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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김원봉의 항일 역정 - 광복대업을 위해 의열단 조직군대는 당장 조직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원봉이 조국을 뺏은 일본 강도와 투쟁하겠다고 찾아낸 대안은 폭력이었습니다. 마침 죽마고우 강세우가 밀양에서 삼일만세운동을 하고 중국으로 왔는데 김원봉은 언제까지 공부만 할 수 없으며 직접 행동이라도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급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1919년 11월 9일, 동지 13명과 황상규의 지도하에 지린 중국인 판(番)씨 집에서 밤새워 토론했습니다. 현재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단체들이 미온적이고 온건한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는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열혈 지사들이 “조선을 통치하는 적의 시설물을 파괴하자”, “적의 군주 이하 각 대관과 모든 고관을 암살하자”. 이렇게 끊임없이 파괴와 암살로 폭력을 행사해서 일본 강도의 조선 통치를 방해하면 동포들도 애국심을 환기하여 배일사상을 고취하고 민중적인 폭력을 일으킬 테니 의로운 피를 흘려 조국 광복의 대업을 성취하자고 상의했습니다. 이들은 조선 독립과 세계평등을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을 맹세하고 의열단을 결성했습니다. 활동 지침 공약 10조를 제정하고, ‘칠가살(七可殺)’, ‘오파(五破)’라는 행동 대상도 정했다. ‘칠가살’ 암살 대상은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타이완 총독(타이완 총독도 친일파로 약소민족을 억압), 매국노. 친일파거두, 적 염탐꾼, 반민족 토호열신입니다. 파괴 대상 ‘5파’는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경찰서, 기타 왜적기관입니다. 의열단은 곧바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단장 ‘의백(義白)’에 선출된 김원봉은 비밀히 의열단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베이징, 톈진, 난징, 홍콩 등지를 오가며 단원을 모집하고 고성능 폭탄을 입수하여 이룽양행(伊隆洋行) 선박회사를 통해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이룽양행 사장 쇼우(George Lewis Shaw, 1880~1943)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입니다. 일제를 증오하여 그는 자신과 회사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회사 2층에 임시정부 교통국(交通局) 안동지부(安東支部)를 설치해 주었습니다. 임시정부의 물품이나 의열단이 사용할 폭탄도 자신 소유의 기선에 실어 운반했습니다. 경비도 받지 않고 오로지 한국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였다고 합니다. 임시정부나 의열단 요원들은 이륭양행 선박을 이용해 상하이, 만주와 한국을 왕래하고 위험에 처하면 그의 집에 숨기도 했습니다. 1920년 9월 14일 부산에서 박재혁(朴在革, 1895~1921)이 고서(古書)상인으로 위장하여 부산경찰서 하시모토 경찰서장을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경찰서장은 죽이지 못했지만, 이 거사는 의열단원들이 죽음으로 정의를 실행하는 출발점입니다. 1920년 12월 27일 최수봉(崔秀峰, 1894~1921)이 밀양경찰서에 폭탄 2개를 던지고 사형 선고받았습니다. 1921년 9월 중순 김익상(金益相, 1895~1942)은 전기공으로 위장해 총독부 건물에 침입해 폭탄 3개를 던지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중국으로 왔습니다. 광둥 항공학교에 입학하려고 광저우에 왔는데 내전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네요. 1922년 3월 28일, 김익상, 오성륜(1900~1947), 李鐘巖(이종암 1896~1930)이 일본 침략을 책화한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 대장 암살도 시도하다가 미수에 그쳤습니다. 의열단 이름은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고, 김원봉이 전체 과정을 극비리 진행했기 때문에 구성원들조차도 행동이 진행되는 구체적인 상황을 몰랐습니다. 의열단 사무실이 상하이에 있었지만, 김원봉은 야간에 극비로 드나들고 경찰의 눈을 피해 매일 밤 단원들의 처소로 옮겨 다니며 잠을 자야 했습니다. 의열단은 목표 달성을 위해 너무 잔혹한 수단을 동원한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지요. 임시정부 인사들조차 의열단의 과격한 수법이 정치적 효과보다 피해가 크다고 비난했습니다. 때로는 변절자가 생겨 의열단의 행동계획이 일경에 발각돼 실패로 끝나기도 합니다. 의열단 행동이 세간 비판에 직면하자 류자명(柳子明,, 1894~1985)이 역사학자 신채호(申菜浩, 1880~1936)에게 부탁해서 의열단의 독립운동 노선과 투쟁 방법을 대외에 천명하는 ‘조선혁명선언’이라는 ‘의열단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종속으로 가서 민중과 손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지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약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조선혁명선언’이 의열단의 행동목표와 항일투쟁 노선을 정당화시켰습니다. 