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광저우한국학교 신송훈이사장 장학금 기탁2023년 광저우한국학교의 도약이 여러 방면으로 돋보이고 있다. 이번 7월 본교의 발전과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증진시키고, 학업 능력 향상을 위한 면학 분위기 조성을 독려하기 위하여 신송훈 이사장이 150,130위안을 학교발전기금으로 기탁하였다. 이번에 기탁된 장학금은 2023학년도 1학기 말 고1, 고2에 해당하는 10, 11학년 학생들의 학기 말 국어, 영어, 수학교과목 우수 학생에게 2학기 등록금을 지급하는 신송훈이사장 지정장학금과2023학년도 졸업식에서 초, 중, 고 학교장상을 수상하는 학생에게 총 2만 위안의 우수 졸업생 장학금으로 수여될 예정이다. 2023학년도 성적 장학생의 영예는 10학년 박상윤, 한예림, 11학년 권하경, 김예은 학생에게 주어졌다. 11학년 김예은 학생은 더욱더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며, 이번 장학금 수혜를 계기로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앞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장학금 기탁 전에도 신송훈 이사장은 이사장에 추대된 이후 2021학년도 졸업식부터 매번 우수 졸업생 장학금으로 2만 위안의 장학금을 쾌척하여왔다. 각각 초등, 중등, 고등 졸업생 중 졸업 사정에서 1등으로 학교장상을 수상하는 학생이 장학증서를 받았다. 신송훈 이사장은 태영 금속 제품 유한공사 대표로 2022년2월 한국학교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이사장 취임 이전부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 자녀교육을 위한 한국학교를 세우는 데 한 마음으로 동참하며 운영위원, 재단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2021년 가을 학교이전 추진위원장을 맡아 2027년 4월 임대 기간이 만료되는 현재 야윈청 교사 이전을 위해 10여 곳의 이전 후보지를 찾아다니며 관련 당사자를 직접 접촉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신송훈 이사장은 광저우한국학교를 중국에서 제일가는 명문 학교로 만들고 싶다며, 학생들의 학업 역량을 길러줄 수 있도록 여러가지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료제공: 광저우한국학교
-
모 남성, 바퀴벌레를 머금고 고급 음식점에 10배 배상을 요구해최근, 북경에서 고급 음식점을 겨냥해 갈취하는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바퀴벌레를 머금는 범행수법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남성은 북경 모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후 바퀴벌레가 음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였다. 음식점은 가게 평판과 고객 식사체험을 고려해 즉시 무료로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정상으로 계산하고 떠났다. 음식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성은 전화 와서 10배 배상을 요구하였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음식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것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말하였다. 이 일을 빨리 해결하고 싶은 음식점은 남성과 배상금을 협상하고 그의 요구에 따라 1,000위안을 이체하고 중화담배 한 개비를 주었다. 사후, 가게 셰프의 자세한 관찰하에 ‘바퀴벌레’의 수상한 점을 발견하였는데 즉 바퀴벌레의 모양이 조리해 형성된 것과 달라 즉시 경찰에 신고하였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근처 음식점에서도 이런 상황이 발생했으며 모두 한 사람을 지목하였다. 경찰은 용의자 천씨를 체포하고 그의 몸에서 껌병으로 담은 바퀴벌레를 찾아냈다. 천씨는 '일자리도 없고 돈도 얼마남지 않아 이런 방식을 생각해냈다'며 '고향에서 바퀴벌레를 구입하고 조리해 껌병에 넣었고 밥을 먹을 때 다른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을 때 입에 넣고 다시 배터내고 음식에서 나왔다고 말했다'며 범행수법을 자백하였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그는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요리를 주문하고 온라인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으로 배상금을 받았으며 이미 여러번 성공하였다. 현재 그는 갈취(敲诈勒索) 혐의로 형사구속을 받게 되었다. 형법 274조 규정에 따르면, 갈취죄 기준은 금액이 크거나 여러 차례 두가지가 있으며 공사재물(公私财务) 갈취 금액이 2,000~5,000 이상이면 금액이 비교적 크고, 2년 내에 갈취 행위가 3회 이상이면 여러번에 속한다.
