충칭 구간에 도로를 건설하고 류저우 종점에 러췬사라는 건물을 세웠습니다. 독일 기술자가 설계하고 상하이 건축회사가 지었는데 당시로서는 전화기가 있는 유일한 고급 호텔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러췬사 지점이 구이린(桂林), 충칭(重慶), 바이서(白色) 등지에도 세워졌습니다. 어떻게 러췬사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이 마련되었을까요? 경위는 이렇습니다. 2000년 9월, 김구 지사의 아들 김신(金信)과 친분이 두터운 전 고려대학교 허세욱 교수께서 류저우를 방문하여 정부 인사를 만났습니다. 허교수는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사무를 보았던 곳이 잘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진이라도 있으면 김신 선생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는데 이 요청이 류저우 정부 인사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류저우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곧바로 문화부 산하에 과제조(課題組)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류저우에서 활동한 역사를 고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허세욱 교수의 집에서 대략적 상황을 이해하고 독립기념관, 백범기념관 등을 참관하며 역사적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류저우에서 조직된 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원으로 참여한 신순호 여사의 집도 방문했습니다. 한국 방문을 통해 류저우에서 성립된 광복진선청년 공작대의 사진과 대원들의 명단과 주소 등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 고찰단도 류저우를 방문했는데 류저우시 문화부는 전문가와 학자들을 동행시켜 고찰단의 활동을 도왔습니다. 한국 측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류저우에서 활동했고, 여기서 성립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대해 한국 학술계 관심이 많은데 만약 고찰내용이 확실하다면 옛터를 복원하고 싶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류저우 측에서 이 요구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2002년 2월, 두 번째 한국 고찰단이 류저우에 와서 역사적 현장을 조사했습니다. 류저우시 정부는 상하이, 난징, 충칭 등으로 조사팀을 보내 많은 관련 서적, 사진,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당시 류저우에서 항전에 참전한 노인 좌담회도 개최하여 역사적 사실을 고증 했습니다. 이렇게 5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4년 11월, 뤄췬사에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 활동 진열관”을 개관했습니다. 1938년 10월, 류저우에 체류하는 한인은 약 120명이었습니다. 러췬사로 입주한 임시정부 요원들은 숙소에 사무실(办事处이라는 간판을 걸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김구를 제외하고 이동녕, 조완구, 이시영, 조병조, 차리석, 지청천, 양우조 등 임시정부의 주요 요원들이 다 집결했습니다. 러췬사에 입주한 임시정부 요원들은 충칭에 있는 김구와 한국 동포들과 연락을 취하고, 류저우의 당정군 기관 및 각 항전단체와 연락을 하면서 중국 정부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또 한편 많은 회의를 하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교훈을 종합하여 목전의 항전 형세를 분석하고 향후 어떻게 해야 할지 전략과 대책을 세웠습니다. 류저우 정부가 러췬사에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활동 진열관”를 개관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도 류저우 정부가 우리의 역사를 잘 보존해 주고 있습니다.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활동진열관”을 개막하던 날, 80세의 중국인 항전 노전사 리멍추(李夢秋)가 참석해서 당시 한인들이 즐겨부르던 ‘타향한야곡(他鄕寒夜曲)’을 기억하고 불렀습니다. 이곳에 오느라 유랑하길 얼마나 긴 세월이었던가. 조국이 그리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지만 눈 앞이 흐릿하니 어느 때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오. 조용한 밤 차디찬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고 명월은 서쪽 창에 걸려 있네. 새벽 빛이 찾아오니 홀로 일어나 저 멀리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눈 앞은 여전히 흐리구나. 어느 때나 금수강산 수복할 수 있겠는가 조용한 밤, 차디 찬 바람 스쳐지나 가도 타향으로 내쫒가나 말게나! ……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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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공습을 피했던 위펑산(漁峰山)동굴류저우는 곳곳에 수십 미터 높이의 검은 바위산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마치 넓은 정원에 인공으로 산을 만들어 세운 듯 풍치가 아름답습니다. 3월 19일 첫 탐방지는 임시정부 류저우 청사 러췬사(樂群社)입니다. 우리 일행은 러췬사 부근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러취산가 개관하는 9시까지 약간 시간이 있어서 인접한 위펑산에 올랐습니다. 산봉우리가 입 벌린 물고기 모양이어서 위펑산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공습이 있을 때면 류저우 강남에 거주하던 임시정부 요원과 가족들은 위펑산 동굴로 피했습니다. 위펑산에는 천연 동굴이 많은데 18개 동굴이 연결된 대형 동굴도 있다고 합니다. 1938년 11월 30일 오전 9시경, 임시정부 일행은 류저우(柳江, 柳江县)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39일간 해상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하는데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여기도 안전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내색은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숨을 죽이고 공습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류저우는 전란으로 인해 광둥 후난(호남) 등지에서 수만 명의 난민이 몰려 와 거리에는 노숙자가 들끓고 크고 작은 여관은 물론 임대주택조차 구할 수 없는 실정이라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후 2시경이 되어서야 공습경보가 해제되고 류저우 정부가 마련해 준 각자의 숙사를 찾아들었습니다. 광동성 주석 우테청(吴铁成)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행이 류저우로 이동한다는 연락을 받은 류저우 국민당 당부가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시내를 가로지르는 류강 남북으로 임시정부 일행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여기저기 구해 놓았습니다. 전쟁 중이라 한곳에 모여 살만한 주택이 없었기 때문에 흩어져 살았는데 강남에는 위펑산(魚峰山) 일대에, 강북에는 랴오공관 주변에, 또 형편에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도 했습니다. 일본군의 공습이 있으면 임시정부 요원과 가족들도 류저우 시민들과 위펑산 동굴로 도피했습니다. 우리가 올라온 바로 이 위펑산입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