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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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비대면 의료' 지속적 성장 분석 (중국어 뉴스 원문)중국의 비대면 의료 시장이 포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분석 자료이다. http://news.sohu.com/a/668134395_11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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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모터쇼(上海车展)에서 BMW MINI직원이 중국인과 외국인을 차별대우?!최근,누리꾼은 '상하이 모터쇼 BMW MINI부스에서 직원은 아이스크림이 없다며 중국인 방문객에게 아이스크림을 제공하지 않았다. 반면 해외 방문객은 아이스크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현장 직원은 먹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며 반영하였다. 현장 방문객이 직원들의 행위에 대해 이의가 있자 남성 직원은 아이스크림 보온박스를 가져갔으며 현장 영상이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많은 누리꾼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사건 발생후 MINI중국은 웨이보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MINI에서 준비한 '상하이 모터쇼현장선물(甜宠)’행사는 전시장을 구경하는 어른과 아이들에게 달콤함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내부 관리 착오와 직원들의 실수로 여러분들의 불만을 자아낸 점에 대해 사과하며 앞으로 관리를 개선하고 내부교육을 강화할 것이다며 밝혔다. 사건 연루 아이스크림 브랜드 Luneurs는 ‘Luneurs에 관한 영상, 여론과 보도를 보고 많이 유감스러웠고 제1시간에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 Luneurs브랜드는 상하이 모터쇼 기간 BMW MINI브랜드 활동의 현장 운영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단지 아이스크림제품을 공급한 업체이다. 영상속 두 직원과 구제적인 서비스는 Luneurs회사측에서 책임진 것이 아니며 Luneurs브랜드와 상관없다’며 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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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파저우 홍콩-마카오 여객운송 부두 임시 대외개방!광저우시에서 홍콩국제공항까지 2시간4월 10일, 교통운수부의 허가를 받고 파저우 홍콩-마카오 여객운송부두가 임시 개방되었다. 이는 파저우 홍콩-마카도 여객운송 부두가 머지 않아 곧 시운행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부두가 사용에 투입된 후, 여행객은 쾌속선을 타고 약 120분이면 홍콩국제공항으로 직행할 수 있다. 부두가 사용되기 시작하면 여행객은 1층에서 안전검사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2층 출국장에 도착할 수 있다. 여행객은 출발대기실 창구에서 배표를 구입하거나 셀프로 티켓을 찾아 홍콩국제공항 체크인을 하고 출국장 검사통로를 통해 승선구에 도착할 수 있다.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한후 별도로 출입경 수속을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출국 여행객은 2층에서 수속을 마친 후 연결 통로를 통해 고속 여객선에 오를 수 있으며 1등석 60개, 일반석 200개가 있다. 만약 여행객이 부두에서 탑승수속(登机手续), 탑승권을 받으면 파저우 부두에서 캐리어를 보내고 목적지에서 캐리어를 찾을 수 있어 무거운 캐리어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부두건설 1기는 2척의 캐속 여행객선 '하이주호'호(海珠湖号)와 '하이주완'호(海珠湾号)를 투입시켜 파저우와 홍콩국제공항노선을 개통한다. 여행객은 쾌속선을 탑승하고 파저우에서 홍콩국제공항까지 약 120분이면 직행할 수 있다. 부두건설 2기는 주해를 포함한 따완취 도시간 수상 여객운송노선(大湾区城际水上客运航线)을 개통할 예정이며 파저우에서 홍콩 시내, 마카오 국제공항을 오가는 노선도 증편할 예정이다. 시민 조모는 '부두가 개통되면 홍콩국제공항으로 가는게 너무 편리하다. 큰 짐, 작은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배를 타면 경치도 구경할 수 있다'며 '4월 18일 홍콩에서 미국으로 출발하는 항공권을 구입했는데 오늘 부두에서 어떻게 배표를 구입해야 되는지 알아보려고 왔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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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러췬사러췬사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이 업무를 본 곳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류저우 청사입니다. 