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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9)리밍(黎明)고등중학교 교사푸젠 신 농촌건설 운동이 실패하고 유기석은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로 돌아왔지만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일제 밀정들이 시시각각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정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론가 떠나야 했습니다.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유기석은 비밀히 조직된 무정부주의 불멸 구락부에 가맹했습니다. 활동비는 중국 측 아나키스트의 지원을 받고 구락부 동지 중 최동길은 다니던 복단대학을 중퇴하고 고향 집에서 송금해 오는 학자금을 이들의 의식비로 제공했습니다. 취안저우의 리밍(黎明) 고등중학교가 떠올랐습니다. 이전에 신 농촌운동에 종사했던 친구들이 방침을 바꾸어 취안저우 시내에 설립한 학교입니다. 공산당이 푸젠성 서쪽 농촌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홍군을 훈련하는데 힌트를 얻은 중국 아나키스트들이 자신들만의 민중 무장 활동 근거지를 취안저우에 마련하려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기지가 설립되자 스촨ˑ 후난ˑ광둥 등지에 활동하던 아나키스트들이 취안저우를 무릉도원쯤으로 보고 잇달아 몰려왔습니다. 리밍 학교는 국민당 고위급 인사를 명예 이사장으로 추대해서 토비들도 감히 학교 운영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성방위군’이 주둔하여 취안저우 정세가 다소 조용해졌습니다. 리밍 고등중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아나키스트이며 수준이 비교적 높았습니다. 한국에서 농업을 전공한 원예전문가 유자명(柳子明, 1894~1985)이 생물 교사로 재직하고 허열추(許烈秋)도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취안저우까지 가려면 여비가 적어도20원은 있어야 하는데 유기석의 수중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가난하여 빌릴 데도 없고, 군중(群衆)서점 사장을 찾아가 책을 한 권 써주기로 하고 원고료40위안을 선불로 받아 여비를 해결했습니다. 유기석이 리명 학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지리 교사가 결원이어서 지리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많은 지방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중국 큰 도시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걱정되지 않았고, 영어 지리책과 일본 책 『세계 지리 대계』를 참고해서 외국 지리를 가르쳤는데 수업이 재미있다고 학생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체육 교사도 결원이라 지리와 체육 교사를 겸임했습니다. 매일 아침 체조 시간이 있는데 학생들이 늦잠을 자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설령 나온다고 하더라도 맨발이나 나막신을 신고 나왔기 때문에 달리기나 비교적 어려운 체조는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체육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과목이라고 여기며 교사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전임 체육 교사가 참지 못하고 화를 냈더니 학생들이 쫓아내려고 해서 전임 체육 교사가 사직해서 결원되었다고 합니다. 유기석은 체육을 좋아하고 학생 시절 축구선수였습니다. 학교 측과 상의하여 아침 체조를 필수 과목으로 정하고 체조 시간에 출석을 불렀습니다. 아침 체조15분 전, 학생 숙소 앞에서 피리를 불어 운동장에 나올 준비도 시켰는데 학생들과 친근감이 형성되어 인기가 좋았습니다. 교장이 병이 나서 유기석이 교장 직무 대리도 맡았습니다. 1930년 겨울 방학이 끝나고1931년 두어 달 교장직을 수행했는데 학교 측 이사와 교사 사이에 분규가 생겨 유기석은 교장 대리직무를 내어놓고 리밍 고등중학교를 떠났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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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8)“민남(閔南)으로 가서 신 농촌을 건설하자”유기석이푸젠의 신 농촌건설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단순히 사상적 출로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상과 현실은 엇갈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번뇌와 환상이 뒤섞여 밤낮으로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좌로 향하면 거기도 불평등하고, 우로 향하면 거기는 금전만능이어서 돈 없는 가난뱅이는 어디를 가도 여전히 학대받는 사회였습니다. 상하이에서 몇몇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구동성으로 “민남(閔南)으로 가서 신 농촌을 건설하자”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소련의 무산계급 독재정치를 반대하며 무정부 공산사회를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중국 아나키스트들이었습니다. 상하이 노동대학 설립 준비를 하던 이정규(李丁奎, 1897~1984)가 푸젠의 농촌 자위운동에 참여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유기석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반대하는 반공산주의 이론을 확실하게 파악했습니다. 