-
텐센트(腾讯) 부동산 시장 진출?! 관계자: 공업단지 프로젝트 필요였다최근, 텐센트과학기술(腾讯科技)심천유한회사는 경영항목에 신규 부동산 개발경영(房地产开发经营)과 비거주부동산임대(非居住房地产租赁) 항목도 경영범위에 보충하였다. 텐센트가 부동산에 진출하려는 것일까? 텐센트 내부 관계자는 ‘텐센트에서 부동산 개발 및 임대 경영범위를 신청한 것은 일반 의미상의 부동산업무가 아니라 건설 중인 따찬완프로젝트(大铲湾项目)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업무수요을 만족하기 위해서다’며 전했다. 따찬완프로젝트는 텐센트가 자체 사용 산업단지를 핵심으로 동시에 사무실, 부동산 관리(物业), 회의중심, 상업 등 공공 부대시설을 설립하며 이와 같은 부속시설(附属设施)의 개발과 운영은 대외경영과 관계되기 때문에 법규에 따라 관련 자질을 보충해야 했다. 앞으로 텐센트 따찬완산업단지는 심천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업단지이다. 텐센트본부도 따찬완에 옮겨 심천 ‘인터넷+’미래과학기술성(未来科技城) 건설하고 있다.
-
[중국한인역사] 소련에서 온 혁명 아가씨 오지숙 - 실현하지 못한 웅대했던 꿈1927년 7월 말, 학교에 음산한 공기가 흘렀다. 7월 15일 우한정부의 정책이 반공으로 돌아서면서 우한분교 교도단과 학생 4천여 명이 무장해제를 당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학교에는 교도단과 학생 1,700여 명이 남았다. 장파쿠이는 자신의 4군을 2방면군으로 개편하고 학교에 남아 있던 1,700여 명을 자신의 부대로 영입했다. 한인 사관과 생도 200여명은 특별히 갈 곳이 없는지라 대부분 2방면군에 배속되었다. 1928년 7월 말 장파쿠이는 장제스(蔣介石, 1887~1975)를 토벌한다는 “동정토장(東征土蔣)”을 선포하고 허룽(賀龍, 1896~1969)과 예팅(叶挺,1896~1946) 사령관에게 선봉대를 인솔해서 구강(九江)에 가서 기다리라는 지시를 했다. 그러나 허룽과 예팅은 구강에서 장파쿠이 사령관을 기다리지 않고 수하의 군인들을 인솔해서 난창(南昌)으로 가서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 등 중공 지휘부와 연대해 8월 1일 난창 공산당 봉기를 일으켰다. 7월 31일 저녁, 장파쿠이 사령관은 우한 양호서원(兩湖書院)에 남아있던 2방면군 교도단과 우한국민정부 경호단을 인솔해서 선박 5척에 나눠 타고 장시(江西) 구강으로 출발했다. 장파쿠이는 우창을 떠날 때만 해도 난창에서 공산당원들이 봉기를 준비한다는 것을 몰랐다. 8월 3일 정오, 후속 대원들이 구강에 도착해서야 장파쿠이는 교도단들이 탄 모든 선박을 강 가운데 정박시키고 무기를 압수하고 선박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었다. 이 날 공산당 교도단들이 난창에서 봉기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장파쿠이는 원래 반공주의자가 아니어서 자신의 수하에 적지 않은 공산당원이 있다는 것을알고 있었다. 장파쿠이는 교도단들을 집결시키고 공산당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은 보내주겠으니 나오고, 공산당원이 아닌 사람들은 자신의 부대에 남으라고 명령했다. 공산당조직은 공산당원으로 정체가 드러난 사람은 비밀리 2방면군에서 철수시키고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은 당의 지시에 따라 그대로 2방면군에 남으라고 긴급 지시를 내렸다. 교도관들은 며칠동안 배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한인 교도관들 중에도 공산당에 편향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신분이 드러나지 않은지라 2방면군에 그대로 남았다. 장파쿠이는 장제스를 토벌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광둥(廣東)으로 향했다. 오지숙은 배위에서 저항하다가 공산주의자임이 폭로되어 무기를 압수당했다. 