1927년, 도로공사가 류저우-충칭 구간에 도로를 건설하고 류저우 종점에 러췬사라는 건물을 세웠습니다. 독일 기술자가 설계하고 상하이 건축회사가 지었는데 당시로서는 전화기가 있는 유일한 고급 호텔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러췬사 지점이 구이린(桂林), 충칭(重慶), 바이서(白色) 등지에도 세워졌습니다. 어떻게 러췬사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이 마련되었을까요? 경위는 이렇습니다. 2000년 9월, 김구 지사의 아들 김신(金信)과 친분이 두터운 전 고려대학교 허세욱 교수께서 류저우를 방문하여 정부 인사를 만났습니다. 허교수는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사무를 보았던 곳이 잘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진이라도 있으면 김신 선생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는데 이 요청이 류저우 정부 인사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류저우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곧바로 문화부 산하에 과제조(課題組)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류저우에서 활동한 역사를 고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허세욱 교수의 집에서 대략적 상황을 이해하고 독립기념관, 백범기념관 등을 참관하며 역사적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류저우에서 조직된 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원으로 참여한 신순호 여사의 집도 방문했습니다. 한국 방문을 통해 류저우에서 성립된 광복진선청년 공작대의 사진과 대원들의 명단과 주소 등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 고찰단도 류저우를 방문했는데 류저우시 문화부는 전문가와 학자들을 동행시켜 고찰단의 활동을 도왔습니다. 한국 측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류저우에서 활동했고, 여기서 성립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대해 한국 학술계 관심이 많은데 만약 고찰내용이 확실하다면 옛터를 복원하고 싶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류저우 측에서 이 요구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2002년 2월, 두 번째 한국 고찰단이 류저우에 와서 역사적 현장을 조사했습니다. 류저우시 정부는 상하이, 난징, 충칭 등으로 조사팀을 보내 많은 관련 서적, 사진,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당시 류저우에서 항전에 참전한 노인 좌담회도 개최하여 역사적 사실을 고증 했습니다. 이렇게 5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4년 11월, 뤄췬사에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 활동 진열관”을 개관했습니다. 1938년 10월, 류저우에 체류하는 한인은 약 120명이었습니다. 러췬사로 입주한 임시정부 요원들은 숙소에 사무실(办事处이라는 간판을 걸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김구를 제외하고 이동녕, 조완구, 이시영, 조병조, 차리석, 지청천, 양우조 등 임시정부의 주요 요원들이 다 집결했습니다. 러췬사에 입주한 임시정부 요원들은 충칭에 있는 김구와 한국 동포들과 연락을 취하고, 류저우의 당정군 기관 및 각 항전단체와 연락을 하면서 중국 정부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또 한편 많은 회의를 하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교훈을 종합하여 목전의 항전 형세를 분석하고 향후 어떻게 해야 할지 전략과 대책을 세웠습니다. 류저우 정부가 러췬사에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활동 진열관”를 개관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도 류저우 정부가 우리의 역사를 잘 보존해 주고 있습니다.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활동진열관”을 개막하던 날, 80세의 중국인 항전 노전사 리멍추(李夢秋)가 참석해서 당시 한인들이 즐겨부르던 ‘타향한야곡(他鄕寒夜曲)’을 기억하고 불렀습니다. 이곳에 오느라 유랑하길 얼마나 긴 세월이었던가. 조국이 그리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지만 눈 앞이 흐릿하니 어느 때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오. 조용한 밤 차디찬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고 명월은 서쪽 창에 걸려 있네. 