베이징 조양대학에 재학할 때, 중국 아나키스트 신세기파를 형성한 베이징대학 총장 차이위엔페이(蔡元培, 1868~1940) 등 교수의 지원을 받아 흑기 연맹을 조직했습니다. 흑기 연맹은 중문으로 된 『東方雜誌』를 발행하여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아나키즘을 보급했습니다. 어떻게 신 농촌을 건설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도 듣지 못했지만, 유기석은 개인영웅주의, 자유주의, 소자산계급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아나키스트로 돌아섰습니다. 도산이 거듭 만류했으나 의연하고 결연하게 흥사단을 탈퇴하고, 미국 유학도 포기하고, 중국 국민당군 제2군 신분으로 푸젠 샤먼 선전원 양성소로 가서 사회학을 가르쳤습니다. 당시 푸젠의 남쪽, 민남 일대는 원래 지방색이 강한 데다 청말 이래 수십 년 동안 군대와 행정관리가 부패해서 치안이 극도로 혼란스럽고 각종 총기도 농촌에 나돌았습니다. 토비들은 산악지대뿐 아니라 평야 지대에서도 군대 이상 병력을 보유하고 오늘은 관군, 내일은 토비군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두목 편에 붙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공산당도 장시성(江西省)과 인접한 푸젠 농촌에서 토호나 지방 관료들과 결탁하여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습니다. 취안저우와 해발 5~600m의 산봉우리 사이에 북송 시기에 건축한 낙양교라는 유명한 다리가 있습니다. 교량에 사용된 돌 하나 길이가 약 3m로 전부 이렇게 큰 돌을 이용하여 만든 2km 교량입니다. 토비들은 산 위에 주둔하면서 시내에 나와 강탈하거나 인질을 잡고 갖은 못된 짓을 하며 민간인들의 낙양교 출입을 방해했습니다. 토비들로부터 혹독한 시련을 받으면서 단련된 농민들은 용기와 지모로 마을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취안저우 투링(涂岭)이라는 지역에 500여 명의 토비가 양식과 돈을 강탈하러 마을에 침입하자 농민들은 두 말없이 그들의 요구를 승낙하고 타작마당에 주연을 베풀어 접대했습니다. 농민을 깔보던 토비들은 보병총을 걸어놓고 진탕 먹고 즐겼습니다. 이 때 주위에 매복하고 있던 농민 한 3~4백 명이 우르르 몰려나와 토비의 총을 뺏고 마을을 지켰습니다. 샤먼선전원 양성소는 무정부주의자 지방 행정가가 민남지역 젊은이들을 훈련해 농촌에서 날뛰는 토비와 공산당의 침투를 막으려고 시작한 훈련소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졸업한 농촌 젊은이 100여명이 샤먼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선전양성소 교육을 마치면 자기가 거주하는 농촌으로 돌아가서 민간 자위단을 조직하고 하급 간부를 맡을 인재들입니다. 이 운동은 중국 아나키스트 항일운동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한인 아나키스트 유기석, 이정규, 이을규, 이기환, 정화암 등이 구심적인 역활을 했습니다. 한인 아나키스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우리의 항일투쟁을 도와준 중국 측에 신세를 갚는다는 뜻에서 참여를 했지만, 이 민단 운동이 건실해지면 우리 항일운동에 대해서도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이런 운동은 비록 직접적으로 우리의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혁명근거지를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려고 한 점에서 민족해방운동으로 연결됩니다. 유기석 등 한인들이 참여한 푸젠 신 농촌 건설 운동은 정국의 불안과 자금 부족으로 실패했습니다. 상하이로 돌아온 후 동지들이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는데 유기석은 손님 접대를 맡았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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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7)장래에 대한 갈등석방된 유기석은 일제의 눈에 띄지 않게 도산과 따로 움직이며 러시아 우수리강(烏蘇里)강 동쪽 니콜리스크로 이사한 본가를 찾아갔습니다. 혁명 후 소비에트 정부가 건립된 러시아에는 민족 차별이 없이 각 민족의 민중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모스크바 동방 노동대학에 입학할 준비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조선인 혹은 중국인이 협동조합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계산대에 먼저 갔어도 판매원은 러시아인에게 먼저 물건을 팔고 조선인은 맨 마지막으로 계산했습니다. 정부 기관에서 줄을 서 배급표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인은 늘 뒤로 밀렸습니다. 조선 농민이 우수리스크 소비에트 토지국으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도록 허가받은 토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계약은 처음 3년은 수확량의 절반을 관청에 내고, 3년 후 일반 규정대로 조세를 납부한다는 것이었지만 토지국은 단지 2년 경작 후 500여 농가를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위약에 대해 분개하고 불만을 표시한 조선 농민 대표들은 당국에 구류시키고 당국은 수백 명의 기마병을 출동시켜 조선 농민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개간지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임대했습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수립된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민족 파별 정책이 여전하고 조선인과 중국인은 차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유기석은 공산주의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없어지고 모스크바 유학을 포기했습니다. 