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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옥천 문정리 출신 범재 김규흥(4)

기사입력 2024.01.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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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한국에 갔다가 옥천 문정리 범재 김규흥 지사의 생가를 찾았습니다. 마침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의 눈을 푹푹 밟으며 문향헌으로 들어갔네요. 그 때는 소형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설정이 잘못된 것을 모르고 사진을 찍어 이미지 질이 안 좋은데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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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흥의 증조부는 세도정치를 피해 충복 옥천군 교동으로 낙향한 조선시대 세가였습니다. 당시 기와 85, 초가 12간을 가진 거부였으나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할 때  무리한 과세를 요구해 집안이 몰락하던 때에 범재공은 청풍 김씨 23세손으로 1872 6월 13일 옥천읍 문정리 문향헌에서 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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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 어른으로부터 한학을 익히고 1901년부터 상경하여 민영환(閔泳煥, 1861-1905)등과 가깝게 지내면서 국가 근대화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종교의숙에서 교원을 하면서 교육으로 자강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의 목화밭에 진명(후에 창명으로 개명)학교를 설립했는데 현재 옥천 중향초등학교의 전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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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향학교에 남아 있는 현존하는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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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흥의 고택 문향헌은 1920년대 중국에서 돈이 급해 처분하여 현재는  춘추민속관 고택체험 민박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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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뚤삐뚤한 손글씨 문패가 걸려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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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환과 여러 차례 고종황제를 알현했는데 고종황제는 김규흥에게 중국 아청은행에 예치된 자신의 비자금을 찾아서 무관학교를 설립하라는 밀명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길도 떠나기 전에 누설되어 가택연금을 당하다가 1908년 초 탈출하여 중국으로 망명하여 이름을 김복(金復)으로 바꾸고 광저우에서 활동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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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흥이 가택연금을 당했던 문향헌 내부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기를

    ’의 본명은 김규흥(金奎)이니 이 점 양해하시고

    제(弟)의 성명 및 진행사항은 절대로 신보(新)나 잡보(杂报) 

    등재하지 마시고 비밀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회신은 광동성 旧仓  朝所로 보내주시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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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흥 지사가 조선신문사를 설립하려던 광저우 旧仓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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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흥(1982-1936)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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