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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深圳) 모 회사, 일부 직원들에 10개월 휴가 줘, 배상금 주지 못한 하책최근 심천화매흥미의료과학기술유한회사(이하 “화매흥미”)(深圳华迈兴微医疗科技有限公司)의 '휴가 통지' 두 건이 소셜 플랫폼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모두 10개월이면 내년 노동절이 된다. 심천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오래 쉬는 회사가 아닐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번 휴무는 컨설턴트 회사가 준 전략일 것이다. 인력자원 컨설팅 회사 관련 수업을 받을 때 배웠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11월 27일, 화매흥미 직원은 '사실이 맞다. 일부 사람들이 휴무했다. 회사가 배상할 돈이 없지만 합법적입니다‘라고 답했다. 화매흥미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4년 설립된 이 회사는 자체 창신(创新), 규모화된 생산 및 마케팅을 통합한 의료건강진단기업이다. 체외 진단 면역 신속 검사 플랫폼(미세흐름제어 화학발광 면역분석 플랫폼)의 연구 개발, 생산 및 판매에 주력한다. 두개의 '휴가 통지' 캡쳐본을 보면 휴무 기간은 2023년 7월 1일 9시부터 2023년 10월 31일 18시까지, 2023년 11월 1일 9시부터 2024년 4월 30일 18시까지이다. 휴무 원인은 주문 부족으로 인해 회사의 경영이 어렵고 경영 조건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 연구 결과 경영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휴가를 주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휴무 기간 급여는 '심천시 직원급여지급에 관한 조례' 등 관련 규정에 따라 시행된다. 첫 달 급여는 정상적으로 지급되며, 다음 달부터는 심천 최저임금 기준의 80%를 지급하며 정해진 시간에 복귀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으로 처리한다. 11월 27일, 직원 두여사(가명)는 '회사에는 아직 출근하는 사람이 있고 조업 중단도 없다. 사실 회사는 7월부터 첫 번째 직원들을 4개월 동안 쉬게 했다. 10월 말에 이르러 7월에 휴무한 첫 번째 직원들은 스스로 이직하지 않고 두 번째 직원들과 함께 2024년 4월 말까지 휴무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화매흥미 관계자는 '현재 회사 업무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일부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다. 예를 들어 배가 작은데 배에 탄 사람이 너무 많아 (자발적으로) 사직하지 않아 회사경영상 감당하지 못해 휴가를 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경첩항변호사사무소의 이리(李力)변호사는 '회사가 자율경영권을 갖고 있어 직원들에게 장기휴가를 줄 수 있다. 회사가 최저임금/생활비를 제공하고 사회보험 가입만 해준다면 불법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회사의 조치는 경제보상금이나 배상을 지불하지 않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직원을 해고하고 직원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직원은 실제 증거를 제시하여 회사의 '악의적인' 행위를 지적하고 노동중재위원회에 상소하여 법에 따라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법》 제79조에 따르면 노동쟁의가 발생한 후 당사자는 본 단위 노동쟁의 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으며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당사자 일방이 중재를 요청하는 경우 노동쟁의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당사자 일방은 또한 노동쟁의중재위원회에 직접 중재를 신청할 수도 있다. 중재 판결에 불복할 경우, 인민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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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차이민(彩民) 508만 위안의 복권 당첨, 한 회사를 살렸다!최근, “해피8”(快乐8) 1등 당첨자 왕모씨(가명)는 가족과 함께 심천복권서비스청에 가서 당첨금 수속을 밟았다. 11월 25일 저녁, 복권 "해피8" 게임이 제2023315회 추첨을 진행하였는데 당기 "10개 중 10개 당첨"(选十中十) 1등 당첨자 1주가 나왔으며 심천의 복권 구매자는 1등 상금에 당첨되었다. 이번 당첨 복권센터는 바오안구(宝安区) 푸하이지역구(福海街道) 교남(桥南) 156호 103포 83801142 복권 오프라인 매장이다. 왕씨는 복식베팅표를 구매하였기 때문에, 상금은 합계 508만 위안("10개 중 10개 당첨"(选十中十) 1주, 상금 500만 위안, “10개 중 9개 당첨”(选十中九) 10주, 상금 8만 위안)이다. 왕씨는 평소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복권을 구매하는 것을 좋아하며 “해피8”을 산 지 이미 1년이 넘었다. 