새벽 빛이 찾아오니 홀로 일어나 저 멀리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눈 앞은 여전히 흐리구나. 어느 때나 금수강산 수복할 수 있겠는가 조용한 밤, 차디 찬 바람 스쳐지나 가도 타향으로 내쫒가나 말게나! ……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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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공습을 피했던 위펑산(漁峰山)동굴류저우는 곳곳에 수십 미터 높이의 검은 바위산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마치 넓은 정원에 인공으로 산을 만들어 세운 듯 풍치가 아름답습니다. 3월 19일 첫 탐방지는 임시정부 류저우 청사 러췬사(樂群社)입니다. 우리 일행은 러췬사 부근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러취산가 개관하는 9시까지 약간 시간이 있어서 인접한 위펑산에 올랐습니다. 산봉우리가 입 벌린 물고기 모양이어서 위펑산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공습이 있을 때면 류저우 강남에 거주하던 임시정부 요원과 가족들은 위펑산 동굴로 피했습니다. 위펑산에는 천연 동굴이 많은데 18개 동굴이 연결된 대형 동굴도 있다고 합니다. 1938년 11월 30일 오전 9시경, 임시정부 일행은 류저우(柳江, 柳江县)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39일간 해상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하는데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여기도 안전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내색은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숨을 죽이고 공습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류저우는 전란으로 인해 광둥 후난(호남) 등지에서 수만 명의 난민이 몰려 와 거리에는 노숙자가 들끓고 크고 작은 여관은 물론 임대주택조차 구할 수 없는 실정이라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후 2시경이 되어서야 공습경보가 해제되고 류저우 정부가 마련해 준 각자의 숙사를 찾아들었습니다. 광동성 주석 우테청(吴铁成)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행이 류저우로 이동한다는 연락을 받은 류저우 국민당 당부가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시내를 가로지르는 류강 남북으로 임시정부 일행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여기저기 구해 놓았습니다. 전쟁 중이라 한곳에 모여 살만한 주택이 없었기 때문에 흩어져 살았는데 강남에는 위펑산(魚峰山) 일대에, 강북에는 랴오공관 주변에, 또 형편에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도 했습니다. 일본군의 공습이 있으면 임시정부 요원과 가족들도 류저우 시민들과 위펑산 동굴로 도피했습니다. 우리가 올라온 바로 이 위펑산입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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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마안산(马鞍山)에 올라스롱에 들렀다 좀 일찍 류저우에 도착하면 수상버스를 타고 류강을 유람하려고 했는데 부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반, 이미 마지막 배가 출발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날은 어둑어둑 어두워지고 갑자기 기온이 하강하여 찬바람이 세게 붑니다. 류강 유람은 취소하고 저녁 식사하고 류저우 야경을 보러 마안산에 올랐습니다. 코로나 기간 마안산 정상을 오르는 엘레베이터가 운행을 하지 않았는데 마침 재개를 한지라 운 좋게 에레베이터를 타고 몇 분 만에 마안산에 올랐습니다. 마안산에 천연동굴이 많아서 일제가 공습하면 임시정부 일행은 동굴로 피했다고 합니다. 마안산, 위펑산(玉峰山), 자허산( 嘉鹤山)에는 천연동굴이 99개나 있다고 합니다. 일제의 공습이 심할 때 동굴은 임시 반공호로 이용되었습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류저우 시민과 임시정부 사람들은 동굴로 도피했습니다. 동굴의 단점은 입구에 작탄이 떨어지면 그대로 무덤이 되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저 동굴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1938년 12월 5일,『제시의 일기』입니다. 오전 10시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우리 일행은 허겁지겁 뒷문을 빠져나와 5분이면 닿는 산굴로 갔다. 