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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관골프협회 초대 회장 강문화 회장 - 광동 골프 역사 조선민족 성장과 함께 하다광동성하나골프협회 초대 회장 동관골프협회 초대 회장 강문화 회장 ■ 고향:흑룡강성 할빈시 ■ 골프 구력: 23년 광동의 조선민족 골프모임은 형제골프회로 시작되어 2008년 하나골프회가 창립되면서 정식으로 광동성조선민족골프협회의 모습을 갖춰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초대 하나골프회 회장은 오랜 골프 구력과 동관동호골프회 회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는 강문화 회장으로 추대 되었다. 강문화 회장은 광동성에 흩어져 있는 조선민족 골퍼들을 집합하는 데 매우 집중하였다. 어느 조직이든 시작이 일도 많고 체계를 잡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첫 모임을 개최하기 위해 여기 저기서 소개 받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는데, 그때는 위챗도 없는 시절이었다. 일일이 전화를 해 대회 참가를 권유해서 첫 모임에 100명이 모이는 성공적인 제1회 하나골프회 창단대회를 개최하였다. 강문화 회장의 2년의 수고로 광동 골프 모임은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2대 회장으로 당시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회장인 이철호 회장과 각 지역을 방문하여 조선민족 화합과 골프모임을 조직하여 지역간의 골프 교류회를 확산해 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골프회 회원들은 대부분 기업인들로 사업도 어느정도 기반을 잡아 경제력도 있고, 민족 자부심도 아주 강하다. 따라서 광동성에 크고 작은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산하 행사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며 민족 사업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지금 하나골프회는 후배들이 잘 이끌어 나가고 있다. 강문화 회장은 1982년 하얼빈기술감독국에서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 당시 해외 출국이 쉽지 않았는데 공무원 신분으로 한국을 왕래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그리고 안정된 공무원 보다 좀 더 역동적인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1992년 지인의 소개로 심천의 완구 회사로 명성이 있는 한국 기업(정윤완구/正润玩具) 제2공장 총경리로 부임을 받아 왔다. 그 때 월급이 홍콩달러 7000원으로 꽤 높은 대우를 받았다. 이 회사에서 3년을 근무하고 완구 경력이 있는 한국인 지인과 창업을 했다. 1997년도에 동관에 완구공장을 설립하였다. 당시에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만사람 또는 한족들이었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될 때 1998년 동종 업계 한국 사장님이 골프를 쳐보라는 권유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대만골프협회에 가입하여 2개 모임과 한국골프모임에 주로 참가했다. 그때만 해도 조선민족 골프 모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골프 친지 5년 만에 동관 펑징골프장(峰景高尔夫球场)에서 알바트로스를 했다. 첫 싱글 때도 기억이 생생한데 전날에 배탈이 나서 누워있다가 골프치러 나갔는데, 첫홀에 버디, 두번째 홀에 버디, 세번째 파, 네번째 버디, 다섯번째 내리 버디를 하는 바람에 당시 함께 치던 한국인들이 엄청 놀랐다고 한다. 강문화 회장은 골프를 잘 치려면 ‘한 번 미쳐야 잘 친다’고 말한다. 그동안 세 번의 홀인원을 했다. 2006년, 2007년, 2008년 한 해에 한 번씩 홀인원을 했는데 그 중 가족 모임에서 한 홀인원이 특별했다고 한다. 골프를 일찍이 시작해서 수 많은 대회에 참가를 했다. 그에게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05년 연변에서 개최된 전국조선민족기업가골프협회 대회이다. 그는 하얼빈에서 살았기에 조선민족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골프 하나로 전국에 있는 조선민족 기업가들이 연변에 모여 우리 민족 음식을 맛보고, 그네띄기, 씨름 등 민속 놀이를 하면서 어렸을 때 추억을 되살려 보았다. 참 의미있고 특별한 대회였다. 이 외에도 전국 오성회며 기업가 골프대회에 대부분 참석을 하며 각 지역 조선민족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류를 하였다. 광동에도 골프를 치는 우리 민족 친구, 아우들이 한 두명씩 늘어 나면서 2006년도에 동관에서 동호골프회를 직접 설립했다. 이때 이영춘 회장도 함께 있었는데 당시 12명이 아주 재미있게 골프를 즐겼었다. 동호골프회가 지금의 동관골프협회이다. 골프를 치면서 한국인, 대만인, 조선민족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동안 골프로 만난 사람들 중 대만,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 갔으나 전국골프모임에서 만난 인연들은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그 중 이춘일 고문은 골프도 잘 치지만 지식이 넓고, 판단력도 좋으며,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이다. 