이번에 당첨된 번호는 그가 마음대로 고른 것이며, 번호를 5~6회 지켰다고 말했다. "이 큰 당첨금은 때마침 와서 나의 급한 불을 껄 수 있었다."며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최근 자금 압박을 많이 받았는데 당첨금으로 회사가 겪는 자금난을 해결할 수 있다. 복권이 희망을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매우 감격스럽다. 우리복권센터 구매자가 큰 상에 당첨되었는데 자신이 당첨된 것보다 더 기쁘다.” 83801142 복권센터 판매원 황여사는 추첨날 저녁에 당첨정보를 확인했더니 복권센터에서 "해피8" 당첨자가 나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당첨된 번호에 대해 조금 인상적이었다. "나는 복권을 팔 때 단골손님들의 복권 구매 습관을 기억하는데 이는 그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이 번호는 "해피8"을 자주 사는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정말 그를 대신해 기쁘다. "며 전했다. 14년 전, 우연히 복권과 인연을 맺은 황여사는 복권 판매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 직접 베팅소를 열었다.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 일에 정이 들었다. 복권이 당첨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성취감이 생기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복권 한 장이 팔릴 때마다 공익금 마련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보람 있다"며 그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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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추싱(滴滴出行) 시스템 오류로 차량 예약 불가, 콜택시 이용 요금이 60위안에서 180위안으로 변해28일 아침 출근시간 일부 시민들은 디디추싱(滴滴出行) 앱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위챗 샤오청쉬(小程序)도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여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시만 왕씨는 '8시10분에 택시를 탔다. 페이지를 열고 지도를 불러올 수 있었지만 목적지를 선택한 후 발송 실패로 나왔다. 8시 36분에 다시 차를 부르려고 했을 때 인터넷 로딩 이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시민 장씨는 '8시50분에 디디를 잡아서 9:10이 되어서야 차를 잡았다. 가까스로 택시를 잡았다'고 말했다. 택시 호출에 성공한 시민은 '앱 지도에서 기사가 오는 운행 궤적이 없었다. 인터넷 예약 차량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올 수 있냐고 물었을 때 기사는 주문이 보이지 않아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다른 시민은 '어젯밤 약 60위안의 차비를 예상했던 정가(一口价) 주문이 오늘 지불할 때 180위안이 됐다'며 '어젯밤 디디가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것을 듣고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좀 늦게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디디추싱은 '기술팀이 밤새 복구한 결과 디디 인터넷 예약 차량 등 기타 서비스가 이미 회복되었으며 사용자는 디디 앱을 다운로드하여 택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자전거 등 서비스는 아직 계속 복구 중이며 잠금하지 않았거나 잠금 해제할 수 있는 모든 칭쥐(青桔) 차량은 무료로 탈 수 있다. 아침 출근시간대의 예약이 밀리는 현상을 완화하고 다른 문제들도 해결하려고 노력중이다. 사용자들의 이동에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자전거 서비스가 계속 복구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누리꾼들은 '이 시간에 그렇게 많은 자전거가 있었는데, 한 대도 이용할 수 없어 지각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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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동안 277개의 상품을 반품하고 고소당해최근, 광동성 주하이 샹저우 법원(广东珠海香洲法院)은 빈번한 반품으로 인한 침해책임 분쟁을 종결했으며 법원은 소비자의 빈번한 반품이 주관적으로 악의적이고 상인의 권익을 침해했다고 인정하였다. 탠탠(甜甜)은 한 플랫폼에 개인 이름으로 뷰티매장을 등록하고 다양한 뷰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2022년 10월 말, 웨웨(悦悦)는 탠탠의 가게에서 틴트를 주문한 후 반품 및 환불을 요구했다. 탠탠은 반품 소포를 받은 후 틴트가 이미 사용되어 2차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환불요청을 거절했다. 이후 4개월 동안 웨웨는 탠탠의 가게에서 100건 이상의 주문을 했고 277개의 상품을 구매했다. 