단원들은 ‘조선혁명선언’도 폭탄이나 총과 함께 무기처럼 소지하고 다녔습니다. ‘조선혁명선언’이 발표된 후 임시정부의 김구(金九, 1876~1949)와 유학자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이 의열단 고문을 맡았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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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김원봉의 항일 역정 - 군대를 만들어 일제와 싸우자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조선 애국자들은 강한 군사력을 가진 독일이 일본을 이길 것이라고 예견하고 한국이 독일과 협력하면 독립을 얻을 수 있다고 예견했습니다. 김원봉도 독일과 같은 강한 군대가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시 상경하여 중앙학교에 재학하다가 독일로 유학하러 가서 군사학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1916년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 톈진(天津)으로 와서 독일인이 세운 덕화학당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여름방학에 잠깐 귀국한 사이,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고 독일과 이탈리아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중국에 체류하던 독일인들은 추방당하고 덕화학당은 문을 닫았습니다. 김원봉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김두전(金斗全, 1983~1964), 이명건(1901~?)과 친교를 맺고 해외로 나가 큰일(민족해방운동)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김원봉의 고모부 황상규(黃尙奎, 1890~1931)가 이들에게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조국 산천을 잊지 말라고 김원봉에게는 약산(如山), 이명건에게는 약성(如星), 김두전에게는 약수(如水)라는 호를 지어주었습니다. 1918년 9월, 이들은 난징(南京) 금능대(金陵大)에 입학해서 영어를 배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1919년 1월 18일,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27개 전승국이 제1차세계대전 후 국제사회의 질서 및 약소국 문제 등을 논의하는 파리 평화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을 회의에 파견해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한·일 병합 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해 주기를 호소한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김원봉은 국가의 존립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외국 국가에 호소하여 해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파리에 가서 일본 대표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일이 누설되어 뜻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김원봉은 중국 동북 지역 서간도에 농지를 사서 젊은이들을 모아 농사를 지으며 군사를 양성하고 싶었습니다. 일찍부터 동북 지역에서 독립운동하는 선배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지린으로 가는 길에 한국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삼일 민족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반감이 벌컥 생겼습니다. 온 국민이 비폭력으로 만세를 외치며 삼천리강산을 뒤흔들었다고 해서 과연 잃어버린 국권을 뺏앗아 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고모부 황상규가 활동하는 대한독립군정서를 찾아가 상황을 파악해 보니 군대는 짧은 시간에 양성할 수 없네요. 김원봉은 주저 없이 한국 독립군을 양성하는 서간도 지린 류허현 (柳河縣) 산웬바오(三元堡)로 가서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중국인 교수로부터 폭탄 제조법을 배우고 김상윤(金相潤, 1897~1927), 한봉근(韓奉根, 1894~1927), 이종암(李鐘岩, 1896~1930),권준(權晙, 1895~1959)과 같은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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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김원봉의 항일 역정 - 조국 해방 방략을 모색한 소년의열단 단장 김원봉(金元鳳, 1898~1958)이 황푸군관학교 졸업생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김원봉은 최림(崔林)이란 가명으로 황푸군관학교에 입교했습니다. 김원봉에 대해 워낙 논쟁이 많은지라 교실에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래도 기본적인 정보는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차례 자료를 올리겠습니다. (1) 조국 해방 방략을 모색한 소년 1910년 국권이 피탈되던 해, 김원봉은 일본인이 설립한 학교에 다니다가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원봉과 윤세주(1901~1942) 등 몇몇 소년들은 설음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리고 고의로 일어 수업 시간에 빠지고 학교도 결석합니다. 