전향하면 동포 교도관들과 함께 광둥으로 갈 수 있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동포들과 헤어지더라도 혼자 상하이로 가기로 결심했다. 동포 교도관들이 배위에서 오지숙을 위한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 아래 있을 고국 강산을 굽어보면서 모두들 죽지말고 살아서 칼을 들고 싸워 이겨야 한다는 강철같은 굳은 결심을 고별사로 대신했다. 이국의 풍운에 새까맣게 그을고 골 깊게 파인 검은 얼굴에 큰 줄기 눈물을 죽죽 흘리며 작별 인사를 하는 동포교관들을 보면서 오지숙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오지숙은 홀로 상하이로 가는 배로 갈아탔다. 배는 마치 망망한 바다에 떠있는 한 조각 나뭇잎 같았다. 황혼이 점점 깊어질 때 품 속에서 생명처럼 간직해 오던 군관학교 졸업증서를 꺼내 떨리는 손으로 키스를 하고 두 조각으로 찢어 바다에 던지고 난간에 엎드려 울고 또 울었다. ‘왜 죄 없는 졸업장을 찢었는가?’ 졸업장을 희생시켰다는 애석한 생각이 들면 ‘졸업장은 우한정부가 추진하는 가치없는 일에 종사한 무의미한 결과물’이며 혁명을 배신한 난징정부와 우한정부가 싫어서 졸업장을 무참하게 희생시켰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한인 교도관들은 국민혁명군 2방면군 2영 5련에 배치되었다. 2영 5련의 중공당 조직 책임자는 김성숙(金星淑, 1898-1969)이었다. 한인들이 광둥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1월 17일 장파쿠이와 광서 군벌간의 전쟁이 발생했다. 용감한 한인 교도단들은 장파쿠이가 정권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정권을 장악한 장파쿠이 정책은 곧 공산당을 탄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1927년 12월, 장파쿠이가 광시 군벌을 추방하려고 자오칭으로 나갔다. 12월 11일 새벽, 광저우 병력이 미약한 틈을 이용해 중국공산당은 광저우정권을 탈취하려고 폭동을 일으켰다. 장파쿠이의 주력군이 곧 광저우를 탈환하여 공산당 봉기는 ‘삼일 천하’로 끝났다. 오지숙과 구강에서 눈물로 석별했던 조선동지 중 90여명이 전사했다. 광둥의 거친 황야에서 의지할 곳 없었던 90명 전사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값없이 죽은 것이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
【중국한인역사】 소련에서 온 혁명 아가씨 오지숙 - 중국혁명을 동경했던 소녀우한(武漢)군사정치학교(황푸군교 우한분교)에 재학했다는 한국인 수기가 한 편 있습니다. 1932년 8월 발행된 『三千里』 제4권, 8호에 실린 「廣東事變으로 朝鮮軍官九十名戰死記, 武昌女子軍官學校 卒業한 朝鮮人 女子士官 吳智淑 孃 手記」입니다. 이 문장에 대해 편집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광동사변 때에 조선인 군관 90여명이 일시에 전사하였다는 숨기엇든 사실이 이제 함께 출전하얏다가 포로 되여 후년 석방된 당년 28세의 묘령의 오지숙 양의 수기로부터 알니어 젓습니다. 오지숙 양은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하야 본명을 「올니까요가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소녀시대에 시베리아에 가서 교육을 밧엇고 그뒤 이동휘의 주선으로 상해로 건너가서 거기에서 다시 여운형 현정건의 조력으로 무창에 이르러 여자군관학교를 2백명 중에서 제17호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맛치고 그러고 곳 여자 사관이 되여서 동료인 90여명의 조선청년장교와 수천의 중국 장졸로 더부러 광동 전장에 출전하엿다가 그만 자기만 적탄에 부상하여 포로가 되고 남은 동지들은 이역만리에서 일시에 명예의 전사를 하엿든 것이라.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술을 중략한 곳이 만흐나 그 때 생사를 가치하든 오양의 수기인것 만큼 이 일편의 기록은 실로 귀중한 역사적 문헌이 될 것인 줄 아노라. 