심천에서는 전우회장이 참 멋지다. 정직하고 솔직해 배울점이 많다. 그리고 이철호 회장은 강문화 회장을 조선민족 사회에 나오게 한 고마운 사람이다. 이처럼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기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어 이만한 플랫폼은 없다고 생각한다. 강문화 회장이 골프를 치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있다면 거짓 없이 솔직하게, 첫 홀부터 마지막까지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스코어카드에 노예가 되지 말라’는 유명 골프선수 소렌스탐의 말처럼 골프 스코어 보다는 자신과 동반자를 위한 정직한 플레이를 하며 매 홀을 즐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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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김수국 회장 - 골프는 동기부여 중요, 구력 7년에 홀인원 3번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 동관지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동관지회 김수국 회장 ■ 고향: 흑룡강성 목단강시 ■ 기업: 深圳市禾善贸易有限公司 ■ 골프 구력: 7년 동관골프협회 5대 김수국 회장(흑룡강 목단강, 1974년생)은 올해가 구력 7년차 일 뿐인데,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 하는 홀인원을 이미 3번이나 한 행운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반자 홀인원은 8번이나 목격한 행운남이다. 첫 번째 홀인원은 2018년2월10일 广州南沙高尔夫球场 山场코스에서 140야드, 9번 아아언, 그 다음달 이어서 두 번째 홀인원은 2018년3월10일 东莞峰景高尔夫球场 C场2号洞에서 145야드, 8번 아이언으로 하고, 세 번째 홀인원은 2020년12월9일 东莞观澜湖高尔夫球场 安妮卡 5号洞에서 150야드, 8번 아이언으로 했다. 세 번의 홀인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홀인원은 세 번째 미션힐(观澜) 애니카 코스를 꼽는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공이 들어 가는 느낌이 바로 왔는데, 세 번째는 공이 떨어졌는데 오르막길이라 바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봐서야 공이 세 개만 있고 자신의 공은 홀컵에 있는 걸 보고 매우 짜릿함을 느꼈다고 한다. 홀인원은 운인가? 실력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운과 실력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라고 답을 했다. 김수국 회장을 골프에 빠지게 한 에피소드가 참 재미있다. 그는 골프를 좋아하기 전 축구를 꽤나 좋아하고 열심히 하였다. 광동에서 특히 심천에서 70, 80, 90년대 동생이나 친구들 중 축구 좀 하는 사람은 그를 모르지 않을 정도로 실력도 대단했다. 매주 축구장이 그의 놀이터였는데, 그렇게 사랑하는 축구를 안하고 골프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축구를 하다 보면 부상은 늘 있는 일인데, 하루는 축구하다 다리를 다쳤는데 늘 같이 운동을 하는 강윤걸 친구가 “축구하다 더 다치지 말고 이제 우리 골프를 치자”라고 제안을 하였단다. 그 때 당시 김수국 회장은 일본 손님들이 있어 종종 골프를 쳤는데, 친구는 한 번도 골프채를 잡아 보지 않았을 때이다. 그래서 “야 나랑 골프 치려면, 연습장 가서 1년은 휘두르고 와라”라며 농담조로 말을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정말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3개월간 무섭게 연습을 하더니만 머리를 올려 달라는 요청을 하더란다. 그래서 미션힐에서 머리를 올려 주는데 오히려 친구 골프실력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고, 김수국 회장도 크게 자극을 받아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골프에 매진하게 되었다. 지금 그 때를 회상하면 강윤걸 친구와 골프 의기투합이 된 날부터 두 사람은 남들 1년 정도 칠 골프를 3-4개월만에 칠 정도로 많이 쳤다고 한다. 그 덕분에 싱글도 2년차에 달성했다. 그의 베스트스코어는 1오버파, 73타이며, 장끼는 벙커 샷, 퍼터이다. 짧은 시간에 필드 경험이 많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은 ‘룰과 매너’를 더 철저히 지키고 싶은 욕심이다. 그리고 그가 느낀 골프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배려심’이라고 한다. 아무리 골프실력이 좋고 운동 경험이 많더라도, 골프는 신사운동이기에 배려심이 갖춰 있지 않다면 진정한 골퍼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배려심’을 말하면서 그동안 골프를 치면서 좋은 영향력을 받은 한 분을 소개했다. 바로 동관골프협회 4대 허영철 회장이다. “허영철 회장님은 매너도 좋고 배려심도 깊고 성격도 좋습니다. 거기에 사업도 잘하시기에 우리 후배들이 존경할 수 밖에 없습니다.”라며 선배 허영철 회장에 대해 존경심을 전했다. 