1927년 5월, 유기석은 베이징에서 미국 유학도 준비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자초지종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선 베이징 정부 교육부에서 신청해서 미국 유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여비도 마련해 출국 여권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라는 생각이 들자, 미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제도도 희망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북경에서 한 달가량 체류하는 동안 루쉰(魯迅, 1881~1936)의 『狂人日記』 한국어 번역을 시작했습니다.『狂人日記』는 루쉰이 광인의 입장에서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소설인데 중국의 광인뿐 아니라 조선의 광인도 묘사한 것 같았습니다. 1927년6월11일, 유기석은 베이징에서 톈진으로 가는 경진선(京津線)기차 안에서 『狂人日記』 번역을 마무리해서 원고를 서울로 보냈습니다. 한글판 『狂人日記』는 8월5일『동광』 제16호에 청원(靑園)이란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노신의 작품은 유기석이 제일 먼저 한국에 소개했습니다.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 옌시산(阎锡山, 1883~1960) 부대에서 비행기 조종 기술을 배운 적이 있는지라 옌시산 항공부대에 입대하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오래 머물면 왠지 자신도 부패한 도련님들처럼 아편을 하거나 도박하는 등 나쁜 물이 들어 일생을 망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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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인역사] 유기석 가족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 (6)지린(吉林) 도산 안창호 강연회에서 체포항공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 타이위안(太原)에 머무르고 있을 때, 유기석은 도산 안창호로부터 3개월 휴가를 낼 수 있다면 함께 동북으로 여행 가기를 희망한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동북 지린에 조선 교민이 약 4~5,000명 살고 있었는데 당시 산만한 만주의 독립운동 진영을 단결하려고 도산이 고안한 여행이었습니다. 아직 학교가 정식으로 개교하지 않아서, 1927년 설을 전후해서 유기석은 도산 안창호와 함께 동북 지역 지린에 갔습니다. 도산의 수행비서는 유기석이었습니다. 도산은 긴 두루마기의 마괘자, 중국 모자, 검은색 솜 신발, 손에는 신사 지팡이를 들어 마치 중국의 지주나 지방 호족처럼 변장했습니다. 유기석은 도산의 큰아들처럼 변장하여 지린으로 왔습니다. 지린의 지방 유지 최명식(崔明植, 1880~미상)의 정미소에서 설 모임 겸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도산의 강연 후 조선 학생 극단이 「강산의 눈물(山河淚)」이라는 연극을 공연했습니다. 이 극본은 난징(南京) 동남(東南)대학의 허우야오(侯耀)가 '3.1운동 민중 봉기'를 주제로 창작한 작품인데, 1924년 난징에서 첫 공연을 할 때 유기석도 극 중 배역을 연기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 설 모임에서는 자진해서 연극 감독을 맡았습니다. 연극 중 무장한 일본 군경이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한 여학생의 오른손을 군도로 찍자 손에 있던 태극기가 땅에 떨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여학생이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줍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자, 일본 군경은 다시 칼을 휘둘러 그녀의 목을 베었습니다. 「강산의 눈물(山河淚)」은 지린 교포 수백 명을 엄청 감격하게 했습니다. 관중 가운데는 생전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는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연극 줄거리와 배우의 연기도 대단했지만 태극기가 무대에서 휘날리는 장면이 나오자 관중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대성통곡하면서 이 피맺힌 원한을 갚자고 다짐하며 환호하고 만세를 부르며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첫 강연회가 워낙 큰 효과를 거두어서 1월27일 저녁 7시에도 같은 장소에서 2차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200여명이었습니다. 