1911년 4월 29일 일본 천황 생일을 기념하는 날, 김원봉은 친구들과 일본기를 구겨 학교 화장실에 집어넣었습니다. 고향 마을 갑부 전홍표(全鴻杓, 1869~1929)가 사재를 털어 청소년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동화학교를 세웠습니다. 김원봉은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동화학교에 편입했습니다. 동화학교 전홍표 교장은 “우리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강도 일본과의 투쟁을 하루도 게을리할 수 없다. 빼앗긴 국토를 도로 찾고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기 전 우리는 언제나 부끄럽고, 언제나 슬프고, 또 언제나 비참하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 말은 김원봉이 35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교훈이 되었습니다. 김원봉은 친구 윤세주와 둘이 체력을 단련한다고 연무단을 만들었습니다. 여름 뙤약볕 아래 강가 모래밭에서 축구하고, 겨울에도 등교하기 전, 등산과 냉수욕을 했습니다. 일본 경찰이 전홍표 교장을 위험인물로 지명하고 동화학교 폐교령을 내리자, 김원봉은 이리저리 다니며 돈 80원을 모아 학교 지원금이라며 교장에게 건넸습니다. 할머니의 배려로 상경하여 중앙학교에 편입했습니다. 민족이 위기에 처혔지만, 할머니는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과 사치하며 잘 살았습니다. 거부감이 생긴 김원봉은 서울학교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되돌아와 절로 들어갔습니다. 절에서 뭘 했을까요? 1년 동안 절에 칩거하며 책을 읽었어요. 국가의 출로를 모색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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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연기 사건으로 9명 승객 다쳐, 중국국제항공(国航)의 최신 통보9월 10일 청두 티엔푸 공항(成都天府机场)에서 싱가포르 창이공항(新加坡樟宜机场)으로 가는 CA403편은 착륙 직전에 기내에서 연기가 났다. 9월 11일 새벽, 중국국제항공은 공식 웨이보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해 공지하였다. 지난 9월 10일, CA403편 사건은 엔진 기계 고장으로 잠정 판단하고현재 진일보 조사중에 있다. 돌발적인 상황에 승무원은 절차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하였고, 승객 모두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순조롭게 긴급 대피를 완료하였다. 창이공항의 협조 하에 이미 승객 배치 업무를마쳤으며 영향을 받은 고객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사회 각 계의 관심과 지지에 감사드린다. 중국국제항공의 공지에따르면, 9월 10일 청두 톈푸공항에서 싱가포르 창이공항으로 향하는 CA403편에는 승객 146명, 승무원은 9명이 타고있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객실에서 연기가나자 승무원은 절차에 따라 처리하였고, 비행기는 베이징 시간 16시 14분에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착륙하였다. 착륙 후 승무원은 승객을 조직하여 긴급 대피를 하였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응급 절차를가동했다. 승객들은 대피 직후 '비행기 운행중 후반부에 자극적인냄새가 코를 찔렀지만냄새의 원인을 알지 못해 승무원이 모두에게 입과 코를 가리게 했다'며 전했다. 그리고 어떤 승객은 '비행기가 착륙할 때 엔진에 불이 붙어 40분간 기내에서 연기가 났다. 호흡이 곤란해 모두 몸을 숙이고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간신히 숨을 쉬었는데…"라는 글도 올렸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공식 웨이보에 국제항공 CA403항공편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발표하였다. 2023년 9월 10일 15시 59분 중국 청두에서 싱가포르 창이공항으로 향하던 국제항공(CA403) 항공편이 앞화물창고와 화장실에서 연기가 발생했다고 보고하고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착륙 우선권을요구했다. CA403은 우선권을 확보한 뒤16시 15분경 창이 공항 제3활주로에 착륙했다. 착륙 후 신속하게 인원들을 대피하고 공항 긴급구조 서비스(Airport Emergency Service)는 즉시이 사건에 대응하여 16시 25분경에 비행기의 왼쪽 엔진에 붙은 불을 껐다. 승객 146명과 승무원 9명 등 모두 무사히대피했으며 승객 9명은 대피하는 과정에서 연기를 들이마시거나 찰과상으로 경상을 입었으며 이미 치료를 받은 상황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창이공항의 제3활주로는 잠시 폐쇄되었으며 사고 비행기는 18시경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제3활주로는 점검을 거친 후 19시 2분경에 다시 사용이 가능해졌으며 활주로가 폐쇄되는 동안 한 편의 항공편은 인도네시아의 바담섬에서 착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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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황금주, 중국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여행 도시는?