그가 동관골프협회 5대 회장을 맡은 것도 허영철 회장이 “민족에 대해 애착심을 갖고 하는 일이지 회장 자리가 위대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권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5대 회장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김수국 회장은 1996년 심천에 와서 화장품, 시계 케이스를 만드는 일본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당시 제조업이 활발했기에 안정적이긴 하였으나 3년 정도 근무하다 무역에 관심이 많아서 과감히 그 일을 그만 두고 무역을 하기 위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광주외무외어대학(广州外贸外语大学)에서 1년 반을 공부했는데 당시 8000원 홍콩달러를 주는 멀쩡한 회사를 포기하고 영어를 뜬금없이 공부하는 것에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 보면 그 때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김수국 회장도 없었기에 공부에 매진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한다. 그 후 2005년 창업을 해서 창업초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액정필름 분야로 꾸준하게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이 분야에서는 전문기업이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회사나 골프나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도전도 좋지만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못해서 결과를 보기 전에 쉽게 포기를 하는데, 한 가지를 꾸준하게 한 사람을 절대 따라 올 수 없다고 말한다. 동관골프협회는 5대(2019~2021) 김수국 회장이 맡고 부터는 회원들도 많이 늘었음은 물론 회원들 평균 연령대도 많이 내려 갔다. 그의 역할은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 최단시간 협회에 적응하게 하는 것과 회원간의 단합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는 젊은 회원들이 많기에 동관골프협회는 앞으로 더욱 활기있게 단결이 잘되는 협회로 거듭나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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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3월 1일부터 마스크 착용하도록 요구하지 않아2월 28일, 홍콩특구 행정장관 존 리는 '3월 1일부터 모든 장소의 마스크령(口罩令)을 해지하고 실내, 실외 및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지하였다. 그는 '현재 홍콩의 코로나사태가 컨트롤가능하고, 반등 기미가 없고, 광범위 및 전면 방역 장벽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병원, 숙소, 학교 등 곳의 중점인원이 대량으로 감염되지 않았고 독감과 호흡기감염도 막바지에 들어선 점을 고려해 마스크령 해지를 결정하였다'며 말했다. 하지만 병원 등 고위험장소에서 책임자는 '행정지령'(行政指令)으로 직원 혹은 방문객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26일, 마카오특구정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응변센터는 '최근 2개월 동안 마카오의 코로나사태가 안정적이고 세계 각 지역의 방역경험을 바탕으로 27일부터 일반 상황에서 모든 실외 장소에서 마스크착용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전했다. 하지만 의료기관, 병원, 요양원 그리고 대중교통 운전기사와 승객은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기타 실내 장소와 교통도구는 주관업체에서 당시 코로나사태 상황, 장소 혹은 교통도구 내의 환기상황, 인원수와 밀도, 활동성질과 지속시간 등 요소에 따라 마스크착용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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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중국선양협의회, 무오독립선언 104주년 기념식 가져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선양협의회는 2023년 2월 24일 오후 3시, 선양해운금강국제호텔에서 제104주년 무오독립선언 기념식을 가졌다. 올해는 특별히 무오독립선언 기념식 10주년을 맞아 식전행사로 특별사진전도 개최했다. 주최 측은 본래 매년 2월 1일에 해왔던 행사이지만, 올해는 중국 춘절연휴 이동과 3년만의 한국방문이후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자문위원들이 중국복귀에 어려움을 겪어, 행사 일정이 다소 늦어진 상황에 사전 양해를 구했다. 이날 행사는 식전행사로 무오독립선언기념식 10년사 특별사진전이 있었고, 오프닝공연으로는 사물놀이 공연이 있었다. 