안창호가 관중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강단에 올라가 강연할 때 중국 경찰과 일본 헌병들이 강연장을 포위하고 한 무리 경찰이 집회장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체포된 사람들은 밤새 심문받았는데 혐의가 없다고 여겨지면 그 자리에서 석방하고 안창호와 유기석 등 지식인 40명이 지린성 경찰청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중국에 적화를 선전한다는 것이 죄명이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중국 측 경찰에게 이들을 인도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중국 측은 끝까지 조선총독부에 인도할 의무가 없다고 변명하며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유기석은 친구 심여추에게 도움을 구하고, 일본 경찰은 군벌정부와 중국 여론에 떠밀려 20여 일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유기석은 지린 사건 이후, 안창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1928년 흥사단을 출단했습니다. 비록 안창호를 비판적으로 이해했지만 매우 존경하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글: 한국독립운동역사연구회 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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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에서 티켓 환불하려면 남자친구가 내 남자친구라는걸 증명해야?!최근 한 네티즌은 "상하이 디즈니티켓을 환불할 때 플랫폼으로부터 종이로 된 '커플 관계 증명서'를 요구받았다"고 폭로해 화제가 되고 있다. '환불하려면 남자친구가 내 남자친구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허난성 정저우의 장여사는 '27일 남자친구와 함께 페이주(飞猪) 휴가공식플래그십스토어와 페이주(飞猪) 디즈니공식스토어에서 성인 티켓 한 장과 학생 티켓 한 장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다음날 여행 중에 그녀는 갑자기 아팠고 상황이 비교적 심각했기 때문에 티켓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플랫폼 요구에 따라 진료증명서와 지불증명서를 제출하여 자신의 티켓을 성공적으로 환불했지만 남자친구는 티켓환불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장여사는 '상하이 디즈니는 티켓를 쉽게 환불할 수 없으며 이유를 기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이주(飞猪) 공식플래그십스토어의 '티켓 문제' 페이지 하단에 '동행자가 방문하지 못할 시 관계 증명서를 보충해야 한다'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그가 제공한 캡처 사진에 따르면 플랫폼은 '직계가족(친구, 친척)이 아닌 일행이 방문하지 못할 경우 신분증과 함께 찍은 사진, 관계자와 함께 찍은 사진 또는 동영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녀는 상기 자료를 모두 제공했고 증명서로 다양한 커플사진을 증거로 제공했다고 반영했지만 페이주(飞猪) 고객센터에서는 그녀가 제공한 자료는 커플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고 알렸주었다. 그녀가 제공한 한 토막의 녹취에서 페이주(飞猪) 고객센터는 커플관계 증명서에 학교 또는 지역사회의 '공인'이 있어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여사가 이것이 페이주(飞猪) 플랫폼인지 디즈니 관광지의 규정인지 물었을 때 고객센터는 '관광지 규정'이라며 '관광지는 환불도 없고 정정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들과 여러번 협상을 했는데 반드시 종이로 된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며 답했다. 커플관계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지에 대해 페이주(飞猪)회사 소재지의 파출소 직원은 '이건 우리가 발급할 수 없는데 어떻게 발급하는가?'며 이 문제를 소비자협회 및 시장감독부서에 신고하거나 사법경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페이주(飞猪) 고객센터는 '구체적인 증빙서류는 관광지 회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하이 디즈니 고객센터는 '공식 채널을 통해 구매한 티켓은 환불할 수 없으며 제3자 플랫폼의 규칙은 공식 규칙과 다르다'며 '원래 채널에 연락해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30일 저녁, 장여사는 '페이주(飞猪)가 남자친구의 티켓을 전액 환불 해줬다'고 밝혔고 페이주(飞猪) 직원은 '상하이 디즈니 측에 티켓 환불 규칙 문제를 피드백했으며, 이후 파트너와 협의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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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深圳) 모 회사, 일부 직원들에 10개월 휴가 줘, 배상금 주지 못한 하책최근 심천화매흥미의료과학기술유한회사(이하 “화매흥미”)(深圳华迈兴微医疗科技有限公司)의 '휴가 통지' 두 건이 소셜 플랫폼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모두 10개월이면 내년 노동절이 된다. 심천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오래 쉬는 회사가 아닐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번 휴무는 컨설턴트 회사가 준 전략일 것이다. 인력자원 컨설팅 회사 관련 수업을 받을 때 배웠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11월 27일, 화매흥미 직원은 '사실이 맞다. 일부 사람들이 휴무했다. 회사가 배상할 돈이 없지만 합법적입니다‘라고 답했다. 화매흥미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4년 설립된 이 회사는 자체 창신(创新), 규모화된 생산 및 마케팅을 통합한 의료건강진단기업이다. 