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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现今의 중국은 日本과 러시아의 风潮가 침투하여 나라 전체를 크게 울려 흐들거리게 하므로(오히려) 국민의 애국심(民气)이 四方으로 퍼져 나가고 있으니, 이야말로 光复成就를 为한 아주 좋은 때(大可为之秋) 일 것입니다.
广东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开化한 땅 일뿐 아니라 倭贼을 증오하고 원망하는 '골'이 아주 깊게 파여 있는 곳입니다. 그런 까닭에 弟는 수년동안 广东에서 寄居하였고 그러는 동안 여러 志士의 돌봄으로 자못 彼此에 知己之间이 되었으며, 지난 겨울에는(그들 志士들과) 会议를 하여 하나의 新闻社를 组织하고 新报를 发刊하기로 하여 한국과 중국의 人心을 鼓吹사키는 한편 상호 연락기관으로 할 것을 决议하였고 그 后 다시 하나의 开垦公司를 创立하고 널리 资金을 모집하여 만주에 떠도는 한국 동포를 满洲 또는 蒙古 等 넓은 땅에 各各 안전하게 定着하도록 하였는데, 名目은 荒忙地를 开垦하는 것으로 하였으나 이는 倭敌의 의심을 피하자는 것이고 实际로는 屯兵制度를 施行해서 기회가 오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대충 짐작컨대 倭놈들의 조급한 妄动은 몇해 않가서 중국 또는 미국과의 战争을 발발하게 할 것입니다.
이때에 중국과 한국의 民兵이 크게 联合하여 极히 짧은 时间에 奋起하여(不意에 一击을 加한다면) 우리 韩国은 光复을 찾을수 있을 것이고 中国은 自己防御를 할 수 있을 것이니 그 成果가 一击에(两得이 아니라) 그 外중에도 더 좋은 일이 많을 것입니다. 좋은 计策을 准备함에 있어 이 보다 더 완벽하고 나은것이 없을 것이며, 이는 特히 弟 한사람의 意见이 아니라, 이곳 여러 同志들과 熟议하고 妥协하여 决定 한것입니다.
现在 이미 이곳의 同志中 오한지(吴汉持)君이 东三省에 가서 한국인의 情况과 形势를 调查하여(환영을 받었기에) 이 新闻发行 事业만은 꼭 实行해야 할 첫 단계에 있는 것이거늘...... 事情의 어려움은 있으나 节义로서 주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여러 兄弟들이 이 역만리에 寄寓하면서 또 온갖 고통을 끈기 있게 견디면서 오로지 우리가 所望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 도모하고 해 내야 할 일이며, 이 "일" 外에는 다른 일이 있지 않을것 입니다. 小弟의 目的은 后线에서 光复事业에 스스로 호응하여 반드시 이런 기회를 잃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당초 新闻事业을 发起했을 때 그 자금은 광동에 있는 여러 중국인사가 所擔하고 그 机器 등은 내가 스스로 부담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前年에 上海의 X东报馆에 美洲会馆에서 보내온 机器가 있는데 이것이 现在 놀고 있다고 하기에 弟는 李锡永, 李殷翊 두 사람을 上海로 보내어 찾게 하였더니, 그 回信에 그 物件은 现在 尹氏 姓을 가진 사람이 갖고 尹의 行方은 北京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내어 그 물건을 요청한 즉 尹의 말이 美国에서 온 物件은 活字体의 날알만 数万个인데 그나마 문드러저서 使用할수 없는 것이니, 别途로 새 机器한틀만 购入하신다면 自顾해서 义理로 协助하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