아오지숙이름은명단에서누락된것으로사료됩니다. 오지숙이 쓴 문장은 길기도 하고 읽기도 어려워 요약해서 2회 올립니다. (1) 중국혁명을 동경했던 소녀 1926년 오지숙은 중학교 2학년 때 중국혁명이 성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무되어 중국으로 왔다. 블라디보스토크 예루만돕쓰까야라는 3~4백호가 사는 농촌중학교이다. 눈이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토요일, 교실 난로에는 연탄이 타오르고, 칠판 위에는 레닌 초상화, 칠판 양 옆에는 혁명문구와 세계 각국의 생산지표가 여러 점 걸려 있는 교실에서 선생님은 현재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혁명 상황을 보고했다. 광둥혁명군이 북벌전쟁의 깃발을 든 지 불과 몇 달 만에 벌써 난창과 상하이를 점령하여 중국혁명이 곧 승리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중국혁명을 생각하면 오지숙의 가슴은 무거운 납덩이라도 녹일만큼 뜨거워졌다. 그날 밤 부친을 졸라 중국행을 허락받았다.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李東輝, 1873~1935)가 이웃에 살고 있었다. 이동휘는 상하이 조선공산당원 여운형(呂運亨1886~1947)을 찾아 가라고 소개해 주었다. 오지숙은 교묘하게 소련 국경지대를 넘고 중국의 수이펀(綬芬) 산차거우(山采溝)라는 곳에서 중국행 기차를 타고 하얼빈, 창춘, 펑톈, 판스를 돌아서 닝커우(宁口)에서 배를 타고 상하이로 왔다. 여원형이 황푸군관학교 우한분교 여군 모집시험에 응시하라고 추천해주었다. 전국 각 도시에서 중졸 여학생이 500여 명의 지원했는데 그 중 195명이 최종 선발되었다. 합격자가 발표되던 날, 조선청년과 사관생도 수 십 명이 찾아와 축하를 해주고 오지숙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27년 2월 12일 개학식날이었다. 1기생 여군 100여명과 2기 신입생 195명이 넓은 운동장에 줄을 섰다. 단발머리에 군모를 쓰고 회색 군복에 허리띠를 졸라 맨 단정한 여성 교관이 여학생대의 입장을 지휘했다. 그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송칭링(宋慶齡, 1893~1981), 덩옌다(鄧演達, 1895~1931), 왕자오밍(汪兆銘,1993~1944), 장파쿠이(張發奎, 1896-1980) 같은 인사들이 신입생에게 축사하며 훈화를 했는데 그 중 장파쿠이의 간곡한 강연이 오지숙의 마음속 깊이 와 닿았다. 입학식이 끝난 뒤 한 여성단체가 여군들을 황학루(黃鶴樓) 다과회에 초대했다. 쑹칭링은 인사말을 마치고 내빈들을 향해. 우한분교 여군 중 유일한 외국인 오지숙을 소개했다. 매일의 일과는 새벽 5시 기상이다. 15분간 이불을 개서 침대위에 반듯하게 놓고 세수하고 머리 빗고 군복갈아 입고 내무검사를 받는다. 하나라도 제자리에 놓이지 않으면 3일간 영창 구류를 당한다. 내무검사를 받고 아침제조와 사격연습이 끝나면 수업이다. 매일 8시간 역사, 수학, 군사과목 등을 배우고 밤 9시 반 취침시간이다. 쑨원주의는 매일 학습하는 필수과목이고, 매주 월요일 아침이 되면 연병장에서 학생과 1만 명의 군중이 모여 쑨원의 유촉을 외우고 3분동안 묵상하고 상급장교의 훈시를 듣는 특별 의식이 있다. 졸업후 오지숙은 소대장직을 수행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동포동지들이 있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었다. 철군으로 불리는 4군에 동포 교관들이 많았다. 북벌전쟁에서 한인 혁명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싸운지라 국민혁명군 장성들이 서로 한인 교관들을 자기 부대에 영입하려고 애를 썼다. 이에 고무된 한인 혁명청년들은 열광적으로 화북타도를 외치고 내친 김에 조선까지 진출하여 일제를 타도하기를 열망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