거의 모든 주문이 물건을 받지 못했을 때 "제품 품질 문제", “배송 오류" 등 이유로 반품 및 환불을 진행하고 “악취가 많이 난다", "보기 흉하다",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렸다", "색상이 이쁘지 않다", "이것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겼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웨웨의 조작으로 인해 탠탠의 가게는 플랫폼으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탠탠은 여러 차례 소통했지만 결과가 없어 샹저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웨웨에게 즉시 악의적인 주문을 중단하고 사과하고 9,000위안의 운영손실을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웨웨는 "손해 배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건을 받지 못해 반품 사유를 임의적으로 선택한 것은 결코 악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탠탠은 이에 "권리 보호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상품이 배송되지도 않았는데 허위사유로 반품을 신청하여 가게의 평점이 떨어지고 검색량이 떨어지며 신용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주문-환불'을 수백 번 반복하는 이런 악의적인 주문 방식은 엄중하게 나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였다!"고 반박하였다. 샹저우 법원은 "첫 쇼핑 후 반품 및 환불이 거절당하여 피고 웨웨는 원고 탠탠과 '모순'이 발생하였고, 그 후 원고 탠탠의 가게에서 자주 주문을 했고 또 빈번하게 환불했으며 주문횟수와 수량이 많았다. 또한 여러 차례 상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후에도 여전히 같은 립스틱을 계속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정상적인 소비자의 행위 특징에 부합하지 않는다. 피고 웨웨가 양측의 소통에서 언급한 '그래서 나는 기억하고 있다', '단지 그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그 대처했을 뿐이다" 등의 발언과 결합하면 피고 웨웨가 실제로 쇼핑을 할 의사가 없고, 주관적으로 악의적인 것이 이미 상인의 합법적 권익에 대한 침해를 구성했다. 법원은 "피고 웨웨의 과실정도, 초래한 영향, 권리 침해 기간 및 실제 점포 운영상황을 종합하여 피고 웨웨는 악의적인 주문행위를 즉시 중단하고 서면으로 사과하고 사과내용을 원고 탠탠이 운영하는 개인 점포 홈페이지에 반년 동안 공개하고 탠탠의 경제적 손실 2,000위안을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우리는 온라인 구매에 익숙해졌고 또한 소비자권익보호법에서 “일주일 이내 무조건 반품"(七天无理由退货)에 능숙하여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고 쇼핑 체험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민법전>> 제132조에도 민사주체는 민사권리를 남용하여 타인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였다. 소비자로서 이성적으로 소비하고 성실하게 신용을 지켜야 하며 온라인 구매 시 실제 쇼핑 체험에 따라 적절한 반품 및 환불 방식을 선택해야 하고 불합리한 주문, 반품 조작 또는 악성 댓글을 통해 상인의 운영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상인에 대해 권리침해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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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모 회사 “4일 근무제” 시행으로 온라인에서 화제최근인터넷에 심천의 모 과학기술회사의 "작업 및 휴식시간 조정 통지" 캡처 사진이 떠돌았다. 내용에서 회사는 4일 근무제를 실시할 것이며 매주 수요일은 유급 휴가를 실시하고 급여 및 기타 복리후생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누리꾼들의 부러움을 샀다. 11월 23일, 회사 책임자는 '회사에는 자신을 포함한 6명의 직원이 근무시간에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며 '어제(수요일) 첫날 쉬는 날 모두 데리고 낚시를 갔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아이를 돌보는데 편리하도록 10시에 출근하도록 규정하하였다. 심천시천일시신과학기술유한회사(이하 천일시신이라 약칭함)이 서명한 공지는 '직원의 업무 효율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경영진의 연구 및 결정을 거쳐 당사는 11월 20일(월요일)부터 4일 근무제를 시행할 것이며 급여 및 기타 복리후생은 변하지 않는다. 법정주말 2일 휴무를 제외하고 모든 직원은 매주 수요일 유급 휴무이며 추가 근무는 권장하지 않는다. 업무가 있는 경우 딩딩(钉钉) 신청 및 승인을 거쳐 조정할 수 있다.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30분으로 16:30으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톈옌차(天眼查)에 따르면 천일시신은 2016년에 설립된 대외무역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이다. 