민주평통 선양협의회 양남철 회장은 환영인사를 통해, 지난 10년 동안 무오독립선언 기념식을 통해 항일독립정신을 본받고, 하나 되어 통일의 길을 모색해 왔다면서, 이제 다시 새로운 10년을 열며, 완전한 독립인 통일의 그날까지 한민족이 대동단결하며, 오늘의 다짐과 외침을 견지하고 싶은 바, 민주평통 선양협의회가 그 마중물이 되고 초석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최근에 새로 부임한 주선양대한민국총영사관의 최희덕 총영사는 축사를 통해, 교민들에게 신임 안부 인사부터 전하며, 동북 3성지역의 소중한 역사유산인 무오독립선언 기념식을 통해, 민주평통 선양협의회를 중심으로 항일정신을 기리고 나아가 통일운동에도 체계적으로 매진해 줄 것을 기대하며, 선양총영사관도 그 길에 기꺼이 함께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평통 중국지역회의 설규종 부의장은 축사를 통해, 선양협의회가 지난 10년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해도 빠짐없이 진행해온 그 열정과 저력에,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고 치하하며, 무엇보다도 104년 전 무오독립선언문을 통해 외쳤던 우리민족의 <한마음 대동단결>의 기치가 실현되기를 기원했다. 그것이 104년 전, 전 세계 민족대표 39인이 한마음으로 외친 무오독립선언의 기본정신이요, 출발점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 3창, 독립군가로 이어졌다. 올해에는 특별히 낭독자로 하얼빈 자무스, 연길, 대련 등지에서 어린 청소년들이 달려와 선언문을 낭독하여 감동과 의미를 더했다. 이어지는 순서로는 의장표창 전수식, 제10회 한중우호 글짓기대회 시상식, 독립유공자 후손 선물증정식 등이 이어졌고, 마지막 순서로는 특별강연회 무오독립선언기념식을 10년 전에 최초로 기획하여 진행하기 시작한 동북항 일유적연구소 김영식 소장이 강사로 나서, <3대 독립선언 비교특강 및 통일로 가는 길>을 강연했다. 이날의 강연을 통해 김영식 소장은, 3대 독립선언 각각의 특징을 설명한 후, 100년 전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특징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른바 <중꺽마 정신(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과 어려울 때 한마음 대동단결, 그리고 체계적 준비를 꼽았다. 그러면서 통일로 가는 길에서도 3대 독립선언의 정신과 철학을 본받아 같은 장점을 만들고 키워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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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산골프협회 초대회장 정용택 회장 - 20년 구력도 골프는 계속 목마르다광동성하나골프협회 제4대 회장 중산골프협회 초대회장 정용택 회장 “골프 없으면 못 살거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할 일이 줄어드니까 작년 2020년 한 해 중산에서만 307일을 골프를 쳤습니다. 골프 시작하고 가장 많이 친 한 해였습니다.” 정용택 회장은 구력 20년 동안 수 없이 많은 골프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1년은 그야말로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과거 출장이나 비즈니스로 해외 나갈 일도 없고 들어 오는 손님도 없고, 그렇다 보니 그에게는 골프장이 낙원이고 쉼의 터전이 된 셈이다. 그는 1995년 처음 심천에 왔다. 그리고 1996년 당시 여자친구가 중산에 있어서 그녀를 따라 중산에 온 것이 지금까지 중산 최초 조선민족 토박이로 남게 되었다. 중산에는 지금보다 과거에 일본회사가 꽤 많았는데 그때 일본회사 입사할 때는 일본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일본어를 구사하다 보니 도움을 받아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워 많은 활용을 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지금의 아내로 평생 동반자로 함께 하고 있으며, 1996년 취직한 회사 또한 지금도 다니고 있다. 그는 또 1999년 창업을 해서 지금까지 주방용, 화장실용 线材制品을 생산하고 있다. 그가 골프를 시작한 때는 회사 창업후 기존 회사와 겸직을 하면서 주변에 일본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며 골프를 하게 되었다. 정용택 회장이 생각하는 골프매력은 첫째, 푸른잔디에서 티샷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골프는 역시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각 사람의 개성을 느끼고 함께 라운딩을 하다 보면 어느새 골프의 동질감을 나누다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늘 유쾌할 뿐만 아니라 오랜 구력으로 배려가 몸에 익숙해 있기에 어느 상황에도 잘 맞춰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너를 중시하기에 필드에 나갈 때 마다 각오하듯이 골프매너의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가 잘 하는 것이 칭찬을 많이 해 준다. 동반자가 유쾌하게 칭찬을 많이 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것들이 바로 정용택 회장의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골프 매력 둘째는, 내 뜻대로 안되는 게 골프이기에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치는 것 같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주는 것이라 하겠다. 골프를 칠 때 공이 안 맞으면 그만 쳐야 겠다고 맘을 먹다가도 어느새 오후가 되면 필드에 나가 있다며, 골프사랑에 푹빠져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고 한다. 