체외 진단 면역 신속 검사 플랫폼(미세흐름제어 화학발광 면역분석 플랫폼)의 연구 개발, 생산 및 판매에 주력한다. 두개의 '휴가 통지' 캡쳐본을 보면 휴무 기간은 2023년 7월 1일 9시부터 2023년 10월 31일 18시까지, 2023년 11월 1일 9시부터 2024년 4월 30일 18시까지이다. 휴무 원인은 주문 부족으로 인해 회사의 경영이 어렵고 경영 조건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 연구 결과 경영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휴가를 주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휴무 기간 급여는 '심천시 직원급여지급에 관한 조례' 등 관련 규정에 따라 시행된다. 첫 달 급여는 정상적으로 지급되며, 다음 달부터는 심천 최저임금 기준의 80%를 지급하며 정해진 시간에 복귀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으로 처리한다. 11월 27일, 직원 두여사(가명)는 '회사에는 아직 출근하는 사람이 있고 조업 중단도 없다. 사실 회사는 7월부터 첫 번째 직원들을 4개월 동안 쉬게 했다. 10월 말에 이르러 7월에 휴무한 첫 번째 직원들은 스스로 이직하지 않고 두 번째 직원들과 함께 2024년 4월 말까지 휴무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화매흥미 관계자는 '현재 회사 업무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일부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다. 예를 들어 배가 작은데 배에 탄 사람이 너무 많아 (자발적으로) 사직하지 않아 회사경영상 감당하지 못해 휴가를 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경첩항변호사사무소의 이리(李力)변호사는 '회사가 자율경영권을 갖고 있어 직원들에게 장기휴가를 줄 수 있다. 회사가 최저임금/생활비를 제공하고 사회보험 가입만 해준다면 불법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회사의 조치는 경제보상금이나 배상을 지불하지 않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직원을 해고하고 직원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직원은 실제 증거를 제시하여 회사의 '악의적인' 행위를 지적하고 노동중재위원회에 상소하여 법에 따라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법》 제79조에 따르면 노동쟁의가 발생한 후 당사자는 본 단위 노동쟁의 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으며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당사자 일방이 중재를 요청하는 경우 노동쟁의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당사자 일방은 또한 노동쟁의중재위원회에 직접 중재를 신청할 수도 있다. 중재 판결에 불복할 경우, 인민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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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차이민(彩民) 508만 위안의 복권 당첨, 한 회사를 살렸다!최근, “해피8”(快乐8) 1등 당첨자 왕모씨(가명)는 가족과 함께 심천복권서비스청에 가서 당첨금 수속을 밟았다. 11월 25일 저녁, 복권 "해피8" 게임이 제2023315회 추첨을 진행하였는데 당기 "10개 중 10개 당첨"(选十中十) 1등 당첨자 1주가 나왔으며 심천의 복권 구매자는 1등 상금에 당첨되었다. 이번 당첨 복권센터는 바오안구(宝安区) 푸하이지역구(福海街道) 교남(桥南) 156호 103포 83801142 복권 오프라인 매장이다. 왕씨는 복식베팅표를 구매하였기 때문에, 상금은 합계 508만 위안("10개 중 10개 당첨"(选十中十) 1주, 상금 500만 위안, “10개 중 9개 당첨”(选十中九) 10주, 상금 8만 위안)이다. 왕씨는 평소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복권을 구매하는 것을 좋아하며 “해피8”을 산 지 이미 1년이 넘었다. 이번에 당첨된 번호는 그가 마음대로 고른 것이며, 번호를 5~6회 지켰다고 말했다. "이 큰 당첨금은 때마침 와서 나의 급한 불을 껄 수 있었다."며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최근 자금 압박을 많이 받았는데 당첨금으로 회사가 겪는 자금난을 해결할 수 있다. 복권이 희망을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매우 감격스럽다. 우리복권센터 구매자가 큰 상에 당첨되었는데 자신이 당첨된 것보다 더 기쁘다.” 83801142 복권센터 판매원 황여사는 추첨날 저녁에 당첨정보를 확인했더니 복권센터에서 "해피8" 당첨자가 나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당첨된 번호에 대해 조금 인상적이었다. "나는 복권을 팔 때 단골손님들의 복권 구매 습관을 기억하는데 이는 그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이 번호는 "해피8"을 자주 사는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정말 그를 대신해 기쁘다. "며 전했다. 14년 전, 우연히 복권과 인연을 맺은 황여사는 복권 판매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 직접 베팅소를 열었다.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 일에 정이 들었다. 