회사 대표 서씨는 '회사의 주요 업무는 일부 외국 회사의 자재 구매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예전 근무시간은 오전 8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였는데, 사실 정해진 시간 안에 직원들이 일을 끝낼 수 있고, 기본적으로 휴대폰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나중에 보니 회사에 저 빼고 모두 아이가 있어서 직원들이 아이를 돌보는데 편의를 주기 위해 출근 시간을 10시로 조정했고, 오후 4시가 넘으면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말해줬고 후에는 아이들 유치원 하원시간을 시간에 맞추게 됐다'며 전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6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여서 이렇게 안배할 수 있어요. 굳이 사무실에서 일 할 필요가 없어요. 다들 회사를 집처럼 여기고 회사밖에서도 업무를 잘 처리해요. 모두가 사업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데 출근시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22일, 수요일이자 새 규정 시행 첫날 서씨는 직원들과 함께 낚시를 갔다고 밝혔다. '낚시할 때 구매관리자의 전화는 끊기질 않았고 해외업무를 담당하는 동료도 컴퓨터를 가지고 다닌다. 통지가 누구에 의해 인터넷에 올라왔는지 모르며 언론사에서 올린 내용을 확인하는 거래업체도 있었다. 사실 4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회사도 꽤 많다'며 말하였다. 최근 나이키 중화권(耐克大中华区), 러스(乐视), 씨트립(携程) 등 여러 회사가 비슷한 탄력근무제도를 적용해 눈길을 끌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키 중화권담당자는 '새로운 혼합근무방식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금요일에는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러스(乐视)측은 '주 4.5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특히 매주 수요일마다 탄력적인 0.5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출근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연속근무로 조정되어 규정에 부합된다'며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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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합포 바이러스”(合胞病毒)는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베이징시 질병통제예방센터 부주임 왕취안이(王全意)는 '아동병원과 소아연구소의 외래 진료 상황을 보면 현재 폐렴 마이코플라즈마의 유행 강도는 이미 아동 호흡기감염병 4위로 떨어졌고 순위 1~3위는 인플루엔자(流感), 아데노바이러스(腺病毒), 호흡기 합포 바이러스(合胞病毒)이다'며 소개했다. 또 호흡기 병원성 모니터링결과 현재 베이징시 전체 인구의 호흡기감염병신고 건수의 1~3위는 인플루엔자, 라이노바이러스(鼻病毒), 호흡기 합포 바이러스이다. 호흡기합포바이러스란 무엇인가? 감염 후 어떤 증상이 있는지?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 베이징 아동병원 순이부아병원(北京儿童医院顺义妇儿医院) 질병통제과 부주임 의사인 탕즈차오(唐智超)는 '호흡기합포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5세 미만 어린이의 급성 하기도감염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바이러스 병원체'라고 소개했다. 호흡기 합포 바이러스 감염은 영유아의 바이러스성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어린이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특히 미숙아, 선천성 심장병 또는 원발성 면역결핍이 있는 영유아에게 더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 감염 후 어떤 증상이 있을까? 베이징 아동병원 순이부아병원 소아과 부주임인 쑨쉐메이(孙雪梅)에 따르면 ‘호흡기합포 바이러스 감염은 영구적인 면역을 생성할 수 없으며 감염 후 임상 양상은 매우 다르며 증상이 경미한 상기도 감염이나 중이염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심각한 하기도 감염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어린이의 나이, 기저 질환, 환경 노출 요인 및 과거 호흡기 감염 이력과 관련이 있다. 발견 후 반드시 제때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소개했다. 아동의 초기 호흡기합포 바이러스 감염은 대부분 상기도에 국한되며 임상적으로 코막힘, 콧물, 기침 및쉰 목소리와 같은 상기도 자극 증상으로 나타난다. 검사하면 코 점막, 인두, 구형 결막, 고막 등에서 충혈, 부종 등의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동시에 종종 발열이 동반된다. 하기도 감염은 주로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나타나며 영아 및 2세 미만 어린이에게 많이 나타나며, 일반적으로 발열, 코막힘, 콧물 등의 상기도 감염 증상이 2~4일 정도 있으며 그 후 하기도 증상이 빠르게 나타나 기침, 천식, 호흡곤란, 섭식곤란 등이더욱 악화된다. 