구력 27년 동안 그의 골프사랑은 한 번도 변심없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중산에 온 그는 어느 덧 중산의 어른이면서 골프선배가 되었다. 광동에는 이제 제법 많은 후배들이 있고 대회나 모임을 가 보면 연령층들도 계속 젊어지고 있는 추세임을 느낀다. 그는 후배들이 다 잘 하고 있지만 골프에 대한 조언을 하자면, 골프를 치다보면 내기에 연연해 골프 본연의 즐거움을 놓치는 후배들을 종종 본다.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골프는 흔히 멘탈게임(mental game: 정신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운동 게임)이라고 한다. 멘탈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동반자, 주변을 돌아보는 것을 놓쳐 매너에 대한 실수와 운동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멘탈 관리를 잘하여 마음을 내려 놓고 즐기는 골프를 향유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정용택 회장 역시 과거에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골프를 치고 나서는 급한 성격이 많이 완화되고 자신을 통제하는 컨트롤을 배웠다. 18홀을 치다 보면 각 홀 마다 인생을 만난다. 내 생각대로 게임을 진행하지만 결국 생각과 다르게 쳐지는 공에 대해 스코어는 진행되어 벌써 과거가 되어 버렸는데 화가 올라온듯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러 사람과 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멋지게 컨트롤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도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이 깨달음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용택 회장의 골프인생에 영향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광동성조선민족연합회 2대 회장이면서 하나골프협회 2대 회장을 맡은 이철호 회장이다. 중산에는 정용택 회장이 정착하면서 조선민족 사회가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광동지역에 비해 인원은 많지 않지만 중산조선민족협회가 조직되어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교류하고 있다. 2004년 광동성조선족연합회가 설립되고 첫 민속축제가 있을 때 중산 어르신 70명을 모시고 운동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때가 광동사회로 나오는 첫 계기였는데, 각 지역에서 참가한 축구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산을 벗어 날 일이 없었는데 2008년 이철호 회장님이 회장단을 모시고 중산을 방문하였다. 그 때 처음 중산에서 골프를 같이 하고 중산골프협회가 설립되었다. 이철호 회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주로 일본사람들과 어울리고 중산의 몇 안되는 지인들과 어울렸는데, 골프협회가 만들어 지고는 광동지역 대회를 참석하게 되면서 광동의 조선민족들과 어울리는 기회들이 점점 많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철호 회장님과의 만남과 배려가 없었다면 골프도, 중산조선민족 사회도 밖으로 나와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철호 회장님이 개인으로나 우리 중산을 위해서도 참 고마운 분이다. 지금은 중산에 조선민족이 약 1천명 정도가 된다. 주로 개인사업 보다 젊은 직장인들이 많고, 젊은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많이 있다. 숫자가 적으니 밖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아도 행사를 하면 평균 100~150명 정도는 참석을 한다. 정용택 회장은 중산조선민족협회나 골프협회에 대해 앞으로 큰 바람 보다는 수시로 후배들에게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중산에서만 머물지 말고 많은 기회를 누려 광동이고, 전국이고 밖으로 나가 우리 조선민족 사회 사람들을 많이 만나라고 한다. 그래야 중산이 단합이 되고 광동을 넘어 전국 조선민족이 단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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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광주지회 제6대 허호성 회장 - 봉사로 골프협회 섬겼더니 날씨도 따라 주더라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광동성하나골프협회 광주지회 제6대 회장 허호성 회장 ■ 고향: 길림성 연길시 ■ 기업: 广州卓王国际贸易有限公司 ■ 골프 구력: 20년 광주조선족골프협회 역대회장 초대회장 김철용(2008년-2009년) 2대회장 신영식(2010년-2011년) 3대회장 전우범(2012년-2013년) 4대회장 김철용(2014년-2015년) 5대회장 김기철(2016년-2018년) 6대회장 허호성(2019년-2020년) 7대회장 김철용(2021년-) * 현재 등록된 회원수: 120명 허호성 회장은 골프를 정말 사랑하고, 골프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가 말해서가 아니라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그 느낌이 전해 진다. 