복권이 당첨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성취감이 생기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복권 한 장이 팔릴 때마다 공익금 마련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보람 있다"며 그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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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추싱(滴滴出行) 시스템 오류로 차량 예약 불가, 콜택시 이용 요금이 60위안에서 180위안으로 변해28일 아침 출근시간 일부 시민들은 디디추싱(滴滴出行) 앱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위챗 샤오청쉬(小程序)도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여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시만 왕씨는 '8시10분에 택시를 탔다. 페이지를 열고 지도를 불러올 수 있었지만 목적지를 선택한 후 발송 실패로 나왔다. 8시 36분에 다시 차를 부르려고 했을 때 인터넷 로딩 이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시민 장씨는 '8시50분에 디디를 잡아서 9:10이 되어서야 차를 잡았다. 가까스로 택시를 잡았다'고 말했다. 택시 호출에 성공한 시민은 '앱 지도에서 기사가 오는 운행 궤적이 없었다. 인터넷 예약 차량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올 수 있냐고 물었을 때 기사는 주문이 보이지 않아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다른 시민은 '어젯밤 약 60위안의 차비를 예상했던 정가(一口价) 주문이 오늘 지불할 때 180위안이 됐다'며 '어젯밤 디디가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것을 듣고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좀 늦게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디디추싱은 '기술팀이 밤새 복구한 결과 디디 인터넷 예약 차량 등 기타 서비스가 이미 회복되었으며 사용자는 디디 앱을 다운로드하여 택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자전거 등 서비스는 아직 계속 복구 중이며 잠금하지 않았거나 잠금 해제할 수 있는 모든 칭쥐(青桔) 차량은 무료로 탈 수 있다. 아침 출근시간대의 예약이 밀리는 현상을 완화하고 다른 문제들도 해결하려고 노력중이다. 사용자들의 이동에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자전거 서비스가 계속 복구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누리꾼들은 '이 시간에 그렇게 많은 자전거가 있었는데, 한 대도 이용할 수 없어 지각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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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동안 277개의 상품을 반품하고 고소당해최근, 광동성 주하이 샹저우 법원(广东珠海香洲法院)은 빈번한 반품으로 인한 침해책임 분쟁을 종결했으며 법원은 소비자의 빈번한 반품이 주관적으로 악의적이고 상인의 권익을 침해했다고 인정하였다. 탠탠(甜甜)은 한 플랫폼에 개인 이름으로 뷰티매장을 등록하고 다양한 뷰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2022년 10월 말, 웨웨(悦悦)는 탠탠의 가게에서 틴트를 주문한 후 반품 및 환불을 요구했다. 탠탠은 반품 소포를 받은 후 틴트가 이미 사용되어 2차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환불요청을 거절했다. 이후 4개월 동안 웨웨는 탠탠의 가게에서 100건 이상의 주문을 했고 277개의 상품을 구매했다. 거의 모든 주문이 물건을 받지 못했을 때 "제품 품질 문제", “배송 오류" 등 이유로 반품 및 환불을 진행하고 “악취가 많이 난다", "보기 흉하다",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렸다", "색상이 이쁘지 않다", "이것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겼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웨웨의 조작으로 인해 탠탠의 가게는 플랫폼으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탠탠은 여러 차례 소통했지만 결과가 없어 샹저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웨웨에게 즉시 악의적인 주문을 중단하고 사과하고 9,000위안의 운영손실을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웨웨는 "손해 배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건을 받지 못해 반품 사유를 임의적으로 선택한 것은 결코 악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탠탠은 이에 "권리 보호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상품이 배송되지도 않았는데 허위사유로 반품을 신청하여 가게의 평점이 떨어지고 검색량이 떨어지며 신용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주문-환불'을 수백 번 반복하는 이런 악의적인 주문 방식은 엄중하게 나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였다!"고 반박하였다. 샹저우 법원은 "첫 쇼핑 후 반품 및 환불이 거절당하여 피고 웨웨는 원고 탠탠과 '모순'이 발생하였고, 그 후 원고 탠탠의 가게에서 자주 주문을 했고 또 빈번하게 환불했으며 주문횟수와 수량이 많았다. 또한 여러 차례 상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후에도 여전히 같은 립스틱을 계속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정상적인 소비자의 행위 특징에 부합하지 않는다. 