여름방학이 금방 지났는데 "10.1 황금주"의 여행 상품 예약이 이미 시작되었다. 여러 여행 예약 플랫폼의 데이터에 따르면 "10.1"은 올해 여행의 열기를 이어 가장 핫한 10.1연휴를 탄생시킬 것으로 보인다. 씨트립(携程)이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10.1 휴가가 20여 일 남짓 남았는데 국경절 관광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플랫폼 국내 여행 상품 예약량은 작년 동기 대비 5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최근 일주일간 주문량은 전월 대비 63% 증가했다. 항공권, 민박 등 업종은 전주 대비 50% 이상 증가했고, 관광지 입장권은 두 배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권 가격은 소비자 수요가 크게 늘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씨트립(携程) 플랫폼에서 10.1 연휴 국내 항공권의 1인당 평균단가는 1,293위안으로 여름 항공권 단가보다 20% 올랐다. 주목할 점은 추석에 국경절까지 8일간 이어지는 초장기 연휴가 있는 만큼 장거리 여행 예약 열기가 더욱 뜨겁다는 점이다. 씨트립 항공권, 호텔 예약 추세에 따르면, 10.1 연휴 장거리 여행을 하는 비율은 84%에 달해 전년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장거리 여행의 목적지는 주로 서북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부르진(布尔津), 우루무치, 란저우, 둔황 혹은 화남 지역의 싼야, 광저우, 샤먼 등 지역도 있다. 이 가운데 신강은 올해 10.1 연휴에 여전히 인기가 많은 것으로 카스시의 여행 예약은 2019년 동기 대비 439% 증가했고, 부르진은 207% 증가했다. 민박의 경우, 투지아(途家) 민박의 데이터에 따르면 10.1연휴(8.31 기준) 인기 도시의 예약량이 2019년에 비해 1.5배 증가했다. 10.1 인기 예약도시 중에서 충칭, 다리, 시안이 상위 3위에 들었고, 칭다오, 위해, 청두, 항저우, 북해, 베이징과 장사가 각각 6위부터 10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올해 10.1 휴가기간 민박 예약이나 기타 제품 예약은 모두 일부 목적지의 예약이 이미 앞당겨져 예년에 비해 더 많은 소비자들이 인기 있는 목적지를 탈출 하는 것을 보였다. 씨트립 데이터에 따르면 샹그릴라, 경덕진, 안지, 난양, 창저우, 포산, 화이안, 옌지, 지에양, 안투 등 지역의 주문량이 2019년 10.1 연휴 기간보다 2배 이상 많았다. 8월 31일까지 투지아(途家) 플랫폼에서 10.1 예약이 가장 빠르게 증가한 도시는 연변, 창저우, 푸저우, 낙양, 산터우, 상라오, 간쯔, 장저우, 우시, 계림과 북해이다. 그중 연변의 예약량은 25배 증가했고 창저우, 푸저우, 뤄양 등은 10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여행 방면에서 제3차 해외여행 단체관광국가명단이 발표되면서 올해 국경절 해외여행 시장이 아주 활발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당일, 각 플랫폼의 해외 단체 관광이 재빨리 출시되었고 많은 관광객들이 사재기한 단체관광코스는 모두10.1에 출발한다. 춘추관광에 따르면 8월 30일까지 "추석+국경절" 연휴를 포함한 유럽 여행 상품은 거의 매진되었다. 관련 목적지는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그리스, 아이슬란드, 덴마크 등이다. 씨트립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0.1기간 해외항공권 검색 열기는 2019년 동기 대비 100% 가까이 회복되었으며 주요 검색 목적지는 태국, 한국, 미국, 영국, 호주이다. 한편 해외여행 호텔 검색 열기는 2019년 대비 20% 가까이 증가했으며 태국,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영국 등 목적지 호텔은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호텔이다.또한 뉴질랜드, 스위스,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튀르키예를 대표로 하는 일부 소규모 및 장기 관광목적지가 알려지며 호텔 검색 열기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동기 대비 현저하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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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한국학교 학생들의 뜨거운 여름방학 성장기를 소개합니다(1)광저우한국학교는 화남지역 유일의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로, 광동성 정부와 대한민국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대한민국에서 초빙한 선생님들께 우리 교육과정과 교과서로 배우고 익히고 있다. 올해 2학기에는 초등 21명, 중등 18명, 총 39명의 학생들이 전편입으로 함께 하게 되어 2학기에 학급이 증설되는 등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이는 중국 내 많은 한국학교들이 학생 수 감소를 겪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로 개교 10년째를 맞이하는 광저우한국학교의 성장과 발전이 더 기대된다. 지난해 말 방역 정책이 완화되고, 이번 여름방학에는 코로나 이후 가장 많은 한국학교 학생들이 고국을 찾아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를 방문하고 대회를 참여하거나 공인 어학시험, AP같은 표준화 시험 등을 준비하기 위한 학원수강 등을 하였다. 