항저우 푸양(富阳), 단시 폭우로 5명 사망, 3명 실종7월 22일 저녁부터 23일 새벽까지 항저우 푸양구는 단시 폭우로 산사태를 유발해 따웬진(大源镇), 상관향(上官乡), 창록진(常绿镇) 등 지역에 영향을 주었다. 7월 23일 14시까지 이미 5명이 사망하였고 3명의 실종인원들에 대한 수색을 지속하고 있으며 전체 지역에 산홍 32곳, 지질재해 144곳, 무너진 낡은 주택 26곳, 1,619개 가정은 전력 중단, 42대 차량이 물에 잠기고 21곳의 도로가 중단되었다. 따웬진 마을 사람은 ‘22일 오후 5시부터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약 1시간이 지나 강물 수위가 급하게 올랐고 강기슭을 넘어 여러 주택에 물이 들어갔고 자동차들이 밀려 내려갔고 주택이 무너지고 사람도 홍수에 떠내려갔다’며 소개했다. 마을 사람 이씨는 ‘22일 저녁에 폭우가 내릴 때 집에 물이 들어왔는데 다행히 사람은 무사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하천은 뤄춘시(骆村溪)이며 최근 한번 홍수는 5년 전에 발생했는데 올해보다 엄중하지 않았다’며 말했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3명과는 아는 사이이다. 홍수가 올 때 가게에서 물건을 빼내 오려다 불행하게 사망했으며 다른 두 사람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며 말했다. 현장 목격자가 찍은 영상에 따르면 하천은 순식간에 수위가 올랐으며 주변 공장은 10-15분 사이에 물높이가 1.5-2m 올랐으며 도로의 여러 곳이 붕괘돼 움직일 수 없었고 차량과 사람은 약 2시간 동안 드나들 수 없었다. 절강성과 항저우시는 푸양 단시 폭우 비상대응에 고도로 중시하여 지역 정부 주요 책임자는 상관(上官), 따웬에서 현장 지휘를 진행하였다. 구역 종합구원, 소방구원, 5개 국유기업플랫폼(国企平台), 공안,교통,의료 등 구원팀 총 609개, 6,230명이 출동하여 위험지역 인원 1,536명을 전이하였다.
-
중국 암표상(黄牛)들, 88,888위안이면 인기스타 저우제룬(周杰伦)과 인증샷 찍을 수 있어7월 18일, 저우제룬(周杰伦) 콘서트가 천진에서 열렸으며 주최측에서 네차례에 걸쳐 입장권을 판매하였지만 30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완판되었다. 실명제를 채용하지 않은 관계로 입장권 판매가 시작되서부터 암표상들이 입장권 가격을 올렸으며 현재 입장권 최고가격은 19,800위안까지 올랐으며 모 중고 플랫폼에서 두장 2,000위안짜리 입장권은 150,000위안까지 치솟았다. 누리꾼은 ‘콘서트 입장권을 사는 것인가? 아니면 부동산 계약금을 내는 것인가?’하며 감개했다. 저우제룬 콘서트를 둘러싸고 암표상들은 입장권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윤창출방식도 찾았는데 바로 스타와 인증샹을 찍는 것이다. 모 중고플랫폼에서 ‘저우제룬과 인증샷남기기’(周杰伦合影)를 검색하면 저우제룬 관련 천진,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상해 지역에서 열리게 될 콘서트 관련 서비스들이 나열돼 있다. 그중 어떤 가게는 스타 저우제룬과 함께 인증샷을 찍는 가격을 88,888위안으로 등록했고 계약서도 체결할 수 있다며 밝혔다. 그리고 스타 저우제룬과 함께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가격은 12,000위안, 24,000위안, 50,000위안, 88,888위안 등으로 가격대가 다양했다. 그리고 4~6명이 함께 인증샸을 찍는 가격은 2,000~10,000이였으며 가게는 ‘비용을 내고 그날 이쁘게 단장하고 오기만 하면 된다’며 소비자에게 알렸다. 인증샷 업무에 관해 저우제룬콘서트를 책임졌던 모 공연상은 ‘모두 사기다.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며 ‘비록 저우제룬이 모 도시에서 컨서트를 열 때마다 일부 팬들이 그와의 인증샷을 모멘트에 올리곤 한다. 하지만 모두 연예인의 동의를 받았거나 주최측 혹은 장소제공측(场馆方)의 관계자들이며 금전거래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소개했다. 그러면서 ‘만약 인증샷을 찍는 것마저 돈을 받는다면 관련부서에서 잘 조사해야 한다’며 전했다.