도착했을 때 산굴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기에 우리를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공습은 금방 시작될 것 같은데 우리는 피난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허둥지둥하면서 제5호 동굴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그 동굴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우리 가 그 동굴로 들어가자마자 일본군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동굴이 심하게 흔들렸다. 당장 무너질 것만 같았다. 동굴 안에서조차 폭탄 터지는 소리에 귀청이 멍멍할 정도였다. 돌조각이 천정에서 굴러떨어져 내렸다. 나는 제시를 보호해주면서 공습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몇십분이 지나자 폭발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십여분이 자나자 경보를 해제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주저주저하면서 동굴에서 나왔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참담한 광경뿐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던 집 주변의 집들은 모두 다 불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 동굴 앞의 넓은 전야도 폭탄 구덩이가 수없이 나 있었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시체들로 덮여 있었다. ……후에 들은 소식이지만 우리가 들어갔던 5호 동굴 근처의 다른 동굴들은 모두 다 폭탄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가 원래 달려갔던 그 동굴에 사람이 차 넘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예전 임시정부 요원과 가족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숨 가쁘게 공습을 피하던 산인데 우리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멋진 류저우 야경을 즐기며 님들의 발자취를 더듬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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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스롱대교에서 본 류강(柳江) 강변지난 3월 18~19일 이틀간 역사연구회 선생님 등 18명이 류저우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했습니다. 올 8월에 우리 역사 교실 학원들과 류저우 탐방을 계획하고 있어서 이번 탐방은 현지답사 여행이었습니다. 광저우에서 류저우까지 약 570km, 자가운전은 5~ 6시간 정도 소요되고, 고속철도는 3시간 반~4시간 소요됩니다. 23인용 버스를 대절하려고 보니 버스는 시속 100km를 초과할 수 없고 또 기사가 한 시간마다 쉬어야 하는지라 광저우에서 류저우까지 8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연구회 회원 중 드라이버께서 자원해 주셔서 자동차 4대가 동원되었습니다. 선발팀은 오전 8시 각각 지정된 장소에서 출발하고 광저우 한글학교와 포산 한글학교 선생님 두 분은 토요일 오전 수업이 있어서 후발팀으로 방과 후 출발했습니다. 16명이 4대 자동차에 분승하고 두 분은 형편이 있어 고속철도로 오셔서 류저우에서 합류했습니다. 스롱대교(石龙大桥)에서 본 류강(柳江) 첫 탐방지는 류저우 샹저우현(象州縣) 스롱전입니다. 구이핑(桂平)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잠깐 쉬고 오후 2시 반쯤 스롱에 도착했습니다. 시장으로 들어가 식당을 찾아 준비해 온 도시락과 구이린 국수를 먹고 스롱대교 아래 류강 강변으로 갔습니다. 1938년 10월 20일, 포산을 출발한 임시정부 일행이 한 달간 해로를 따라 북상하다가 11월 19일 스롱 부두에 도착해 하룻밤을 머문 곳이 바로 스롱진입니다. 저는 임시정부 일행이 광저우에서 류저우로 이동하는 동안 경유한 지역명을 연구하다가 제 인상에 꽂힌 지역은 스롱(石龙)이었습니다. 포산에서 출발한 임시정부 일행은 가오야오현(高要縣)에서 광저우에 남아있던 일행과 합류해서 일행 140여명이 큰 배를 타고 류저우를 향했습니다. 배는 부엌,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백여 명이 함께 잠잘 수 있을 만큼 컸으나 사공이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기선이 앞에서 끌어야 갈 수 있는 목선이었습니다. 기선의 동력이 약해 상류로 올라갈수록 물살이 거세져 속력을 내지 못하고 10월 28일 광시성 구이핑현 북문 밖(北門外) 부두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목선을 끌고 온 기선이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기선 구하기가 어려운 때인지라 돈을 많이 준다는 곳으로 간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 젊은이 두 명이 도움을 구하러 구이핑현 정부를 방문했더니 “일행이 도착하면 타고 온 배를 그대로 태워 류저우까지 보내라”는 광서성 정부 전보가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시정부 일행이 탄 배를 끌고 온 