호흡기 질환 외에도 호흡기합포 바이러스 감염은 심근 손상, 우심기능 부전, 치사성 간질성 심근염, 중증 부정맥 심지어는 심부전, 중추무호흡증, 간질 등과 같은 다른 전신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호흡기합포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비말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물체와의 접촉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 때문에 환아의 보호자들이 동시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성인 감염의 초기 증상은 일반 감기와 비슷하며 발열, 기침, 재채기, 콧물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갑작스러운 발병이 자주 발생한다. 바이러스가 빠르게 증식하고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이어지면 3~5일 이내에 호흡곤란 등 호흡기 감염이 나타날수 있다. 베이징 아동병원 순이부아병원 질병통제과 부주임의사 탕즈차오는 '호흡기합포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려면 기침예절 등 위생 습관을 길러야 하며, 손위생에 주의하며 비누로 손을 씻거나 알코올을 함유한 용액을 사용하여 손을 씻어야 한다'고 소개했다. 고위험 영아의 경우 노출을 최소화하고 고위험 보육시설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가아동의학센터 주임, 베이징아동병원 원장 니신(倪鑫)은 '아동의 체육 단련을 강화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는 동시에 건강한 식습관을 길러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부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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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5) 한·중지식인 연대 구축1925년8월 유기석은 친구 심여추와 파진(巴金, 1904~2005)을 찾아갔습니다. 바진은 심여추가 소개한 北海沿 東興公寓에서 묶으면서 베이징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숙박객이 많지 않고 정원에는 회화나무 거목이 있는 아파트인데 바진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심여추)는 조선인이었다. 어느 날 밤 그는 동향의 친구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더웠지만 청명한 달밤이었다. 우리들은 정원에서 바람을 쐬었다. 심(沈)은 아주 점잖은 사람이었고 같이 온 그의 친구(유기석)는 참으로 정열적이어서 나에게 수많은 조선인 애국지사가 일본의 침략에 맞서 투쟁하는 모습을 도도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조선 인민의 고난에 찬, 그러나 용감한 투쟁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후 조선인 혁명가에 대해 나는 시종일관 경의를 품게 되었다." 1926년3월 27일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國民日報』의 부간 「覺悟」에 바진이 쓴 한 통의 공개편지가 실렸습니다. 『高麗靑年』은 유기석과 심여추가 세계 각 민족의 공존공영을 기대하면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아나키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1926년3월 고려청년사를 조직하고 발간한 주간지입니다. 바진은 ‘L’군의 부탁으로 베이징의 고려청년사(高麗靑年社)가 창간한 주간지『高麗靑年』발간을 지지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밝히고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작년 베이징에서 고려 친구 ‘S’와‘L’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은 고려 민중운동의 상세한 상황을 자세하게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특히‘L’군에게 감사한다. 고요한 밤, 밝은 달이 하늘에 높이 걸려 있던 날, 그는 고려 민중 악전고투의 전경(全景)을 자세하고도 격분에 차서 제 눈앞에 펼쳐 보여주었다." 또 "유 군은 '우리들의 고투 진상을 중국 민중에게 알려 주십시오' 당신들이 스스로 간행물을 출판하여 우리 고투의 진상을 중국 민중이 알게 하면 그들이 이러한 정신에 감동할 것이며 잠에서 깨어나 각성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편지 말미에 강조했습니다. 1925년 말을 전후하여 유기석은 조양대학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고향에서 보내오던 학비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安昌南, 1900~1930)이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중국으로 왔습니다. 