다섯 차례에 걸쳐 광저우 한국학교 고등학생들의 뜨거운 여름방학 성장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광저우 한국학교에서는 2023학년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남방과기대학교 이공계열 인턴십 협력 사업을 진행하였다. 영어로 의사소통과 에세이 작성이 가능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참가 신청을 받아, 10학년 이진규, 이승민, 온유현, 11학년 전채원, 서예준 학생이 인턴십에 참여하였다. 인턴십은 한국 카이스트 제승우 교수가 지도하였고, 가상현실에서의 몰입감 있는 경험을 위한 웨어러블 촉각 장치 개발 등의 제안 연구 주제를 가지고 인턴십을 진행하였다. 인턴십에 참여한 11학년 전채원 학생의 글을 소개한다. 이번 인턴쉽은 저에게 아주 귀중하고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이번 인턴십에서는 직접 대학 연구실에 가서 제승우 교수님과 다른 박사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선배님들을 만나고 선배님들의 연구를 실제로 가까이 보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을뿐 아니라 교수님에게 수업을 들으면서 각자의 팀 안에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arduino라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우고 활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설계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이루어졌는데, 이 모든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저희 참가자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아이디어 구성과 제작을 하였고, 교수님이 직접 쓰신 연구 논문을 읽으면서 디자인과 공학 그리고 우리에 일상에 가까워지고 있는 VR에 관학 지식이 어떻게 융합되는지, 원래있던 것을 개선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바쁜 일과중에도 저희는 바로 옆에 있는 학교에도 다녀왔는데요, 오히려 제한된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대학의 분위기를 잔뜩 느끼고 왔습니다. 이번 인턴쉽 활동을 통해 대학과 연구 그리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로망이 커진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무척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만약에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참가하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신 학교와 제승우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친구들과 후배들에게도 학교생활 뿐 아니라 더 많은 경험과 도전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료제공: 광저우한국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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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장이 어려울수록 고객에 집중하라, 베이징 호리존인테리어 한 잉(韩莹) 대표베이징 호리존Horizon(恒瑞森) 실내디자인/인테리어 한 잉(韩莹)대표는 2000년대 초반 광고회사에 입사하여 10여년의 경력을 쌓은 후 독립하여 광고사업을 창업했다. 5년의 사업 경험을 기반으로 광고디자인에서 실내디자인으로 사업을 전환한다. 그리고 시공까지 사업을 확장해서 고객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며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현재 호리존은 베이징인테리어협회(北京装饰协会)회원사이며, 한 잉 대표는 협회 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 잉 대표는 ‘양심적인 비즈니스는 반드시 살아 남는다’고 말하며 어려운 시기라도 열심히 하면 성장할 기회는 아직도 많다고 강조한다. 실내디자인, 인테리어에도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호리존은 어느 분야인가? 호리존은 공용 상업디자인, 인테리어가 주 업무로 호텔, 오피스, 식당 등이 있다. 특히 정부의 일을 많이 하고 있기에 시대 흐름이며, 안정성, 디자인에 매우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호리존의 강점은? 우리 회사의 강점은 데이터베이스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료비와 시공비, 고객관리다.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베이스와 업그레드 한 정보들은 새로운 소재를 접목하는데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호리존의 방향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작업장에 AI가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상업용 뿐만 아니라 가정용, 공용시설 등 인테리어 산업에 AI기술은 이제 필수적이며 빅데이터와도 매우 밀접하다. 또 하나의 강점이라면, 양심적으로 일하고 인정받는데 노력한다. 재료비에 있어서 동업계와 비교해 비용을 따지지 않고 양심적으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고객의 만족도는 오르고 고객과 깊은 신뢰를 쌓게 한다. 과거 한국계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한국과 연결이 있는지? 2000년대부터 한국기업과 인연이 깊다. 