기선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기선을 구하려고 다방면으로 애썼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꼼짝 못 하고 구이핑 북문 부두에서 찬거리 사다가 노천 강변에서 큰 돌 조각 서너 개를 깔아놓고 나뭇가지를 주워 와 불을 지피고 가마를 걸어 저마다 음식을 지어 먹으며 시비 싸움질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할 일 없이 구이핑에서 19일을 허송세월하다가 11월 16일, 산수이(三水) 선박 사령부에서 작은 기선을 보내 주어 오후 4시 반, 구이린 북문 부두를 떠나 류저우를 향해 북상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떠난 지 두 시간 남짓해서 백여 개나 되는 여울 중에 그 몇 번째인지 여울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여울을 벗어나려다 실패하여 좌초된 상태에서 밤을 지나고 다음 날 아침에서야 겨우 배를 끌어 올려 다음 날 17일 상오 11시경 여울을 벗어났습니다. 임시정부 일행의 안살림을 맡고 있던 정정화가 쓴 『長江日記』에는 그곳을 롱강(容江, 融江)이라고 합니다. “롱강은 물살이 몹시 빨랐다.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여울이 우리를 위협했는데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앞서가는 윤선도 뒤뚱거리다시피 하면서 겨우 여울을 빠져 나오곤 했다.” 『제시의 일기』를 쓴 최선화는 11월 19일 스롱에 도착했다고 기록합니다. “일기는 맑고 깨끗했다. 기선이 상오 중으로 떠나지 않는다는 발표가 있자 마음 놓고 즐기고 이야기하며 밤낮을 보낼 수 있었다. 청산녹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선원들이 밥을 해 주면 반찬은 된장, 고추장을 반찬삼아 밥을 먹었다. 배가 잠시 정박하면 육지로 올라가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고기를 사 가지고 와서 구해 온 토기에다가 장조림을 해 가지고 담아 오기도 했다. “선상의 이백여 식구는 끼리끼리 모여 앉아 부평초처럼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습니다. 2018년, 제가 류저우를 탐방하고 우저우(梧州)로 가는 길에 우연히 스롱대교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스롱이라는 글자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스롱대교를 건너니 바로 시장입니다. 시장 부근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스롱대교로 올라가 좌우를 걸었습니다.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북으로 올라온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대교 아래는 류강이 흐르고, “날씨가 맑고 깨끗했다.”, “배를 정박하고 육지로 올라오면 반찬거리를 살 수 있는 시장이 있다.”, “200여 명이 앉을 장소가 있다.” 바로 『제시의 일기』에 나오는 스롱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2018년 스롱의 류강 강변입니다. 스롱대교 위에서 반대쪽, 즉, 이제 류저우를 향해서 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강 끝에 보이는 곳이 목적지 류저우인데 스롱대교에서 약 30~40km 떨어진 곳입니다. 11월 21일 상현에서 쓴 『제시의 일기』에는 “강물은 푸르고 맑지만, 수심이 얕아서 행선은 어려웠다.“고 기록합니다.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물이 얕고 강폭이 좁은 이곳에서는 배가 아예 나갈 수 없어 뱃머리에 밧줄을 감고 한쪽 끝을 저만큼 앞쪽으로 끌고 가 든든한 바위에 잡아매고 건장한 청년 10여 명이 배를 맷돌질하는 것처럼 묶은 밧줄을 노래하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무거운 배를 강변으로 끌어올렸다” 『조소앙 일기』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11월 20일 하오 4시 20분에 石龍을 출발하였다. 11월 21일 상오 7시 얕은 여울에 좌초되었다. 하오 5시에 또 출발하였지만 역시 저녁에 얕은 여울에 좌초되었다. 네 사람이 걸어서 柳州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탐방한 3월 18일, 날씨가 흐렸습니다. 강변도 새롭게 조성되었네요. 크고 작은 바위들을 덮어 강둑이 가지런히 쌓이고 강물이 얕아 모래가 드러났던 곳에도 녹수가 넘실댑니다. 2018년, 제가 처음 보았던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2018년 탐방 때 스롱대교에서 류강를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스롱 류강 강변에 스민 우리 역사도 지나쳤을 것입니다. 이번 탐방에서는 류강 강변을 바라보아도 2018년만큼 『제시의 일기』에 쓰인 장면이 생동적으로 떠오르지 않네요. 