-
中 상업은행들, 쇼트클립 플랫폼에서 대출, 신용카드 등 금융상품 판매 시도최근 유행하는 마케팅 방식으로, 라이브커머스(直播带货)는 다수의 대형 소매 업체의 표준이 되었고, 금융 기관의 눈길을 끌었다. 일부 상업은행들은 쇼트클립 플랫폼에서 라이브 대출을 시도했다. 생방송 대출이란 상업은행이 생방송으로 대출, 신용카드 등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라이브 프로모션 대출은 일반적인 오프라인 프로모션과 비교했을 때 상업은행들이 마케팅 영역을 넓히기 위한 새로운 시도이다. "신규 고객 10일 무이자", "최고 20만 위안 빌릴 수 있다", "한시적 3.6% 금리 신규 고객 전용 한도” 여러 쇼트클립 플랫폼에서 금융 용어가 담긴 문구가 라이브 방송 배경에 깔린 데다 쇼호스트가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상업적인 관점에서 은행이 라이브로 대출을 홍보하는 것은 비난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몇 년간 은행대출업무는 코로나 19 사태, 부동산 시장 조정 등 여러 가지 요소의 영향으로 뚜렷한 충격을 받았다. 비록 중국 경제가 안정되고 회복됨에 따라 소비자들의 대출 의욕이 다소 상승되었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은행의 돈은 예전처럼 대출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축 의사가 여전히 강하다. 중앙은행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상반기 위안화 예금이 20조 1,000억 위안 증가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조 3,000억 위안 증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신용대출 상품 보급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금융상품은 특수성이 있으므로 대출, 신용카드 상품을 일반상품처럼 프로모션하는 '특판'은 자칫 홍보 오도(误导), 비이성적 대출,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각종 우대정보가 눈에 띄게 큰 글씨로 제시되는 것에 비해 대출의 위험성 알림, 면책조항 등이 채팅창 버튼 아래에 숨겨져 있어 소비자의 권익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이브 스트리밍 세일즈 대출이 은행기관의 마케팅 테스트 역할로 쇼트클립 플랫폼의 높은 트래픽으로 실적을 올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은행기관의 라이브 마케팅은 반드시 준법적인 전제하에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특히 라이브 방송 주체와 라이브 방송 컨텐츠의 규정에 주의해야 한다. 쇼호스트가 금융업에 종사할 자질을 갖추었는지, 마케팅 컨텐츠가 명확하고 전면적인지, 마케팅 화술이 '레드라인'을 건드리는지 등은 라이브 전에 잘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금융상품이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판매되는 이 새로운 사물에 대해 감독관리부서는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규장과 제도를 내놓아야 하며 금융 기관이 법에 의거하고 규정에 따라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금융 기관의 규정에 따른 마케팅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며 또한 소비자들이 금융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당승고기'(唐僧肉)에 비교될 만큼 인기많은 매미고기, 500g 당 260위안에 판매돼여름을 맞아 많은 곳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최근 매미를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매미를 한 근에 260원, 열흘에 만 위안을 번다'는 소식이 온라인 실검에 올라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절강성 여수(浙江丽水) 시민예씨(叶)는 '지금 이 때에 매미가 가장 많고 돈을 벌 때'라며 '야생 매미는 한 근에 260위안에 팔며 하룻밤에 최대 2.5키로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항저우의 누리꾼 '시류 샤오자이'는 온라인에 자신이 산에 가서 잡은 '전리품'을 공개했는데, 하룻밤에 생수병 3개를 가득 채웠다. 그는 '저녁 8시가 넘어 출발해 새벽 12시에 산에서 내려온다. 하루 평균 300마리를 잡는다'며 '올해는 이미 수천 마리를 잡았다"고 소개했다. 최근 그를 찾아오는 예약자들이 너무 많았고 아침 일찍 또 수백 마리의 주문이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황금 껍질 속에 날개가 달린 벌레 한 마리가 껍질을 뚫고 나오는데, 바로 모두가 찾는 주인공 매미의 약충이다. 민간에는 많은 종류의 호칭이 있는데 매미, 황금 매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당승고기'(唐僧肉)에 비유하기도 한다. 양저(良渚)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천씨도 최근 친구와 함께 매미잡기에 합류했다. 저녁 7시 반에서 8시 반까지 매미가 껍질을 벗기 시작하면 잡을 수 있는데 나뭇가지 사이에 비교적 은밀하게 숨어 있고 껍질을 벗은 매미는 식감이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은 가장 여릴 때이므로 그때 잡아야 하며 한두 시간을 더 기다리면 날개가 굳어서 날아가버린다. 천씨는 '매일 밤 몇 마리를 잡을 수 있는지는 모두 개인의 능력에 달렸다. 많이 잡는 친구는 하룻밤에 700~800마리를 잡지만 적게 잡는 친구는 하룻밤에 100~200마리를 잡는다. 300마리 정도 잡아도 괜찮은 편이다'며 소개했다. 올해는 매미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몸값이 지난해보다 2배로 뛰어 올랐다. 지난해 판매가는 마리당 1위안이였는데 올해 최고가는 2위안대가 되었으며 많이 잡을 수 있는 사람은 하루저녁에 천 위안을 벌 수 있었다. 한 마리에 2위안에 팔리는 신선한 매미 말고도 더 놀라운 것은 매미에서 벗겨진 '매미 껍데기'가 '진귀한 한약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검색해보면 100g 매미 껍데기를 89위안에 판매하는 가게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매미 껍데기 판매가는 500g당 445위안에 달한다. 매미는 단백질 함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체에 있어서 이것은 이체 단백질(异体蛋白)이다. 일부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들이 먹으면 면역 체계가 이들을 '침입자'로 간주하여 특이성 면역 글로불린을 많이 생성돼 신체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이 가벼울 경우 발진, 가려움증으로 나타나며 심한 경우 구토와 설사, 과민성 쇼크, 심지어 후두부종을 일으켜 질식사할 수도 있다.