사회초년생때 한국 대기업 광고회사에서 일을 했다. 당시에 상사로부터 배운 업무처리 능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은 지금 사업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나에게 한국은 특별하고 문화도 익숙하다. 현재 업무적으로는 교류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환영한다. 회사 일 외에 외부 활동은? 호리존은 북경인테리어협회 회원으로 나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 활동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동종업계와 집중적인 교류로 업계 동향과 정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한다. 뿐만 아니라 각 회원사의 장점들을 알다 보니 서로 고객을 소개하기도 한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멋지다.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매일 루틴이 있다면 6시에 기상하며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가량 붓글씨를 쓰고 출근 준비를 한다. 바쁜 일상에 늦게까지 고객응대가 있더라도 마치고 회사에 와서 한 시간은 붓글씨를 연습한다. 집중해서 글씨를 쓰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잡생각이 사라진다.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복잡한 일이나 새로운 업무가 들어왔을 때 비교적 냉철하게 문제를 처리하게 되고 평정심을 갖게 한다. 사람이 너무 바쁘면 대뇌가 쉬지를 못해 판단력도 흐려진다. 과거에는 드라마나 뉴스, 업계 소식을 검색하면서 휴식을 가졌지만 지금은 붓글씨가 나에게 가장 적합한 스트레스 해소 도구이며 나의 내면과 얘기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중국의 실내디자인, 인테리어 업계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개인적으로 발전시장이 아직도 크다고 본다. 현재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의 1선 도시외 주변도시는 더 이상 신축건물이 들어 설 곳이 없다. 따라서 노후된 건물들은 개조할 수 밖에 없다. 오래된 건물은 보통 전체를 철거하기 보다는 뼈대는 살려 놓고 용도 변경이나 사용처에 따라 새로운 설비로 내부 구조를 개조, 보강하여 시공을 한다. 도시 건물 리모델링은 정부 정책과도 매우 밀접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이 발전하려면 정부의 전반적인 환경과 정책 변화, 지역 정책을 관심있게 보고 거기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이런 리모델링 시공은 빠른 현대화를 지향하는 중국에서 각 지역마다 계속 확장해 나갈 것으로 본다. 전 세계가 어려운 경제 상황이다. 중국 역시 부동산이 어렵기에 영향을 받을텐데, 어려운 시기 신규고객 창출은 어떻게 하는가? 호리존은 감사하게도 이전에 개발한 고객들이 전반적으로 크든 작든 신뢰성에서 우수하기 때문에 기존고객 자원이 지금 어려운 시기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신규는 기존고객이 연결해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존고객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개해 준 신규고객에게 잘 할 수밖에 없고, 신규고객은 또 제3의 신규고객을 창출해 준다. 협회 활동 및 업계 관계자 모임도 부지런히 하지만, 시간이 있으면 절반의 정력을 기존 고객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모든 기업에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실력있고 우수한 기업은 항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글씨체에는 글쓴이의 성품 또는 심정이 묻어난다고 한다. 또박 또박 반듯함, 간결하면서도 강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붓글씨는 한 잉 대표와 참 많이 닮음을 느낀다. 진취적인 사업 성향과 워킹맘으로 키워낸 대학생 아들 엄마의 자상함이 인터뷰 내내 솔직담백하게 나눠졌다. 사업가로서 그녀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실력과 신뢰는 사람 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통한다며 회사가 커지기 보다는 내실있는 회사로 장기적 성장을 이끄는 것이 목표이다. 같은 마음으로 한 잉 대표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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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국 심혈관의료기기 전세계 유일, 국가급하이테크 마이디 멍지엔(孟坚) 회장마이디(北京迈迪顶峰医疗科技股份有限公司) 의료기기는 선천성 심장병, 심장판막증, 부정맥의 전문 심혈관질병 치료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외 신기술 의료장비 및 의료소모품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창업자 멍지엔(孟坚) 회장은 1989년 베이징대학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베이징인민병원 종양외과 의사로 근무했다. 1993년 영국무역회사에 입사해 최초로 심혈관, 심장개입 기술 도입 및 중국과 의료선진국의 의학교류를 담당했다. 