안정근(安正根, 1885~1949)이 안창남을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의 군벌 옌시산(阎锡山, 1883~1960)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유기석은 안창남의 통역을 하면서 옌시산 부대에 입대하여 일 년 정도 비행기 조종 기술을 배웠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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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4) 반일학생으로 낙인이 찍히다유기석은 반제국주의 학생운동에 참여하다가 반일 학생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1925년5월30일 상하이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을 하던 학생과 노동자들이 사살되고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베이징에서도 몇 차례 민중대회가 열렸습니다. 베이징 조선 유학생회도 반제국주의 투쟁을 지원하여 유기석이 기안한 전단 5천 부를 인쇄했습니다. 6월30일, 천안문광장에서 거행된 군중대회에서 베이징 조선 유학생회 대표 유기석이 첫 번째로 단상에 올라가 연설했습니다. “조선은 중국의 가장 친밀한 형제 국가입니다. 조선 민중은 중국 민중이 처한 운명을 자신의 운명같이 생각합니다. 조선 민중은 중국 민중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결연하게 지지하며, 우리 자신의 선혈을 흘려 조중(朝中) 양국 민중의 행복과 자유를 쟁취하기를 바랍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동방 피압박민족 공동의 적입니다. 우리 피압박민족이 단결하여 끝까지 투쟁하면 우리는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유기석의 연설은 우뢰같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다음 날 북경의 여러 신문에 관련 내용이 실리고 천요우린(陳友仁,1875~1944)이 발간하는『民報畵刊』에는 사진도 실렸습니다. 한국의『조선일보』도 다음과 같은 유기석의 북경 활동을 보도했습니다. 지난달 삼십일 북경 천안문에서 열린 국민대회 때에 오백여 단체 십여만 명의 어마마한 군중이 모여든 가운데에는 조선, 인도, 대만, 터어키, 일본 등의 동양 각국 사람들과 독일 사람까지도 참가한 사람이 있었으며 그중에서 외국 사람으로 제일 먼저 등단한 사람은 유기석(劉基石)이라는 동포였다. 류 군은 현재 조양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이날 제일 먼저 등단하여서 침통한 사기로 장시간의 연설을 시험하였으며 연설이 끝나매 단하에 모여 섰던 십만 군중은 비상히 흥분하여 중화민족 만세와 『○○○○타도』,『○○○○제국주의 타도』, (○○○○타도, ○○제국주의)를 높이 불러 많은 중국인에게 흥분을 주었고 그다음으로는 독일인, 일본인, 인도인, 대만인, 터어키인 등의 대표가 차제로 일장 연설을 시험하였더라. 이때부터 유기석은 공개적인 반일 학생이 되었습니다. 유기석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본 사령관의 주의를 끌었고 반역적인 생각을 가진 조선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조선이 해방되지 않으면 영원히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때 20세였다. 베이징에 체류하는 동안 집필활동도 시작했다. 『기독신보』 주간 신문에 조양대학 유기석의 명의로 「黑子와 基督」이라는 논설을 연재해서 겸애설을 주장한 묵자와 예수를 비교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점점 희박했기 때문에 유기석의 반일 결심은 더욱 강해졌고 행동도 점점 더 극단적으로 되어 마침내는 일본과 직접 투쟁하는 길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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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3) 흥사단 170번, 15세 소년창춘(长春), 션양(沈阳), 톈진(天津)을 거쳐 동방에서 제일 큰 도시 상하이에 도착한 유기석은 부친의 친구이자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李東輝, 1873~1935) 선생을 찾아뵈었습니다. 향후 어떻게 해야 할지 지도를 요청하며 이동휘 아저씨 댁에 머무는 동안 여운형(呂運亨, 1886~1947)선생과 이광수(李光洙, 1982~1950) 아저씨도 만났습니다. 여운홍 선생 집에서 이광수와 함께 산 적이 있는데 이광수는 종종 유기석에게 조선 문학을 가르쳐 주고 또 도산 안창호(安昌浩, 1878~1938)도소개해주었습니다. 도산은 특별히 유기석을 좋아했습니다.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져도 도산은 귀찮아하지 않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는데 도산의 말에는 한마디 한마디마다 무한한 열정을 띄고 있어 유기석은 안창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도산 또한 유기석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1920년겨울, 난징 화공중학(華公中學)에 입학해서 공부하는 동안 유기석은 흥사단 원동 위원부에 입단했습니다. 입단번호 170번, 15세였습니다. 운동에도 소질이 있어 화공중학의 축구대장도 맡았습니다. 상하이에 온 후 유기석은 양복을 입기 시작했는데 양복을 입지 않으면 조계지공원에 놀러 갈 수 없었기때문입니다. 