그는 2001년 부터 골프를 쳤는데, 연태(烟台)에서 신발 사업을 할 때 한국 바이어들이 모두 골프를 너무 좋아했다. 세계에서 한국인들이 골프를 최고로 좋아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보였으니, 당시 골프를 안치고 있었던 허호성 회장 눈에는 뭐가 저리 좋은가 할 뿐이었다. 그때 형, 아우로 지내던 한국 지인이 골프를 추천하길래, “내가 무슨 골프냐, 그 돈이면 돼지고기 몇 근 사서 집가서 먹을란다”하며 콧방귀를 뀌며 거절했다. 그래도 그 형은 골프 안치면 재미나는 일이 없으니 골프를 치라며, 골프채를 사주고 며칠 동안 연습을 시키더니만 골프장 비용까지 대주며 필드로 데려 갔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골프를 시작해서 10살 차이 나는 형들과 골프를 치며 여러 가지를 배웠다. 골프 매너는 물론 골프가 내 욕심으로 되는 게 아니고, 욕심을 가질수록 엇나간다 것, 마음을 내려놓고 힘을 뺄 때 공이 더 아름답게 가고, 멀리 간다는 것 등 골프의 지혜를 터득해 나갔다. 혈액형 A형의 완벽주의 성격인 그는 점점 더 골프의 마력에 빠져 들며, 한국 골프 프로그램을 매일 녹화해서 골프를 섭렵해 갔다. 얼마나 많이 봤는지 골프이론이 해박해져 주변에서는 골프코치를 하라 할 정도였다. 그는 한 번씩 연습장에 가면, 한 시간에 800원 코치비용을 들여서 일주일 동안 동작 하나 배우며 한 숨을 쉬는 젊은 친구들을 적잖게 본다. 그럼 조용히 다가가서 기본 동작 가이드를 해주면 매우 고마워 한다. 젊은 친구들에겐 허호성 회장이 연습장의 비밀병기인셈이다. 허호성 회장은 2004년에 광주에 와서 신발 제조, 신발 부자재를 한국에 납품하는 사업을 줄곧 해 오고 있다. 당시에 신발업계 한국인들과 광주에 오다 보니 아는 사람도 없고 조선민족 친구도 없었다. 그 때 골프모임도 한국인들만 알다보니 화두한인골프회와 한류회에서 골프를 쳤었는데, 뒤늦게 조선민족골프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양쪽 모임을 같이 나가다가, 후에 광주조선민족골프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한류회는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었다. 과거 양쪽 협회에서 골프를 치다 보니 한국인 골프와 조선민족 골프에 조금 차이를 느꼈다. 한국인 골프는 매너를 중시하기에 지켜야 할 골프 매너들이 굉장히 많다. 타인이 골프칠 때 말하면 안되고, 그림자가 비쳐도 안되고, 장갑 찍찍이 소리가 나도 안된다 등 굉장히 강박감이 몰려와 조심스러우나 반면, 조선민족 골프는 매너가 좀 더 향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앞에서 말한 강박관념이 없어 좀 느스한 분위기에서 골프를 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그는 광주골프협회에서 약 6년 회원으로 참가하다가 김철용 회장의 추천으로 회장을 맡게 되었다. 당시 18명 정도 회원이 있었는데 오래 활동하다 보니 나이도 있고, 늘 차려 놓은 밥상에 앉아 먹기만 한 것이 미안해서 봉사를 다짐하기로 했다. 그 날 허호성 회장은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집에 와서 첫째, 회원 30명만 되게 해달라는 것과 둘째, 협회 회장직을 맡는 동안은 건전한 골프모임이 될 수 있게 기도했다고 한다. 2년 동안 또 하나의 기적이 있는데, 남방은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기에 운동을 하다 보면 비 때문에 마지막 홀까지 다 치지 못하고 중단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허호성 회장의 임기 기간에는 날씨 때문에 한 번도 운동이 중단되거나 취소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 그의 말에 의하면 골프 치기 전날이면 사고 없이, 날씨 좋고 비로 영향 받지 않게 해달라고 꼭 기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비가 오는 날에 골프장에 도착하면 비가 딱 그치거나, 골프를 다 치고 나면 그제야 비가 왔다며, 2년간 스물 몇 번의 정기모임에 한 번도 비 때문에 영향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기적은 기적이다. 오죽하면 이후에 골프장 가는 날 번개치고 우뢰가 있으면 동생들의 문자가 오는데, “형님 오늘은 기도를 안했어요?”라고 묻는단다. 그가 회장이 되고 조별짜기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전에는 수준별로 80타 치는 사람들끼리, 90타 치는 사람들끼리 치곤 했든데, 잘치고 못치든, 나이 많고 적든, 외지인 현지인, 구분 없이 추첨을 통해서 함께 치게 했다. 이렇게 바꾸니 다양하게 어울려서 모든 회원들이 더 친목을 다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기를 하면 이기는 사람이 캐디비를 내고 돈을 다 돌려주게 했다. 이렇게 소소히 변화를 주다 보니 2년 사이 정식회원이 6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허호성 회장은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골프를 칠 수 있는 건 하늘이 내려준 복이다.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자기가 소홀했던 게 없는가를 점검하라”고 한다. 