이후 무역회사 설립, 의료기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그는 30년간 심혈관(심장병) 전문 외과 의료기기만을 연구 개발하며 해외 의료기술을 빠르게 도입해 중국 의료분야 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수입에 의존되어 있는 의료기기 시장을 국산화 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마이디만의 경영철학, 핵심가치는? 첫째 환자의 수요, 소수의 환자를 위해서라도 의료기기는 개발해야 한다. 다수의 환자에 초점을 맞춰 비즈니스로만 의료기기 사업을 하지 않는다. 과거 의사 직분의 사명감과 사업에도 환자 우선순위는 의무와 책임이다. 둘째 국가의 수요, 국가가 필요로 하면 반드시 한다. 마이디에서 연구개발한 심혈관 솔루션은 유일한 중국산이다. 전세계적으로 이 분야에 3개의 회사 제품이 있는데 마이디의료기기와 미국의 두 개 회사의 제품이다. 현재 중국은 의료산업을 매우 중시하고 있어 국가의 정책과 수요는 기업목표의 혁신동력을 가져 온다. 셋째 진정한 기술혁신(真创新), 중국의 모든 수술기술은 국가위건위(国家卫健委)의 허가를 받고 시행할 수 있다. 그리고 수술관련 제품에도 국가의료보험국에서 의료보험 적용 여부 허가를 하는데, 두 개의 행정기관에 올라가지 않은 새로운 기술만이 진정한 기술혁신으로 인정 받는다. 마이디의료기기 제품은 진정한 기술혁신으로 국가급 하이테크기업으로 인정 받았다. 선천성 심장병, 심장판막증, 부정맥 3대 심혈관 질병의 의료기기 솔루션을 제공한다. 약품감독국(药监局) 11개 등록 제품중 4개가 국산 유일, 3개가 국내 유일, 1개가 전세계 유일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기술혁신의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가? 의사출신, 외국계기업 다년간 근무로 세계의 기술을 알고, 시장을 보는 눈이 확장되었다. 잘하는 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파고 들어 간 것이 업계에서 가장 필요한 복합성 인재(复合型人才)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 의료기기의 모든 혁신은 임상에서 비롯되어 기업의 혁신, 환자의 이익으로 연결해야 한다. 끊임없이 시대를 따라 이 순환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가 혁신을 할 때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혁신이 회사에 가져올 미래의 발전 공간이기에 끊임없이 다른 모델을 탐구하게 한다. 멍회장은 수술봉합매듭기, 좌심이폐시스템 등 제품들을 보여주며, 마이디 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사업분야는? 현재 중국의 의료업계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바로 ‘비대면 진료’다. 비대면 진료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2022년 기준 1,700개가 넘는다. 과거 명의(名医), 신뢰받는의료기술은 주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비대면 진료가 확산되면서 전국의 실력있는 의료진들이 전문화 세분화되어 플랫폼에서 진찰을 하고 있다. 마이디도 심혈관 분야로 현재 저명한 의사들과 합작하여 베이징과 무한에서 이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기대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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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이혼하고 주택 구입하면 계약금(首付款)을 30%만 지급하면 된다?심천(深圳) 호구가정은 이혼 후 소유한 주택이 없는 쪽이다시 집을 구입하면계약금(首付) 30%를 지불할 수 있다?! 최근 많은 중개업자가모멘트에서 '심천(深圳)호구가정, 주택 한 채를 가지고 있고 이혼 후 소유한 주택이 없는 쪽이 다시구매하면 계약금(首付) 30%를 지불하면 되며 2018년 ‘7.31'에 발표된 이혼소급기간 2년에 제한받지 않는다'는 소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2018년 7월 31일, 심천에서 출범한 이혼 주택 구매에 대한 대출 제한 정책에 따르면, 주택 구매자가 이혼 후 2년 이내에 주택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 계약금(首付) 금액이 70% 이상이다. 만약주택대출이 없고 이혼 전 무주택증명서를 제출할 수 있는 경우, 계약금(首付) 비율은 30% 이상이며 이혼 전 가정에서 주택 한 채를 가지고 있을 경우 50% 이상의 계약금이 지급해야 했다. 이 소식과 함께 심천의 이혼 등기 신청 예약 사진을 캡처한 사진이 전해졌는데, 사진은 심천의 각 지역 민정국 이혼 등기소가 예약이 꽉 찼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해당 사진은 '이혼 후 계약금(首付) 30% 지불하다'는 루머를 입증하듯블로거들이 '이혼 러시'(离婚潮来袭)라는 제목을 달아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면심천의 실제 상황은 도대체 어떨까? 이혼하고 주택을 구매하는 대출 규제는 과연 완화되었을까? 9월 5일, 중국은행, 건설은행, 농업은행, 공상은행 등 4대 은행 및 초상은행, 우정저축은행 등 일부 주식제 은행에 확인한 결과, '원래 정책대로 집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 은행의 대출 매니저는 '정책이 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공식적인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며 전했다. 중국은행 심천 모 지점의 대출 매니저는 '현재 이혼 전 가정이 단 1채의 주택만 소유하고 이혼 후 주택대출 기록이 없을 경우 계약금(首付) 50%로 집행하며 새로운 정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추가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계약금(首付) 30%'는 아직 확실치 않다'며 전했다. 