피고 웨웨가 양측의 소통에서 언급한 '그래서 나는 기억하고 있다', '단지 그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그 대처했을 뿐이다" 등의 발언과 결합하면 피고 웨웨가 실제로 쇼핑을 할 의사가 없고, 주관적으로 악의적인 것이 이미 상인의 합법적 권익에 대한 침해를 구성했다. 법원은 "피고 웨웨의 과실정도, 초래한 영향, 권리 침해 기간 및 실제 점포 운영상황을 종합하여 피고 웨웨는 악의적인 주문행위를 즉시 중단하고 서면으로 사과하고 사과내용을 원고 탠탠이 운영하는 개인 점포 홈페이지에 반년 동안 공개하고 탠탠의 경제적 손실 2,000위안을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우리는 온라인 구매에 익숙해졌고 또한 소비자권익보호법에서 “일주일 이내 무조건 반품"(七天无理由退货)에 능숙하여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고 쇼핑 체험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민법전>> 제132조에도 민사주체는 민사권리를 남용하여 타인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였다. 소비자로서 이성적으로 소비하고 성실하게 신용을 지켜야 하며 온라인 구매 시 실제 쇼핑 체험에 따라 적절한 반품 및 환불 방식을 선택해야 하고 불합리한 주문, 반품 조작 또는 악성 댓글을 통해 상인의 운영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상인에 대해 권리침해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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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모 회사 “4일 근무제” 시행으로 온라인에서 화제최근인터넷에 심천의 모 과학기술회사의 "작업 및 휴식시간 조정 통지" 캡처 사진이 떠돌았다. 내용에서 회사는 4일 근무제를 실시할 것이며 매주 수요일은 유급 휴가를 실시하고 급여 및 기타 복리후생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누리꾼들의 부러움을 샀다. 11월 23일, 회사 책임자는 '회사에는 자신을 포함한 6명의 직원이 근무시간에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며 '어제(수요일) 첫날 쉬는 날 모두 데리고 낚시를 갔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아이를 돌보는데 편리하도록 10시에 출근하도록 규정하하였다. 심천시천일시신과학기술유한회사(이하 천일시신이라 약칭함)이 서명한 공지는 '직원의 업무 효율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경영진의 연구 및 결정을 거쳐 당사는 11월 20일(월요일)부터 4일 근무제를 시행할 것이며 급여 및 기타 복리후생은 변하지 않는다. 법정주말 2일 휴무를 제외하고 모든 직원은 매주 수요일 유급 휴무이며 추가 근무는 권장하지 않는다. 업무가 있는 경우 딩딩(钉钉) 신청 및 승인을 거쳐 조정할 수 있다.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30분으로 16:30으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톈옌차(天眼查)에 따르면 천일시신은 2016년에 설립된 대외무역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이다. 회사 대표 서씨는 '회사의 주요 업무는 일부 외국 회사의 자재 구매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예전 근무시간은 오전 8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였는데, 사실 정해진 시간 안에 직원들이 일을 끝낼 수 있고, 기본적으로 휴대폰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나중에 보니 회사에 저 빼고 모두 아이가 있어서 직원들이 아이를 돌보는데 편의를 주기 위해 출근 시간을 10시로 조정했고, 오후 4시가 넘으면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말해줬고 후에는 아이들 유치원 하원시간을 시간에 맞추게 됐다'며 전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6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여서 이렇게 안배할 수 있어요. 굳이 사무실에서 일 할 필요가 없어요. 다들 회사를 집처럼 여기고 회사밖에서도 업무를 잘 처리해요. 모두가 사업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데 출근시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22일, 수요일이자 새 규정 시행 첫날 서씨는 직원들과 함께 낚시를 갔다고 밝혔다. '낚시할 때 구매관리자의 전화는 끊기질 않았고 해외업무를 담당하는 동료도 컴퓨터를 가지고 다닌다. 통지가 누구에 의해 인터넷에 올라왔는지 모르며 언론사에서 올린 내용을 확인하는 거래업체도 있었다. 사실 4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회사도 꽤 많다'며 말하였다. 최근 나이키 중화권(耐克大中华区), 러스(乐视), 씨트립(携程) 등 여러 회사가 비슷한 탄력근무제도를 적용해 눈길을 끌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키 중화권담당자는 '새로운 혼합근무방식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금요일에는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러스(乐视)측은 '주 4.5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특히 매주 수요일마다 탄력적인 0.5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출근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연속근무로 조정되어 규정에 부합된다'며 밝혔다.