그래도 우리는 긴 시간 해상 여행에서 지친 임시정부 일행이 하룻밤 쉬다간 스롱강변을 기억하고 탐방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현재의 스롱 류장 강변입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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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GBC 법률/세무·회계/마케팅·현지투자 상시자문 서비스 지원 안내중진공 선전 GBC(Global Business Center)는 중국진출(희망)기업대상법률, 세무·회계, 현지투자·마케팅 분야 전문가를 활용, 상시자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문이 필요한 기업에서는 지원내용을 참고하시어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지원내용 - 1. 자문분야 및 전문가 상기 내용 외에는 전문가와 자문 가능여부 문의 후 진행 2. 지원기준 기본적인 자문내용을 기준으로 지원, 상세 컨설팅 또는 실제 업무대행 등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와 별도 협의 후 추진 *기본 자문 이외 심층 상담은 신청기업이 별도 부담 3. 지원절차 - 신청 및 문의 - 신청방법 ▶ 상시자문 지원신청서 작성 후 중진공 선전 GBC(Global Business Center) 담당자에게 이메일 송부 (이메일: zxyhanguo@naver.com) * [첨부] 2023년 상시자문 지원신청서 참조 ▶ 중진공 담당자가 내용 확인 후 분야별 전문가에게 신청내용 전달 및 개별자문 진행 [첨부] 2023년 상시자문 지원신청서 2023年韩国企业咨询支援申请表 신청서 작성 후 이메일 송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청 문의처 중진공 선전 GBC(Global Business Center) 장효영 (0755-2382-5190 , 137-7208-2789 이메일: zxyhangu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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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 심천에서 금지된 공용 띠엔동처(电动车)가 다시 거리에 나타나?몇년 전, 심천은 공용 띠엔동차 투입을 금지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심천 시민은 심천거리에 공용 띠엔동차가 나타났다며 반영하였다. 공용 띠엔동처는 심천 로후구 송원남지에(松园南街) 지하철 3호선 C2출구 근처에 8대의 공용 띠엔동차가 세워져 있었고 전용 주차자리도 있었다. 그리고 차량과 함께 배터리임대공간이 있었으며 띠엔동차를 이용하려면 먼저 배터리를 임대해야 했었다. 소비자는 샤오청쉬를 통해 차를 잠그고 요금을 확인할 수 있다. 사용요금은 2시간 내 4위안, 4시간 내 6위안, 16시간 내 9위안, 24시간 내는 15위안(최고)이고 5분 내에 반납하면 무료이다. 동시에 차량의 보험정보를 조회할 수 있었는데 보험은 사망/장애, 상해보험이 있었으며 금액은 20만 위안과 2만 위안이였다. 공용자전거와 공용 띠엔동차의 다른 점이라면 자전거는 수시로 임대하고 반납할 수 있지만 띠엔동차는 배터리를 반납하는 것으로 차량 반납이 완성된다. 때문에 공용 띠엔동차는 활동노선이 정해진 아파트 주민, 관광지 여행객에게 더욱 부합된다. 공용 띠엔동차에 존재하는 문제점이라면 발판개조, 핼멧문제, 그리고 미성년자들의 위법 사용(위챗결제로 임대가능) 등 문제점들이 존재했다. 누리꾼들은 '외출 할 때 또 하나의 선택이 생겼다', '심천에 공용 자전거, 띠엔동차도 충분히 많은데 공용 띠엔동차까지 놓을 공간이 어디 있는가?'는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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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공] 선전 GBC 법률/세무·회계/마케팅·현지투자 상시자문 서비스 지원 안내중진공 선전 GBC(Global Business Center)는 중국진출(희망)기업대상법률, 세무·회계, 현지투자·마케팅 분야 전문가를 활용, 상시자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문이 필요한 기업에서는 지원내용을 참고하시어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지원내용 - 1. 자문분야 및 전문가 상기 내용 외에는 전문가와 자문 가능여부 문의 후 진행 2. 지원기준 기본적인 자문내용을 기준으로 지원, 상세 컨설팅 또는 실제 업무대행 등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와 별도 협의 후 추진 *기본 자문 이외 심층 상담은 신청기업이 별도 부담 3. 지원절차 - 신청 및 문의 - 신청방법 ▶ 상시자문 지원신청서 작성 후 중진공 선전 GBC(Global Business Center) 담당자에게 이메일 송부 (이메일: zxyhanguo@naver.com) * [첨부] 2023년 상시자문 지원신청서 참조 ▶ 중진공 담당자가 내용 확인 후 분야별 전문가에게 신청내용 전달 및 개별자문 진행 [첨부] 2023년 상시자문 지원신청서 2023年韩国企业咨询支援申请表 신청서 작성 후 이메일 송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청 문의처 중진공 선전 GBC(Global Business Center) 장효영 (0755-2382-5190 , 137-7208-2789 이메일: zxyhangu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