또 루쉰(魯迅, 1881~1936)을 존경하고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 후반기부터 루쉰과 관계를 맺고 가깝게 지냈는데, 유기석이 얼마나 루쉰을 좋아했는지 루쉰의 이름이 周樹人인데 자신의 필명도 柳樹人이라고 지었습니다. 1924년6월 화공중학을 졸업한 유기석은 그해 9월, 베이징 조양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옌지도립제2중학교의 동창이자 막역한 친구 심여추(沈茹秋,沈龍海, 1904~1930)를 재회해서 두사람은 의기투합했습니다. 심여추는 도립제2중학교를 다니다가 지린(吉林)으로 와서 지린 중학을 졸업하고 창춘에서『大同日報』기자로 일하면서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924년베이징으로 옮겨와 무정부주의 계열신문『國風日報』에 입사하여 부간「學涯」를 편집하여 발행하고, 1925년, 바진(巴金, 1904~2005)등과 무정부주의자들의 조직인 상하이민중사의『民衆』이라는 간행물을 반월간지로 발간하고 있었습니다. 베이징에서 유기석은 흥사단을 비롯하여 한인교회와 유학생회에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1925년 1월을 전후해서 한인교회 위원으로 선출되고, 베이징 고려유학생회 체육부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ˑ중 학생들과 흑기 연맹을 조직하여 일본의 조선 및 중국 침략을 반대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변증법에 대결하는 활동도 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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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2) 룽징(龍井)에서 맞은 삼일 만세운동유기석은 1919년 삼일 만세운동 때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옌지(延吉) 도립 제2중학교 2학년 때 삼일 만세운동을 맞았는데, 1919년3월12일 밤, 학우들은 밤을 새우며 전단을 찍고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태극기를 빨리 만들기 위해 직사각형의 아연판에 구멍을 뚫고 태극기 모양으로 잘라 붉은색, 남색, 흑색 잉크를 솔에 묻혀 한번 칠하면 바로 국기 한 장이 되어 밤새 수 천장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단과 태극기는 “충렬단”이란 명의로 배부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학우들은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의 원칙을 제기했기 때문에 조선도 곧 독립할 것이라는 희망에 넘치는 말을 했습니다. 국내에서 2천만 민중이 모두 일어나 독립 만세를 크게 부르면 파리평화회의에서 세계열강이 조선의 억울함을 듣고 독립을 승인한다고 했습니다. 유기석은 비록 어린 나이지만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것처럼 흥분하고 기뻤습니다. 3월 13일, 룽징 만세 시위대 선두가 막 가두로 진입하려고 할 때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유기석은 폭죽을 터트리는 줄 알았는데 “모두 땅바닥에 엎드리라”는 고함이 들려 왔습니다. 중국 경찰들이 군중을 향해 실탄을 던졌습니다. 유기석도 도망가다가 넘어졌습니다. 총알에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밭에 있는 수수 뿌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습니다. 룽징 만세 시위 후에도 조선 학우들은 애국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어린 학우들은 큰 학우들이 시키는 대로 편지를 보내거나 전단을 뿌리고 큰 명절이 되면 집마다 국기를 꽂았습니다. 만세를 부르고 평화적인 시위를 하면 연합국이 우리 정의를 수호하고 ‘민족자결’을 허용할 줄 알았는데 민족자결은 조선과 같은 약소민족에는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윌슨의 기만적인 구호에 현혹되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또 하나의 서광이 비쳐 왔습니다. 스탈린이 소련은 동방의 억압받는 민족 노동자 대중을 도와 오랜 기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할 것이며 아울러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에도 참여해서 조선 민족 독립운동도 승리로 이끌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920년 가을, 유기석의 어머니는 가산을 정리해서 독립군 군정서가 관할하는 왕청현으로 이사했습니다. 부친이 유기석에게 빨리 상하이로 도망가서 공부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추석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마을에서 소나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쇠고기를 먹고 떠나라는 마을 사람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음력 8월14일 새벽에 집을 나섰습니다. 11살 동생 유기문이 형을 따라가겠다고 집에서 2~3리 떨어진 강변까지 쫓아왔습니다. 동생이 발을 동동구르며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기석은 나룻배를 탔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