그는 초창기 회원들은 이제 3분의 1도 안된다며, 타지역으로 간 사람도 있지만, 골프를 더 못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 잘되고 있을 수록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골프에만 빠지지 말고 사업에도 더욱 집중하라고 당부한다. 과거에는 골프 안치는 사람이 있으면 쳐 보라고 권했는데, 종교가 있은 후 부터는 권하지 않는다. 골프때문에 사업 망하는 사람도 봤고, 도박 기질이 있는 사람은 골프에 너무 빠져서 사업과 일상에 영향을 받는다. 골프는 중독성이 있어서 자칫 자기 통제를 잘못하면 어려운 길로 빠질 수 있어 지금은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10년간 골프 방향이 늘 오른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는 건, 오른팔에 힘이 엄청 들어갔다는 뜻이다. 가볍게 해드 무게를 느끼면서 스윙을 하니까 80타를 쳤다며, 그동안 골프기술이 향상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한 것이라 한다. 기술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기를 컨트롤 못했기 때문, 골프는 결국 힘빼기 운동인 것이다. 옛날에 비즈니스 할 때도, 욕심으로 많은 이익을 붙일때는 손님이 적고, 다 내려놓고 적게 붙이니까 오더가 엄청 많이 밀려서 들어 온다며, 재밌는 일화를 비추어 말해 주는데 그만큼 욕심을 버리면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뜻이겠다. 골프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보람되는 일이 많지만, 그 중 한국에 코로나가 막 터졌을 때 김철용 회장이 선도해서 회원들과 함께 마스크를 사서 한국에 보낸 일과 행사때마다 모금함을 설치하여 노인협회에 전달하거나 어려운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일이다. 그 역시 아내가 신부전증으로 수술을 했는데 회원들이 마음을 모아 응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회원들 간의 우정이 중요한 것이다. 미국 속담에 ‘하루만 행복해지려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아라. 1주일만 행복해지고 싶다면 결혼을 해라. 1개월 정도라면 말을 사고, 1년이라면 새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토록 행복해지려면 골프를 쳐라’는 말이 있다. 허호성 회장은 ‘인생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골프’라는 참 뜻을 알고 있는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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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대학 졸업생, 5년 동안 적금이 5,000위안(약 100만원)?최근, 《나, 졸업 5년, 적금 5,000위안, 그녀, 석사, 훠궈가게 청소부》(我: 毕业5年, 存款5000 她: 中传硕士, 火锅店保洁)라는 영상에 온라인에서 화제이며 명문대 졸업생인 그들은 자신의 취업경력을 소개하였다. 두 사람은 화중사범대학(华中师范大学)을 졸업했으며 5년 동안 완완은 인터넷공장(互联网大厂)에서 근무했었으며 현재 적금은 5,000위안이다. 한 명은 중국전매대학(中国传媒大学) 연구생을 졸업하였으며 그녀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지만 여러번 좌절을 겪었고 얼마 전에 하던 일은 훠궈점(火锅店) 홀서빙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실패’된 인생에 대해 두 사람은 ‘명문대 나와서 이러고 사는가 하지만 앞으로의 선택이 더욱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느끼지 못했던 자유와 후련함(开阔)을 느끼고 있다’며 말했다. 완완(弯弯)은 ‘행복 기준은 적금이 얼마있고 탄탄한 직장, 승진과 꼭 연관되는 것이 아니다’며 ‘내심으로 봤을 때 저희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 영상을 찍어 올리는 초심은 되는데로 살겠다(躺平, 摆烂)를 보여주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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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륙 여객, 홍콩에서 11만 홍콩달러의 한의약 구입해누리꾼은 홍콩 코즈웨이베이(铜锣湾)의 한 약방(药坊)을 돌고 있을 때 약재를 가루내 신체에 사용하면 건강에 좋다는 소개를 듣고 한개를 약방직원에게 가루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은 결제금액이 109,600홍콩달러나 나왔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쇼셜미디이에 올려 도움을 청했고 다음날 약방에 가서 다시 갔을 때 약방은 2만 홍콩달러밖에 돌려주지 않았다. 누리꾼들은 ‘약재는 삼칠분(三七粉)일 수 있다. 예전에 홍콩에서 비슷한 경력이 있었는데 나중에 경찰에 신고해서 비싼 약 값을 내지 않았다’며 말했다. 일부 홍콩약방은 약재의 무게단위를 작게 기입해 소비자가 나중에 고가로 약품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약방(药房), 약행(药行), 약방(药坊) 한글자 차이지만 많이 달라 홍콩에서 약품도매상은 등록약방(药房)과 약행(药行)이 있으며 홍콩에서 부동한 종류의 약품을 취급할 수 있다. 그중 약방(药房)은 의사의 처방제 약품을 배급할 수 있고 약제사가 판매할 수 있는 통제약품(管制药品)을 취급할 수 있어 Rx표기를 사용한다. 