-
구입한 69평 주택, 공용면적(公摊面积)만 37평! 복도에 탁구테이블 놓아도 돼최근 섬서성 서안의 희여사는 인터넷에 자신이 구입한 69㎡ 주택의 공용면적이 37㎡에 달해 공용면적의 비례가 50%를 넘었다고 반영했다. 그녀는 공용면적이 왜 이렇게 높은지 납득할 수 없다며 아직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 사건은 온라인에서도 뜨거운 화제거리가 되었다. 희여사는 2020년에 서안시 동의로의 영안부용인월단지에 위치한 상업용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집의 사전(실제) 측정한 건축면적은 총 69.75㎡이다. 그 중, 실내 건축면적은 32.71㎡이고, 분담 공용건축면적은 37.04㎡이며, 공용면적의 비율이 50%를 초과했다. 2001년에 시행한 《상품주택 분양관리방법》에서 분양주택 건축면적은 내부 건축면적과 공용 건축면적으로 구성된다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공용 건축면적은 엘리베이터 승강로, 계단, 공용 현관과 통로 등 공공시설의 공용 공간을 말한다. 아파트분양사무소 담당직원은 '아파트 단지의 공용면적이 크지만, 단지가 고급스럽고, 환경이 아름답고, 관리사무소(物业管理处) 서비스도 좋고, 가격도 싸며, 실제로 주택 구매자에게 있어서 매우 경제적이다'며 '공용면적 계획은 합리적이고 국가 규정에 부합되며,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 관리국의 허가 문서를 받을 수 없다'며 소개했다. 영안부용인월단지에 대해 주택건설국 관계자는 "이 건물은 계획상 용적률, 건물 신축 등 모두 국가의 강제규범이 있으며 설계한 평형은 모두 개발업자와 건물의 건축 위치를 고려해 설계한 것이다. 모든 시공도, 설계도, 계획도는 모두 각급 전문부서의 심사를 거쳤으며, 시공도를 포함하여 현재 모두 전문적인 심사회사가 있으며, 어떻게 설계하는지, 어디가 합리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지, 국가 강제규정을 위반하는지 등은 모두 심사중점이기 때문에 강제규정을 위반하지 않는한 우리도 간섭할 수 없다. 설계할 때 다른 고려가 있을 수 있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래 호텔로 설계되었을 수도 있는데, 호텔이 잘 팔리지 않아 아파트로 팔게 되었을 수 있다"며 밝혔다. 이거연구원(易居研究院) 연구총감독 엄약진(严跃进)은 "공용면적 자체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업계가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비율이 있다"며 "상업용 아파트는 일반 주택보다 공용면적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상황을 보면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공용면적은 최대 40%이지만 이번 사건중 건축면적 70㎡ 중 공용면적이 37㎡로 공용률이 50%를 넘어 부동산 소유주가 받아들이기 어려웠것 같다”며 전했다. 공용면적은 분쟁을 일으키기 쉬운데 취소할 수 있을까? 쑹샹칭(宋向清) 베이징사범대학 정부관리연구원 부원장은 '공용면적을 없애면 집값과 주택의 편의성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공용면적은 주민들의 실외 활동의 편안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용면적이 크고 복도가 넓고 환경이 아름다우면 주택의 질이 높아지고 주민들도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며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