공상은행 심천 모 지점의 대출매니저는 '현재 런팡부런다이(认房不认贷) 정책만 나왔을 뿐 기타 구체적인 내용이 확실치 않으며, 현재 한 가정이 한 채의 주택이 있고 다시 주택을 구입할 경우 계약금(首付)은 최저 50% 이상이다'고 말했다. 중국농업은행 심천 모 지점의 대출 매니저는 '현재 첫번째 주택이 인정되는 이별 소급 기간은 아직 2년이다. 우리가 잠시 받은 통보는 현재 이혼(명의상 무주택)하면 첫 채가 아니다. 원래의 계약금(首付) 비율(50% 이상)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초상은행 심천 지점의 대출매니저는 '이혼 소급 기간은 여전히 기존 정책에 따라 집행하며 현재 이혼한지 2년 미만일 경우 명의로 된 주택이 없고 가정에 주택이 있고 대출금을 청산하지 못했을 경우 계약금(首付) 비율은 여전히 70%이다. 대출 기록이 없다면 계약금(首付) 비율은 50%이다'며 전했다. 최근 은행의 대출 제한 정책이 조정될 것인지에 대해 위 초상은의 대출 매니저는 정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책이 시작된 직후라 은행들이 여러 가지 상황을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있어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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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부동산 정책(认房不认贷) 시행후, 모 분양사무소 '하루 매출이 지난 1개월 매출과 맞먹어'9월 1일, 상하이, 베이징은 선후하여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 대출여부를 불문하고 자신 명의로 된 부동산이 없으면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전면적으로 집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4개 1선 도시에서는 이미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이 실시되었다.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이 시행된 후 첫 주말에 신규 주택과 중고 주택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여러 신규 분양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이 시행됨에 따라 주택 구매 수요자와 개선형 고객이 이미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 정책의시행 효과가 뚜렷이 나타났다. 9월 2일 저녁, 상하이 린강(临港)에 위치한중건구해운천(中建玖海云天) 분양사무실에서 저녁 8시가 지났지만 여전히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중건구해운천(中建玖海云天)의 영업직원은 "린강에서 집을 사면 3명 중 1명이 우리 프로젝트를 살 것이다"며 전했다. 상기 분양 아파트는 올해 6월부터 판매를 개시했으며 새 정책(认房不认贷)이 나온 후 이틀동안의 판매량이지난 한 달 판매량과 비슷했다. 직원은 "9월 1일 저녁에 정책이 나온 후 새벽 3시까지 고객을 접대했는데 하룻밤에 9채의 집을 팔았다. 오늘(9월 2일)은 벌써 40채 정도가 거래됐다”며 전했다. 영업직원은 '다른 업체는 고객의 계약금 지불시간에 따라 다른 할인 혜택을 적용한다고 들었다. 오늘 계약금을 내고 7일 이내에 계약금(首付)를 모두 지급하면 최고 할인은 5%이다. 133평방미터 정도의 주택은 할인한 후 약 18만 원이 적어진다. 할인이 계속될지는 불확실하다'며 전했다. 상하이시 바오산 구에 있는 대화금수사계절 분양사무실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9월 3일 오후, 대화금수사계절 분양사무실 입구 도로에는 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텅 비었던 주차장도 차들이 꽉 차 있었다. 영업직원은 '현재 아파트는 3기, 4기를 판매하고 있으며 3기는 올해 1월, 4기는 올해 4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정책이 출범한 후 아파트 분양 속도가 선명하게 높아졌다'며 전했다. 현장 직원은 "어제(9월 2일) 하루에만 30여 채가 팔렸다. 120㎡ 아파트는 모두 56채인데 3채 남았고 140㎡ 아파트는 60여 채인데 이제 모델하우스(2채)밖에 남지 않았다"며 소개했다. 그는 '새로운 정책이 출범한 후 일부 고객은 원래 소형주택에 살 계획이었는데, 새 정책(认房不认贷) 시행된 후 자신 명의로 된 주택이 없다면 첫 주택의 계약금(首付) 기준을 집행할 수 있고, 많은 고객들이 대형주택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전했다. 주택 구매가 꼭 필요한 고객(刚需客户)일 경우, 총 가격이 비교적 낮기 때문에 99평(㎡)의 주택은 여전히 대부분의 주택 구매자들이 선호했다. 신축 주택 외에 중고 주택 시장도 이전보다 나아졌고 일부 구매자들은 망설이던 마음을 바꾸어 직접 계약을 맺고 주택을 구입했다. 하지만 일부 판매자는 매도를 철회하 가격을 인상하는 자들도 있었다. 전환형 집주인의 경우,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 호재에 따라, 적지 않은 집주인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업계 인사는 런팡부런다이 정책(认房不认贷)은 시장 거래량을 확실히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주택 구매자들은 정책이 명확해지면 시장에 진입하려는 의향이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하며, 9월부터 신규 및 중고 주택 분야의 거래 활성화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