약행(药行)은 약방(药坊), 약점(药店) 등 명칭을 사용하지만 감기약 등 일반 약품만 취급할 수 있다. 등록약방(注册药房)은 약방(药房)과 Rx표기가 있다. 그리고 약방 내에는 당직 약제사가 있고 등록증명서(注册证明书)도 볼 수 있다. 이로써 사건 발생 약방(药坊)에서는 Rx표기가 없고 단지 정부등록(政府注册)만 있었다. 특구정부는 홍콩에서 경영을 진행하려면 상업등기(商业登记)를 취득하도록 요구하므로 정부등록은 단지 상업등기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등록약방’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홍콩에서 약품을 구입할 때 주의할 점은 아래와 같다. - 약품 구입전 약품명칭, 포장, 가격 등 정보를 알아본다. - 홍콩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경우 정규적인 체인점, 오랜 전통이 있는 가게(老字号)을 찾아간다. mannings, 왓슨스(屈臣氏), 화룬탕(华润堂), 통런탕(同仁堂)을 선택할 수 있으며 약방에서 약품을 구입해야 할 경우 Rx표기가 있는 약방을 찾아간다. - 한약재 혹은 해산물을 구입하기 전에 반드시 무게단위와 가격을 알아본다. - 약품을 구입하고 영수증을 보관한다. - 이미 결제하였다면 영수증 등 결제단서로 소비자 위원회(email:cad@consumer.org.hk)에 신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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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모 여성, '입사하면 돌싱 총경리(总经理)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고 요구받아최근, 광저우 모 누리꾼은 ‘회사 면접볼 때 인사부(人事部)에서 돌싱 총경리와 함께 생활하도록 요구받았다’는 내용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2월 19일, 광저우의 왕여사는 모 회사의 보조직에 지원하였고 인사담당자와 위챗을 추가하고 업무 상황을 요해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인사담당자는 ‘총경리집에서 생활하고 총경리가 음식을 만들 때 도와주고 설거지를 일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총경리는 돌싱이기에 불편한 점이 없고 보조가 자신을 가족처럼 생각하길 바란다’며 덧붙여 말하였다. 나중에 왕여사는 ‘이상한 회사같다’며 상기 회사에 입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텐옌차(天眼查)에 따르면 상기 회사는 2017년 8월에 설립되었고 광저우 백운구에 위치해 있으로 컴퓨터기술개발, 기술서비스와 네트워크 기술연구를 위주로 하고 있다. 2월 20일 오후, 광저우 인사국은 ‘현재 관련 상황에 대해 요해하고 있으며 관련 부서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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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 입장료가 2,000위안? 가장 큰 물고기를 3만 위안에 회수?낚시질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 외에 최근 낚시질을 도박처럼 즐기는 사람도 있다. 강문 신후이(江门新会)의 아청은 ‘지난해 12월달부터 집근처에 낚시터가 생겼으며 대부분은 태래어(罗非鱼)를 취급하였다. 입장료는 1,680위안(약 28만 한화)이고 네시간 낚을 수 있다’며 말했다. 하지만 낚은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가는게 아니라 낚시터에서 다시 회수한다. 물고기는 표어(标鱼)와 비표어(非标鱼)로 구분하며 표어의 지느러미에 있는 라벨이 물고기의 회수가격(回收价格)을 대표한다. 비표어 가격은 동일하다. 비표어는 한마리에 100위안으로 회수하며 표어의 가격은 500~2,000위안이며 최고가격은 3만 위안이다. 낚시의 즐거움과 물고기 가격의 유혹에 동관, 중산의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갔지만 기대보다 실망이 컸다. 낚시꾼 아청은 ‘이미 1만 여위안(약 200만원)을 손해보았다’며 말했다. 낚시꾼들은 한마리라도 낚으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물고기를 낚는 성취감도 누릴 수 있어 낚시터를 찾아갔다. 아청이 있는 낚시터단체방에는 78명이 있었는데 직원은 단체방에 낚시하는 동영상을 올렸고 오전 10시와 오후 4시에 다음 차례 신청자 정보를 올려 주었다. 오전 9시가 넘자 낚시터의 60여개 낚시자리에 이미 20여 명의 낚시꾼이 앉았으며 4시간 뒤에 단지 몇 명만 물고기를 잡아 2,000여 원의 입장료를 만회하였다. 4시간 사이에 낚시터의 수입은 3만 위안이 넘었다. 강문 외에 동관에도 비슷한 낚시터가 있는데 낚시꾼은 ‘낚시터의 입장료는 1,600위안이며 가장 큰 태래어 가격은 3만 위안, 작은 것은 200위안이다’며 소개하였다. 심천에서 낚시하러 온 한 낚시꾼은 ‘지난해부터 낚시하러 왔는데 이미 가족 몰래 몇 만위안을 손해봤다’며 말했다. 중산 모 낚시터 주인은 ‘입장료는 400~800위안이며 60여 마리의 표어가 있으며 가장 큰 물고기 회수가격은 8,000위안이다’며 소개하였다. 그럼 이와 같은 낚시질은 도박에 속하지 않는냐는 질문에 변호사는 ‘고가의 입장료를 받고 값 비싼 표어를 낚시터에 넣은 것은 도박혐의가 있다. 강서 안휘 우후(芜湖) 등 지역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여 낚시터 관계자는 도박장개설죄로 입안되었다’며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